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통한 이들과 북한산 유람을 떠나는 계획부터 보고 들은 이야기를 꼼꼼하게 적어나간다. 함께 여행하며 준비물품, 지켜야 할 규칙, 그곳의 건물들, 사찰, 불상, 승려 등에 대해 꽤 상세하다.
산행에서 술은 없어서도 안되지만 많아서도 안된다.
온화하고 유쾌하며, 순수하고 잘생긴 두세 명의 군자는 모두 아름다운 선비들이다. 이런 분들과 이런 명승지에서 노닐었으니 어떻게 유람이 아름답지 않으랴?
그는 유람하며 본 모든 것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조금 지겨워질만큼 아름답다고만 해서 정말로 이것뿐인가, 하며 지겨워지려고 막 하는데,
아침도 아름답고, 저녁도 아름다우며, 맑은 날도 아름답고, 흐린 날도 아름다웠다. 산도 아름답고, 물도 아름답고, 단풍도 아름답고, 바위도 아름다웠다. 먼 곳을 바라봐도 아름답고, 가까이 다가가 보아도 아름다웠다. 부처도 아름다웠고, 승려도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안주가 없었어도 막걸리가 아름다웠고, 아름다운 여인이 없었어도 나무꾼 노래가 아름다웠다. 요컨대 그윽하면서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상쾌하면서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툭 트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위태로워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담백하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화려하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조용하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고, 쓸쓸하여 아름다운 것이 있었다. 어디를 가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고, 어울려 있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아름다운 것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나는 말한다. "아름답기 때문에 왔다! 이런 아름다움이 없었다면 여기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현대적인 글이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비라면 운율에 맞춰 짧은 문장으로 시를 짓고 자신의 생각을 압축하여 글을 내놔야지 명문장이라며 인정해주었을 텐데 저렇게 반복반복하며 구구절절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하고.
그렇지만 나는 이옥의 글이 좋다.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알겠고, 짧게 압축하여 표현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글이 주는 매력이 또 있지 않은가. 이옥이야말로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난 훌륭한 작가이다. 그의 비범함을 몰라본 정조는 그 시대의 꼰대였을 거다.
이 책에는 이옥의 글 외에도 <금강산 유람길에서 *허균>, <하늘나라에 지은 집 *허초희>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홍길동전의 그 허균, 그리고 그의 누이동생 허난설헌.
현실에 발을 딛고 설 수 없게 힘들었을 난설헌, 허초희는 선계의 이야기를 글로 옮겼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불행한 삶을 보면 그렇게라도 상상하지 않고서는 삶이 너무 힘들었겠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생로병사와는 다른 차원의 삶을 꿈꾸고 싶었겠다. 누군가는 그것을 도피라고 말하더라도.
*책이 위험해질만한 곳에서의 독서에 꼭 필요한 워터프루프북 종종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