스스로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그녀에게 유력감(sense of strength)을 주었다. 1961년이 될 때까지 그녀는 영문학학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 석사학위를받았으며, 이후 마운트버논의 도서관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녀는 커다란 욕조가 있는("의심이 피어오를 땐 목욕을 하라."라고 그녀는 한때 조언했다.47) 안락한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자신의 새로운 자립을 만끽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드 롤린스를만났다.

그것은 자신이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곧잘 느끼며, "극단적인 것들이 유지하기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러움에도불구하고 평온하게 중간에 그은 직선을 따라 운용되는 계획보다 왜 항상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지 의아해하던 여성을 위한결혼식이었다. 51

부모로서 더 강해지고 보다 큰 목적의식을 갖게 됐다고 느끼는 동시에 오드리는 자신의 삶이 "시적 흥분"으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다고 느꼈다.53 모성과 결혼, 정치 참여가 자신의 관심전면을 장악하고 있는 탓이었다. 시간이 부족했던 그녀는 베스의 기저귀 가방에 넣어둔 종이 조각들에 이미지와 구절들을 적어놓았다. 완성된 시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선집과 주류 잡지 니그로 다이제스트》에 수록돼 출판됐다. 1964년에는 시인랭스턴 휴즈가 『새로운 니그로 시인들의 미국이라는 선집에 그녀를 포함시켰고, 이는 그녀의 커리어에 중요한 도약의 발판이 되었는데, 특히 《타임》이 그녀를 뽑아 상찬한 이후엔 더욱 그랬다.

2그해 겨울 오드리는 작은 출판사를 차린 다이앤으로부터전화를 한 통 받았다. 다이앤이 말하길 새로운 정부기관인 국가예술기금위원회(NEA)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는데, 바로 지금이야말로 오드리의 책을 출판할 때라는 것이었다. 오드리가 직접편찬한 시를 묶은 『최초의 도시들』의 수록작들은 그녀의 커리어 내내 반복될 주제들을 다룬다. 부모와의 관계, 자식들과의 관계, 인종적 정체성, 육체적이고 낭만적인 사랑에서의 쾌락, 미국의 많은 흑인 작가와 과학소설가들처럼, 그녀는 스스로를 희망과 변화의 미래시제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여성 작가가 빠지는 가장 위험한 함정 중 하나는 작품으로 존경받는 것에 더해 자기 자신으로 사랑받고 싶다는, 위대한 예술가일 뿐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싶다는 욕구다. 앤절라 카터‘

소녀로서 수전은 자기 엄마의 모성을 재창조하는 공상을 즐긴다. 오직 더 나은 쪽으로만. "나는 아들을 낳을 거야. 진짜 엄마가 될 거야. 이것은 내가 진정한 어른다움을 갖춘 채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기 위한 환상이다. 자유. 나는 나 자신인 동시에 엄마(좋은 엄마)이며, 만족하는 예쁜 아이다."

그녀의 지성 역시 주의를 요구한다. 손태그는 어느 자전적인글에서 "스스로 감금됐다고 느끼는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역할을 회피하는 데 온 에너지를 집중"하는 어떤 여자를 묘사한다. "끊임없이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수전은 사진작가 애니 리버비츠와 함께 말년을 보낸다. 모든 사람이 그 둘이 커플임을 알고 있을 때조차, 커밍아웃이 과거보다훨씬 더 안전해졌음에도 그녀는 그 사실을 부인한다.

