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별 - 김형경 애도심리 에세이, 개정판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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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재산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겨우 걸음마를 배울 즈음 아들이 죽자 큰 슬픔에 빠진 여자는 아들을 살려낼 약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죽은 그녀의 아들을 살려낼 수는 없었죠. 어느 현명한 사람이 그녀에게 붓다에게 가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붓다에게 달려가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울었습니다.

붓다는 그녀에게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사람이 한 번도 죽은 적 없는 집에 가서 겨자씨 한 줌만 얻어오라고.
여자는 희망에 차서 죽은 아들의 시신을 품에 안고 발품을 팔아 겨자씨를 구하러 다녔습니다. 그녀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도 겨자씨를 주고자 했으나 단 한 번도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어머니, 아버지. 그도 아니면 삼촌이나 누이, 형제를 잃거나 그녀처럼 아들, 딸을 잃은 집들이었습니다.

 

결국 겨자씨를 얻으러 다니는 과정을 통해 그녀는 죽음의 불행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한 헛된 노력을 거두고 숲속에 장사지내고 붓다에게 돌아가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을 찾지 못했음을 말했습니다.

법구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나 또한 죽음이 예외없이 우리를 찾아온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은 늘상 나의 주변에 존재하고 있었고, 늘 일정부분은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96세. 남들은 호상이라고 했지만 할머니의 빈자리는 무척 크고 슬펐습니다. 어른들이 애기처럼 운다고 놀리는 나이 어린 조카의 철없음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습니다. 어제까지 당연하게 곁에 있던 가족이 사라지고 없다는 상실감은 하루아침에 극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잘 털고 지나왔다고 생각했다가도 어느 날 할머니와 함께 했던 일상이나 추억이 떠오르면 웃으며 이야기하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나곤 했어요.

그 즈음에 만난 책이 소설가 김형경의 애도심리 에세이 <좋은 이별>이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 인간을 정신적으로 탄생시키고 꾸준히 성장하게 만드는 힘이 사랑이며, 인간을 병들게 하거나 심리적인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기제는 사랑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심리적인 문제들은 사랑을 잃은 후에 상실의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말합니다. 사람마다 애도의 반응이 다른 것은 살아오는 동안 그 사람의 내면에 이미 이별에 대응하는 저마다의 다른 정서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애도의 방법이 다른 것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문화에서 자랐는지 울음을 나약함과 미숙함의 증거로 보는 문화에서 자랐는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처음엔 할머니 이야기만 나와도 울 것 같아 가족들이 모여도 화제로 올리지 못했지만,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져서 가족과 함께 할머니에 관한 추억을 나누기도 합니다. 처음과 똑같이 매일 슬프면 하루하루가 힘이 들 텐데 시간이 지나며 슬픔은 조금씩 그 무게가 덜해집니다. 

 

얼마전에도 갑작스런 사고로 아들 잃은 동료의 소식에 다들 할말을 잃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 책을 떠올렸어요. 당장은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그의 고통이 덜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잘 먹고 잘 사는 법은 적극적으로 배우거나 알고 싶어 하지만 잘 이별하는 법을 일부러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굳이 가족이 아니더라도 가까운 지인의 슬픔을 애도하는 경우에 조금 덜 당황하면서 슬픔을 나눌 수 있도록,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준비하는 과정도 필요한 듯.

애도 작업은 내면에서 작동하는 낡은 삶의 플롯, 어린 시절에 머물고 있는 내면의 자기를 함께 떠나보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치유와 성장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애도 작업을 잘 이행하면 자기 자신을 잘 알아보게 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게 된다. 자기를 알아볼 수 있으면 타인도 잘 알아보게 되어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 능력이 커진다. 애도 과정이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모든 영역을 두루 체험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지나오면 정서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삶의 다양한 국면에 대한 이해력이 커진다.
그보다 좋은 것은 애도 작업을 통해 우리가 진정으로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상 없이도 살아갈 수 있고, 혼자 힘으로도 잘해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자신감과 자율성이 강화된다. 그리하여 애도 작업이 끝나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한결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다. 생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며 새로운 자기, 새로운 비전, 새로운 생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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