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는 자본주의보다 엄마들에게 관대했다. 앨리스는 "사회주의적" 뉴딜 정책 덕에 10년간 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공황기 동안 일자리를 창출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공공사업진흥국은 1933년 예술가 고용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연방 예술프로젝트는 공공건물을 위한 벽화를 디자인하거나 사진을 찍는, 혹은 앨리스처럼 6주에 한 번 그림을 제출하는 미국의 예술가 수천 명에게 생활비를 지불했다. 그리니치빌리지의 사회적리얼리즘 작가들이나 할렘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인사들, 마크로스코나 잭슨 폴록과 같은 미래 추상 회화의 슈퍼스타들 모두이 프로젝트의 수혜자였다. 전후 뉴욕이 세계의 미술 수도로서명성을 누릴 수 있었던 데에는 신진 예술가들에게 꾸준한 지원을 제공해준 이러한 프로젝트가 한몫했다.
창조적인 삶에서 모성이 지닌 위험성은 처음 경력을 시작하던순간을 버티게 해주었던 성공의 가속도가 줄어들면서 고립과낙담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예술가들의 경력은 종종천천히 성장한 뒤 늦게 성숙한다. 화가는 성공 여부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작품제작에 수년을 투자해야 한다. 젊은 나이에예술을 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성과 없이 중년이 된예술가도 빛날 수 있을까? 신인도, 인정받는 작가도 아닌 사십대의 앨리스는 뉴욕의 예술 커뮤니티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자신의 경력이 정체되기 시작했음을 알아차렸다.
창의성과 예술에 대한 가장 중요한 질문들은 동시에 가장 답하기 힘든 질문들이기도 하다. 앨리스의 모성이 그녀의 예술을 더훌륭하게 만들었나? 많은 창작자 엄마들은 아이들과의 관계가그들의 감수성을 심화시키고 한계를 넓히며 어슐러 르 귄의 표현대로 아이들과 "뼛속까지 더 가까워지게 만들었다고 주장해왔다"
가정이 제일 중요했지만, 제작업도 항상 거기 있었습니다. "음, 이번 주나 다음 주, 그 다음 주에는 작업을 할 수 없겠지만, 어쩌면 6개월이나 1년 후쯤 되면 다시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하는 여자들에게 그다지 공감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전문 작가건 그렇지 않건 간에, 매일매일, 심지어 자정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남자는 어떤 종류의 제약을 거부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되고, 여자는 그것을 수용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된다. 여자들은 얽매여 있다. 여자들은 스스로에게 심각한 폭력을 가하지 않고는위반할 수 없는 금기의 원심력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삶에 얽매여 있다.
엘리자베스 스마트는 자유와 권위를 낭만적인 반항이나 자기파괴적인 열정과 혼동했다. 그 결과 그녀는 훌륭한 책 한 권과네 명의 아이들을 남긴 채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다른 여성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모성‘과 ‘지성‘을 함께 묶어 생각하는 것은 이 각각의정체성이 지닌 철저함에는 물론,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여겨지는 두 가지 정체성의 모순적인 결합 모두에 도전함으로써 오랜 전통을 뒤흔들 것을 요구한다. -게일 와이스
문학은 여성의 일이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여성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적절하게 수행할수록 문학을 통해 성취와 즐거움을 느낄 여유는 줄어들 것이다.
내 활력이 어디로 가면 좋을까? 책 혹은 섹스 야망 또는 사랑? 불안이나 관능? 둘 다 가질 수는 없으니.5
만약 여러분이 여성 작가라면, 언제 어디서든 이런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스스로를 작가라고 여기는 게 먼저인가요,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게 먼저인가요?" 조심하라.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글쓰기와 여자를 둘 다 싫어하고 두려워한다. 마거릿 애트우드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라고 불려온 것은 다음 세대를 키워내고, 집안 살림을 유지하고, 사람들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법을 제공하는 것을 포함한다. 내가 하는 작업 역시 여성의 전통적 노동과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단지 형태만 다를 뿐이다. 준 조던
좋은 딸,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애인, 좋은 선생님 등 무엇이 되든 간에 내 모든 삶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유일한 일은 글쓰기다. 아무것도 대답할 필요가 없는 진짜 자유로운 세계이다.
