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요란한 포성보다 서울을 사수할 것이라는 방송만 믿고 피난의기회를 놓친 자신의 고지식함과 국민을 그렇게 기만하고 저희끼리만 달아나버린 정부의 엄청난 무책임을 홀로 저주하고 분노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변신을 꾀할 만큼 비루하지도 못했다. 그는 그가기왕에 한 전향이, 잘못을 뒤늦게 깨닫고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한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향이란 말 자체엔 늘 도덕적인 불쾌감을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의 최초의 선택이 웬만큼만 잘못된 것이었더라도 그는 전향을 해서 잘못을 시정하느니 차라리 최초의 신념에일관함으로써 자신과의 신의를 지키고자 했을 것이다.
살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변신이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의 인품이기에 더욱더 국민을 듣기 좋은 말로 달래 적 치하에 팽개치고 저희끼리 뺑소니친 꼴이 된 정부에 대한 원망도 컸다. 원망과 불신, 불안, 그리고 고독으로 그는 날로 정신이 망가져 갔다. 이런 그가이웃의 고발로 기습을 당해서 끌려가는 걸 가족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 후 들려온 소식은 전혀 예상을 빗나간 것이었다. 인민재판에 회부돼서 당장 목숨을 잃었거나 모진벌을 받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인민 총궐기대회에서 제일 먼저 의용군을 지원해서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감격해서 동조케 했다는 소식이었다. 남은 식구들은 그저 그렇다니 그렇게 알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농간이 그의 운명을 희롱하고 있는지 알아볼 도리는 없었다.
노도처럼 남으로 밀리는 피난행렬에 끼었으면서도 검문을 피하느라 도심을 몇 바퀴 배회한 데 지나지 않았고, 오빠는 검문이 있을만한 곳을 더듬이처럼 예민한 감촉으로 예감하고 재빠르게 피하는능력 빼고는 아무런 생각도 의지도 없는 폐인처럼 돼 있었다. 나는이런 오빠가 짐스러운 나머지 혼자 도망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에 공포와 비굴이 처참하게 엇갈렸다.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강조할 것도 없이 오빠는 누가 보기에도 성한 사람은 아니었다. 우락부락 거친 그들과 비교되어 더욱 그랬다. 몸은 파리하고 여위고 눈은 공허하고 입에선 알아들을 수 없는 외마디소리가새어나올 뿐이었다. 어머니가 병신 자식이라는 걸 너무 강조하지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어머니는 한 줌의 먼지와 바람으로써 너무도 엄청난 것과의 싸움을 시도하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그 한 줌의 먼지와 바람은 결코 미약한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어머니를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간, 어머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분단이란 괴물을 홀로 거역할 수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어머니의 정열 없는 노여움은 마치 팽팽한 백지장이 바람에 파르르하는 것처럼 비인간적이었다. 평상시와 다름없는 조용한 어조였지만 미쳤냐?의 의미는 길고 도전적이어서 내 의식을 나사못처럼 조여오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간을 위해서. 혹시 어머니는 지금 일생일대의 마지막 연기를 하고 있는 거나 아닐까, 당신 의식의 밑바닥에 찰싹 늘어붙은 걸 꼭꼭 감추기 위해 부스러기만 내보이는 이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생전의 어머니는 깔끔한 대신 차가운 분이어서 한 번도 그렇게 곰살궂게 군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생애만큼 먼 옛날의작명이 나에게 그런 위무를 해주고 있었다. 어머니의 함자는 몸 기자, 잘 숙자여서 어려서부터 끝 자가맑을 숙자가 아닌 걸 참 이상하게 여겼었다.
침이 엿처럼 끈끈하게 말라붙어 있어 물맛은 들척지근했다. 그런화급하고도 불쾌한 새벽의 물맛은 실로 오래간만이었다. 단숨에 물주전자를 비우고 나서 갑자기 되살아난 새벽의 물맛 때문에 그는싸늘하게 긴장했다. 그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물 마른 도랑으로 내려섰다. 바지춤을 헤치려는데친구도 따라 내려오는 게 아닌가. 그는 그게 가슴이 내려앉도록 싫었다. 변두리 고지대의 수도물처럼 맥없이 질금대는 그의 오줌발을친구가 경멸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친구는 자신의 소나기처럼상쾌한 방뇨에 도취해서 부르르 진저리를 쳤을 뿐 남의 오줌발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친구는 그렇게 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오줌 자국에만 개미떼가 새카맣게 엉켜붙어 있는데도 아직도 사방에서 줄을 지어 그곳으로만 모여들고 있었다. 친구의 오줌 자국은 말짱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채불길한 예감이 얼음 조각처럼 차갑게 그의 등허리를 지나갔다.
진찰 결과 그는 중증의 당뇨병이었고 합병증으로 폐결핵까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았다. 체중은 해마다조금씩 불어나고 있었고, 동안은 피둥피둥 혈색이 좋았고, 아무리과음을 해도 잠 잘 자고 일어나면 새벽부터 거뜬했고, 밥맛은 6·25때처럼 달았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건 제아무리 많아도 치료제일뿐 안경은 아니니까. 그가 그 많은 약을 먹어야 하는 일을 너무 쉽게생각하고 있다고 판단한 전문의는 약의 부작용에 대해, 또 당뇨 조절 없이는 약효를 기대할 수 없다는 데 대해 다시 한 번 누누이 경고하기를 잊지 않았다.
이 큰 몸뚱이에 그까짓 밥 한 숟갈쯤 더 먹었다고 설마 무슨 일 나랴? 자신을 속여가며 그에게 하루치로 허용된 단위의 탄수화물에서 밥 한 숟갈만 더 먹어도 시험테이프 끝에 붙은 분홍 색조는 소변에 담갔다가 꺼내기 무섭게 어두운 자색으로 변했다. 시험테이프의암자색은 즉각 그에게 새까맣게 꼬여드는 개미떼를 연상시켰다. 개미떼는 조개처럼 불길했다. 아침에 그 불길한 색조를 대하면 온종일 되는 노릇이 없었다.
그가 비상한 극기로 1,800칼로리의 식사로 하루를 견뎠을 때 시험테이프의 분홍색은 습기를 머금어 색조가 더욱 선명해지는 것 말고는 그대로 있었다. 그는 그 촉촉한 분홍색을 사랑했다. 그런 빛깔의 루주, 그런 빛깔의 매니큐어를 바른 여자까지도 좋아했다. 그가본 첫 손자의 입술도 그런 빛깔이었다.
자신의 몸뚱이를 파악하고, 투명한 시험관 들여다보듯이 투시하고 마침내 자유자재로 조절하고 있다는 쾌감은 당뇨병이란 희한한병을 앓아 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었다.
한밤중의 허기는 외롭고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정욕보다 훨씬 더파렴치하고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는 살금살금 잠자리를 벗어났다. 그는 아내가 단것을 얻다 감춰놓고 혼자만 몰래 즐기는지 찾아내야만 했다. 남편에게 단것이 독극물처럼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는아내는 결코 그것을 허술하게 간수했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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