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배경이 되는 무대는 수작업으로 직접 제작한 소품을 이용해서 완성되며,
내가 일상에서 경험한 심리적 체험을 소재로 연출된 공간이다. 이것은 결국가치판단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나의 내면을 시각화시킨 것이다. 마지막으로그 속에 주체인 나 스스로 혹은 나의 자아가 투영된 타인을 등장시킨다. 이로써나의 내면이 노출되며 비로소 하나의 장면이 완성된다. 이 장면은 결국 나 자신의삶의 이야기를 연극적으로 서술한 것이며, 이는 최종적으로 한 장의 사진으로기록된다. 사진이 촬영된 후, 무대는 파기되고 나의 무대는 다시 무(無)의 상태로회귀한다. 이러한 파기의 과정을 통해 그 상황에 얽혀 있던 나의 감정은 정화되고승화된다. 내 작업의 모든 과정은 나 자신을 분석하고 관찰하는 성찰의 시간이다.
한 명의 예술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성장통을 요구하며 마치 뒤늦은사춘기를 맞은 것 같은 심정을 느끼게 한다. 예술가로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노력이 곧 나의 작업 과정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나의 삶, 곧 현재진행형의무대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반영하여, 앞으로 다가올 나의 삶에 대해 계속해서탐구하는 것이 앞으로도 지속할 <Stage of Mind>의 무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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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우리는 계속 아카이브를 발굴하고 그것에 빛을 비출 것이다. 그것은역사박물관 따위에서 마련한 재미난 이벤트를 위한 소품으로 전락하기도 할것이고, 또 어떤 때에는 역사를 잃은 우리의 슬픔을 위무하는 묘약이 되어스크린 위에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카이브가 역사와 접속하는순간 역시 생산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은 희귀한 일이겠지만, 그를 단념할수 없을 것이다. 사라진 이미지에서 유토피아적 잠재성을 믿는 이라면 더욱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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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파주에 두부씨에게 적당한 집이 있을까. 두부씨가 마당에 지저분한 것들을 두고 편하게 살고 싶다고 했으니 마당이 있다면 좋을것이다. 두부씨의 어린 것들은 요즘 파주를 돌아다닐 때마다 마당있는 집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두부씨가 파주로 오면 우리가 저녁에 공원으로 같이 산책을 나갈 수 있을까. 두부씨의 걸음으로는 한참 걸리겠지만 못 할 일은 아니겠다. 두부씨가 걷는 동안 어린 것들이 한 바퀴 달려서 돌아오기를 반복하면 어떨까. 두부씨가 그걸 기다려 줄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은 우리에게 남은 시간 중 얼마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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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이 정물들에게 내가 떠날 수 없는 이 작은 집, 작은 세상, 별것없지만 없는 것이 없는 나의 세상에서 가장 알맞은 자리를 찾아주는 것은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가장 알맞은 빛을 기다린다. 그 빛이 아이들 낮잠시간에 찾아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모두 잠든 밤 내 손이 겨우 보일 만큼의스탠드 불빛에 정물을 바라보기도 한다. 조각난 퍼즐을 끼워 맞추듯이 쪼개진채로 오랫동안 천천히 나타나는 정물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나에게 명상이며치유이다. 그 새로운 삶과 생명을 받아들이는 다리이며 이해하는 장치이다.
내가 한 발짝 물러서야만 아이들은 한 발짝 반을 물러설 것이다. 아이들을 떠날수 없었던 나의 작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게 먼저 말을 건네준 정물 그리고풍경들은 이제 또 다른 언어로 나와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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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해바라기야, 태양의 발자국들을세는 시간에 지쳐서그나그네의 여행이 끝나는 곳저 고운 금빛 영토를 갈구하는구나.
욕망에 시들어 버린 청년과눈처럼 하얀 옷에 싸인 창백한 처녀가각자의 무덤에서 일어나 갈망하는곳나의 해바라기가 가고 싶어 하는 그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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