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유람기 (워터프루프북) 한국 산문선
서유구 외 12인 지음, 이종묵 외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2021년 민음사에서 출간된 이 책은 서유구 외 12인의, 이를테면 기행문을 옮겨놓은 책이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이 책이 water proof book이라는 것.


워터 프루프북에 대한 설명을 그대로 옮겨 적어보자면,


워터프루프북은 본격 생활 방수 책으로, 스쿠버 수첩이나 방수 지도에 쓰이는 '미네랄 페이퍼'로 제작되었습니다.

'미네랄 페이퍼'는 채석장이나 광산에서 버려지는 돌을 재활용한 친환경 방수 종이입니다. 제조 단계에서 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수질 오염이 없고 나무 종이에 비해 온실가스 발생량이 아주 적은 저탄소 제품이라 대기 오염방지에도 기여합니다. 해변가, 수영장, 계곡, 욕조 등 물과 습기에 구애없이 워터프루프북을 마음껏 즐겨 보세요!


그렇다고 한다. 책과 물은 상극이어서 일단 물이나 습기에 젖으면 책은 버린다고 보면 되는데, 워터프루프북을 표방하기에 그런 책이 있나?하고 신기했다.


느낌이 종이 질감보다는 좀더 매끄럽고 차가운 감촉도 느껴지며 낯선 질감이다. 정말로 물가에서 읽을 때 책을 망칠까 걱정할 일은 없을 것 같고 튼튼하게 실로 꿰매서 갈라질 일도 없겠다.


목차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며 눈에 든 건 <북한산 유기 *이옥> 부분이다.

이옥은 성균관 유생 시절부터 정조가 싫어하는 소품문 문체를 고치라며 문체반정의 표적이 되어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불운한 선비인데, 그의 북한산 유람기는 어떠한지 궁금했다. 그는 왕의 명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문체를 끝까지 지키며 다양한 산문을 남겼다.


마음 통한 이들과 북한산 유람을 떠나는 계획부터 보고 들은 이야기를 꼼꼼하게 적어나간다. 함께 여행하며 준비물품, 지켜야 할 규칙, 그곳의 건물들, 사찰, 불상, 승려 등에 대해 꽤 상세하다.


산행에서 술은 없어서도 안되지만 많아서도 안된다.


온화하고 유쾌하며, 순수하고 잘생긴 두세 명의 군자는 모두 아름다운 선비들이다. 이런 분들과 이런 명승지에서 노닐었으니 어떻게 유람이 아름답지 않으랴?


그는 유람하며 본 모든 것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조금 지겨워질만큼 아름답다고만 해서 정말로 이것뿐인가, 하며 지겨워지려고 막 하는데,


아침도 아름답고, 저녁도 아름다우며, 맑은 날도 아름답고, 흐린 날도 아름다웠다. 산도 아름답고, 물도 아름답고, 단풍도 아름답고, 바위도 아름다웠다. 먼 곳을 바라봐도 아름답고, 가까이 다가가 보아도 아름다웠다. 부처도 아름다웠고, 승려도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안주가 없었어도 막걸리가 아름다웠고, 아름다운 여인이 없었어도 나무꾼 노래가 아름다웠다. 요컨대 그윽하면서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상쾌하면서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툭 트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위태로워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담백하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화려하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조용하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쓸쓸하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다. 어디를 가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고, 어울려 있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름다운 것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나는 말한다. "아름답기 때문에 왔다! 이런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현대적인 글이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비라면 운율에 맞춰 짧은 문장으로 시를 짓고 자신의 생각을 압축하여 글을 내놔야지 명문장이라며 인정해주었을 텐데 저렇게 반복반복하며 구구절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하고.


그렇지만 나는 이옥의 글이 좋다.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알겠고, 짧게 압축하여 표현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글이 주는 매력이 또 있지 않은가. 이옥이야말로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난 훌륭한 작가이다. 그의 비범함을 몰라본 정조는 그 시대의 꼰대였을 거다.


이 책에는 이옥의 글 외에도 <금강산 유람길에서 *허균>, <하늘나라에 지은 집 *허초희>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홍길동전의 그 허균, 그리고 그의 누이동생 허난설헌.


현실에 발을 딛고 설 수 없게 힘들었을 난설헌, 허초희는 선계의 이야기를 글로 옮겼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불행한 삶을 보면 그렇게라도 상상하지 않고서는 삶이 너무 힘들었겠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생로병사와는 다른 차원의 삶을 꿈꾸고 싶었겠다. 누군가는 그것을 도피라고 말하더라도.


*책이 위험해질만한 곳에서의 독서에 꼭 필요한 워터프루프북 종종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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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일기
롤랑 바르트 지음, 김진영 옮김 / 이순(웅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이를 잘 떠나보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여백이 너무 많은 거 아냐?하던 생각도 정작 누군가를 애도하는 과정에서 읽다보면 이해가 가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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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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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아저씨
진 웹스터 지음, 변용란 옮김 / 좋은생각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때로 내용을 알고 있어서 읽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읽지 않은 책들이 있습니다.

내게 그중 한 권이 바로 키다리 아저씨.


어느날 갑자기 새로이 읽고 싶은 마음에 책을 구입하려고 했더니 저작권이 소멸된 책이어서 그럴까요, 다양한 출판사에서 낸 책들이 많아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했는데요, 책 디자인을 직접 볼 수 없으니 번역자를 믿고 좋은생각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구매했습니다.

 
편지글 형식임에도 주디의 발랄한 학교생활과 일상을 3인칭이나 전지적 시점 못지않게 눈앞에 그리듯이 상상하며 읽을 수 있었고, 키다리 아저씨의 반응 또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나 지미 맥브라이드와 함께 할까봐 전전긍긍하는 키다리 아저씨의 반응은 읽는 내내 키득거리게 만들었어요.

 
브론테 자매와 마찬가지로 이 책의 저자 진 웹스터도 너무 이른 나이에 사망해서 이후의 좋은 작품들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무척 안타까웠고, 이 책 <키다리 아저씨>는 저자가 <제인 에어>를 읽고 깊은 영향을 받아 제인 에어가 로우드 학교생활 부분을 떼어 고아원 생활로 옮기고 후원인의 도움을 받아 자립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쓴 글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설픈 듯한 그림도 유쾌했고, 글의 중간부분즈음부터 우리 독자들만 키다리 아저씨가 누구인지 눈치채고 읽는 부분들에서는 오히려 읽는 즐거움이 배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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