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따뜻한 말이 피워 낸 봄이었다. 문을 닫기 전에 나는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내가 나가자마자불을 끈 방 안은 어두침침했다. 어둠 속에서 어머니의 시선은 하염없이 내 뒤를 좇고 있었다. 오래 햇빛을 보지 않아 희디흰 어머니의 얼굴은 이지러진 데 하나 없는 보름달 같았다. 내 걸음걸음보름달의 환한 빛이 고여 있었다.

나중에 술집에서 장을 만났을 때, 장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내가 죽었을 때, 모두 그녀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소. 아무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지." 장의 표현에 따르자면, 장은 일곱 살짜리 아들과 함께 이 세상에 "덩그렇게 남겨졌다.".

장의 아들은 열두세 살 때부터 이미 록 음악을 듣기 시작했고,
특히 록 밴드 파셀(PARCEL)의 열광적인 팬이었다. 장은 아들이열다섯 살이 되던 날, 아들을 데리고 파셀의 콘서트에 갔다. 나중에 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콘서트날과 우리 아들의 생일이 같은날짜였다는 게 정말 기막힌 우연 아니오?" 사람들은 그날 이후로장이 변했다고 말한다. 한은 이렇게 말했다. "소장님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간 것 같아."

"오늘은 첫날이라 스타벅스에서 모인 거고, 다음 스터디부터는학교 세미나실 빌려서 모이는 거 맞죠? 스터디 모집할 때 학교에서 할 거라고 올려놓고 이렇게 하루 전에 장소 바꾸는 건 경우가아니라고 보는데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은호에게 따지듯 묻고 있었다. 은호는 진땀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사과까지했다. 예약이 마감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앞으로는 미리 예약을 해서 학교에서 스터디를 하도록 하겠다며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서울에 다니러 온 엄마는 내 자취방에 누워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이불은 처음 덮어 본다고 말했다. 사람은 역시 베풀고 살아야한다고, 어렵게 사는 동생을 거둔 은덕이 돌아왔다고 말하는 엄마에게서 이모를 험담하고 은근히 따돌리던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었다.

그일 때문에 우리가 헤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더 이상 복구가 어려운 수준으로 관계가 망가졌을 때 이별이라는 수순을 밟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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