언제나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다는 뜻의이 사랑은 어떤 종류의 사랑인가? -에이드리언 리치

글은 그녀의 재능과 야망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 그녀는 민권운동의 성공에 힘을 얻었고, 미국 북부에서 몇 년을보낸 후 고향인 남부로 돌아오면서 용기를 얻었다. 그녀는 남부흑인 여성의 경험에서 비롯된 시, 단편소설, 그리고 두 번째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로 충만하다고 느낀다. 글쓰기는 스스로를돌보는 행위로,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앨리스는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이튼턴의 흑인 공동체에 속하기를 좋아했지만, 때때로 그것이 또 다른 제약이 된다는 것을깨달았다. 새로운 자신을 시도하며 뉴욕을 돌아다닌 오드리와달리 앨리스에게는 갈 곳이 없었고, 그녀에게는 훨씬 적은 자유만이 허용되었다. 유년 시절 앨리스는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고, 그런 행동을 자기확인이라기보다공동체에 대한 거부"로 이해했다.

앨리스는 딸이 자신의 상처를 완전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다시금 정의내린 것에 대해 큰 기쁨을 느꼈다. 동시에 딸의 손길을 묘사하면서 ‘엄마가 하듯‘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자신의부모가 자신에게 해줄 수 없었던 것을 리베카가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란다는 무의식적 바람을 암시한다.

으로선택되지 않은 모성은 앨리스가 『컬러 퍼플』을 포함한 초기소설 세 편에서 공통적으로 다룬 주제이다. 그레인지의 아들 브라운필드 코플랜드는 멤이라는 여성과 모욕적인 결혼을 하게 되는데, 임신은 그가 그녀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다.

앨리스는 딸과의 관계를 통해 필요한 확신을 찾았고, 자신은 리베카의 어머니가 아니라 동지라고 주장했다. 리베카가 아홉 살이었을 때 쓴 자기만의 한 아이」에서 그녀는 자랑스럽게썼다. "아이와 저, 우리는 함께입니다. 우리는 엄마와 아이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우리의 온 존재를 부정하는 모든 것에저항하는 자매입니다."

"당신처럼"이라는 표현에 의문을 표했을지도 모르지만, 여성 공동체를 구현케 해준 동시에 가까운 관계에서 선을 그을 수 있는용기를 전해준 새로운 페미니즘에 대한 앨리스의 이해는 진심이었다. 그레인지 코플랜드』에서 여성들 간의 연대는 크게 강조되지 않았지만, 몇 년 후 『컬러 퍼플』의 주요 주제가 될 것이었다.

이곳까지 오기 위해 앨리스는 모성에 대한 모호한 신화를거부해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강조하며 덧붙인 것처럼 우리는모성과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

육체적 관계와 환경의 변화는 가장 혁명적인 개혁가들조차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적·감정적 상태를 변화시킨다. 도리스 레싱‘

모든 시대가 변화의 시대이긴 하지만, 우리 시대는 거대하고 급격한 윤리적 · 정신적 변형의 시대다. 전형은 성공.
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고, 크고 단순한 것들은 복잡해지며, 혼돈이야말로 명쾌한 것이 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 모두가 사실로 알고 있는 것들은 예전에 몇몇 사람들이 생각해낸 것임이 드러나고 있다. 어슐러 르 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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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는 자본주의보다 엄마들에게 관대했다. 앨리스는
"사회주의적" 뉴딜 정책 덕에 10년간 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공황기 동안 일자리를 창출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공공사업진흥국은 1933년 예술가 고용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연방 예술프로젝트는 공공건물을 위한 벽화를 디자인하거나 사진을 찍는, 혹은 앨리스처럼 6주에 한 번 그림을 제출하는 미국의 예술가 수천 명에게 생활비를 지불했다. 그리니치빌리지의 사회적리얼리즘 작가들이나 할렘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인사들, 마크로스코나 잭슨 폴록과 같은 미래 추상 회화의 슈퍼스타들 모두이 프로젝트의 수혜자였다. 전후 뉴욕이 세계의 미술 수도로서명성을 누릴 수 있었던 데에는 신진 예술가들에게 꾸준한 지원을 제공해준 이러한 프로젝트가 한몫했다.

