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북스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방랑'이라는 소재여서 그런지 읽는 내내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가 떠올랐다.

<크눌프>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아마 이 책도 인생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루 종일 황색 물결치는 보리밭을 거닐고,  저녁이 되면 아이들에게 그림자 장난을 보여주고, 농부들에게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동네 아가씨들에게는 노래를 들려주는 이 방랑자가 어찌나 부러웠던지! 

약동하는 청춘 시절, 배낭하나 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이 꿈이었건만.

4년 내내 학교 도서관에서 책만 팠었더랬다.

나는 크눌프의 생기 넘치는 발걸음을 그저 부러워한 채 젊음을 흘려보냈던 것 같다.


삶은 어디로 간 걸까? p.15


낡은 워드프로세서에 손을 올리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름 향기를 맡으며 시상을 떠올리는

작가, 로버트 애플야드.

이 책은 로버트가 자신의 삶에 커다란 변곡점이 되었던 열여섯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전쟁으로 세상이 엉망진창이 되었던 1940년대, 영국 북부의 탄광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로버트는 광부라는

운명을 거부하고  남쪽으로 탐험을 떠난다.

악기하나만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할아버지의 조언과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에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허드렛일을 하며 음식과 잠자리를 해결하며 남쪽으로 내려오던 로버트는 어느 날 고향의 물빛과 다른 찬란하게 반짝거리는 바다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덜시라는 부인을 만난다.


덜시라는 여인이 로버트에게 하는 행동, 말, 아낌없이 주는 관대함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계속 콕콕 찌르르했다. 음식솜씨까지 완벽하면 어쩌라는 것인가?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맨 나의 이상형을 만난 느낌이랄까.

전 세계에 있는 친구들 덕에 가득 차 있는 식품저장실은 그녀의 인성을 보여주는 산실 같았다.

덜시가 지식을 풀어내는 방식도 너무 멋졌다. 시와 문학, 예술, 수학, 양봉기술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배움의 기쁨을 알게 해 주었고 로버트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된다.

특히 모든 문제를 부풀려 심각하게 만드는 성격인 분들 이 책 꼭 읽어보시길.

덜시의 한마디면 그 어떤 일도 사소해지는 마력이 있다.


"삶은 에두르기엔 너무 짧아. 솔직하게 말하고 직접 행동하기. 그게 내가 선호하는

소통 방식이야. 쉽게 상처받는 이들은 오래 알고 지낼 가치가 없지. 그렇지 않니?" p.152

"운전을 못 한다니? 딱히 할 것도 없는데." p.239

"기억해. 어떤 벌도 네가 해치려는 것만큼 너를 해치지 않아." 덜시가 말했다. p.277

"드디어 네가 말대꾸를 하기 시작했다니 참 좋다. 아주 잘하고 있어."p.278


덜시 또한 로버트가 없었다면 죽는 날까지 로미 란다우의 진심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로미 란다우는 덜시의 친구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천재 시인이다.

로버트가 로미의 시와 편지를 읽어주자 6년 동안 봉인돼 있던 슬픔의 둑이 무너지는 장면은

시와 문학이 인간에게 구원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로미 란다우의 시는 로버트와 덜시의 삶에 새로운 장을 여는 선물이 된다.

 

우리의 삶이 어떤 형태로 흘러갈지 알 수 없음을,

시와 문학의 존재 이유를,

타인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함을,

좋은 어른이란 어떤 것임을,

혼자가 아닌 함께 공존하는 세계를 보여주는 소설, <수평선 너머>였다.



#수평선너머 #벤자민마이어스 #다산책방

#자몽커피 #이키다서평단 #광고 

@dasanbooks

@ekida_library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
스즈키 도시타카 지음, 김소연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학책을 읽으면서 도파민이 터지는 부분은 과학자들의 소소한 부분까지 알게 될 때인 것 같다.

