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빛이 내리는 시간
브루나 단타스 로바토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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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왜 항상 이렇게 슬픈 걸까?

이 서사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참 막막하다.

국내에 이번에 소개된 브루나 단타스 로바토는 브라질 나타우출신이다.

브라질 북동쪽에 위치한 나타우는 포르투갈어로 '성탄절'이라는 뜻인데

설립일자가 성탄절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으로 영어를 독파했다는 걸 보면 노력도 노력이지만 언어감각이

뛰어났던 것 같다. 미국으로 건너가 소설창작과 문학 번역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작가와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푸른빛이 내리는 시간>은 브라질을 떠나 미국대학에 진학한 딸과

고향에 홀로 남은 어머니의 이야기로 작가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 

흔히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이들 모녀에겐

수천 킬로미터의 물리적인 거리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책은  '화면이 내뿜는 기묘하고 푸른빛이 이들을 흠뻑 적셨다.'로 끝이 나지만

이 책을 읽는 딸과 어머니가 있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는

불멸의 이야기가 되었다.


낯선 나라, 낯선 언어, 낯선 이들 사이에서 시작된 캠퍼스 생활, '우유갑'으로 통하는

건물 기숙사가 이제부터 주인공의 집이다. 나는 그대로인데 대학생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했던 스무 살의 내가 떠오른다.

브라질 나타우와 미국 버몬트를 지도를 통해 눈으로 확인하니 멀긴 멀다.

6500킬로미터, 비행기로 27시간.

방학이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주인공에게는 당연한 일이 아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한 경험이 있다면 비행기값을 모으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무료 나눔' 상자에 담긴 물건과 텅 빈 방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챙기는 주인공.

방학이 돌아올 때마다 느낀 상실과 가난은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노트북으로 대화하는 딸과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나 엄마에게 없는 모습들이

자꾸 크게 보인다. 후회와 부러움, 질투의 감정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매일 똑같은 질문에 답을 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일을 하고 있을 때

전화가 오면 목소리도 예쁘게 나가질 않는다.

서로를 자매, 쌍둥이, 소울메이트라고 여기면 대화의 결이 나아지려나.

솔직함, 유머, 위로, 소소한 일상들이 서로의 빈자리를 채운다.


엄마가 말했다. "가끔 꿈을 꿔. 네가 뭔가를 두려워한다는 걸 엄마가 알게 되는 그런 꿈 말이야.

그러고 나면 네가 무사하길. 네가 행복해하는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길 간절히

바라면서 잠에서 깨. 우리 딸, 그렇게 살고 있니?" p.41


꿈을 위해 자신의 울타리를 떠나왔지만

홀로 남은 엄마가 사고를 당하거나 아플 때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결정이 이기적인 것은 아닌지 죄책감이 올라온다.

오히려 엄마는 묻는다. 평생, 영원히 죽는 날까지 자신이 딸을 돌봐주기를

바란 적이 없었느냐고. 이 사랑 어쩔 거냐고.


"하." 내가 대꾸했다. "하." p.72


엄마의 이야기가 담긴 두 번째 파트도 좋았다.

딸의 유학은 엄마에게도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선물이 되어 준다.

마음껏 집안을 꾸밀 수도, 버릴 수도 있으며 강아지도 키울 수 있으니 말이다.

씩씩하게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드라마를 보면서 하루를 살아내는 엄마.

그러다 시들어 버린 화분을 보며 끝내 무너지는 모습엔 코가 시큰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어느 순간 집 안의 공허함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처음으로 주어진 자유에 무엇을 배울지 고민하는 모습엔

미소가 나오기도 했다.


어쩌면 너무 잔잔해서 더 슬펐던 이야기, 특히 나처럼 무뚝뚝한 딸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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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앨런 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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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세계를 뒤흔든 "바로 그 하얀 책"의 신화!

70대 음악가의 첫 데뷔작이라는 타이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처음부터 음악을 했던 것이 아니라  변호사, 판사로 활동하다 1996년 전업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테오>는 그가 70대에 연습 삼아 쓴 책으로 공식적으로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주변인들의 권유로 자비출판을 하지 않았다면,  100만 부라는 신화도 없었을 것이다.

