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잡을 수 없이 수다스러워지다가 무엇에 놀란 것처럼 입을다물었다. 수다가 걷잡을 수 없었던 것보다 더 지독하게 수치심을걷잡을 수가 없었다. 마치 실수로 중인환시에 속바지를 까내렸다가치켜올린 것처럼 황당하고 망신스러웠다. 다행히 그가 내 치부를본 것 같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그럴 리가 없어, 저 자식은시방 능청을 떨고 있는 거야라고 은근히 겁을 먹고 있었다.

그래 난 당신처럼 딸만 있는 주제에 천연덕스럽게 행복한 체할 수있는 남자가 이 땅에 있다는 게 께름칙한 걸 떨쳐버리지 않으면 미치겠단 말야, 이런 눈빛으로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뭐 이런여자가 다 있나 진저리가 난 티를 감추지 않다가 용케 자제하고 냉정한 얼굴이 됐다. 나는 그가 억지로 가다듬은 냉정 뒤에 지친 듯 희미한 연민이 번득이는 걸 본 것처럼 느꼈지만 어째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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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따뜻한 말이 피워 낸 봄이었다. 문을 닫기 전에 나는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내가 나가자마자불을 끈 방 안은 어두침침했다. 어둠 속에서 어머니의 시선은 하염없이 내 뒤를 좇고 있었다. 오래 햇빛을 보지 않아 희디흰 어머니의 얼굴은 이지러진 데 하나 없는 보름달 같았다. 내 걸음걸음보름달의 환한 빛이 고여 있었다.

나중에 술집에서 장을 만났을 때, 장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내가 죽었을 때, 모두 그녀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소. 아무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지." 장의 표현에 따르자면, 장은 일곱 살짜리 아들과 함께 이 세상에 "덩그렇게 남겨졌다.".

장의 아들은 열두세 살 때부터 이미 록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특히 록 밴드 파셀(PARCEL)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장은 아들이열다섯 살이 되던 날, 아들을 데리고 파셀의 콘서트에 갔다. 나중에 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콘서트날과 우리 아들의 생일이 같은날짜였다는 게 정말 기막힌 우연 아니오?" 사람들은 그날 이후로장이 변했다고 말한다. 한은 이렇게 말했다. "소장님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아."

"오늘은 첫날이라 스타벅스에서 모인 거고, 다음 스터디부터는학교 세미나실 빌려서 모이는 거 맞죠? 스터디 모집할 때 학교에서 할 거라고 올려놓고 이렇게 하루 전에 장소 바꾸는 건 경우가아니라고 보는데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은호에게 따지듯 묻고 있었다. 은호는 진땀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사과까지했다. 예약이 마감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앞으로는 미리 예약을 해서 학교에서 스터디를 하도록 하겠다며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서울에 다니러 온 엄마는 내 자취방에 누워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이불은 처음 덮어 본다고 말했다. 사람은 역시 베풀고 살아야한다고, 어렵게 사는 동생을 거둔 은덕이 돌아왔다고 말하는 엄마에게서 이모를 험담하고 은근히 따돌리던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었다.

그일 때문에 우리가 헤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더 이상 복구가 어려운 수준으로 관계가 망가졌을 때 이별이라는 수순을 밟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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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아버지는 된장 없이 단 한 끼도먹지 않았고, 해서 우리 집 밥상에는 사시사철 끼니마다 각양각색의 된장국이나 찌개가 올랐다. 말갛게 끓여 각자 입맛대로 매운고춧가루 팍팍 넣어 먹는 동탯국이나 무조림, 무생채, 상추겉절이도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였다. 어머니를 모시기 전까지 나는 그게 우리 집안의 식성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어머니는 짐짓 딴청을 부렸다. 내가 귀향한 뒤로 어머니는 늘 그랬다. 나를 고향으로 내려보낸 장본인은큰오빠였다. 어머니 빼닮은 큰오빠는 어머니라면 껌뻑 죽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없는 집에서 허리도 안 좋은 어머니가 혼자 어찌사시겠냐며 날마다 전화를 걸어 걱정을 늘어놓는 바람에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잔소리 많은 것까지 큰오빠는 어머니를 쏙빼닮았다. 오빠 등쌀에 나는 결국 생각지도 않았던 귀향을 하고만 것이었다.