예를 들면 다윈이 따개비에 8년이란 세월을 투자했다는 것, 말년에는 지렁이 똥에 꽂혔다는 것.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최재천 교수님이 까치의 소리를 30년 가까이 연구했다는 것!

오호~


"언어를 사용한 것은 인간뿐"이라는 사고에 갇힌 언어학의 대가 노엄 촘스키.

언어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인간만의 전유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 편협한 사고가 오히려

독이 된 것만은 사실이다. 이 책에서 '우물 안 개구리'라고 아예 박제를 해 버렸으니 말이다.

<코스모스>, <총, 균, 쇠>를 쓴 칼 세이건과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자신의 전공에만 몰두했다면 과연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을까? 어쩌면 한 끗 차이는 더 단순할지도 모르겠다.

호. 기. 심.


생물학자인 스즈키 도시타카는 박새실험을 통해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한다'는

오래된 상식을 통쾌하게 깨부순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믿어온 '동물에게는 언어가 없다'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은 관찰과 아이디어에서 생겨났다.


때는 대학교 3학년 겨울, 일본에서 탐조지로 유명한 가루이자와.

새 관찰자가 뿌려놓은 해바라기 씨를 발견한 북방쇠박새가 '지-지-지' 소리를 낸다. 그러자 놀랍게도

북방쇠박새, 박새, 곤줄박이, 동고비들이 와서 같이 쪼아 먹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있다 맹금류인 새매가 다가오자 박새가  '삐삐삐' 울고 모두 수풀로  도망친다.


'새들은 먹이의 위치도, 천적의 습격도 울음소리로 서로에게 알리는지도 몰라!' p.36


여기서 드는 의문점, 겨울철이라 먹이가 귀한 계절에 왜 혼자 먹지 않고 동료새들을 부른 것일까?

같이 먹으면 맛있으니까? 이타적이어서?

그 이유는 맹금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혼자 먹으면 수시로 하늘을 쳐다봐야 하지만

함께 있으면 경계시간이 줄어들어 그만큼 먹이를 먹을 시간이 확보된다. 언뜻 생각하면 이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에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과 이렇게 일치하다니!



새들의 '모여라' 소리는 다음과 같다.

북방쇠박새 '지-지'

박새 '치지지지'

곤줄박이 '니-니'

박새의 울음소리가 특별부록(QR코드)에 실려있는데 그중에서도 뱀을 나타내는

'츠르르르'가 제일 소름이 돋는다.


박새는 주로 수동이라 불리는, 나무에 생긴 동굴에 둥지를 짓고 번식한다. 그런데 적당한 크기의 수동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쟁탈전이 일어난다.

박새에게 새집을 지어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메뚜기 잡기 아르바이트라니!

3개월간 메뚜기 채집으로 돈을 모아 마흔 개의 인공새집을 설치한다.

알을 낳고 부화하기까지 포란을 하고 부화한 새끼들을 위해 먹이를 먹이는 일. 부모 박새도,

이들을 관찰하는 관찰자의 삶도 참 고되다. 20년째 이일을 하고 있다니 존경하지 않을 수가. 

데이터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3개월간 수집한 데이터를 폐기한 일화가 실려 있는데

역시 과학자의 제일의 덕목은 끈기인 것 같다.


박새가 말을 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천적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위험해! 도망쳐'가 상대에 따라 다르다니!

큰 부리 까마귀가 오면 '삐-쯔삐'라는 경계음을 낸다. 그러면 새끼들은 일제히 몸을 웅크려

까마귀의 공격을 피한다.

그런데 뱀이 나타나자 '츠르르르'하고 우는 것이다. 새가 뱀의 소리를 내다니!

더욱 놀라운 것은 아직 둥지를 떠날 때가 아니어도 이 소리가 나면 새끼새들이 둥지밖으로 날아오른다는 점이다. '츠르르르'가 뱀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4년간 여든네 마리의 박새를 가지고 한 데이터 실험은

<PNAS> 학술지에 당당히 실린다.


