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도, 플롯도, 심지어 ‘감각적 디테일‘까지도, 소설 속의모든 요소는 전깃줄과 이어져야 비로소 의미를 갖고 독자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주인공의 내적 투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미려하게 쓰였다 한들, 아무리 겉보기에극적이라 한들 소용없다. 스토리를 중간에 멈춰서게 하고, 독자를 사로잡았던 마법을 깨뜨리고, 독자를 현실로 다시 튕겨보낼 뿐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밑그림blueprint‘은 플롯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개요가 아니라, 스토리를 이루는 내. 적 · 외적 층들을 처음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완전하게 종합한 것이다. 당신은 밑그림을 만들면서 동시에 소설을 써 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밑그림 내용의 대부분은 완성된 소설에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나오는 것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 흔히들 글을 쓰기 전에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전 조사와는 다르다. 이것이 바로 독자의 넋을 빼앗고 세상 보는 관점을 바꿔 줄 소설을 쓰는 비결이다.
스토리는 그래서 무섭다. 우리는 살면서 매 순간 알게 모르게 스토리에 홀리고 변화를 겪는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작가에게는 성공의 열쇠가 바로여기에 있다. 스토리의 힘이 왜 그리 강한지 이해한다면, 그리고 독자를 꼼짝없이 붙들고 독자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작가의 무기가 과연 무엇인지 깨닫는다면, 그 힘을 자유로이 구사하는 소설을 쓸 수 있다.
반면 스토리를 읽는 행위가 우리 삶에 초래하는 결과는 그리 뚜렷하지 않기에, 아무런 결과 자체가 없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스토리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도 음식과 섹스 못지않게 지대하고 운명적이며 생물적이다. 알고 보면 우리가 재미있는 스토리에 빠질 때 느끼는 쾌감, 밤새도록 책을 붙잡게만드는 그 쾌감은 헛된 것도, 무의미한 것도 아니요, 그저 쾌락을 위한 쾌락도 아니다.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도 아니다. 그쾌감은 생물적 미끼이자 우리를 사로잡는 덫으로서, 현실 세계를 까맣게 잊고 스토리의 세계에 몸담게 만드는 구실을 한다. 우리가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스토리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바로 그 쾌감이다.
대니얼 길버트의 말을 빌리면, "감정은 중요하다는 말로는부족하다. 중요하다는 개념 자체가 곧 감정이다. 삶 속에서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이성적 결정을 전혀 내리지 못한다. 인간의 생리가 그렇게 되어 있다. 스토리 속에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스토리를 읽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의미를전달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므로, 소설은 주인공의 감정이 독자에게 직접 전해지게끔 쓰지 않으면 안 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스토리란,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어려운 목표를 추구하는 누군가가 영향을 받는 과정, 그리고결과적으로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이다.
‘어려운 목표‘는 간단히 생각하면 이른바 ‘스토리 문제storyproblem‘라고 하는 것이다. 모든 스토리는 점점 고조되는 한 가지 문제를 주인공이 불가피하게 마주하고 풀어 나가는 과정이중심이다. 쉽다면 문제라고도 할 수 없고, 스토리도 성립하지않을 것이다. 그저 피상적인 문제여서도 안 된다. 주인공이 번번이 자신의 어떤 내적 갈등과 씨름하게 만드는 문제여야 하며, 그 결과 주인공의 세상 보는 관점이 막바지에 크게 바뀌어야 한다.
스토리란 결국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수많은 소설이 그 점을 간과하는 탓에 실패한다. 우리가 스토리를 찾는 이유는 그저 흘러가는 사건을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하고주인공의 눈으로 사건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그 경험에매료된다. 호기심에 가득 차서, 그 경험이 가르쳐 줄 내밀한 정보를 갈구한다. 그렇다. 주인공의 내적 투쟁이 곧 스토리의 전깃줄이다. 그것이 우리의 관심에 불을 붙이고 스토리를 밀고나가는 힘이다.
우리는 글을 쓸 때, 그동안 교육받은 작문의 원리에 치중빠져든다. 하느라 이런 스토리의 힘을 보지 못한다. 아름다운 글의 힘으로 독자를 매혹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포장지를 선물로 착각하는 셈이다.