창조적인 삶에서 모성이 지닌 위험성은 처음 경력을 시작하던순간을 버티게 해주었던 성공의 가속도가 줄어들면서 고립과낙담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예술가들의 경력은 종종천천히 성장한 뒤 늦게 성숙한다. 화가는 성공 여부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작품제작에 수년을 투자해야 한다. 젊은 나이에예술을 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성과 없이 중년이 된예술가도 빛날 수 있을까? 신인도, 인정받는 작가도 아닌 사십대의 앨리스는 뉴욕의 예술 커뮤니티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자신의 경력이 정체되기 시작했음을 알아차렸다.

창의성과 예술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은 동시에 가장 답하기 힘든 질문들이기도 하다. 앨리스의 모성이 그녀의 예술을 더훌륭하게 만들었나? 많은 창작자 엄마들은 아이들과의 관계가그들의 감수성을 심화시키고 한계를 넓히며 어슐러 르 귄의 표현대로 아이들과 "뼛속까지 더 가까워지게 만들었다고 주장해왔다"

가정이 제일 중요했지만, 제작업도 항상 거기 있었습니다. "음,
이번 주나 다음 주, 그 다음 주에는 작업을 할 수 없겠지만, 어쩌면 6개월이나 1년 후쯤 되면 다시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여자들에게 그다지 공감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전문 작가건 그렇지 않건 간에, 매일매일, 심지어 자정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남자는 어떤 종류의 제약을 거부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되고,
여자는 그것을 수용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된다. 여자들은 얽매여 있다. 여자들은 스스로에게 심각한 폭력을 가하지 않고는위반할 수 없는 금기의 원심력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삶에 얽매여 있다.

엘리자베스 스마트는 자유와 권위를 낭만적인 반항이나 자기파괴적인 열정과 혼동했다. 그 결과 그녀는 훌륭한 책 한 권과네 명의 아이들을 남긴 채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다른 여성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모성‘과 ‘지성‘을 함께 묶어 생각하는 것은 이 각각의정체성이 지닌 철저함에는 물론,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여겨지는 두 가지 정체성의 모순적인 결합 모두에 도전함으로써 오랜 전통을 뒤흔들 것을 요구한다. -게일 와이스

문학은 여성의 일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여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적절하게 수행할수록 문학을 통해 성취와 즐거움을 느낄 여유는 줄어들 것이다.

내 활력이 어디로 가면 좋을까? 책 혹은 섹스 야망 또는 사랑? 불안이나 관능? 둘 다 가질 수는 없으니.5

만약 여러분이 여성 작가라면, 언제 어디서든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작가라고 여기는 게 먼저인가요,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게 먼저인가요?" 조심하라.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글쓰기와 여자를 둘 다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마거릿 애트우드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라고 불려온 것은 다음 세대를 키워내고, 집안 살림을 유지하고, 사람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법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 내가 하는 작업 역시 여성의 전통적 노동과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단지 형태만 다를 뿐이다. 준 조던

좋은 딸,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애인, 좋은 선생님 등 무엇이 되든 간에 내 모든 삶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유일한 일은 글쓰기다. 아무것도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진짜 자유로운 세계이다.

에그러나 허구 속에서 남자가 된다는 것은 또한 여성만의 오롯한 자유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상상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어슐러는 자신이 꿈꿔왔던 강력한 운명을 여성들, 특히 어머니들에게 어떻게 부여해줘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 "다시 말해 자신이 자유롭다는 인식입니다.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요. 결코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아주 불완전하게만 그렇지요. 오로지 하나의 행위에서만, 자신이 움켜잡을 수 있는 짧은 순간에 책상에앉아서 글을 쓰면서 정신의 호수에서 물고기를 낚는 여성이 될때에만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이 행위 속에서 우리는 책임 있는존재입니다. 이 행위 속에서 우리는 자율적입니다. 이 행위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습니다."

