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의 인문학 -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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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네 삶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을 우리는 '삶의 인문학'이라 부를 수 있다.

삶의 인문학은 삶을 살아가는 기예이자

예술로서의 인문학을 의미한다.

내가 이 책에서 '시학'이란 말로 부르고자 한 것도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이다.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출처 입력




삶은 이야기처럼 짜여지고,

이야기처럼 진행된다.

삶의 시학은 '산다는 것의 예술'에 주목한다.

'산다는 것의 예술'은 예술을 하면서 사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 행복하고 아름다운 예술적인 삶뿐만 아니라,

아니 보다 고통스럽고 추한 비예술적인 삶까지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인생살이 자체-를

예술로 보는 것은 의미한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태어나서 살다가 죽었다"라는 것은 인간의 공통된 생물학적 전기이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살았고, 무슨 고통을 겪었으며, 무엇을 행복으로 생각했는가라는 대목-

그의 삶의 자서전은 생물학적이 결정의 차원을 벗어난다.

우리는 그 삶의 자서전을 '문학적 자서전'이라 부를 수 있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감동이란 인간의 가슴에 이는 파도이고, 그 파도소리이다.

가슴속에 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의 특권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특권을 자진해서 포기하고,

그 특권의 자진헌납 속에서 오히려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감동의 포기를 종용하고 강요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사는 시대와 사회와 문명은 명백히 반인간적이다.

또 그 반인간적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매일처럼 '감동 죽이기'를 연습한다.

생존의 필연 앞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매일매일 살기 위해 죽고 있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인간의 반성적 능력이다.

우리가 플라톤처럼 철학자를 참사람으로 내세울 필요는 없지만,

반성은 인간의 삶을 인간다운 삶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송한의 철학적 능력이다.

이 능력을 포기하지 않는 자, 그가 사람이다.

참사람은 멀리 있지 않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지금 이 글, '만인의 시학'은

문학이 '문학하는' 사람들과 문학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만인의 것이라는 관점에서 씌어지고 있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문학은 삶의 진실과 결코 떨어질 수 없지만,

문학 자체가 어떤 객관적 진리 인식을 위한 지배적 수단인 것은 아니다.

문학이 포착하는 인간의 진실은 더 많은 경우 진/위 판단보다는

인간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진솔한 경험의 확장에 있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반전, 아이러니, 역설을 아는 사람은 관용의 인간일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지 않을까? 아일랜드 시인 세이머스 히니는 시를 "인간 상황의 복잡성에 대한 찬사"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히니가 말한 그 '인간 상황의 복잡성'이라는 것을 지금 우리 문맥을 위해 인간 상황의 '역설적 반전의 가능성'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싶다.

시는, 그리고 소설은 인간 실존의 반어적 상황에 대한 찬사이고 관용일 수 있다.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엿보기가 성립하는 것은 엿봄의 주체가 자기 혼자서만 대상을 보고 있다는 민음 위에서이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것은 그가 엿보는 순간 그 엿보기의 대상 자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로지 주체와 대상의 분리법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대상의 눈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소유하려는 대상은 그 소유욕망을 발동 순간에 욕망의 주체를 역으로 응시한다. 엿보기의 대상을 소유의 대상으로 만드는 순간 그는 대상이 반사하는 욕망의 시선에 나포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엿보기의 주체는 소유욕망의 질서 속에서 주체의 지위를 잃고 거대한 소유욕망의 포로로 전략한다. 그는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는 그가 소유한다고 생각한 대상 그 자체가 되고, 자신의 엿보기 시선에 의해 역으로 엿보기의 대상이 된다.

엿보기의 주체는 자시 시선이 자신의 것이라 환상 속에서 그 유혹에 걸려들지만,

그 유혹의 시선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다. 그는 봄으로써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패션은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사람들을 '한 가지 모양'에 몰두하게 하는 집단순응주의와

'새 것'의 패티시즘을, 작은 차이에 목숨을 걸게 하는 사소성의 나르시시즘을,

그리고 이 나르시시즘을 무한히 착취하는 분별없는 소비문화를 조장한다.