그리고 사실 처음에는 아무 고민 없이 막 써 내려가는 것이 아주 쉽게 느껴진다. 해방감마저 든다. 게다가 빈 종이를 멍하니 바라보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모조리 쏟아 내다 보면 기분만 좋은 게 아니라 옳게 하고 있다는 확신마저 든다. ‘아, 이게바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가는 길이구나!‘ 하는 생각에 젖기 쉽다. 그러다가 임기응변의 짜릿함이 차츰 시들해지면서, 32페이지쯤, 아니면 127페이지나 327페이지쯤 가서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된다. 3페이지밖에 못 가서 그렇게 되는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창의성의 고삐를 풀어 줄 것이 아니라, 스토리의기원이 되는 과거에 붙들어 매야 한다. 현재가 뿌리내릴 과거가 없다면,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밋밋하고 제각각이니 독자의눈에는 마구잡이로 보일 뿐이다. 그렇게 쓴 원고는 비록 근사한 대목이 군데군데 있을지라도 갈아엎고 다시 써야 한다.
가능할 턱이 없다. 뮤즈와 접신이라도 해서 완성된 책 내용을 불러 주는 대로 받아 적으면 모를까. 그런데 완성된 책이라고 하면 바로 다음에 소개할 글쓰기 관련 허구가 생겨난 원천이기도 하다. 비단 책뿐만이 아니라 영화, 연극, 신화 등이모두 그 기원이라 할 수 있다.
15 JEP SE아주 간단히 말해, 스토리란 누군가가 어떤 불가피한 문제와씨름하면서 바뀌어 가는 과정이다.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오랜 시간을 들여 매끈한 외관의 소설을 써낸다 해도 그저 이런저런 사건의 지루한 묘사에 그치고 말 뿐이다. 반면 그 원리를 깨우친다면 독자의 넋을 빼앗는 흥미진진한 소설을 쓸 수있다.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인 메디아스 레스‘는 문학적 기법이 아니다. 그냥 당연한 사실이다. 설마 소설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킬레우스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미르미돈족의 왕 펠레우스의 아들로, 어느 선선한 봄날아침에 태어나………."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변함없는 사실은, 스토리의 전반부 없이 후반부가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반부에서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리고 주인공이 원래 어떤 사람인지가 반드시 정립되어야 한다. 그런 연후에야 우리는 주인공이 그 문제와 씨름하다가 결국 변화하게 만드는 플롯을 구상할 수 있다.
스토리라는 것이 있어서 우리는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볼수 있고, 그럼으로써 예상 밖의 일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 불의의 시나리오에 뒤통수를 맞지 않으려면 우리에게는 항상 스토리가 필요하다. 예상을 깨는 일은 늘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이런저런 가상적 시나리오를 눈앞에 펼쳐 줄 작가가 우리에게 언제나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최초의 별난 아이디어를 가지고 스토리가 될 만한 ‘만약에‘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 쉬울것 같지 않은가? 무언가 평범치 않은 것을 상상하고, ‘만약에‘ 라는 말만 앞에 갖다 붙이면 소설 쓸 준비 끝!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유치원 때부터 배운 글쓰기 방법이 바로 그거였다. 다좋은데, 그걸로는 안 된다는 게 문제다. 아무리 예상 밖의 전개를 상상한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이야깃감으로 삼을 만한 ‘만약에‘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일단 어떤 패턴을 발견하면 머릿속에 그 패턴에관한 스토리를 만든다. 그런 패턴이 ‘왜‘ 생기며, 따라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말해 주는 스토리다. 그런 다음 그 모든것을 의식 속에서 까맣게 잊어버린다.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믿음직스러운 인지적 무의식 속에 그 정보를 넣어 두었기 때문이다. 인지적 무의식은 우리가 매일 맞닥뜨리는 평균35000건의 결정 중 거의 전부를 관장하는 우리 뇌의 일부분이다. 인지적 무의식 덕분에 우리의 의식은 부담을 덜고 그 대신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더 주시할 수 있다. 우리는뻔히 예상되는 일에 대해서는 구태여 고민하지 않는다.
요점이 있다면 밋밋한 ‘만약에‘도 스토리를 빚어 나가는출발점으로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출발점‘이다. 역시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착각했던 점인데, ‘만약에‘로 시작하는 질문만 가지고 스토리를 바로 쓸 수는 없다.
사족을 달자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누구나 아는 고전적스토리다. 그러니 당연히 어렵지 않게, 스토리의 핵심을 담은데다가 전하려는 요점까지 암시하는 ‘만약에‘를 짧고 강렬하게뽑아낼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아는 내용이니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당신이 쓸 스토리의 방향을 미리 잡아야 한다는 뜻에서 예로 든거지, 꼭 이 예를 본떠야 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당신이 쓸 ‘만약에‘는 누구에게 보여 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고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딱 한 줄로 적지 않아도 된다. 서너 줄, 아니 다섯 줄이어도 좋다. 목표는 하나, 적절한 요점을 잡아 ‘만약에‘라는 질문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