에그러나 허구 속에서 남자가 된다는 것은 또한 여성만의 오롯한 자유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상상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어슐러는 자신이 꿈꿔왔던 강력한 운명을 여성들, 특히 어머니들에게 어떻게 부여해줘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 "다시 말해 자신이 자유롭다는 인식입니다.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요. 결코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아주 불완전하게만 그렇지요. 오로지 하나의 행위에서만, 자신이 움켜잡을 수 있는 짧은 순간에 책상에앉아서 글을 쓰면서 정신의 호수에서 물고기를 낚는 여성이 될때에만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이 행위 속에서 우리는 책임 있는존재입니다. 이 행위 속에서 우리는 자율적입니다. 이 행위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습니다."
모성애 앞에서는 원대한 야망이나 절박함. 개인적 우상, 욕구는 모두 꿈결 같은 한때가 돼버린다. 하지만 그것은계속해서 그녀를 사로잡고 현실 속으로 끈질기게 출몰한다. 루이스 어드리크
때로 아이들이 집을 떠나고 배우자와 이별하거나 배우자가사망하면, 마치 깊은 수원에서 샘이 솟아오르듯이 모든 에너지와 창작 기술과 통찰력과 인내심이 되살아나고, 가사에 들어가던 모든 시간이 자아로 되돌아와, 유령이 된 것 같았던 창조력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아 활기를 띠기 시작하곤 한다. 62세에작가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던 어슐러 르 귄의 어머니인 시어도라크로버의 경우가 그랬다. 60세에 소설을 출간하기 시작해 결국당대 영국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이 된 퍼넬러피 피츠제럴드의 경우도 그랬다. 그녀 또한 팜므 메종, 즉 집사람이었는데, 부르주아의 작품들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되던 것이 그녀에게는실제 현실로 일어남으로써 그녀는 작가적 소명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녀의 집이 실제로 산산조각 난 것이다.
누군가 그녀에게 그녀 자신에 대해 물으면, 그녀는 "시를 암송하곤 했다. 그러면 그 시 어딘가에 그 느낌, 정보의 가장 중요한 조각이 있었다." 그녀는 결국 "나를 대신해 말해줄 다른 시들을 찾을 수 없을 때, 달리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건 더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녀의 친구 제니는 열다섯 살 때 자기 엄마와 큰 언쟁을 벌이고, 카리스마 넘치지만 신뢰하기 어려운 아버지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머지않아, 오드리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상상할 수는 있는이유로, 제니는 자살했다. 친구의 병원 침대 옆에 오드리가 앉아있었지만 친구는 쥐약을 삼켰고, 의사들은 그녀를 살릴 수 없었다. 오드리는 일기에 "나는 그녀를 너무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를 말릴 수가 없었다."라고 썼다.
1954년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서 그녀는 조국의 박해를 피해 도망쳐온 미국인 그룹의 일원인 또 다른 연상의 여인을 만났다. 그녀는 오드리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언론인 유도라 개릿은 사랑하는 것뿐 아니라 사랑의 행위를 받는 방법,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 부르고 그것에 자긍심을 느끼는 법, "사랑하고 살아가며 그 이야기를 솜씨 좋게하는 법"을 오드리에게 가르쳤다.
물웅덩이에 나를 몰아넣고 익사할 때까지 울고 싶다. 이전의그 긴 세월, 내 안에는 때때로 바람이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으며 먹이를 찾아 헤매는 어둡고 텅 빈 동굴이 있었다. 때때로 모든 것을 목 졸라 침묵하게 만드는 어떤 진공 하지만 이 동굴은정의를 제대로 내릴 수 없어 끝장낼 수도 없었다. 이제는 그게뭔지 알 수 있으므로 끝낼 수 있다. 그것의 이름은 외로움이며, 그것은 끝없는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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