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유로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녀는 그렇게썼다. 책방에는 다리가 가느다란 식탁 의자가 있었고, 그녀는 거기에 앉아 구매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날 다 읽는 건 어려웠으므로 그녀는 다음날에도, 그다음날에도 책방의 식탁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주인은 그녀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책방 주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계산대에 가만히 앉아서 손님이 오는지 가는지 신경쓰지 않던 모습을 그런 주인 덕분에 나는 책방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 또한 그 책방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나는 반가웠다.

‘이것은 내가 서른네번째로 쓰는 자기소개서다‘라는 첫 문장 뒤로 그녀는 자기소개서에 쓸 수 없었던, 혹은 자기소개서에 썼으나사실이 아니었던 내용에 대해 담담하게 써내려갔다. 아이를 낳고퇴사한 첫째 언니,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서른다섯이 되면 더이상고용될 수 없으리라는 불안을 지니고 사는 둘째 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녀는 자신의 삶이 두 언니들과 어떻게 다를 것인지궁금하다고 썼다. 면접장에서 전원이 남성인 회사 간부들을 볼 때마다 숨이 막힌다는 말도 있었다. ‘나의 삶에는 특별할 것이 없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이런 자기소개서 같은 건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글은 그런 식으로 끝났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순응주의, 능동적인 순종. 그런 말들에서 나의 글이, 삶에 대한 나의 태도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발표자의 글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이라는 말은 나를 모욕하지 않으려는 배려였을 뿐, 그녀가 속으로는 분명 다른 판단을 내렸으리라고 짐작했다. 나는 그때 강의실을 둘러싼 이상한 열기를 기억한다. 그녀의발언에 대한 지지와, 한편으로는 분명한 반감이 뒤섞인 공기를.
그 학기 내내, 그녀의 수업시간에는 그런 긴장감이 돌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이름으로 나온 글이나 번역서를 찾을 수 없었다. 구 년 전의 내 눈에는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강해 보였던 그녀가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하고, 글이나 공부와 무관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얼어붙게 한다.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이 질문에 나는 온전한 긍정도 온전한 부정도 할 수 없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정윤은 당신이 써간 글을 자주 칭찬했다. 텍스트의 내용을 잘파악하여 정리했고 접근이 신중하다고 했다. 반대로 그녀는 희영의 글에 대해서는 완곡하게나마 매번 비판했다. 이 주장에 대한객관적인 근거가 뭐죠?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는 글은 강요가 될수밖에 없어요. 논리의 비약이 잦아요. 그때마다 희영은 정윤의조언을 노트에 메모했다.

지금의 당신은 생각한다. 그런 말에는 언제나 힘이 있었다고.
이건 여성 문제가 아니다, 더 큰 억압의 문제다, 라는 식의 논리는언제나 강했고 다수를 설복할 수 있었다. 정윤이 자신의 말을 진심으로 믿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않으면 논의조차 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정윤은 수면으로 올려놓고자 노력했다. 정윤이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더라면 희영의 주제는 회의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은 아직도 그날 밤을 기억한다. 희영이 써온 긴 글을 처음읽고 받았던 충격을 담요를 뒤집어쓰고 앉아 차갑게 언 발의 감각을 느끼며 그녀의 글을 읽던 스물에서 스물하나가 되어가던 당신의 모습을 기억한다.

당신은 입을 다물고 희영의 감정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편집부에서 가장 가까웠던 정윤을 빼앗긴 심정일지, 회의 시간마다희영의 주장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용욱에 대한 거부감일지. 어쩌면 희영은 그때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지금의 당신은 생각한다. 정윤을 존경한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정윤에게 열등감을느끼고, 정윤이 자신보다 더 돋보이는 것을 경계했던 용욱의 마음을 꿰뚫어보았는지도 모른다고.

글쓰는 일이 쉬웠다면, 타고난 재주가 있어 공들이지 않고도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기지촌 활동가들이 만든 소식지를 읽으며 마음이 끌렸다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그곳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는 희영의 얼굴을 당신은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가 없었다. 당신은 희영이아까웠다. 희영의 재주가, 희영의 능력이 그런 활동으로 낭비되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가게를 나와 희영의 집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걸으면 걸을수록 공간이 더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높은 건물이 없지. 밤에 정말 어둡다.
당신과 희영 앞으로 기다란 그림자가 졌다.
희영의 집은 벽돌로 지은 삼층짜리 다세대주택의 꼭대기 층이었다. 신발을 벗고 장판에 발을 디디니 발바닥이 델 것처럼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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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 새벽 세시의 수련 앞에 섰다.
그때까지도 질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달빛 아래 둥근 잎들 위로 수련의 봉우리들이 보였다. 불과 백여 미터만 나가면도시의 불빛이 있었지만, 거기에는 고즈넉하고 묵묵한 아름다움뿐이었다.
수련은 피었을까? 질문이 나를 거기까지 데려갔고, 그 풍경을 보는 순간 질문은 사라졌다.