"이게 요즘 유행입니다"라고 옷가게 주인은 말한다.

"이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 당신은 앞으로 최소한 두 달 동안 촌놈을 면할 수 없다"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예술로서의 인문학 <만인의 인문학>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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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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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하늘이 무엇 하나 덮어주지 않음이 없듯이

마치 땅이 무엇 하나 실어주지 않음이 없듯이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마주하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제목을 보고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문장이 섬세하고 어렵지 않은 에세이 였다.

고향에 대한 생각이나

자연에 대한 표현이 섬세하였다.

특히 안양천에 대한 글이 기억에 남는다.


고향은 없다. 고향은 다만 내 추억 속에만 있다.

지금 그곳에 있는 고향은 아버지의 헐벗은 무덤을 안고

늙은 어머니의 초점 잃은 퀭한 눈을 안고

오늘도 창백하게 낡아가고 있을 뿐이다.

푸른 숲 그늘을 노래하던 매미는 잠시 자신이 허물을 벗던 나무둥치,

그 메마른 허물 곁에 앉아 본다.

한때는 그의 세계였던 허물,

여름과 녹음을 향한 꿈, 끝없는 비상의 꿈이 배태되던 허물은

이제 하얗게 바랜 흔적만으로 매달려 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58

봄부터 지금까지 나는 지칠 줄도 모르고 안양천과 놀고 있다.

나는 문명의 개숫물이 흘러 내려가는 이 거친 저지대에서 잠시 숨을 쉰다.

이런 휴식도 어쩌면 내 존재에 있어서는 불성실과 도피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만한 휴식도 없이 어떻게 이 곤고한 세월을 살아간단 말인가.

이제 초가을이다. 안양천의 뿌연 흙빛은 어느덧 다시 녹색의 풀빛들로 바뀌었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풀더미 아래에는 아직도 큰물의 상처가 뿌옇게 혹은 시커멓게 남아 있다. 그래도 안양천은 지난달보다 훨씬 더 차분해졌고 파란 하늘 아래에는 군데군데 코스모슥가 피어 그림처럼 고운 정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제 그 코스모스도 쓰러져 눕고 풀들도 누렇게 시들어 본격적인 가을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머지 않아 겨울이 오면 이 헐벗은 안양천에도 눈이 올 것이다.

나는 눈 덮인 안양천의 모습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때 자전거 바퀴 자국이 난, 하얀 길을 입김을 뿜으며 걸어가 보고 싶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58

하천은 생각보다 폭이 넓었고 시원하게 조성된 하천 부지에는

갈대와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뚝방 아래 농구코트를 가로질러 곧바로 물 가까이 접근하니

탁한 오수의 냄새가 풍겼다. 결코 좋은 냄새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그 냄새는 조그마한 소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추억의 냄새이기도 했다. 잠자리채를 들고 종일 철다리 아래 개천가를 쏘다닐 때 시커먼 도랑에서 나던 그 잊혀졌던 냄새를 나는 모처럼 다시 맡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 검은 물 위로 야생 오리들이 줄을 지어 이 기슭에서 저 기슭으로 미끄러지듯 헤엄치고 있었다. 봄이라서 그런지 하천부지는 온통 연녹색이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58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상처'에 대한 내용이다.

이렇게 사고하는 저자의 시선이 철학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생각의 전환 가운데 상처를 극복해 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처를 상처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극복이라는 의미로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정초에 컵퓨터를 고치겠다고 연장을 다루다가 무심결에 손을 다쳤다.

작업에 너무 취해 있었던 탓인지 손이 좀 쓰리다는 것만 느꼈는데 나중에 보니 컴퓨터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 놓았으나 움직임이 많은 부분이라 제대로 붙어 있지를 않았다. 아물다가 피가 나고 또 아물고, 딱지가 앉다가 떨어지고 또 딱지가 앉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 상처를 다스리면서 나는 마음에 난 상처를 생각해 보았다.