여기서 또다시 의문점! 단어를 구분한다고 말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200개 이상의 음성 패턴을 가지고 있고 문장까지 만든다면 이제는 박새가 말을 한다고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처럼 큰 동물이 나타날 때 박새는 '삐-츠삐 치지지지'라는 경계음을 낸다.

즉 '경계해! 모여라'라는 뜻이다.

스즈키 박사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반대의 조합을 만들어 새들에게 들려주었다.

'치지지지 삐-츠삐'

이 소리를 들은 박새는 그 어떤 리액션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론은 박새는 어순을 인식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더 재미있는 실험 한 가지 더!

한글과 영어의 조합인 '오늘 좀 러블리하다'란 말처럼 전혀 다른 두 새의 언어를 조합해 본 것이다.


박새의 삐-쯔삐(경계해)와 북방쇠박새의 지-지(모여라)를 합성해서 들려주면 어떤 반응을 할까?

혹시 혼동하는 분들이 있을까 봐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겠다. "박새가 인간과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의미를 포함시키거나 조합해 문장을 만드는 힘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우물 안 개구리'란 말로 인간의 좁은 시야에 대해 일침을 하는데 나는 다윈의 말로 결론을 짓겠다.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당장 숲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책, <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였다.


 


#나에게는새의말이들린다

#오팬하우스 #모모

#이키다서평단 #자몽커피 

#도서지원 #박새 #새의언어 #동물언어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화바이룽 지음, 김소희 옮김 / 서사원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인자가 된 남편과 그의 자살, 마침내 마주한 기괴한 진실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려는 한 여자의 추적극



다른 여자가 생긴 거냐는 정팡의 물음에 밍런은 밑도 끝도 없이 코끼리 이야기를 꺼낸다.

결혼한 이래 코끼리가 존재했고, 코끼리를 집 삼아 살며 아이 둘을 낳았다고.

이제 큰아이가 일곱 살, 둘째가 여섯 살이 되었으니 더 이상 아빠로도, 남편으로도 살 수없다고 말이다.

반복되는 코끼리 꿈 때문에 이혼하자는 남자 밍런.

불라 불라 불라 순화시켜서 욕 한마디 해주고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누구한테나 말 못 할 사정은

있는 거니까.


"당신에 대한 감정이 죽었어. 어쩌면⸳⸳⸳ 당신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감정이 죽은 걸지도 몰라." p.28


결국 둘은 주에 3일씩 각자 아이들을 케어하고 일요일은 함께라는 조항을 넣어 이혼을 한다.

이 책의 매력은 결혼이란  환상을 이렇게까지 깨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게 되는 책이다.

정팡의 결혼도 사랑이 전부가 아니었다. 여자 나이 마흔, 사회와 단절된 지 오래 그녀에게 결혼은

경제적인 안정을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갖기 위해 시험관 시술을 했던 것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지 않았냐는 밍런의 말에 정팡은 부인하지 못한다.

정팡은 아는 언니가 하는 흥신소를 통해 남편 뒷조사를 하게 되고 

결과는 밍런이 동업자인 안커와 같이 카페에 있는 사진 4장이 전부다.


2분의 1의 삶을 살게 된 정팡은 갈 곳이 없다. 3일의 자유를 얻었지만 딱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

친정은 더더욱 가기가 싫다. 그동안 남편의 월급에서 친정 아버지 병원비로 대주고 있었기에 자신의

상황을 더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나 홀로 캠핑을 보내던 정팡에게 경찰에서 전화가 온다. 남편이 살인을 했고 자수를 했노라고.


같이 살 때는 몰랐던 남편의 모습을 이혼 후 더 잘 알게 된다는 설정이 자못 씁쓸하기도 했는데

어쩌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밍런에게 친형 밍룬이 어떤 의미였는지, 베이피 파우더는 왜 샀으며, 몸에 문신은 언제 생긴

것인지 둘의 결혼생활이 계속 이어졌다면 정팡은 끝내 몰랐을 거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이 정당방위가 아니라 계획살인이라는 것이 밝혀져오자 밍런은 자살은 선택한다.