 서랍속에 잠자고 있는 소설들 다시 한번 꺼내 보시길...

작가는 현재 <테오>의 속편을 작업 중이라고 한다. 

속편의 주인공은 페더여인. 

알고나면  표지가 달리 보인다. 


한적한 소도시 골든에 나타난 노신사 테오는 카페 챌리스에 걸려 있는 92점의 연필 초상화를

한참 동안 바라본다. 

화가인 애셔가 그린 그림은 조카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었고 그들은 자신의 초상화가

카페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뛰어난 그림이 낮은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는데도 팔리지 않은 이유를 생각하다

테오는 그림을 모두 사서 진짜 얼굴의 주인에게 돌려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거창한 기적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님에도 도시는 마법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

예술과 생계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애셔를 비롯해 아버지와 갈등을 겪고 있던

미넷,  아내와 딸이 교통사고를 당한 경비 켄드릭. 거칠고 무심해 보이는 서점 주인 토니, 

거리에서 노래하는 바질, 첼로 연주자 시몬, 불법 이민자 멘데즈. 푸른색 구두의 주인공

라미샤까지. 


"모든 얼굴은 하나의 이야기다."




증정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카페 근처 분수대 벤치. 헤더 그린 색 플랫 캡을 쓴 잘생긴

노신사가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테오가 바란 대가는 다름 아닌 그림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함께 있어도 핸드폰만

바라보는 요즘 같은 세상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니.

신기한 건 마음의 빗장이 풀리듯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속내까지 모두

털어놓는다는 점이다. 

테오가 그림을 보며 느낀 감상을 들려주는 장면이 매번 나오는데 매번 감동한다.

이런 대화가 고팠나보다. 


우리 사회에 마음을 다해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소설을 읽어가는 내내

이건 동화 같은 일이라고,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나의 이성이 계속 딴지를 걸었다.

처음 테오를 의심했던 기들리 부인처럼.

초상화를 사서 돌려주고 싶다는 편지를 받으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할까.

엄청 고민이 될 것 같긴 하다. 


켄드릭은 또 한 번 묻고 싶었다. 왜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후한 친절을 베푸는 건지,

그런 커다란 호의는 불편했고 심지어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정의할 수 없는 어떤 느낌 때문에 켄드릭은 그 노인에게는 선의 외에 다른 의도는 없을

거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 p.135


이 소설에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을 뽑으라면 노숙자 '엘렌'이었다. 

작가의 이름과 비슷한 이 인물, 가장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을 통틀어 초대에 응하는 자세, 즉 '애티튜드'가 가장 완벽한 인물이다.

빨간 하이힐에 밀빛 드레스, 붉은색과 금색의 꽃무늬 스카프, 짙은 볼 터치,

체리색 립스틱, 새파랗고 넓은 챙의 벨벳모자까지 전날 이 모든 의상을 준비했을 엘렌은 파워 J가 분명하다.

테오도 엘렌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고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관계란 어찌 보면 참 심플하구나 싶었다. 

이것저것 재며 사느라 놓치고 사는 것이 참 많다. 엘렌이 골든에 오게 된 이유가

자기 같은 사람이 살기 괜찮다는  소문을 들어서란다. 

살기 좋은 동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엘렌, 나이가 들수록 저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되는 게 있어요. 이 세상이 알게 되는 

모든 상처는, 어떤 식으로든, 지금껏 살았던 사람들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직접적인 건 아닐지 몰라도,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어쩐지 우리는 세상의

모든 상처를 함께 소유하고 있는 건 아닐까." p.232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의 후반부를 말할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이런 반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그동안 꽁꽁 숨겨두었던 테오의 정체를 보면서 작가가 꿈꾸는

또 다른 직업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같은 언어, 같은 공간에 있다고 모두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 타인의 이야기에 진정 귀를 기울이고

시간을 내어주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소설이었다.

누군가의 눈을 보며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책, <테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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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 0 - 달러구트와 양치기 소년 이야기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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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하면 '안 읽는다'파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궁금해서라도 '읽는다'파가 있다.

나로 말하자면 후자다.^^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는 그냥 넘어가질 못한다.