그리 야멸차게 굴었으면서 어머니는 내가 남자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자식 키우고 사는 게 또 안타깝고 안쓰러워 눈물로 날을 지새웠다. 아버지 살아 있을 때는 두 노인네가 수시로 나를 찾아왔다. 온갖 먹을 게 담긴 라면 박스를 두세 개씩 들고. 내려가고 난뒤에는 반드시 전화가 왔다.
싱크대 오른쪽 맨 아래칸 반찬통 뒤져 보그라.

느그들 한창 클 때 잘 멕이도 못흐고 잘 입히도 못한 것이 느그아부시나 나나 평생 한이라 근다. 해준 것도 없음시로 자식들 등쳐 묵고 살아 쓰겄냐.

어머니는 내 앞에서 한 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니라 아들에게 속을 털어놓으며 산 모양이었다. 고슴도치처럼 늘 가시를 세우고 있는 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득 내가 아니라 오빠가 내려왔다면 어머니가 사랑채로 옮긴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채와 본채의 거리가 나와 어머니의거리였다. 내가 만든 거리였다.

어머니는 달랐다. 어머니에게 음식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겨울이면 어머니는 두 시간을 걸어 읍내 장에갔다. 자식들에게 비린 것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동태 한 궤짝을머리에 이고 온 어머니는 펌프가 설치된 수돗가에서 차디찬 물로반나절에 걸쳐 동태를 손질했다. 동지섣달 칼바람이 휘몰아쳐도어머니의 칼질은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손질한 동태로 끓인 국은 콩나물국처럼 맑디맑았다. 어머니는 꼬막도 일일이 칫솔로 닦았다. 우리 식구 먹을 양을 하나하나 칫솔로 닦으려면 그 또한 한나절이었다. 어머니 손은 겨우내 발갛게 곱아 있었다.

나가 늘그막에 먼 복잉가 모리겠다. 니가 이리 잘해 먹여서 긍가 아픈 디가 한나도 없어야. 내 평상 첨이랑게.
내가 잘해 먹여서가 아니었다. 아버지 가고 내가 모신 뒤로 속병이 사라진 걸 보면 식성에 맞지 않은 음식이 문제였다. 남달리예민한 사람이 아버지 식성대로 맵고 짠 것만 먹고 살았으니 위장병을 달고 살 수밖에. 나는 어머니 모신 지 몇 달 만에 내 반찬을따로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 입맛에 맞게 한 음식들이 도무지 당기지 않아서였다.

자식들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분명했다. 심지어 자식들에게조차 그 허물을 애써 덮는 사람이었다. 둘째 고모와 통화하고 나면 어머니는 번번이 소화제를 먹었다. 말을 하지 않으니 알수 없지만 솔직한 둘째 고모가 분명 우리 남매 중 누군가의 흉을봐서일 터였다. 그래서 나는 둘째 고모의 전화가 반갑기도 했지만불안하기도 했다.

마을로 진입하는 길가에 며칠 전부터 벚꽃이 한창이었다. 햇빛화창한 날의 벚꽃도 일품이지만 가는 비에 젖은 벚꽃은 고적하니또 다른 맛이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어머니는 비처럼 흩날리는벚꽃 아래 우두커니 서 있곤 했다. 그때의 어머니는 어머니임을잠시 잊은 것처럼 보였다. 오늘도 어머니가 어머니임을 잠시 잊었으면 싶었다.

어머니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웃음이 번졌다. 어머니 머릿속에서 어떤 기억들이 떠오르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서울 사는 셋째고모는 부부 싸움만 하면 우리 집으로 내려왔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눌어붙어 어머니 속을 끓이던 셋째 고모는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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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것이 꼭꼭 숨어 있을수록 그의 허기도 고조됐다. 마침내 허기혼자서 새빨갛게 밤눈을 밝히고 온 집안을 횡행했다. 아내는 자는척을 계속했다. 아내의 자는 척은 고문처럼 비참했다. 아내는 깨어난 욕망 때문에 깨어난 게 부끄러웠고, 남편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깨어난 걸 감춰야 했다. 그러나 허기밖에 안 남은 그에겐 아내의 이런 불쌍한 자는 척조차 채워지지 않은 욕망의 복수처럼 간교하게 비쳤다.

