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늙을까 - 전설적인 편집자 다이애너 애실이 전하는 노년의 꿀팁
다이애너 애실 지음, 노상미 옮김 / 뮤진트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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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도이치 출판사 편집자였던 다이애너 애실이 쓴 책이다. 1917년 출생이니까 거의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와 비슷한 연배.

얼마전 봤던 <김제동의 톡투유 : 걱정말아요, 그대>에서 각인되었던 말인데, 나이가 마흔, 오십을 넘어갈수록 자신의 이력서에 들어갈 내용이 아닌 추도사에 들어갈 내용을 고민하며 살라던 말에 공감했었다.

그 나이가 되면 어떨 것이다, 가 아닌 이미 노년의 삶을 살고있는 분들의 지혜를 듣고싶고, 영생의 삶을 사는 존재가 아닌이상 내 삶도 어떻게 정리하는게 좋은지 생각해보고 싶어서 고른 책중 하나.

담백하네.
왜 그런가 했더니 저자 다이애나 애실은 무신론자였다. 관련된 책 내용도 마음에 들고.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과 다른 신을 믿거나 어떤 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쓸어버리고 싶을 때, 자기들의 삶에 의미를 주는 신이 그 명분에 단골손님이 되어준다는 사실을 수시로 잊는 것 같다.

어린시절 책과 관련된 부분 읽다가 뻥 터져서 웃음이 나기도.
그렇지만 그녀의 분석이 맞다고 생각된다.

일례로 나보다 훨씬 젊은 샐리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녀는 자기 아이들이 막 글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 아이들이 보는 책 대부분이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짜증스러워했다. 엄마 말을 안들어 곤란에 처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생쥐이고, 텃밭에 몰래 들어가 망쳐놓는 건 토끼이고, 왕이 되는 건 코끼리라면서. 그녀는 왜 아이들에게 현실적이지 않고 이런 공상같은 애들 책을 읽어줘야하느냐고 물었다. 내 생각에는 아주 어릴때는 '현실'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알아내고 받아들이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동물 주인공에게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회복력과 관련된 부분도 인상적이다.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나치에 의해 가족들이 죽임을 당했던 103세 여성 앨런 러스브리저의 인터뷰 기사 내용이었는데, 타고난 회복력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말한다.

타고난 회복력 부분 읽으면서, 중국배우 호가를 생각했다.
종종 PTSD(외상후 증후군) 환자를 보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같은 사고를 당해도 일정 시기가 되면 두려움을 털고 일어나 일상으로 잘 복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평생에 발목을 잡고 고통스러운 후유증을 앓으며 사는 사람도 있다. 호가는 교통사고로 매니저를 잃고 겨우 살아남았지만 배우로서는 치명적인 얼굴의 상처때문에 성형수술을 10차례 이상 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 흉터는 남아있다. 그래도 외형적으로 보이는 그의 행동은 상당히 유쾌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까지도 그의 분위기로 이끄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혼자있는 그의 내면도 그럴까, 하면서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그가 반려동물로 고양이와 함께 한다니까 조금 마음이 놓이기도. 울 집 구름이는 추운 겨울 내 손난로 역할도 하며 폭 안겨있는데, 녀석이 주는 위안과 가치는 상상 이상, 계산불가!)  

저자는 그토록 담담하게 글을 써나가더니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래도 인생은 제대로 살아볼 만한 것, 이라고 말한다.

죽어서 사라지는 것은 인생의 가치가 아니라 자아가 담긴 낡은 그릇이요 자의식이다. 그것이 무로 사라지는 것이다. 다른 모든 이들의 의식과 더불어.

훌륭한 마무리네.
그럼에도 나는 저자 다이애너 애실의 무신론보다는 그녀가 알았던 샘이 말했던 것들을 믿고싶다.

샘은 영혼의 윤회를 믿고싶어 했다. 윤회설을 믿지 않으면 어떤 사람은 행복한 인생을 살고 어떤 사람은 끔찍한 인생을 사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냐며, 인간은 전생에 쌓아둔대로 이생에서 받는 게 틀림없다고 했다.       

"시작과 끝이란 우리의 정신이 너무 원시적이라 다른 개념을 떠올리지 못해서 생각해낸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내가 뭐라고 대답했던가? 아찔하리만큼 기뻐서 그저 고개를 젖히고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본 기억만 난다. 생전 처음 있는 그대로의 우주를 보는 것만 같았다.

"시작은 이렇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반은 선하고 반은 악하지요. 우리 모두가 그래요. 그리고 선함이 나오는 상황이 있고 악이 나오는 상황이 있지요. 그래서 인간이 종교를 만든 거라 믿어요." 그러니까 그녀 자신은 종교를 지지할 필요성을 전혀 못 느끼지만 종교에 투사된 희망은 존중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확실히 낙관주의 쪽으로 기운 천성을 타고난 보기 드문 행운의 소유자였기에 그녀는 그 모든 일들을 겪었으면서도 여전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아름답습니다. 지극히 아름답지요. 그리고 늙으면 그 사실을 더 잘 알게됩니다. 나이가 들면 생각하고 기억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게 돼요.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지요. 모든 것에." 또 그녀는 말했다. "나는 악에 대해 잘 알지만 오로지 선한 것만 봅니다."

우리 존재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보다는 우리가 이 세상에 거의 보이지는 않아도 실제적인 뭔가를, 유익하든 해롭든 간에 남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사람의 인생은 검토할 가치가 있을만큼 흥미로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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