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광장에는 명절마다, 주말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밀물처럼모였다가 썰물처럼 사라졌다. 사람들은 쉽게 서울을 떠났고 그보다 쉽게 서울로 돌아왔다.
욕은 다 거기서 거기였고, 그녀들의 몸은 종이 인형처럼 흔들렸지만 파리 날개처럼 얇은 홑청은 그걸 입은 사람을 지켜줄 요만큼의 힘도 없었다. 그게 거래의, 혹은 거리의 법칙인 모양이었다. 그런 소리가 들려오는 날이면 베개속에 억지로 얼굴을 묻었다. 어쩐지 눈물이 줄줄 흘렀다.
오랜 시간 동안 미싱을 돌리며 서 있던 그 오빠가 털썩 쓰러졌다. 실려 나간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최진실 사진만 내내 붙어 있다가 누가 바꿔 단 왕조현 브로마이드로 바뀌었다. 그 오빠도 없고 지금은, 최진실도 없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어쩐지 끌리게 되는 여자들은 죄다 이상하게 아름답고이상하게 관능적이었다. 직업이 뭐건 나이가 몇 살이건 어떻게 생겼건 온몸에서 풀풀 풍기는 ‘살겠다, 살고야 말겠다‘ 하는 에너지야말로 그 아름다움의 정수였던 거다. 그 사람들은 모두 무섭고도 아름다웠다. 원래 아름다운 것들은조금씩 무섭기 마련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릴케가 말했던그건지도 몰랐다. 고요히 우리를 멸시하여 파멸로 이끄는그 아름다움.
어쩌면 불쌍하면서 무섭기까지 해서 두 배로 슬펐는지도 몰랐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픔, 상상할 수도 없는 슬픔은 두려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니까. 슬픔과 두려움이란, 사실 그렇게 착 붙어 있는 거였다.
선생님이 틀렸다. 십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아마도 그렇게 대답할 것 같다. 선생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 맞고요. 그런데 선생님, 하늘이란 게 늘 공평한 게 아니잖아요. 아시잖아요……… 그렇잖아요?
어쨌거나 그때 난 고작 스물 한두 살밖에 안 먹었는데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언덕마다 평지마다 꽉꽉 들어찬 불빛 하나하나가 참 얄밉게도 빛나서 툭하면 풀이 죽었다. 저토록 약 올리듯 반짝반짝 빛나는 불빛하나 둘 중에 고작 내 몸 하나 눕힐 불 켜진 방 하나 없구나, 하고 한숨 쉬느라 땅이 꺼질 것 같은 상황이었으니 뻔뻔이고 철판이고 예절이고 뭐고 당장 체면 차릴 처지도 안 되었던 나는 무턱대고 언니에게 비비고 기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들 열심히 일하던 거리, 유령도시처럼 텅텅 비어 있다. 자기 일 열심히 하느라 쓸데없는 참견 않던 터프한 사람들의 터프한 거리였다.
어떤 국가 원수의 행렬을 에스코트하는 고급 사이드카도 그보다 위엄에 넘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좁은2차선 거리는 어쩐지 엄살 부리는 사람을 사정없이 조그맣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
늦바람의 정체에 대해 우리는 끝내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아마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나보다.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내가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그 아들과 나는 힘을 합해 백색가전에 맞섰고, 그 지난한 이사가 끝나고 엎어져 있는 우리들 앞에는 기본 토핑만 얹은 도미나(도미노의 오타가 아니다) 피자 미디엄 사이즈 한 박스가 배달되었다. 게다가 다 식은 채로, 빵은 또 왜그렇게 타이어처럼 질긴지. 그래도 우리는 죽도록 입에 밀어넣었다. 앞으로도 우리 힘으로 세상을 잘 헤쳐나가려면입에 빵이든 타이어든 속을 잘 채워놔야 될 것 같았다. 앞으로도 언제 냉장고를 번쩍 들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살아보니, 역시 그랬다. 언제 뭘 들게 될지 모르는 거, 그런게 인생인 모양이다.