다음 날 아침이면 시험테이프는 영락없이 음산한 사신의 미소를보내왔다. 그의 몸뚱이는 그렇게 빤했다. 투명한 시험관처럼 속이들여다보였고 융통성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소량인 데다 변화없이 단조로운 식단에도마침내는 길들여져 거의 싫증을 못 느끼게 된 몸뚱이건만 주사 맞는 아픔에 길들여질 줄 몰랐다. 맞을 때마다 매번 새롭게 아팠다.
아픔뿐만이 아니었다. 남의 살이 아닌 자기 살에 손수 주사 바늘을꽂는 일이 매일 아침 되풀이되건만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공포였다. 매번 새롭게 진저리가 쳐졌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을 아내한테 시키지 않았다. 말이야 식이요법때문에 허구한 날 신경 쓰는 것도 미안한데 그것까지 해달랄 염치가 없다는 거였지만 실은 아내로 하여금 그의 살의 징그러운 감촉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일종의 자애였다.

그러니까 큰 뿌리라고 해도 통속적인 백하곤 인연이 먼 거였다.
양반에게 있어서 핏줄 같은 것처럼 남이 믿거나 말거나 자기 속에있다고 믿고 싶고,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그 무엇이었다. 그래서서병식의 천박한 호기심은 더더욱 그에게 환멸과도 같은 비애를 안겨줬다.

서병식이 다시 그에게 등을 보였다. 회색빛 제비초리와 홈이 깊은 앙상한 목덜미와 빛 바랜 헐렁한 윗도리 속의 마르고 굽은 어깨와 가뜩이나 헐렁하고 꾸깃꾸깃한 핫바지를 더욱 희극적으로 만드는 심한 안짱다리 걸음을 바라보면서 그는 갑자기 술 생각이 났고 시장기를 느꼈다.

서병식도 싸구려 음식점이 즐비한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비로소늙은 친구의 뒷모습을 호젓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그에게 전혀 예기치 못한 느낌이 엄습했다. 그는 친구의 늙고 고달픈 뒷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슬퍼서 아름다운지 아름다워서 슬픈지 가슴이찐하면서 눈시울마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그 끊긴 필름을 잇기 위해선 그 늙은 친구의 도움이 있어야 할 것같았다. 서병식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 친구의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 대신 작고 구부정한뒷모습과 꼬리가 왼쪽으로 꼬부라진 회색빛 제비초리만이 여실하게 떠올랐다. 그가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고삐를 놓친 건 어쩌면 서병식을 만나자마자인지도 몰랐다. 그 친구를 보면서 컬컬하고 헛헛해져서 술집으로 갈 때까지 당뇨병에 대한 생각을 한 번도 안 했으니까.

전생에 본 풍경도 이승에서 다시 만나면 짚이는 게 있다는데, 그녀석이 그의 속에 갇혔던 놈이라면 그의 눈을 빌어서 보았을 테니뭔가 짚이는 게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차창 밖의 풍경을 하나도 안놓치고 유심히 내다보았다.

그런 그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서울 변두리 풍경을 빨아들이듯이열심히 내다보면서 그 하나하나에 뭔가를 감시하려 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그를 깜쪽같이 따돌리고 하룻밤의 자유를 즐기다가돌아와 시치미 딱 떼고 마치 없는 것처럼 구는 녀석에게 이것 보렴.
이것을 보고도 시치밀 뗄래? 하고 들이댈 물적 증거를 찾고 있는지도 몰랐다.

철문은 웬만한 집 대문에 달린 출입문처럼 외짝인 데다가 낮아서쇠꼬챙이 사이로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플라스틱 판대기로 하늘을 막아버린 이부자리만 한 마당을 향해 방문이 ㄱ자로 세개나 나 있었다. 그 세 개의 방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 열리고 잠옷만 입은 여자, 잠옷 위에 스웨터를 걸친 여자, 내복만 입은 여자가 내다봤다. 대낮인데도 그 꼴을 하고 있고, 아직도 어젯밤의 짙은화장이 더러운 더께가 되어 남아 있는 뻔뻔스러운 얼굴로 봐서 그들이 모두 조미숙이 아니더라도 조미숙과 같은 직업을 가진 여자들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큰 경대와 서랍장을 빼고는 방바닥을 온통 꽃무늬 있는 캐시밀론이불이 차지하고 있어 발 들여놓을 틈도 없었다. 먼저 들어간 여자가 이불을 들쓰다시피 하고 앉으니까 약간의 틈이 생겨 그 사이에그는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가죽방아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자마자 가슴이 울렁거리고눈앞이 몽롱해졌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여자가 거짓말을 시키고 있을 거야. 저런 여자의 말을 어떻게 믿는다. 그렇지만 혹시또 모르지. 녀석이라면 그럴 수 있을지도. 그는 아직도 그의 끊겨달아난 시간을 지배했을 어떤 녀석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가 나타나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는 것만으로 조미숙에게 고문과 같은 고통을 준다는 걸 충분히 알면서도 그는 그런 가학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유실은 엄청났고 돌이킬 수 없었다. 그는 성남시 쪽을 돌아다보았다. 해태의 글씨는 "안녕히 가십시오" 로 바뀌어 있었다.
안녕, 앞으로 다시는 성남시를 찾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녀석은 탐색하는 일로부터 놓여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작은 시험관 속의 현상처럼 빤하지 않다는 게 갑자기 무서워졌다.