우연한 일상일 수도 있고 또 그 순간을 자극한 어떤 마음의 상처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더치고 하는 과정이 몸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67

컴퓨터를 고치다 다친 손의 상터를 통해 내면의 상처를 생각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였다면 아마 자신의 실수를 탓하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이 작은 실수도

그럴수 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무너질듯 자책을 했을 것 같다.

요증 더 힘들어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너무 쉽게 찾아오는 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나보다 그런 내면의 상처를 인식하고 이겨내는 힘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러한 과정에서도 저렇게 또 다른 시선의 생각을 할 수 있던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막연하게 인간에게는 얼마간의 상처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늘해왔다고 하다.

하지만 나는 할 수 만 있다면 그러한 상처 하나 받고 싶지 않다,

어쩌면 요즘 너무 지쳤기 때문일까.

내가 나를 돌보기도 지치는 날들이 많아서

그냥 편히 쉬고 싶고, 더 이상 상처로 아파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몸도 마음도 어디하나 상처 받지 않고 평안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상처를 바라보는 저자의 표현은 인상적이었고, 공감이 되었다.

아무런 상처 없이 고이자란 사람의 시선은 사물의 표면에만 머물기 쉬다.

인간사의 다양하고 미묘한 내정은 제가끔의 상처를 통해,

더 정확히 말한다면 상처를 다스리면서 형성된 경험세계를 통해 비로소 인지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본다면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 심한 상처는 때로 그것을 치유하고 극복하려는 의지 자체를 압살해버리기도 한다. 실제 세상에는 치유할 수 없는 상터를 안고 그 고통에 짓눌려 한평생을 불행히 살다 떠나는 사람이 많다. 할수 만 있다면 상처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상처는 우리가 임의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상처 그 자체는 대부분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불행이기 때문이다. 다만 상처를 극복하면 우리는 그 우연성과 개별성을 넘어 필연성과 보편성을 갖춘, 한 차원 높은 세계로 지닙할 수 있을 뿐이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68

상처를 받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이 상처, 몸의 상처 한 번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상처는 받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 라는 생각도 든다.

상처라는 주제에 대해 저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상처라는 것이 의미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극복이라는 단어가 함께 존재할 때 일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것에 눌리지 않기 위해 극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산북스의 사무사책방 시리즈를 읽으며

이렇게 우리나라에도 좋은 책들이 많이 있구나라는 생각이들었다.

주로 읽었던 책이 외국작가들 책이었는데,

이제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이야기가 다긴 책을 더 자주 찾아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혹시나 제목을 보고 어려울 것이라고 먼저 생각할 수 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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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가위손 - 공포의 서사, 선망의 서사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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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는 과정에서

그 방향성을 놓치지 않고 이해하기 위해

'머리글' 부분을 여러번 읽었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비교적 오래전에 쓴 것들이 다수이다.

이 글들은 당장 눈앞의 현안들을 근거리에서 직접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 100년 동안 우리가 집단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좀 긴 시간대에서 조망하고

뒷심을 기르는 데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 100년을 경황없이 맞지 않으려는

정신적 숨고르기를 위해 이 책이 다소 쓸모가 있기를 바란다.

<보이지 않는 가위손>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읽는 과정을 다시 생각해보면

특히 '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것 같다.

사회에서의 시장의 기능과 우치는 중요하다.

지금 우리의 요점은 시장기제의 중요성을 부정하자는 것도,

경쟁의 세계시장체제의 대두라는 현실을 부인하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시장논리의 전 영역적 확대라는 문제,

더 정확히 말하면 시장논리를 사회 모든 영역으로 확대하고,

그 확대 위에서 주요 정책의제들을 결정`실행`평가하는 행위의

'반사회성'과 '반인간성'이라는 문제이다.

<보이지 않는 가위손>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역사상 모든 의미있는 집단들이

밀림의 유지보다는 '밀림에서의 공동체'로의 이행을 과제로 삼았는데

20세기 말 세계시장체제에서는 오히려 인간의 삶이

밀림에 가까워졌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20세기말이 이미 지난

현재의 21세기의 모습은 어떠할까?