모성애 앞에서는 원대한 야망이나 절박함. 개인적 우상,
욕구는 모두 꿈결 같은 한때가 돼버린다. 하지만 그것은계속해서 그녀를 사로잡고 현실 속으로 끈질기게 출몰한다. 루이스 어드리크

때로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배우자와 이별하거나 배우자가사망하면, 마치 깊은 수원에서 샘이 솟아오르듯이 모든 에너지와 창작 기술과 통찰력과 인내심이 되살아나고, 가사에 들어가던 모든 시간이 자아로 되돌아와, 유령이 된 것 같았던 창조력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아 활기를 띠기 시작하곤 한다. 62세에작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던 어슐러 르 귄의 어머니인 시어도라크로버의 경우가 그랬다. 60세에 소설을 출간하기 시작해 결국당대 영국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이 된 퍼넬러피 피츠제럴드의 경우도 그랬다. 그녀 또한 팜므 메종, 즉 집사람이었는데,
부르주아의 작품들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던 것이 그녀에게는실제 현실로 일어남으로써 그녀는 작가적 소명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녀의 집이 실제로 산산조각 난 것이다.

누군가 그녀에게 그녀 자신에 대해 물으면, 그녀는 "시를 암송하곤 했다. 그러면 그 시 어딘가에 그 느낌, 정보의 가장 중요한 조각이 있었다." 그녀는 결국 "나를 대신해 말해줄 다른 시들을 찾을 수 없을 때, 달리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건 더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녀의 친구 제니는 열다섯 살 때 자기 엄마와 큰 언쟁을 벌이고,
카리스마 넘치지만 신뢰하기 어려운 아버지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머지않아, 오드리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상상할 수는 있는이유로, 제니는 자살했다. 친구의 병원 침대 옆에 오드리가 앉아있었지만 친구는 쥐약을 삼켰고, 의사들은 그녀를 살릴 수 없었다. 오드리는 일기에 "나는 그녀를 너무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를 말릴 수가 없었다."라고 썼다.

1954년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서 그녀는 조국의 박해를 피해 도망쳐온 미국인 그룹의 일원인 또 다른 연상의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오드리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언론인 유도라 개릿은 사랑하는 것뿐 아니라 사랑의 행위를 받는 방법,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 부르고 그것에 자긍심을 느끼는 법, "사랑하고 살아가며 그 이야기를 솜씨 좋게하는 법"을 오드리에게 가르쳤다.

물웅덩이에 나를 몰아넣고 익사할 때까지 울고 싶다. 이전의그 긴 세월, 내 안에는 때때로 바람이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으며 먹이를 찾아 헤매는 어둡고 텅 빈 동굴이 있었다. 때때로 모든 것을 목 졸라 침묵하게 만드는 어떤 진공 하지만 이 동굴은정의를 제대로 내릴 수 없어 끝장낼 수도 없었다. 이제는 그게뭔지 알 수 있으므로 끝낼 수 있다. 그것의 이름은 외로움이며,
그것은 끝없는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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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플롯에는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는데, 올바른 상황에서라면 배우자와 자녀의 사랑이 기쁨, 지지, 자유, 강인함의강력한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니 모리슨은 엄마가 되는 일이 "내게 벌어진 가장 해방적인 일"이라며 "나는(그것이 무엇이었건 간에) 내가 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누군가 내게 그렇게 되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46 어슐러 르 귄은 결혼생활과 자녀들을 통해 작업을 계속 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정감을찾았다.