집값이 뛸때라 어물어물하다가 동생네 집 날리는 꼴 보게 될까 봐 나 혼자 후끈 달아서 옆 동에 마땅한 집이 나와 나는 즉시 계약을 했다. 동생은잔신경 쓰는 일은 질색인 반면 되레 이사처럼 큰일은 힘 안들이고휘딱 잘도 해치웠다. 한 단지 내에 붙어 살게 되고 동생네가 편해진건 말할 것도 없지만, 나는 더 자주 불려가거나 아이를 떠맡게 되어, 내가 자초한 일에 비명을 올린 적도 부지기수였다.

한참 바쁜 등교 시간에 빨아서 챙겨놓은 중학생 딸의 덧신이 안 보일 때도 그 증상이 왔다. 마치이 세상이 끝장나버릴 것처럼 눈앞의 사물뿐 아니라 머릿속의 생각까지 가물가물 무화돼가는 느낌은 아주 고약했다. 이 세상 마지막느낌이 고작 공포와 절망이라니. 이렇게 내가 뭘 못 찾아 우두망찰을 하고 있는 걸 남편한테 들키면 사정은 더 나빠졌다. 그는 매우 부드럽고 침착하게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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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요란한 포성보다 서울을 사수할 것이라는 방송만 믿고 피난의기회를 놓친 자신의 고지식함과 국민을 그렇게 기만하고 저희끼리만 달아나버린 정부의 엄청난 무책임을 홀로 저주하고 분노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변신을 꾀할 만큼 비루하지도 못했다. 그는 그가기왕에 한 전향이, 잘못을 뒤늦게 깨닫고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한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향이란 말 자체엔 늘 도덕적인 불쾌감을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의 최초의 선택이 웬만큼만 잘못된 것이었더라도 그는 전향을 해서 잘못을 시정하느니 차라리 최초의 신념에일관함으로써 자신과의 신의를 지키고자 했을 것이다.

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변신이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의 인품이기에 더욱더 국민을 듣기 좋은 말로 달래 적 치하에 팽개치고 저희끼리 뺑소니친 꼴이 된 정부에 대한 원망도 컸다. 원망과 불신,
불안, 그리고 고독으로 그는 날로 정신이 망가져 갔다. 이런 그가이웃의 고발로 기습을 당해서 끌려가는 걸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 후 들려온 소식은 전혀 예상을 빗나간 것이었다. 인민재판에 회부돼서 당장 목숨을 잃었거나 모진벌을 받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인민 총궐기대회에서 제일 먼저 의용군을 지원해서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감격해서 동조케 했다는 소식이었다. 남은 식구들은 그저 그렇다니 그렇게 알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농간이 그의 운명을 희롱하고 있는지 알아볼 도리는 없었다.