이게 우리에게 단 하나뿐인 세계라는 게 믿어지는가? 이것은 완벽한, 단 하나의 세계다.
이런 세계 속에서는 우리 역시 저절로 아름다워진다. 생각의쓸모는 점점 줄어들고, 심장의 박동은 낱낱이 느껴지고, 오직 모를 뿐인데도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불운과 불행의 차이는 무엇일까? 불운은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난다. 먼 훗날이 아니라 지금, 다른 사람이 아니라 미야노가병에 걸리게 된 건 불운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운명이나 팔자같은 자기 바깥의 이야기에서 찾으면 불행이 된다. 그래서 불운은 점, 불행은 선이라고 이소노는 말한다. 불운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라 인생의 어느 지점에 위치시키느냐에 따라 불행으로도, 재밌는 에피소드로도, 대수롭지 않은 일로도 여길 수있다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건 우연을 내 인생의 이야기 속으로 녹여내는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자면 우연이란 ‘나‘가 있기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깊이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행운과 불운이 그 모습을 달리하는게 인간의 우연한 삶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삶에서 일어나는온갖 우연한 일들을 내 인생으로 끌어들여 녹여낼 수 있느냐,
그러지 못하고 안이하게 외부의 스토리에 내 인생을 내어주고마느냐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그러니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하길 기뻐하는 것을 더 기뻐하고, 사랑하는 것을 더 사랑하길. 그러기로 결심하고 또 결심하길.
그리하여 더욱더 먼 미래까지 나아가길.

계절마다 시차는 있었지만, 대개 골목길로 어스름이 깔릴 즈음이면 성당의 종소리가 둥글게 울려퍼졌다. 공감각적 표현이라는 말은 학생이 된 뒤에야 배웠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매일 둥근 종소리를 들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 평화에 대해 논하라는 논술 문제가 나온다면, 아마도 나는 답안지에 이렇게 쓸것이다. 그건 하루 종일 실컷 놀다가 허기지고 지친 몸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듣는, 멀고도 둥근 종소리, 라고, 그렇게 종소리를 듣고 들어가면 엄마가 차린 저녁밥이 있었다. 내겐 그게 집이었다.

문득 그때 왜 울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누군가 아이들만따로 단체 사진을 찍어주자고 한 모양이었다. 나보다 나이가많고 어른들 말을 잘 알아듣는 아이들이 잔디밭 가장자리에 줄지어 앉아 어깨동무를 해가며 포즈를 잡는 동안, 나는 그들의앞쪽 보도에 따로 떨어져나와 울고 있었다. 왜 거기에 낯선 아이들과 모여 있어야 하는지, 무엇보다 왜 엄마와 떨어져야 하는지 나는 결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해도달래지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 앞에 있다거나 막 손을 스쳤다거나. 하지만 아무리 자세히 살펴봐도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엄마가 손을 뻗어 뽑아내면 네잎클로버였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는데, 네잎클로버를 뽑을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달라졌다. 물론내 마음이 달라져서 그랬겠지만, 엄마가 정말 멋진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네잎클로버를 그렇게 잘 찾아낼까. 내 기억을 통틀어 그날의 엄마가 제일 뽐내는 엄마였다. 미신대로라면 행운으로 가득했어야 할 사람.
하지만 그날 찾은 네잎클로버는 모두 내 몫이었다. 엄마에게받은 네잎클로버들을 화단에 가지런히 놓고 보니 마치 내가 찾은 것인 양 뿌듯했다.

사랑과 관련되지 않은 관계들을 해체시키고, 낮을증가시키고, 밤을 단축시키며, 영혼을 대담하게 만들고, 태양을 빛나게 한다.

‘그러므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골목길과 너무나 많은 산책과 너무나 많은 저녁우리를 찾아오리라.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

그 일은 매일 반복됐다. 나는 그날 번 돈을 제일 먼저 일수아주머니에게 건네는 게 어떤 기분일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빚을 모두 갚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매일 돈 받으러 오던 게 지긋지긋했다고 엄마가 말하는 걸 듣고 나는 깜짝놀랐다. 나는 두 분의 사이가 좋았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싫은내색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저절로 생긴 능력이었다. 엄마에게는 손님을 기다리며혼자 앉아 TV를 바라보던 숱한 밤들이 있었을 테니까. TV 드라마 속 갖가지 인생 문제와 여러 애환들의 전개 방향은 대개뻔했을 테니까.