20세기의 여성 창작자들은 자신이 자녀들뿐만 아니라 남편과애인들에게마저 이타적(selfless)일 것이라는 기대에 맞서 싸웠다.
전통적 결혼관계 안에서의 양육은 이들 여성을 정서적으로 갉아먹었고, 그 결과 이들은 창작에 필수적인 독립심을 빼앗겼다.
여성들은 감당 불가능한 노동에 끊임없이 부딪혔다. 시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만이 아니라 배우자, 가족, 공동체가 이들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거나 작업을 그만두라고 부추겼기 때문이다. 어드리크는 여성 작가들이 "배우자나 가족과 일부러 거리를 두지않으면 완전히 먹혀버리곤 했다고 설명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모성은 어떤 경험보다도 내게 정서적으로 많은 요구를 했다. 모성은 이따금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다정할 수 있을지를 강조했고, 또 다른 때에는 내 한계에 직면해 절망케 했다. 모성은 나를 시험해보게 하고 내 자신을 마주하게하는데, 이런 면에서 글쓰기와도 비슷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오랫동안 작업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한편으로 더욱 진정한 내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고, 또 한편으로는 나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나는 나의 확고한 기반을 되찾기 위해이 미지의 장소에 대해 배워야 했고, 영혼의 근본적 변화라 할만한 과정을 겪어야 했다.

나는 엄마 영웅들에 대해 찾아보며 이들이 여성들의 이야기안에 줄곧 존재해왔음을 알게 됐다. 그녀들의 주체성은 자기상실과 자기발견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청소년기에, 출산기에, 그리고 장년기에 이들은 줄곧 자신들을 향한 "몰살"의 위협을 마주하고 힘을 회복해야 했다.

이 책이 하려는 이야기 중 하나는 어떻게 모성이 우발적 사고이자 의무에서 하나의 선택이 되었으며, 그것이 여성들의 삶에 얼마나 심오한 영향을 끼쳐왔는지에 관한 것이다. 여성 작가들의 커리어에 관해 읽을 때, 그들이 얼마나 적은 선택지를 갖고있었는지 기억하는 것은 필수다. 앨리스 닐이 그녀의 첫 결혼에관해 말했던 것처럼, "처음에 나는 아이들을 원치 않았다. 아이들은 그냥 생겼다."

앨리스는 화가이자 엄마가 되기 위해 평생 다른 사람들의기대를 저버리며 살아야 했다. 그녀는 유대감이 깊고 정이 넘치는 가족의 가장이자, 천재들에게 따라붙는 불편함을 감수하며고집스럽게 자신만의 비전을 추구하던 예술가이기도 했다. 동시에 그는 능숙하고 독창적인 붓터치를 통해 날카롭고 불안한 드라마를 담아낸 초상화가로 잘 알려진, 끈질기고 난해한 괴물 같은 예술가였다. 한 비평가는 그를 ‘아줌마 영웅(auntie-hero)‘이라 부르기도 했다.

앨리스의 모성은 예술가의 소명과 양육 사이에 얼마나 많은갈등이 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한 젊은 예술가는 80세가다 된 앨리스를 보고 "물방울무늬 드레스를 입고 할머니 스타일로 흐물흐물하게 꼬아 올린 머리를 한 나이든 여성에게서 느껴지는 강철 같은 결의에 감탄하며 이렇게 물었다. "화려한 패턴의 레이온 원피스에 가려진 가슴 속에 어떻게 군인의 심장이 뛰고 있단 말인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앨리스는 그간 그토록 두려워하던 선택을 하게 되었다. 1931년 9월 요양원에서 퇴원하며 치료사들의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예술가는 엄마가 될 수 없다.
카를로스는 파리에, 이사베타는 쿠바에 머무는 동안 앨리스는보헤미아적인 그리니치빌리지로 이주해 자신의 소명에 따라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예술가는 무릇 창조적 인격뿐만 아니라 공적 자아, 즉 세상과 상호작용하기 위한 인격 역시 만들어야 한다. 앨리스는 다른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끊임없이 논쟁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의 남성 동료들은 여성들은 지나치게 신중하고 가정적이기 때문에 진짜 예술을 할 수 없다며 혐오감을 표출했다. 젊은 여성이 예술가로서의 일정한 신용을 얻으려면 남성 예술가처럼 창조적 허세를 부리며 살아야 했다. 앨리스는 일부러 터프하게 행동하고 주변에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음으로써 예술가의 자격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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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가를 맴도는 그레고리안 성가그들의 강해 소리 낮게 들리고눈 아래 저잣거리는 저세상처럼 아득하다

상형문자로 불안한 잠꼬대를 하고마침내 도시의 아침은 모퉁이에 숨어 기다려요밤은 찾는 자의 것당신은 모르죠?