노도처럼 남으로 밀리는 피난행렬에 끼었으면서도 검문을 피하느라 도심을 몇 바퀴 배회한 데 지나지 않았고, 오빠는 검문이 있을만한 곳을 더듬이처럼 예민한 감촉으로 예감하고 재빠르게 피하는능력 빼고는 아무런 생각도 의지도 없는 폐인처럼 돼 있었다. 나는이런 오빠가 짐스러운 나머지 혼자 도망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에 공포와 비굴이 처참하게 엇갈렸다.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강조할 것도 없이 오빠는 누가 보기에도 성한 사람은 아니었다. 우락부락 거친 그들과 비교되어 더욱 그랬다. 몸은 파리하고 여위고 눈은 공허하고 입에선 알아들을 수 없는 외마디소리가새어나올 뿐이었다. 어머니가 병신 자식이라는 걸 너무 강조하지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어머니는 한 줌의 먼지와 바람으로써 너무도 엄청난 것과의 싸움을 시도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그 한 줌의 먼지와 바람은 결코 미약한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어머니를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어머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단이란 괴물을 홀로 거역할 수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어머니의 정열 없는 노여움은 마치 팽팽한 백지장이 바람에 파르르하는 것처럼 비인간적이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조용한 어조였지만 미쳤냐?의 의미는 길고 도전적이어서 내 의식을 나사못처럼 조여오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간을 위해서. 혹시 어머니는 지금 일생일대의 마지막 연기를 하고 있는 거나 아닐까, 당신 의식의 밑바닥에 찰싹 늘어붙은 걸 꼭꼭 감추기 위해 부스러기만 내보이는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생전의 어머니는 깔끔한 대신 차가운 분이어서 한 번도 그렇게 곰살궂게 군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생애만큼 먼 옛날의작명이 나에게 그런 위무를 해주고 있었다.
어머니의 함자는 몸 기자, 잘 숙자여서 어려서부터 끝 자가맑을 숙자가 아닌 걸 참 이상하게 여겼었다.

침이 엿처럼 끈끈하게 말라붙어 있어 물맛은 들척지근했다. 그런화급하고도 불쾌한 새벽의 물맛은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단숨에 물주전자를 비우고 나서 갑자기 되살아난 새벽의 물맛 때문에 그는싸늘하게 긴장했다. 그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물 마른 도랑으로 내려섰다. 바지춤을 헤치려는데친구도 따라 내려오는 게 아닌가. 그는 그게 가슴이 내려앉도록 싫었다. 변두리 고지대의 수도물처럼 맥없이 질금대는 그의 오줌발을친구가 경멸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친구는 자신의 소나기처럼상쾌한 방뇨에 도취해서 부르르 진저리를 쳤을 뿐 남의 오줌발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친구는 그렇게 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오줌 자국에만 개미떼가 새카맣게 엉켜붙어 있는데도 아직도 사방에서 줄을 지어 그곳으로만 모여들고 있었다.
친구의 오줌 자국은 말짱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채불길한 예감이 얼음 조각처럼 차갑게 그의 등허리를 지나갔다.

진찰 결과 그는 중증의 당뇨병이었고 합병증으로 폐결핵까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았다. 체중은 해마다조금씩 불어나고 있었고, 동안은 피둥피둥 혈색이 좋았고, 아무리과음을 해도 잠 잘 자고 일어나면 새벽부터 거뜬했고, 밥맛은 6·25때처럼 달았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건 제아무리 많아도 치료제일뿐 안경은 아니니까. 그가 그 많은 약을 먹어야 하는 일을 너무 쉽게생각하고 있다고 판단한 전문의는 약의 부작용에 대해, 또 당뇨 조절 없이는 약효를 기대할 수 없다는 데 대해 다시 한 번 누누이 경고하기를 잊지 않았다.

이 큰 몸뚱이에 그까짓 밥 한 숟갈쯤 더 먹었다고 설마 무슨 일 나랴? 자신을 속여가며 그에게 하루치로 허용된 단위의 탄수화물에서 밥 한 숟갈만 더 먹어도 시험테이프 끝에 붙은 분홍 색조는 소변에 담갔다가 꺼내기 무섭게 어두운 자색으로 변했다. 시험테이프의암자색은 즉각 그에게 새까맣게 꼬여드는 개미떼를 연상시켰다. 개미떼는 조개처럼 불길했다. 아침에 그 불길한 색조를 대하면 온종일 되는 노릇이 없었다.

그가 비상한 극기로 1,800칼로리의 식사로 하루를 견뎠을 때 시험테이프의 분홍색은 습기를 머금어 색조가 더욱 선명해지는 것 말고는 그대로 있었다. 그는 그 촉촉한 분홍색을 사랑했다. 그런 빛깔의 루주, 그런 빛깔의 매니큐어를 바른 여자까지도 좋아했다. 그가본 첫 손자의 입술도 그런 빛깔이었다.

자신의 몸뚱이를 파악하고, 투명한 시험관 들여다보듯이 투시하고 마침내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있다는 쾌감은 당뇨병이란 희한한병을 앓아 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었다.

한밤중의 허기는 외롭고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정욕보다 훨씬 더파렴치하고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는 살금살금 잠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아내가 단것을 얻다 감춰놓고 혼자만 몰래 즐기는지 찾아내야만 했다. 남편에게 단것이 독극물처럼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는아내는 결코 그것을 허술하게 간수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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