이전에 언급되었던 그러한 문제가

지금은 개선 되어있는가?

이것 또한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

또한 아래와 같은 내용도 있었다.

또 사회변화만이 아니라 '시장'을 넘어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교육도

인문교육의 과제이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시민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교육은 모든 사회의

명운이 걸린 극히 중요한 교육이며, 대학은 이 교육에 기여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가위손>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이 부분에서는 <공주는 어디에 있는가>에서 언급되었던

대학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같은 작가님의 책이어서 그런지

초점이 되는 소재들에서 혹은 중요성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관련 소재가 연결되는 부분이 종종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가 나왔던 시장에 대한 부분을 넘어

이제는 사회로서의 시선의 확장이 보여졌다.

그런데 무엇인가 읽어가는 과정에서

시장, 경제, 사회, 대학 등등 넓은 주제들이지만

결국 그 가운에 가치관, 가치 등이 사람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든다.

그래서 그 연결고리들을 연결하면 모두 손을 맞주 잡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외에 다양한 내용이 있었지만,

아래의 부분의 내용이 그래도 비교적 이해되어서 그런지 기억에 남는다.

배우, 가수, 기타 연행예술계 직종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높아지고

종사자의 수가 큰 폭으로 늘어난 것 역시 가치와 태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문화적 변동이다.

연행예술의 직업 품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평가는

1980년대까지도 결코 높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중예술인들은 더 이상 '사당패'가 아니다.

그들은 거의 모든 의미에서 사회의 '문화영웅'같은 존재가 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가위손>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이러한 20세기의 변화는 지금은 더 뚜렷하고 더 변화의 흐름이 강하게 확립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문화적 변동이 시작된지 별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직업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이렇게 빠르게 달라지는 것은

문화가 변화되고 빠르게 달라지는 사회의 흐름 때문일 것 같다.

그리고 이전에는 '문화영웅' 같은 존재가 되어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정말 'K-'가 붙으며 문화 영웅이라 불리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세분화 되어 모든 사항을 다 알 수 는 없지만

읽으며 느끼는 것은 20세기에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여전히 그 문제가 존재하고 해결해야할 과제와 같으며

20세기에 변화되기 시작한 흐름은

지금은 더욱 그 흐름이 강해지고 자리 잡음을 한 모습인 것 같다.


문화와 사회의 흐름에 대해 이렇게 깊이있게 생각하고 고찰하는 내용은 처음 읽었다.

'한국인'이라는 표현에 있어서도 그 의미와 요구되는 것들을 살피고

준비해야 하는 것과 도전 등을 이야기하는 과정이

새로운 시선에 신선하면서도

넓고 깊이 있어 시선의 확장과 사고의 전환이 되어주었다.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내기에는 아직 내가 모르고 있는 부분들과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이렇게 사회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고 그 과정의 사고와 질문에 대해

읽으며 생각해보게 되는 것 만으로도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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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가장 긴 실만을 써서 무늬를 짠다
타스님 제흐라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EBS BOOKS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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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가장 긴 실만 써서 무늬를 짠다




이 책에 쏟아진 찬사들에 눈이 먼저 갔었다.

EBS BOOKS 책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추천이나 찬사를 강조한 경우는 많이 보지 못해서

그 내용과 구성이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제가본 다른 EBS BOOKS 책들에 한해서요.)

읽어가는 찬사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리고 저점 기대감이 커져갔다.

그리고 차례를 펼쳤을 때,

차례또한 조금은 신선하다는 생가이 들었다.

망므의 시 한 편으로 시작하여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마지막 원고 라는 제목으로

각 장이 구성되어 있었다.

또한 굉장히 특이하다고 생각되었던

책의 제목인 <자연은 가장 긴 실만을 써서 무늬를 짠다>는

알고보니 양자전기역학의 제규격화이론을 완성해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리처드 파인만의 1964년 코넬 대학교 특강의 맺음말 중 일부라고 한다.

살펴보면 살펴볼 수록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그 내용도 풍성하였다.