사십 년 전의 엄마를 마치 어제 일처럼 바라보듯이,
나는 사십 년 뒤의 열무를 마치 내일 일처럼 바라본다.
사십 년 뒤, 그러니까 2063년의 열무를.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가 호수공원으로 나갔다. 지난여름, 호숫가에는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온 피난민들을 위한 수용시설이 만들어졌다. 관리하지 못한 화단에는 잡초가 웃자라 그들이 버린 오물들이 떠다니는 호수를 가렸다. 해가 질 무렵이면미세먼지로 흐릿한 석양을 배경으로 날벌레들이 떼 지어 날아다녀 숨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북풍은 그 모든 것을 몰아냈을뿐 아니라 백설의 두툼한 이불을 깔아 한순간 세상을 새뜻하만들었다. 나는 이제 희망을 알지 못한다. 희망을 버리니 절망은 저절로 버려졌다. 아무 욕망도 없는 마음으로 걸어가는데깍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 쌓인 가로등 위에 앉아 설경을감상하던 까치의 감탄사였다. 내가 올려다보자 까치는 맞은편나무로 날아가더니 시치미를 뚝 떼고 과묵해졌다.

소로가 먼저 있어,
오래전, 호숫가의 소로에게 그랬듯이.
그렇게 우리는 여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되어졌다.

우리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 바로 그게 이야기를주고받는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때로 낭독회는 예정된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두세 시간씩 이어지곤 했다. 덕분에 좋은 추억이 많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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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화를 내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거짓말을해서도 안 됩니다. 어떤 거짓말이냐에 따라서 심장이 크게 뛰기도 하거든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다들 그랬으니까."
의사가 말했다.

살아서 집으로 돌아온 뒤, 기태는 의사가 말한 대로 연습을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받아들이는 연습.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마음을 쏟지 않는 연습. 그러나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들투성이였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태는 어떤 일이든 받아들였다. 이해할 수 없어도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 기태의 생명은 그렇게 연장됐다. 납득하지 못하는 순간, 기태의 삶은 중단될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눈덩이를 굴리는 일과 비슷했다. 사랑할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미워할수록 더 미워하게 된다. 매 순간 관계가 호의와 악의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는 지금도 양양행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 언니와 손을맞잡았을 때, 미래가 달라졌다고 믿고 있다 했다.

그게 시작이었어. 그 여름 매미 소리를 따라가면 언제나 꿈속의 헌책방에 갈 수 있었지. 거기서 나는 작가의 이름이 아직적히지 않은 소설을 읽고 그 책에 내 이름을 적었어. 그렇게 꿈의 소설들이 쏟아져나왔다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고말고요. 소설가의 재능이란꿈꾸는 것이 전부다. 꿈꾸는 능력은 꿈을 현실로 만든다. 하지만 꿈 같은 현실이 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이 선물에 나는 지금까지도 만족하고 있다.

나는 끄덕였다. 그럴 때, 나도 뭔가 좋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찬 선생이 나를 찾아온 지금처럼. 1972년 7월 16일, 다시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동료와 함께 바다로 뛰어든 찬 선생처럼.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검은 밤바다를 가로지르는 찬 선생의 몸이 하얗게 반짝였다.

겨울 내내 거리의 눈은 쌓여간다. 아이의 키만큼 눈은 자란다. 어른의 키만큼 겨울이 깊어지는 만큼 더 높고 더 단단하게.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사랑하고 증오하고 기뻐하고 원망한다.
어떤 연인들은 삶이 그대로 멈추기를 바란다. 그들의 바람대로겨우내 쌓인 눈은 녹지 않는다. 겨울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인다.

내 일생의 2, 3, 4쿼터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내 몫의 숨을 한 번에 내쉬었다. 결국 나는 예정대로 여든 살을 채우고 죽었지만, 사람들은 내가 실연의 아픔으로 스무 살에 요절했다고들 말했다.

"다르게 말하면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그리고 그 사실을 제가 알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저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제가영향을 받는 만큼 그 사건이나 죽은 아이들의 의미도 달라질테고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책임감이에요. 그 사건에 기꺼이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겠다는 것."