비둘기들은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혼자 죽는다고 한다남산에도 시청 앞에도 공원에도 비둘기의 주검은 없다떼 지어 날아오르던 검은 지붕들붉은 발자국 찍히던 보도블록에도 없다누구 본 사람 있나요?
제 몸 태울 땔감 지고 길 떠나는 인도 노인처럼 비둘기는따가운 햇살 한짐 지고 도시를 떠났을까적멸의 푸른 깃털 하나 어디에 내려놓았을까

내 이웃 중의 이웃 베다니 집나사로는 없고 마음 가난한 할머니 몇분배나무밭 옆 눅눅한 집 한채모로 누워 혹은 조그맣게 쪼그리고얇은 햇볕에 지푸라기 육신 내다 말리고 계신다나귀 새끼는 보이지 않고등불 든 신랑은 아직 오지 않고늙은 잇몸처럼 하늘도 내려앉아철없는 참새들만 식은 굴뚝 위에서 짹짹거리는막다른 골목에서 그래그래고개 주억거리며부르튼 길 끝 내다보고 계신다그 끝에 우두커니 내가 서 있다

너의사랑은고향집우물보다더아득하다 그우물속의낡은두레박보다더무겁다 두레박속의넘치는물보다더차다 그물속에잠긴달보다더외롭다 달속의토끼그토끼의눈보다더서럽다

느닷없이 머리가 아프면서, 그리고열이 약간 있으면서타이레놀을 먹어야 하나 샤워를 해야 하나해장국을 먹어야 하나 불고기를 먹어야 하나허기가 들면서산책을 할까 영화를 볼까보험을 들까 노래방을 갈까 말눈물이 나면서점점 어지러워지면서 처참해지면서너를 처음 만난 날

몇번이고 발을 헛디뎠다
그날 밤에도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시지 않았다

손금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동서남북 가는 곳마다 막다른 골목이야촉촉이 땀이 배인 좁은 길들잔금으로 어지러운 구겨진 대로들유사 이래로 길들은 늘 덜컹거렸지거미들은 끝없이 운명의 줄을 뽑아내고우연처럼 깜박이는 신호등마른 강물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증발해버렸어촘촘한 문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낡은 조감도칼자국 같은 깊은 상처 하나아프게 접혀 있네않겠다

헤엄쳐서 갈 수밖엔 없다 그곳에언젠가는 작은 방 하나 숨겨놓고 그 속에서내 지리멸렬의 생을 되돌려주겠다낮이면 죽은 듯 잠만 자다가 밤이면 귀 세우고캄캄한 기억들 불러모으겠다그 부유하는 기억들 속에 몸 담그고 긴 밤 견디겠다

그러고도 시간은 남아
생애가 저무는 더딘 오후에
탁자 위 소국 한 송이
혼자서 핀다

해는 지는데 나뭇가지에서 떨고 있다가야 할 길과 지나온 길을 지우며 등 구부려가야지 가야지찢긴 플래카드처럼 낙심에 떨며차가운 낮달 사이로 흩뿌리는 겨울비머리 기댈 마른 잎 하나 없는 굴욕의 빈 가지 위에서저 무한천공 갈 길은 아직 먼데감기는 눈 치켜뜨며정신 차려 정신 차려야지온몸 쪼아대는