먼저 놀라운 것은 분명 잘 알지 못하는 과학적 지식과

그냥 공부하면 어려울 것 같은 내용들을

이렇게 소설로서 풀어냈다는 것이다.

뜬금없이 이론은 퍼부어 말하는 흐름이 아니라

그 내용이 연결과 흐름도 자연스럽다.

한 가지 소재만 가지고 이야기해도 굉장히 어려울 것 같은 내용들이

이렇게 읽혀진 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또한 내가 알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 같아서

더욱 신선하고 흥미롭게 읽게 되었다.

고생물학자나 고고학자와 달리, 물리학자에게는 연구를 시작할 유적이나 화석이 없다.

변하지 않은 채 후대로 전해지는 것이 전혀 없다.

물리학자가 연구하는 모든 것은 변형되고 진화하고 융합한다.

<자연은 가장 긴 실만 써서 무늬를 짠다> 타스님 제흐라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EBS BOOKS

의미를 생성하는 것은 연결이에요. 문학은 단어들을 연결하는 방식이고,

과학은 사실들을 연결하는 방식이지요.

이야기나 이론의 구조는 점들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고요.

<자연은 가장 긴 실만 써서 무늬를 짠다> 타스님 제흐라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EBS BOOKS

"자연은 가장 긴 실만 써서 무늬를 짠다.

따라서 자연의 천은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태피스트리 전체의 짜임새를 드러낸다."

그 구절을 읽는데 당신의 책이 떠올랐어요. 자연이 베틀 앞에 앉아 우리 세계를 짠다는 이미지도 아주 마음에 들지만, 이 구절은 그보다더 깊은 의미가 있어요.

세계는 너무나 풍부하고 다양해서 언뜻 보면 엉성하게 이어 붙인 온갖 것들의 조각보 같아요. 하지만 이따금 한순간 환하게 반짝이는 조명에 천에서 이리저리 구분거리며

가까이 있는 것들과 멀리 있는 것들을 연결하는 한 가닥의 실이 빛나곤 하지요.

이론들이 통일될 때 벌어지는 일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바로 그 순간에 공통의 기본 구조가 빛을 발하는 거예요.

<자연은 가장 긴 실만 써서 무늬를 짠다> 타스님 제흐라 후사인 지음, 이한음 옮김 / EBS BOOKS

생각지 못했던 과학자의 입장과 생각을 읽어가는 과정도 무척 신선했고

단순한 과학이론으로 가득한 책이 아니라

과학자의 입장과 과학에 대한 고민과 그 과정

그리고 문학과 관련된 내용들 다양하고 풍성한 내용을 읽을 수 있었다.

넓이가 넓으면 그 깊이가 함께 깊기 어려운데,

이 책은 넓으면서도 깊이있는 책이었다.

특히 고뇌하고 연구하는 과정속에 어려운 이론으로 남기보다는

인물을 통해 그 과정을 그들의 삶 가운데 담아내어서

모르는 지식이나 학문적인 내용도 어렵다는 생각에 경계하기보다는

'아, 그렇구나'라는 생각으로 이해하며 읽을 수 있었다.

뉴턴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대화하듯 풀어낸다는 것도 신기했다.

보통 이론적으로 알아가는 목적으로 과학사나 과학자에 대한 책을 접하지만,

이렇게 대화와 생각의 과정으로 과학사와 과학자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하였고

특정한 부분이 아니라 모든 각 장의 이야기가 그 특징에 맞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쩌면 이런 이론이 있고 이렇게 이해하십시오 와 같은 내용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함게 생각을 나누고 예시를 들어 대화하는 흐름이기에

더 경계없이 스토리를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신기한 책이다. 분명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이러한 내용을 이렇게 스토리에 담아내어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다는 것이

신선하고 유익한 경험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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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작전 - Golden Time EBS 과학 교양 시리즈 비욘드
이한결 지음 / EBS BOOKS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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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발전과 우리들의 삶의 변화

건강과 안전, 앞으로의 미래와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되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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