리뷰어들의 서평에 상관없이 직접 읽고 판단하자는 주의여서 일단 읽고 본다.

그래서 호평, 혹평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과일도 제철과일이 제일 맛있듯이 책도 신간을 읽어야 할 이유들이 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나오자마자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2020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후속작까지 200만 부가 팔렸다. 당연히 우리 집에도 이 책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 주변에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가 모래에서 바늘 찾기처럼

힘들다는 것이다. 그럼 이 인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단순히 마케팅의 힘이라서? 호기심이 불러온 나비효과라서?

그렇다 해도 뭔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작가가 독립출판 강좌를 듣다가 텀블벅을 통해 출판한 첫 책이다. 입소문의 신화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고전에서 볼 법한 문장력을 기대하고 보는 책이 아니라

해리포터 마니아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장과 그 분위기로 읽는 소설이다.

단 '마법사의 돌'에서 볼 수 있는 신나고 몽글몽글한 분위기까지만이지 뒤로 갈수록 심각해지는

분위기는 다루지 않는다.

꿈은 그저 꾸는 것이 아니라 꿈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백화점이 있다는 것!

어떤 꿈을 꿀지는 소비자인 내가 선택하는 거야라는 이 역발상의 아이디어로 승부한 책인 것이다.

악몽도 결국 나의 선택이라니!

이번에 나온 달러구트 꿈 백화점 0은 재개발을 둘러싼 음모와 조합원들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판타지 소설이라고 해서 꿈과 환상적인 면모만 나오지 않는다. 자본가 세력과 그 세력에 묻어가는 세력,

또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힘없는 계층들을 보여준다.

어반 판타지로서 현실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환상의 세계에 대한 묘사도 빠지지 않는다.

엄청 긴 굴뚝을 타고 내려가야만 도달하는 산타클로스의 장례식이나 달러구트를 선 입양, 후 결혼한 래리와 심포니의 이야기는 역지사지의 마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불면증에 시달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잠이 얼마나 소중한지. 지금은 끊었지만 한동안 약의 힘을 빌려야만 잠을 자야 했던 때도 있었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지루한 책도 읽어보고, 양도 세어보고 따뜻한 우유도 먹어보았지만 모두 실패였다. 최고의 보약이 잠이라는 걸 그때 알았다. 최소한 잠들기 전에는 온갖 감정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도 강조한다.

양치기 소년과의 승부장면을 보면서 '소망의 거울'앞에 앉아있는 해리포터가 떠올랐다.

태어났을 때부터 불면증에 시달린 달러구트가 왜 꿈 백화점 사장님이 될 수밖에 없는지 그 필연 또한

유쾌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삶에 잘 그려 넣은 쉼표요. 자고 일어나면 어제는 일단락되고 내일로 넘어갈 힘이 생겨요. 맞아요. 그건 아주 중요한 감각이에요." p.279


이 책은 머리만 대면 꿀잠 자는 분들보다는 불면증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꿈을 매개로 독자들을 다시 찾아와 준 작가에게도 박수를...


잠은 삶의 유예가 아니라, 나를 온전히 수용하고 복원하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의

쉼에 더없이 관대해지시기를 바랍니다. p.298


#달러구트꿈백화점0  #이미예 #팩토리나인

#서평단 #자몽커피 #달러구트 #프리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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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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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니스 존슨은 <기차의 꿈>을 읽고 알게 된 작가이다. 

아내와 딸을 화마로 잃은 벌목꾼 로버트 그레이이어의 일생을 다룬 작품인데 책을 덮고나면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온다.

건조하고 메마른 문체 뒤에 인물이 감당했을 감정들이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삶이 이렇게 허무한가 싶다가도 이 정도면 된건가 싶은게 말이다.

이번에 읽은 <바다 여인의 선물>은 작가가 병상에서 쓴 소설로 유고작이다. 

다섯 편의 소설이 담겼는데 <기차의 꿈>에서 볼 수 없었던 희극적인 요소가 담겨있다. 


 '죽음'은 비극적인 상황보다 희극적인 상황에서 더 뚜렷해지고 선명해진다. 

교훈이나 주제를 담지 않는 작가의 의도는 분명하다.