나는 눈을 감고 달빛도 없는 어둠 속을 걸어가는 주희를 상상했다. 발치를 비추는 작은 불빛이 흔들린다. 하늘에는 하얗게 은하수가 펼쳐져 있다. 조금 더 걸어가면 너른 공터가 나오고 주희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천문대 연구원의 지시에 따라바닥에 눕는다. 제일 먼저 거문고자리, 독수리자리, 백조자리를찾아 그 세 별자리의 가장 밝은 별들을 연결해 ‘여름의 대삼각형‘을 만드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고 나서도 밤하늘을 계속 바라보라고, 그러다보면 처음에는 안 보이던 별들이 하나둘 눈에보이기 시작한다고 연구원은 설명한다.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밤하늘을 관찰하는 태도를 학생들이잊지 않도록, 어쩌면 책임감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본다는게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 그 선생님은 그런 사진을 우리에게 찍어주신 게 아니었을까요?"라고 주희가 말했다. 그 목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이 세상이 온전히 내 눈앞에 펼쳐졌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이세계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듯 자연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돌볼 수밖에 없다. 돌보는 사람에게 이 세계는 딱총나무에 물과일이 맺히는 것과 같은 놀라움으로 가득한곳이다. 이 세계가 그런 곳이라면,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 모든것을 잃어버리는 일과 같을 수는 없었다.

나는 자연 속에서 온전히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세상이 온통 인간의 것으로 차 있다면 나는 기지개를 켜지 못했을 것이고, 온갖 희망을 잃어버리고 말았을것이다. 나에게 인간은 제약인 반면, 자연은 자유다.
인간은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세계를 꿈꾸게 하나, 자연은 나를 이 세상에 만족하게 한다.

4115-생각과 마찬가지로, 엄마가 죽을 수 있다는 연락도 제멋대로찾아온다. 느닷없이 떠오르는 나의 생각처럼 세상에는 이해할수 없어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수시로 일어난다. 이건누구의 생각일까? 세상은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이 잠잠해질 때까지 나는 걸어야만 한다.

반면, 걷기는 전혀 애쓰지 않아도 된다. 걷지 못할 만큼 몸과마음이 힘들 때도 있지만, 대개는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별노력 없이, 수월하게. 그럴 때 걷기는 사랑과 닮아 있다.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술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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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밤이 지나간 뒤,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우리는 생각한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날 때 세상에는 지혜가 가장 흔해진다고 그때야말로 우리가 지혜를 모을 때라고. 평범하고 흔한그 지혜로 우리는 세상을 다시 만들 것이라고.

우리의 산책은 늘 그 나무 아래에서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어. 5단지 초입에 서 있던 마로니에, 그 앞에 이르면 나는 그 나무의 둥치에 붙은 ‘칠엽수과 칠엽수Japanese Horse Chestnut‘라고쓰인 이름표를 찾아 읽었고, 너는 코를 킁킁대며 주위를 맴돌았어. 때로 산책도 버거울 정도로 몸과 마음이 힘든 날도 있었지만, 그 나무 아래에 서면 언제나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뿐이었어. 그래, 모두 잊자 잊어버리자. 지금 우리에게 좋은 것들만 생각하자. 아무리 어두워도 마로니에 아래에서의 생각은 환했고, 밤하늘을 가린 잎사귀의 잎맥은 더없이 또렷했지.

지루한 장마가 끝난 뒤, 그간의 습기를 모두 날려버릴 듯 내리쬐던 햇살을 받으며 그 인형이 빨랫줄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나는 기억하고 있어. 우리가 찾아낸 그 인형을 너는 무척 좋아했지. 나이가 들수록 너는 한 마리의 소도 잃지 않으려던 조상의 본능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어. 그게 비록 딸랑대는 인형에불과했어도 그 인형을 물고 핥고 던지면서 너는 놀았고, 그럴때마다 딸랑거리는 소리가 났지. 깊은 밤, 잠에서 깨었다가 네가 내 옆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있었어. 다시 잠들려고눈을 감으면 불이 꺼진 거실에서 이따금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가만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 그러면 모든 게 안심이었어.

그 사람과 살던 집에서 나와 그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 나는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었어. 그때는 너도 내 곁에 없었으니까 네가 어찌나 걱정되던지. 너의 안부를 물으려면 그 사람에게 연락해야 했는데, 그게 그 사람을 힘들게 했나봐. 때로 연락이 되지 않으면 온갖 생각이 다 들었고, 네가 잘 있는지 확인하러 가야만 했어. 옛집에서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너는 내게냉담했지. 마치 내가 너를 버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러면서도그 상황이 혼란스러운지 그 사람과 나 사이에서 눈치를 봤어.
못 본 사이에 너는 더 상냥해졌고, 작은 애정에도 고마워하는개가 되어 있었어. 그건 나이가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사람에게는 언제라도 버려질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궁금이와 함께 웃는 나무도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

어느 오후, 수업이 끝난 뒤 각자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무척 더웠던 모양이다. 그 친구가 수영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LP를 사서 나눠 듣자는 말을 들었을 때처럼 다들 좋아했다. 하굣길이니 당연히 수영복은 없었다. 우리는 빨가벗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경부선 철교 아래, 수심이 깊은곳이었다.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 때의 그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1984년 여름, 내 몸을 감싸던, 다리 아래의 검고 차가운 물.