그리고 그 자살이 밍런이 결코 보이고 싶지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 때문이라는 것을 정팡이 알게 된다.


부부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아야 할까?

허용할 수 있는 범위의 비밀이 어디까지인지 쉽게 답을 내리기가 힘이 들었다.

나는 정팡이 남편에 대한 대단한 사랑이 남아서 '그 일'을 처리해줬다고 보지는 않는다.

소설 곳곳에 나오듯이 정팡도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두 아들을 잃은 시댁 어른들, 또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제목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밍런의 '판도라의 상자'가 무엇인지는 소설에서 확인하시길...

언제나 비밀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걸. 코끼리 전체는 무리고 다리 한 짝 정도는 목욕시켜 줄 수

있을 듯하다.

일곱 살, 여섯 살 남매인 샤오위와 막내의 대화도 어찌나 킥을 날리는지,

사춘기 아이들이 할 법한 대사를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서 이건 좀 검증이

필요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밍런의 말은 진심이었다. 나와 샤오위, 그리고 막내는 그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 우린 그저 형이 죽고 난 뒤, 밍런이 어쩔 수 없이 떠맡았던 가문 잇기의

임무였을 뿐. p.239




#코끼리를목욕시키는여자 #화바이롱 #서사원

#서평단 #자몽커피 #대만소설 #코끼리 #책서평

#추리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
나이토 이즈미 지음, 위지영 옮김 / 마음의숲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택 호스피스 의사가 전하는 가장 나다운 마침표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들판을 달리는 왕진 의사 나이토 이즈미 선생.

고희영 감독이 그녀의 뒤를 7년 동안 쫓으며 만든 감동적인 다큐멘터리 ‘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한 장면이 표지에 실려있다.

유튜브에서 찾아보았으나 예고편만 볼 수 있어서 아쉽다.

도심에서는 꿈꿀 수 없는 일이 야마나시현에서는 벌어지는데 70%가 재택 임종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나이토 이즈미 선생은 오전에는 내과의사로 오후에는 환자들의 집으로 진료를 나간다.

여러 가지 형태의 호스피스가 있지만 그녀는 집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 하는 환자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호스피스는 대개 말기 암 환자가 평온하게 삶을 마무리하도록 돕는 의료행위이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살던 집에서 눈을 감았다. 가족모두가 임종을 지켜보았고

집에서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고 핵가족화되면서 죽음의 장소는 이제 병원으로 옮겨갔고 죽어가는 사람 곁을 지키는 일도 어려워졌다.

중증환자를 집에서 돌보는 일은 거의 보기 힘든 일이다. 치료의 가능성이 희박해도 항암치료를 계속하고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

앞으로 일본정부는 임종을 지역사회에 맡기겠다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히려

병원에서 죽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상황이라고.


사람이 죽기 전에 바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꼭 그렇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집에서 아내와 함께 지내고 싶습니다.

밭을 일구며 무를 키우자고 예전부터 계속 이야기해 왔거든요." p.27

"가족의 빨래를 개고 싶어요." p.45

세타 씨가 원했던 것은 마작, 경마, 재즈, 그리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p.57

"메밀국수와 맛있는 튀김." p.215


죽음을 예감하는 순간 과연 무엇을 우선시할지 사실 잘 모르겠지만 나 또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고 싶을 것 같다.

1940년대 이전 널빤지로 지은 집에서 홀로 살아가는 게이코 할머니 이야기는

나 홀로 사는 독거노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이야기였다.

자녀 없이 남편과 둘이 살았던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 후 평생을 혼자서 산 분이다.

곁에서 대신해 줄 사람이 없으니 그 누구보다 독립적으로 살아낼 수 있었던 걸까.