삶에 정답은 없다는 것! 중요한 건 삶의 태도다.



삶이 고통스럽고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웃음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당신을 안아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스치듯 박혀 있는 문장들이 때때로 발길을 멈추게 하고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인생들을 보면서 다시 나를 반추하게 만든다.  

 작가들은 장난꾸러기같은 면모가 있어서 보물찾기 게임처럼 꽁꽁  숨겨 놓기도,

 이건 굳이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알잖아?라며

퉁치며 넘어가기도 한다. 

나는 이런 사악한 작가들이 너무 좋다.

거미줄보다는 개미지옥에 더 가까운 소설, 매력에 풍덩 빠져 보시길...


"생의 마지막에 남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잘린 손가락 위에 앉아 있는 흰 새의 눈동자가 나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하다. 

뭘 봐? 

표지의 작품명은 배준현 작가의 <지시하는 손>이다. 책에서는 새 한마리만 보이지만 

원작에서는 세마리의 새가 나온다. 세마리 누구도 손가락 방향을

보지 않는다. 사실 새들에게 손가락은 그저 잠시 앉아 쉬어가는 쉼터일 뿐 아무 의미가 없다.

손가락의 방향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내 멋대로 산다고 그른 것도 아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도 모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흐를 때가 더 많으며,

신념과 광기의 경계를 모호하게 그러내기도 한다. 

만약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한다면 열이면 열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모두 다르게 나오지 않을까.


 빌 휘트먼은 일적으로 성공 한 인물로 돌돌싱이다. 부엌에 전화기를 설치한 날 처음으로 울린 벨소리의 주인공은 죽음을 앞둔 전부인이었다. 그녀는 죽기전 앙금을 모두 털어놓고 싶다고 말했고 빌도 동조하는 마음으로 과거 잘못한 일을 주저리주저리 털어놓는다. 그러다 문득 이 여인이 첫번째 부인인지, 두번째 부인인지 헷갈린다. 

<바다 여인의 선물>에는 이런 웃픈 상황들의 연속을 보여준다. 잘 모른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넌 나의 절친'이라는 말을 전해듣기도 하고, 한껏 차려입고 광고대상시상식에 참여한 빌의 배탈씬은 쿤데라의 '농담'이 떠오른다. 길거리 음식으로 장에 탈이 나 화장실에 달려갔는데 옆 칸에서 이상한 제안의 휴지가 들어온다. 냄새는 어쩔거냐고? 응가하고 나와서 나누는 대화는 또 어찌나 멀끔한지! 은밀한 제안을 한 주인공은 바로 알고지내던 옛 동료의 아들이다. 이 짧은 글의 제목은 <카사노바>다. 이런 유머 나만 유쾌한가!

죽음의 순간, 슬픔을 뚫고 웃긴 이야기들이 비죽비죽 떠올랐으면 좋겠다.


<아이다호의 별빛>의 캐스가 자신의 지난 4년을 설명하는 문장과  <기차의 꿈>에서 그레이니어의 삶을 풀어놓은 문장들은 전혀 다른데 또 닮아 있다. 캐스는 직업을 잘못 골랐다. 작가가 되었으면 대성했을 것이다.


무일푼, 방황, 디톡스, 텍사스에서 노숙, 38구경에 갈비뼈 맞음, 유카이아에서 아빠에게 자비를 조름...같은 사람에게 총을 두 번 맞았는데, p.108


그가 사랑한 사람은 한 명이었으며, 재산은 1 에이커, 말 두마리, 수레 한 대였다. 그는 술에 취한 적이 없고, 총기를 구매한 적도 없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p.119


<무덤위의 승리>편은 작가의 경험담 같다. 동료 작가의 생사를 확인하고 싶은 제리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누가 있나 물색한다. 제리는 만난적도 없고 편지를 주고 받은 사이도 아니지만 자신의 책에 서문을 써준 작가에게 바로 메시지를 남긴다.  제리도, 1시간 거리지만 꾸역꾸역 가주는 주인공도 모두 리스펙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새의 생사를 위해 비행기를 타는 <작별하지 않는다> 경하가 떠올랐는데 이런 우정 귀하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작품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쌍둥이었다는 걸 알게 된 작품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사산된 프레슬리의 형의 비밀을 캐는 남자, 마크의 이야기다. 물론 허구겠지만 어쩐지 진짜인듯도 해서 자꾸 엘비스프레슬리를 검색하게 된다. 