마른 봄바람에 먼지 뒤집어쓰고 짜증나
볼 부어 있던 목련 봉오리들
봄비 한나절 다녀간 뒤 금세 함박웃음 터져
벌어진 입 다물지 못하네
허리 흔들며
들뜬 웃음소리
뜰 안이 소란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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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현 시인이 문예연감 2018(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9)에 따르면, 문학 잡지(시)의 숫자가 538종에 이릅니다. 이 말은 538종의 잡지에서 시인을 배출하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1명씩만 잡아도 538명입니다. 그런데 문예지에서 1명씩만 배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2명씩 계산하면 1,000명이 훌쩍 넘어갑니다. 이렇게 해서 10년이라는 시간이 쌓이면, 시인 1만 명.
이라는 숫자가 나오는 것이죠"

내 관점으로 보자면 나와 같은 작가들 쪽작가 지망생의 친구와 선이 그나마 운이 좀 있는 편이고, 문학사적 측면에서 보자면내가 쓰고 있는 글들은 당신이 쓰고 있는 글과 마찬가지로별 가치가 없는, 고전이 되지 못하는 쓰레기다. 나는 ‘럭키
‘당신‘이고, 당신은 ‘언럭키 나다. 아니면 그저 우리 모두 문학에 빠진 불행한 이들일 뿐이다.

그러니까 당신도 퇴근하고 읽고 써라. 그 일이 가치 있는지없는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설령 무가치하더라도 그러는 게재미있다면, 그 재미를 위해 힘을 들여라. 재미야말로 당신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니까. (뭐? 부모가 돈이 많아서 일을 안 해도 돼서 시간이 남아돈다고? 꼴 보기 싫으니까다른 데로 가세요)

"그는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홀로 있지만모든 존재가 그를 토대로 서 있다.
그는 가까이 있으면서 동시에 멀리 있고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 있으며움직이면서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다.
『바가바드 기타」 중에서

H서서 하는 동작을 모두 끝낸 뒤 앉아서 하는 동작과 누워서 하는 동작, 거꾸로 서는 동작 등을 이어갔다. 그리고마지막으로 사바사나에 이르자, 자리에 누워 시원하게 숨을 쉬는 회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수련실의 불을 끄고 사바사나에 좋은 명상 음악을 틀어놓은 뒤 나도 잠깐 매트 위에등을 대고 누워 호흡을 골랐다. 이내 수업을 마치고 수련실밖으로 나가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옷을 갈아입은 뒤요가원 밖으로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결 밝아 보였다. 활짝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와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가는 학생도 있었다. ‘오늘 수업 어땠나요? 저와 함께한 시간이 괜찮았나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애써 담담하게 "네. 다음에 또 뵐게요"라고 인사하며 헤어졌다.

본래의 나는 집중력이 없고 산만하고 조급한 사람이었다. 의지력 또한 부족해 한 가지 일을 오래하지 못했다. 그러나 ‘본래‘라는 건 없다는 사실을 요가를 하면서 깨우쳐나갔다. 요가를 수련해오는 동안 이전에 없던 집중력과 의지력이 점점 자라나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그것은 어쩌면원래부터 없던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인데 그동안 내가사용하지 않아 묻혀 있던 건 아닐까 싶다. 요가는 그렇게,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보물을 하나씩 꺼내어 보는 일과 닮았다.

위태롭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내 마음을 나조차도 어찌하지 못해 나의 삶은 항상 아프고 비루했다. 요가를 해보겠다고 수련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자꾸만 다른 곳을 향해 떠돌아다니는 생각 때문에 많은 시간을 공허하게 흘려버리기도 했다. 돌아보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또한 내 몸과 마음의 원리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으므로 좋은 경험이라 생각한다.

식사를 하기 위해 수저를 들기 전, 두 손을 모으고 눈을감았다. 소중한 음식을 나에게 내어준 자연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이것이 부디 내 안에 잘 스며들기를, 좋은 에너지를 주기를, 그리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했다.
이 세계에, 그 안의 당신께 평안과 축복이 있기를.
나마스떼.