직장 업무에 곧 죽을 것 같은 날 문을 쾅 닫고 찌그러진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으면 그야말로 <리어왕>의 독백이 줄줄 흘러나왔다. 아아나는 살아 있는가 죽어 있는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두 눈을 질끈 감고 다용도실 문을 벌컥 여니 맙소사, 문턱까지 혼탁한 오수가 차올라 있었다. 야근이라도 했었다면 온통 방까지 잠겨 있었을 사태였다. 버리려고 챙겨뒀던비닐봉지나 다용도실 슬리퍼 따위가 회색 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꼴이라니. 하나님 거짓말쟁이,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아니하겠다 하셨으면서………!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이태리타월에 비누를 듬뿍 묻혀살갗이 벗겨질 만큼 박박 문질렀다. 거의 온몸의 껍질을 한겹 벗겨내고서야 냄새가 좀 가실 것도 같았다. 내 참 더러워서 더러워서, 나는 투덜거리면서 끊임없이 박박 문질러댔다.
물론 우리 개에게 한 말은 아니었지만, 개의 귀를 막아주고 싶었다. 그녀는 계속 뭐라고 말했는데, 그 다음 말들은 흐느낌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큰 소리는안 내고 울기만 했다. 아, 그러게. 사는 게 왜 이렇게 더럽다. 그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울었다. 아, 정말사는 게 왜 이렇게 더러운가. 그날 왕십리 밤하늘은 엄청나게 칙칙했다.
나도 속상했다. 물은 무겁고 냄새도 심했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이미 옷도 다 젖었고 물도 여러 번 퍼내봤고 아직젊고 힘도 좋으니까. 다만 그녀에게 그 물을 더 만지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 물에 내가 풍덩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에게 그 물을 만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40분쯤 열심히 퍼냈더니 서서히 물은 빠졌고, 그녀의 아들은 작은손으로 걸레를 쥐고 마루에 넘친 물을 닦았다.
정말 그녀가 푹 쉬길 바랐다. 그녀는 살짝 웃었다. 그리고 바로 며칠 뒤, 그 집은 비었다. 그녀는 잘 쉬어볼 틈도 없이 이사를 했다. 얼마 뒤에 나도 그 집을 떠났다. 요즘도 가끔 고즈넉한 새벽이면 그녀가 생각난다. 잘살고 있을까, 그집 아들은 아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쯤 되었겠지. 어쩌면군대를 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그녀에게 따뜻한 말한마디 더 걸었더라도, 그녀의 인생에서 달라지는 거라곤없었겠지. 이곳은, 이웃을 생각하기엔 참 고독하고도 난해한 도시였다.
바보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바보처럼 살 때가 있다. 그때는 그 바보 같은 상태를 그냥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나도 같이 사는 언니도, 옆집 여자도 그 집 아들도 다 견뎌야만 하는 게 이놈의 인생이던가.
전 국민 앞에 털을 뜯기고 그 털을 내보이면서라도 살아내야겠다는 그 무표정한 체념, 그리고 때론 체념 그 자체가 강철 같은 의지가 된다는 것을. 구불구불한 털을 뽑히든 냄새 나는 물을 퍼내든, 무엇을하든 그걸 무심한 얼굴로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용기 그 자체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무리 깔끔해도 모조리 똑같은 간판이 죄다 ‘앞으로 나란히‘를 한 채 훤하게 펼쳐진 거리보다는, 도시 미관이고 어쩌고 구질구질해 보이고 뭐건 간에 가게 주인의 취향과 주머니 사정에 따라 이리저리 제멋대로 붙어 있는 간판이 있는 거리가 좀 더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냥 내 취향이 후지기 때문일까.
이명박 때문에 가장 놀란 것은 뭐니뭐니해도 서울 봉헌사건이었다. 훗날 국가의 수장이 될 남자였기 때문에 스케일이 남달랐던 것인지 그는 어느 기도회에서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기도했다. 나 역시 개신교인이었으며 지금도 그렇지만, 기절할 만큼 놀랐다. 아니, 헌금이나 봉헌은자기 소유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인데요, 시장님. 게다가 가만있어보자,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서울인 인간은 죄다 같이 도매금으로 봉헌되는 것인가! 서울에 얹어져 같이 바쳐지는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질겁하여 전속력으로 인천으로 도망쳤다. 준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황량했던 인천공항의 벤치에 누워서 여긴 안전하려나, 하고귀를 긁으며 생각했다. 가만, 인천시장의 종교는 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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