그날 다리 밑까지 함께 간 친구들은 담배를 나눠 피웠다. 그러려고 어두운 철교 밑으로 간 것이었다. 그 친구는 내게도 담배를 건넸다. 마치 브라이언 아담스의 앨범을 복사한 카세트테이프를 건네듯이. 나는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어둠 속의 아이들이 깔깔 웃었다. 친구들이 피우는 담배 불빛이 어둠 속에서빨갛게 타들어갔다.
그 어둠 속에서도 시냇물은 쉬지 않고 흘렀으리라. 눈물이날 것만 같은 밤이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대로 조금씩 변해갔다.

꿈이 없는 사람의 자유이용권은 25개의 보어덤과 23개의 디스어포인트먼트와 16개의 다크니스를 맛보는 티켓에 불과할 테니까. 이 삶은, 오직 꿈의 눈으로 바라볼 때, 다른 불순물 없이 오롯하게 우리의 삶이 된다.

낯선 여름이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쓴 채 여름을 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날씨마저 이상해 기상관측 이래 가장긴 장마가 찾아왔다. 비는 내렸다 하면 억수같이 쏟아졌다. 그보다 더 큰 재앙이 올 거라는 예언이 인터넷을 떠돌았고, 거기에 호응하듯 전염병은 더욱 번져갔다.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자 수도권의 식당과 주점은 저녁 아홉시까지로 영업시간이 제한됐다. 팬데믹 이후 첫번째 여름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언젠가 엄마의 의상실에서 낯설다고도 낯익다고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다. TV에서 보던 연예인들의 얼굴을실제로 보니 신기하기만 했다. 엄마는 그들에게 데면데면했다.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하던 평소의 태도와는 너무 달랐다. 어딘가 겸연쩍은 듯한 표정이었달까. 반면 그들은 마치어제 다녀간 사람들처럼 살가웠다. 한 여자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는 체를 했다. 여자는 뒤에 서 있는 남자들을 돌아보며 "벌써 이렇게나 컸네"라고 말했다. 그녀의 서울말은 마치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혼선이 심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엄마와내가 사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그런 노랫소리 같았다.

그런 하나 마나 한 대화를 조금 더 나누다가 그들은 전화를끊었고, 은주가 "주소지를 찾아가면 뭐가 남아 있으려나"라고혼잣말할 때, 그도 혼자서 생각하던 것을 계속 생각했다. 그러니까 비행기를 타면 삼십삼 년 전, 그가 엄마 뱃속에 있던 시절의 장소로 이동할 수 있듯 시간을 거슬러 삼십삼 년 전으로도되돌려 보내주는, 말하자면 타임머신 같은 기계가 있다면 어떨까 싶은, 소년 같은 몽상을 하지만 이내, 그렇다면 자신은 태어나고 엄마는 아직 죽지 않은 세계로 가겠지. 자신은 없고 엄마만 있는 세계로 가고 싶기야 하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기전 엄마가 그에게 만약 당신이 죽고 난 뒤의 세계가 있는 게사실이라면 당신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열어볼 수 없다니까. 그게 규칙이야. 과거는 통조림 속에 들어 있고, 우리에게는 따개가 없어. 그러니 누구도 과거를 바꿀수는 없는 거야."
그러니까 다시 스파게티 인생론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였다.

그건 귀에 들리는 그대로 따라 되뇌면서 외국어를 익하는 학습법 중의 하나였는데, 그녀는 동시통역을 잘하기 위해말하는 사람의 말투뿐만 아니라 몸짓까지도 흉내내야 하는 자신의 일을 섀도잉이라고 일컬었다. 나는 섀도잉에 대해 더 알고 싶어져 그녀를 따로 만났다. 몇 번의 만남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말을, 서로의 행동을, 서로의 표정을 따라 하게 됐다. 그녀에게 사귀자고 말했을 때, 나는 섀도잉에 대해 다 알게 됐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지긋지긋했습니다. 이게 다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비행기에 올라타 티켓에 인쇄된 자리를 찾아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 문이 닫혔습니다. 그 순간 그때까지의 현실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방송활동을 할 때도 종종공황장애가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황상태가 어떤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발작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것은 깊고도 완전한 암흑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손으로 옷에 묻은 것들을 툭툭 털어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어났습니다. 문득 제 눈앞으로 더없이 생생하고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깊은 안도감과 함께 완전한평화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승무원에게 고맙다고 말하니 그가환하게 미소를 짓더군요. 저는 그를 안았습니다. 그의 육체뿐아니라 감정과 이성까지도 모두 안을 수 있었습니다. 머릿속은놀랄 정도로 고요했습니다.