내세, 유령, 낙원, 영원의 이야기를 왜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지 그 명쾌한 해답이 실려 있다.


#바다여인의선물 #데니스존슨 #다산책방

#이키다서평단 #자몽커피 #기차의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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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키다 서평단으로 책과 제작비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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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만 있다면
고사카 루카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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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만 있다면>은 2017년 병으로 작고한 고사카 루카의  미발표 유고작이다.

집필 시기나 퇴고 횟수 등 구체적인 사항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훌륭한 작품이라고

판단해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이번에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첫 소설인 <남은 인생 10년>과 이번 작품 모두 불치병과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대학교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자리,  아키하는 3학년 선배인 하루카에게 프러포즈를

받는다. 하루카는 <수크레>라는 잡지의 모델로 활동할 만큼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완벽한 일명 벚꽃 공주. 그런 그녀가 평범한 공대생인 아키하에게 사랑고백도 아닌

결혼하자는 말을 했으니 아키하는 한순간에 모든 남자의 적이 되어 버렸다.

남자뿐만 아니라 하루카를 좋아했던 여자들에게까지도.

이미 다른 여학생을 짝사랑하고 있던 아키하로서는 이보다 더 억울할 수가 없다.


이날 이후 하루카는 아키하를 볼 때마다 결혼하자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림책에서나

볼법한 공주님이 왜 자신을 쫓아다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키하.


이 소설에서는 '가족이 과연 완성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엄마의 재혼으로 여동생 나쓰메가 태어나면서 방황하는 청소년 시절을 보낸 아키하가

대학을 핑계로 집을 나왔다면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모든 사랑을 독차지한 동생 하루카를 지켜보았던 하루카의 언니

후유스키 또한 일찍 집을 나와 독립한다.


같은 부모인데도 배다른 자매처럼 보이는 하루카와 후유스키.

아버지가 다른데도 지독하게 닮은 아키하와 나쓰메.


이들의 이름이 모이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되고 하루카는 자신이

아키하와 결혼하면  계절이 완성되는 것처럼 가족이 완성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루카와 나쓰메가 각자의 언니와 오빠에게 보이는 집착과 소유욕을 보면서 이것도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오빠나 동생이 이성을 사귈 때 보이는 질투나 시기의 감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양육태도, 첫째인지, 막내인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봄과 겨울을 잇는 건 여름과 가을."

되묻는 나와 눈이 마주치마 하루카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네가 좋아." p.118


부모는 모두 똑같이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식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서였을까? 타인을 의심할 줄 모르는 하루카를 보면서

순수함은 결국 모든 것을 이기는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이상해 보이던 하루카의 모든 행동이 점차 이해가 되었고

아빠의 말 한마디에 가족을 버린 언니 후유스키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데려오는 남자마다 여동생에게 관심을 보여 상처를 받았다는 언니 후유스키와

데려오는 남자마다 언니가 편하다며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하루카.

나 같으면 이 정도로 골이 깊게 파여있는 상황이라면 그냥 안 보고 만다. 그러나 하루카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도 언니도.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이 싫어, 싫어하다가 정이 쌓이듯 하루카와 아키하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둘은 미래를 함께 하기로 한다.

그러나...

스포 금지여서 여기까지만 하겠다. 미저리 저리 가라는 나쓰메의 심리도

모두 모여 분석하고 싶어지는 책.

사랑이 뭔지 몰랐다는 말, 너무 이기적이다.

내일 죽겠다는 하루카의 조카 지카게의 성장소설로 읽어도 좋다.


이 소설의 눈물 포인트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는 편지일 것이다. 그 의미는

소설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길... 이 소설을 읽고 딱 하나 후회되는 점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왜 사랑에 그렇게 인색하게 굴었을까였다.


고백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미묘한 감정싸움을 하고 있는 형제자매분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살아 있는데 뭔들 못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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