1) 우연히 글을 쓰는 경우나 운때가 맞아서 글을 쓰게 된 것은 고정적으로 전업 작가가 되는 것보다 낫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시를 쓰기도 하는 기차 차장은 기차의 차장으로근무하지 않는 시인보다 더 잘산다.

예술의 규칙과 공식보다도 창작자 개인의 창의력, 혹은
"영감"(靈感, inspiration)이 중요하게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서양 문학 중심으로 봤을 때 18세기 말, 19세기 초 낭만주의시대부터다. 예술사조로서 낭만주의는 인간의 감정을 이성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세상에는 인간이 이성과 합리로 이해하고 파악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낭만주의 시대 예술가들은 예술작품이 독자나관객, 청중에게 무엇보다도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낭만주의 시대에는 호러나 로맨스등 현재의 장르문학이라고 할 만한 문학 분야들이 발전하게된다. 낭만주의 이전의 1700년대 계몽주의 시대나 이후의1850~1860년대 이후 실증주의 시대에는 문학작품이 독자에게 교훈을 주거나 세상에 대한 어떤 사실을 가르치거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믿었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에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어 냉전은 종식되고 공산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하여 러시아와 구공산권이 더 이상 금지된 땅이 아니게 되자 한국에서는 그동안 갈 수 없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흘러넘치게 되었다. 나도 그런 물결을 타고 러시아 어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사실 나는 아주 단순하게 러시아 글자가 재미있어 보여서 시작했다. 그런데 그 뒤에는 훨씬 더 넓고 깊은 세계가 있었다.

만족스러운 이야기를 만들어본 사람은 모두 알고 있겠지만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열망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불치병이기도 하다. 계속 이야기를 만드시는 분들의 앞길에 가시와 못과 쐐기풀이 조금은 덜 덮여 있기를 바라며, 자신의이야기를 믿고, 자기 자신을 믿고 굳건히 그 길을 가시기를 소망한다.

X산다는 건 원래 단순한 거야. 애초에 누구에게 의지하거나 의지처가 필요하진 않았어. 난 내가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는 단순하게 사는 게 좋다. 돈은 좀 벌지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일하고, 돈을 벌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버는 거다.
산다는 걸 그렇게 정해놓으면 편하다. 그녀에게 그런 말을마지막으로 했던 것 같다. 사람이 왜 그렇게 단순해?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데. 뭐가 좀 아니다 싶으면 살아온 걸 뒤돌아보고 다른 길도 모색해 보고 해야 할 거 아냐. 독기 좀갖고 살아보란 말이야, 라고 악을 썼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도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일찍 불을 밝힌 가로등이 허공에 떠 있다. 담배 한 대피우려고 차창을 열었는데 짠내 먹은 바람이 밀려들어 온다. 바람이 따뜻할 때 이 길을 다녔는데 이젠 차갑다. 반년동안 무수히 다닌 길인데 오늘의 바람과 빛은 어제의 것들이 아니었다.

림자와 노을, 그림자 노을……… 끝없이 반복된다. 그녀는력발전기를 보면 늘보가 떠오른다고 했다. 느리게 돌아가는날개가 그런 상상력을 이끌어낸 것이겠지만 뭐 그럴 수도있다. 그녀가 나무늘보를 떠올렸든 치타를 떠올렸든 이제크게 애쓸 필요 없다. 지난 시간들 속에 박힌 기억들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나눌 사람이 아니니.

뭍에서 섬으로 섬에서 뭍으로, 단순한 이 길을 반년 동안 오갔다. 방조제 건너 뭍에 숙소가 있고 섬에 직장이 있었다. 직원이라야 평소엔 둘뿐인 일터다. 방조제에서 벗어나 5분 남짓 섬 안쪽으로 달리면 도로가 좁아지기 시작하는 곳에 수목장이 나타난다. 수목장까지 가는 길 주변은 온통 바지락 칼국수 식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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