관계라는 건 실로 양쪽을연결한 종이컵 전화기 같은 것이어서, 한쪽이 놓아버리면 다른쪽이 아무리 실을 당겨도 그전과 같은 팽팽함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한 번 더 그 인생을 살 수 있다면 과연 어떨까? 여름 환한 빛 아래, 어떤 사람은 곧 어머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속에서정든 동네를 떠나고, 어떤 사람은 창밖의 나무들을 바라보며그녀를 동정한다면, 그 푸른 나무들 사이로 수업을 마친 아이가 돌아온다면, 마치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처럼 다시 그아이를 맞이할 수 있다면.

지금 나 역시 그 바다의 한복판에서 표류 중이다. 그 바다 위로 천년 전의 푸른 무덤들이 마치 다도해의 섬들처럼 군데군데 솟아있다.

사랑이란 제 쪽에서 타인을 바라볼 때의 감각이었다. 그것에는 절대적인 크기가 없었다. 멀어지던 그 순간부터 그녀의살갗이 와 닿을 때의 촉감이나 자신을 쓰다듬던 손길은 전혀되살아나지 않았다. 멀어지던 바로 그 순간부터 풍화는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목소리는 어땠는지, 심지어는 그 얼굴이 어떻게 생겼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됐다. 지훈은 그녀의 강의를 평생 잊을 수 없었다. 누구도 스스로존재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이 폐허는 끝이 아니야. 이건 이 집의 가장 어린 영혼, 새로운 시작이야. 알겠니?
그다음은 바람과 빛이 새어드는 소리, 그리고 다시 피셔-디스카우의 노래가 이어졌다.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 그그늘 아래에서 수많은 단꿈을 꾸었네. 그때까지도 지훈의 앞에서는 한 여자가 울고 있었다.

생의 첫 해트트릭은 그토록 대단한 일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시합을 하던 일요일이었다. 세번째 골이 들어가는 순간 기태는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만지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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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처럼 빳빳하게 얼어 있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은 금방눈물을 뚝뚝 흘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곤란하고 서러워보였다. 서러워서 곤란하고 곤란해서 서럽고, 바람은 점점더 차가워지고 다시 더 곤란하고 서럽고 서러워서 곤란하고, 이 과정이 반복될 것이 빤한 날씨였다. 에라 모르겠다.

마침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계단도 마침내 끝났다. 다 내려가서 숨을 참으며 살며시 할머니를 내려놓았다. 드디어 얼지 않은 땅에 발을 디딘 할머니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도 같이 쓸어내렸다.

침대에서 문 사이의 그 좁다란 공간에 침대와 이불처럼 반질반질하고 고운 얼굴을 한신혼부부가 무릎을 웅크린 채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얼굴들도 하도 이불처럼 새것 티가 나게 반질반질 고와서, 게다가어떤 사람들만이 풍길 수 있는 정결함 때문에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신혼부부구나, 하고 눈치챌 수 있었다. 참 고운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친구들이 데리러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웃는 새댁의 얼굴은 말갛고 곱고 눈부셨다. 그리 덩치가 크지 않은신랑은 어떻게 평소보다 몇 배 무겁기 마련인 술 취한 사람을 업고 예까지 왔는지 장군처럼 늠름해 보였다.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었고 앞으로도 기약 없다. 그저,
부디 그들이 그 침대가 떵떵거리며 제 자리 찾아 위용을 자랑할 수 있는 몇 십 평짜리 넓은 집에서 잘 살기를. 레미안이니 브라운스톤이니 이런 데 가서 여봐란 듯이 살라고 세속적으로까지 빌어주고 싶을 만큼 참 정다운 무릎을 가진 부부였다.

으로 출동한 모양이었다. 노래 소리와 마이크에 대고 뭐라고 고래고래 흥을 돋우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커지기만하는 게 아니라 열기가 시시각각 끓어올라 뚝배기처럼 도통 식을 줄을 몰랐다. 마이크에 대고 소리치는 사회자의 신명도 커져만 갔고, 얼쑤 좋다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져만 갔다. 그리고 누군가 단단히 털리고있다는 내 의심도 뭉게뭉게 커져만 갔다.

