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사람들은 파슈툰족의 민족주의와 고토 회복 운동을 가뜩이나 우려하고 있었는데, 파키스탄의 벵골 사람들이 1971년에 분리독립에 성공해 방글라데시를 세우자 이러한 우려는 한층 더 심해졌다. 파키스탄의 지배층인 펀자브족은 파슈툰족에 대해서는 이런 일이 결코 반복되게 하지 않겠다고 작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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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인간으로서 실격이었음을 깨닫는다.
"무덤은 마치 조소라도 하듯 그의 눈앞에 딸의 죽음을비추었다."
건방지고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이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신이시여, 용서해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신이시여, 제발 구원을!"이라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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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가 보여준 것을 ‘이유 있음‘ 요법이라고 부른다면 내가 하는 일은 ‘이유 불문‘ 요법이다. 일단 나는 이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말을 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라는 식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왜?‘에 대한추궁은 하지 않고, 그저 ‘이유 불문한 채로 만남을 이어갔다(이는 사실 상당한 수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어째서로르샤흐 검사 도판을 보여준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후로는 이러니저러니 말하기에 앞서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이 고등학생은 학교에서도 자연스레 말을 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전혀 알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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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만이 대법원 판사와 예술 활동이라는 이중생활을 했다는 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그는 여러모로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낭만파에 속했던 만큼 자유분방하게 판타지 세계를 다루었던 한편으로, 작품에서 외적 현실을 묘사할 때는 치밀한 정확성을 보여주는 등 동료들과는 다른 재능을 보였다. 작가를 하면서 동시에 악장을했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이 있었고, 여기에 판사까지 겸했다고 하니 정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게다가 고양이를 좋아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내가 이 책에서 호프만을 가장 먼저 언급하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으리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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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소설이 힘을 잃었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여기서도 말한 것처럼 저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설 이외의 미디어가 소설을 뛰어넘고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의 총량이 소설을 압도적으로 능가하기 때문입니다. 전달 속도도 소설에 비해 엄청나게 빠릅니다. 더군다나 그런 대부분의 미디어는 소설이라는 기능까지도 자기 기능의 일부로탐욕스럽게 집어삼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의 역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래적인 인식이 불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저는 소설의 참다운 의미와 가치는 오히려 그 느린 대응성과 적은정보량, 수공업적인 고생(혹은 어리석은 개인적 영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유지하는 한 소설은 힘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경과해서 그런 대량의 직접적인 정보가 썰물이 빠지듯 빠져나갔을 때 비로소 무엇이 남아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거대한 망상을 품고 있을 뿐인 한 가난한 청년이(혹은 소녀가) 맨주먹으로 세계를 향해 성실하게 외치려 할 때 그것을 그대로물론 그 혹은 그녀에게 행운이 있을 경우이지만받아들여줄 만한 매체는 소설밖에 없을 겁니다.
상대적으로 힘을 잃고 있는 것은 문학이라는 기성의 미디어 인식에 의해 성립된 산업의 형태와 그것에 의존해 살아온 사람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픽션은 결코 힘을 잃지 않았습니다. 뭔가를 외치려 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길이 넓어진 것이 아닐까요? (무라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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