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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가 사라진 날
스벤 누르드크비스트 글.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9년 3월
평점 :
머리숱도 거의 없고 눈썹과 뒷 머리는 길고 날카로우며 둥근 콧부리며
늘어진 얼굴살과 주름진 목살을 가진 조금은 고집불통 같아 보이는 할아버지가
초초하고 화난 표정으로 집안을 이 잡듯 뒤지고 있는 그림을 보며 첫 인상에서
’이 양반 성격 한번 고약할거 같네.’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살짝만 건드려도 "왜?" 하고 버럭 화를 낼거 같은 할아버지가 찾고 있는 것은
잠잘 때 빼곤 항상 쓰고 있다는 할아버지의 소중한 모자였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모자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분주하게 찾아보며
집에서 기르는 할아버지의 애완용 개인 번개를 추궁하기도 하며 집에 도둑이
침입해서 모자를 훔쳐 간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모양입니다.모자가 옆집 닭아주머니의 집으로 날아가는 꿈을 꿨다는
번개의 말을 단서로 할아버지는 잠옷 차림으로 모자의 행방을 찾아나서기
시작하는걸 보니 모자는 할아버지에게 매우 소중하고 큰 존재인가 봅니다.
커피 통에서 발견한 작은 병정인형,닭 아주머니가 준 와플 속에서 발견한 시곗줄,
고물더미 속에서 발견한 작은 주머니칼,커피가 든 보온병 안에서 발견한 자석,
고장한 듯한 호루라기를 발견하게 된 할아버지, 찾고 있는 모자는 발견하지 못한
책 왠지 모르게 낯익은 거 같은 작은 것들을 다섯 가지 발견하게 되었지요.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할아버지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얼굴에 살짝 미소를
띄기도 하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연관이 있는 물건이 틀림없지 않을까요?
물건을 파는 토끼의 고장난 오토바이를 수리하여 함께 타고 달리던
할아버지는 기어를 높여 속도를 낸 오토바이에서 튕겨져 나가 하늘을 날아 풀섶에
뚝 떨어져 내렸지요. "부르르릉~" 시끄럽던 오토바이는 멀리 사라져가고 찾아온
고요는 평화롭고 아주 아주 고요했어요. 땅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공기의 소리도
들리는거 같고 여름 햇빛을 받으며 다시는 모자를 보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젠 더 이상 초조하지 않은 모양이에요.
다섯 개의 물건을 바위에 꺼내놓고 그 중에서 장난감 병정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살짝 번져 나옵니다. 병정 인형,시곗줄, 작은 주머니칼,
자석, 호루라기를 보며 아주 오래전 할아버지가 갖고 있던 물건이었음을
기억해 내는군요.
일곱 살 때 친구인 아담의 고슴도치를 갖기 위해 소중한 물건 다섯 가지를 꺼내놓고
바꿀 물건을 고르라고 했던 순간, 그렇게 얻은 사랑하는 고슴도치를 가두어 키우면
죽는다는 엄마의 말에 마당에 풀어놓아야 했던 순간의 과히 좋지 않았던 느낌까지......
자신의 소중한 물건과 바꾼 고슴도치를 사랑하지만 떠나 보내야 하는 일곱 살
아이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싶어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아이가 되어 봤습니다.
일곱 살 인생의 큰 사건이었을 그 기억을 잊고 산 오랜 세월, 참 많은 것을 겪으며
고집세고 모자에 집착하는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할아버지에게도 일곱 살 시절이
있었으며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과 친구,부모님,형제 자매와의 추억과 기억이
소중했음을 띄엄띄엄 떠오르는 그 시절의 모습을 통해 전해주고 있답니다.
일곱 살 아이가 소중한 물건을 주며 갖게 된 고슴도치를 가두워 키우면 죽는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풀어주어야 했을 때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지, 그 순간 많은
고민을 하고 결정하기까지 힘들었을테지만 시간이 흘러 그 기억은 가물가물
기억의 언덕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고 이제 남은 건 늙어버린 몸과 마음뿐이지만....
우연한 기회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고 그때 나에게 소중했던 것들,
할아버지에게 모자는 집착의 대상이자 벗겨진 머리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겠지요.
감추고 싶은 것은 대머리가 아니라 자신의 열등감이 아니었을까요?
마음의 여유없이 살던 할아버지에게 다섯 개의 물건들은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이자, 열등감이란 모자를 벗어버리고 자유롭고 너그럽게
살게 해준 물건이 되었네요.
나에게도 할아버지의 모자 같은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집착하는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고 할아버지가 찾아낸 다섯 가지 물건을 주변에서
찬찬히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네요. 모자가 사라진 날, 할아버지는 마음의 여유와
소중한 추억을 찾았으니 참으로 평온하고 행복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