팔순 때도 이웃들이 깜짝 놀라 홍보관으로 착각할 만큼 시끄러운 잔치를 벌일 수 있기를, 그리고 고성방가로 착각하고 분노하며신고한 나같이 덜 떨어진 이웃이 다시는 없기를 빌었다. 할머니 축하드려요. 내내 건강하세요. 누구나 칠순은 한 번인데 제가 참 그것도 모르고 죄송해서 어쩌나. 팔순 때는절대 고성방가로 신고 안 할 테니 꼭 팔순잔치 하셔요. 네.
부디 오래 사시고 건강하게 구순까지 치르셔요.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그분을 즉시 찾아가서 옆에 앉혀놓고 간절하게 물어보고싶다. 대민 상담 40년의 경력으로 보셨을 때, 이 남자는 어떤가요? 저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나요? 그 어떤 용하다는점술가나 노련한 정신과 의사보다 훨씬 신뢰가 가는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저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어떤 남자와 헤어지는 것보다도, 그 집과 헤어지는 게더 힘들었다. 참 고마웠다. 그 다정한 침묵. 지겹도록 많은 구질구질한 고독을 내려놓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질질 짜며 눈물을 흘렸던 리놀륨 장판의 무늬 하나까지도, 벽지의 얼룩 하나까지도 그토록 사랑했다. 잘 있거라, 사랑아. 아니, 잘가라 사랑아.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가려고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는하도 가파른 경사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앞뒤 브레이크를 꽉잡으며 젠장 이건 뭐 시간을 달리는 처녀도 아니고, 하고투덜대던 언덕. 올라올 때는 이를 악물며 아무리 추운 겨울날에도 내가 이놈의 동네 뜨고야 만다. 하고 허망한 결심하루에도 몇 번씩 하던 그 언덕. 없다, 이제는.

도대체 나는 왜 이놈의 회사를 죽어라 다녀야 하나. 여기 다니다가 좋은 날 다 보내는 거 아닌가,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했다고 좋아했더니 이건 정말 첫 작품이 유작이 될 판이고, 왜 저 책상에 앉아 있는 인간은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가..….… 그때 나는 확실히, 막힌 하수도 뚫듯 꼭 내려야 할 심화로 가득해 있었다.

나의 입을 것을 해결해준 것은 수년 동안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였고, 그나마 기분 좀 낼 때면 동대문 도매상가에가는 정도였다. 그러니 브랜드 제품이라고는 온 옷장을 들었다 털어도 없고 그나마 옛날 남자친구가 뭐라나 하는 크리스털 브랜드 귀걸이를 선물한 적이 있는데 정말 거지같이 헤어지고 난 다음, 야 이 망할 자식아 평생 그러고 폼 재고 살아라, 하면서 랜디 존슨 같은 기세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어딘가 타지 않는 쓰레기 노릇이나 잘 하고 있겠지. 어쨌거나.

좀스럽기 짝이 없는 마음보를 한탄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동시에 이게투쟁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냐며 죄책감에 빠졌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구두는 내 마지막 보루 같은 거였다. 왜이래 나 미우미우 하이힐 있는 여자야, 하는 이십대 여자로서의 마지막 허영이었다. 내 능력으로 손에 쥘 수 있는 허영의 딱 한계치이기도 했다.

나 때문에 그녀는 참 눈부시게 웃었다. 아, 나는 도넛답게주책스런 눈물이 나려고 하고 그러거나 말거나 그 미소 덕분에 텅텅 빈 둥그런 구멍이 아주 조금 작아졌다. 도넛이 신통한 짓 하고 도넛이 도넛 구멍 메우는 그런 희한한 날도 있었다. 용감한 KTX 여승무원의 그 꿋꿋한 미소 덕분에 도리 나는 1센티미터 정도 구원을 받고. 요즘도 이놈의 구멍사이가 유난히 퀭할 때마다 아끼고 아껴서 꺼내보는 녹슨철탑 위 당신의 눈부신 미소, 고맙고 또 고마웠어요.

오천원어치만 포장해달랬는데 터질 듯한 봉지를 할머니는 건네줬다. 그걸 안주 삼아 산꼭대기 내 방에서 마지막으로 술을 마셨다. 순대는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았다.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그 집에서 내가먹어온 것은 순대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차마 감당이 안돼서 펄펄 날뛰다 못해 미친 개 같던 젊음을, 고달프고 외롭고 거친 혼자살이와 돈벌이의 어리광을 그 식탁 위에 조용히 내려놨었다는 것을. 아이고 이쁜이가 왔구나, 아가야많이 먹어라, 하는 그 말에 넘치도록 위로를 얻어왔다는 것을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그 집에서 내 맘대로 정한 내지정석에 앉아 있으면 아무리 가난하고 춥고 외로워도 꼭따사로운 봄날 같았다. 그토록, 따사로운 순대국이었다.

요즘 레드니 마늘이니 갖은 맛을 낸 치킨들이 많지만 만약 당신이 고전적인, 극히 평범하지만 맛있는 치킨을 원한다면 약수역에 있는 이십 년 된 림스치킨을 찾아보실 것,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금호동에 사시는 아줌마, 보고 싶다. 극히 평범하지만 맛있는치킨도 다시 먹고 싶다.

조금씩 줄였다는 항변에 의사선생님은 독을 한 컵마시나 한 병 마시나 뭐가 다르냐고 대꾸했다. 사실 그 말이 맞았다. 그리고 억울할 것도 없었다. 평생 마실 술을 지난 십 년 동안 죄다 마셔버렸으니까. 내 몫뿐이 아니라 평생술한잔 입에 대지 않고 살아오신 부모님 몫까지 카드빚당겨쓰듯 싹 쓸어 마셨으니 끊어도 억울할 것 없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이를 악물고 버틴다. 그 좋아하는 술을 어떻게 끊느냐고, 같이 술 마시고 싶다고 간 크게 말해주는사람들이 있어서 고맙기는 한데 사실은, 너무 사랑해서 차마 가까이 갈 수 없는 마음을 아십니까. 이 애절한 마음을.

향미의 소고기탕면의 칼칼하면서도 독특한 국물은 고수를 듬뿍 넣으면 더욱 술 한 잔을 부르는 맛이 되고, 동파육은 돼지고기 비계를 느끼하지 않게 삶아 젓가락으로 부드럽게 쪼개질 정도로 연한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만두를 살짝 찢어서 그 위에 고기 한 점 없어 먹으면 밀가루 음식이건 비계건 기름기건 평소에 건강이 어쩌고 저쩌고 내가뭐라고 떠들었건 말건 으허허허허 내가 뭐랬건 오해입니다.
하는 식으로 마구 주워먹게 된다. 그게 ‘향미‘의 마력이다.

하는 것이 요즘 기륭전자에 가보지 못하고 알량한 돈만 보내느라 못 가보는데, 미미식당 생각만 해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을 질질 흘릴 지경이다. 고지혈증이고 콜레스테롤이고 다 엿이나 먹으라지, 나는 그날 먹은 음식들의 이름도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그저 얼른 입에 넣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정말로, ‘미미식당‘이었다. 정말로 아름다울 미에 맛미자를 쓴다. 아름다운 맛이었어요. 사장님.

유난히 추운 날 아침부터 만두가 먹고 싶어서 터덜터덜갔더니 아줌마는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만두를 상자에넣어주시곤 갑자기 손 좀 내밀어보라고 했다. 손을 내밀자아줌마는 찜통에서 찐빵 하나 꺼내 쥐어주며 말했다. "날이 추워서 손이 시리니까 잡고 집에 가면서 먹어." 과연 손은 따뜻했다. 찐빵은 손난로처럼 보들보들한 제 몸으로 따스하게 손을 덥혀주었다. 집에 가도 따뜻해서 아버지가 기뻐하며 드셨다. 나는 김치만두를 먹었다. 아버지도 나도,
사소하게 행복한 날이었다. 아버지는 지금 천국에서 만두처럼 포근하게 계실까. 오늘도 혜성분식은 시장이 모두 잠든 새벽 다섯시에 혼자 불을 밝히고 있고 찜통은 따뜻하느라 바쁠 것이다.

다 아는 얘기겠지만, 나는 성격이 나쁘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 만한 내공을 갖춘 인물이 전혀 못 된다. 어리지도 않은 나이에 이젠 좀 죽어도좋을 혈기만 펄펄해서 마음에 안 드는 꼴을 보면 웃으면서 여유 있게 화내기는커녕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며 있는악 없는 악 다 써서 벼락같이 화를 내지 않고는 못 배긴다. 화를 내고 내고 또 내도 모자랄 일천지, 그냥 귀를 막고 나는 별일 없이 산다 하기에는 이놈의 혈기가 아직 덜죽어서, 아주 이놈의 혈기가 웬수 중의 웬수다. 한쪽에서는 비정규직 신나게 자르고 잡 쉐어링 하자면서 젊은 애들보고만 콩 한쪽도 나눠 먹으라고 윽박질렀고 저쪽에서는 마음대로 운하 파고 그러거나 말거나 가난한 아버지들은 가난한 죄로 타 죽어버렸고, 예쁘고 돈 없고 빽 없는 여자 연예인은 손 타다 죽어버렸고, 일제고사가 어쩌니 저쩌니 난리통에 선생질하던 친구가 잘려버렸고…………종종 속상해하는 것만으로 하루해가 다 가버리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힘겨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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