90의 나이에 시설에 입소하기 전까지 직접 요리를 하고, 화장실도 혼자 다녔다.

단순히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넘어 마지막 장을 공유하는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조그만 마을 공동체여서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사는 할머니의 임종도 장례도 참석하지 못했다.

시설 담당자가 주제넘은 일이라고 생각해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이다.


가족이든 지인이든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준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의사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비록 임종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위로가 되었다고.

배우자나 자녀가 아니더라고 마지막을 함께할 마음의 벗을 준비하는 것이 어쩌면

남은 삶의 숙제가 아닐까 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이에게 가족만큼 크 힘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을 떠맡아야 하는

가족에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여기에 실린 사례들은 그나마 가족들이

동참을 해주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건강할 때 휘파람 불며 해야 한다는 말'이 크게 와닿았지만

사실 실천하기에 너무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위에 얘기한 게이코할머니의 마인드라면 서로가 좋지 않을까.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면서 완전히 기대는 것은 조심해야 하는 사이라니, 가족은 참 어렵다.


모든 불안이 사라지고 모든 것을 신뢰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상태인 제로 지점이 바로 죽음의

순간이라고 하니 막연하게 생각했던 죽음의 공포가 조금은 덜해진 것도 있다.

죽음의 순간 맛보는 것이 신뢰, 행복, 만족이라는 말에 공감이 되시는지...


생의 마지막 날, 어디에 있고 싶은지, 그 공간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 <나는 나답게 죽기로

했습니다>였다.


#나는나답게죽기로했습니다  #나이토이즈미 

#마음의숲 #서평단 #자몽커피

#책리뷰 #호스피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미안 - 에밀 싱클레어의 젊은 시절 이야기 비룡소 클래식 62
헤르만 헤세 지음, 정여울 옮김 / 비룡소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멸의 고전인 <데미안>을 읽고 문학에 눈을 떴다는 지인들이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루팡과 홈즈에 빠져 살던 나에게 'h'가 던진 한마디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 헤르만 헤세 알아?"


당연히 몰랐다. 12살에 만난 헤세의 글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싱클레어의 방황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명료했다. 왜냐면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였으니까.

이 작품 속에 담긴 수많은 상징을 몰랐다고 해도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작가와 책을 소개해준 'h'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 칼브에서 목사 아버지와 선교사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독일에서 수도원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은 출세가 보장되는 길이었고, 최고의 목사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1891년 헤세는 마울브론 신학교에 진학해 그리스어, 라틴어, 기하학 등을 배웠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헤세는 수도원의 심한 규율과 통제를 이겨내지 못하고 7개월 만에 수도원을 나온다. 14세에 담배를 피우고, 16세에 가출하고, 19세에 자살을 기도했던 헤세는 독서와 니체에 탐독하며 험난한 십 대를 보낸다.     

헤세의 어머니는 헤세가 많이 버거웠다고 한다. 존재의 근원에 대한 갈등과 고민, 인간의 이중성과 그것의 합일에 대해 늘 고뇌했던 헤세를 부모는 이해하지 못했다. 1914년 전쟁에 반대하는 글을 써 국가와 척을 진 헤세는 조국을 떠나야했고 아들, 아버지, 아내가 큰 병에 걸리면서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구스타프 융의 제자인 랑박사를 만나 정신분석 치료를 받기 시작한 때가 바로 1916년이다.



 

1919년 헤세는 싱클레어란 필명으로 <데미안>을 출간하는데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분석심리학, 민속지학, 진화론 등의 학문적 발전이 있지 않았다면 과연 이 책이 나올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융은 사람, 민족, 집단 간에는 원형무의식이란 게 형성된다고 보았다. 특히 신화나 종교, 민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카인, 에바, 아프락사스 등을 기존의 종교적 해석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나 식민지를 점령하면서 알게 된 풍부한 인류학적 자료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봐도 카인에 대한 해석은 너무 멋지다.


섬세한 심리의 소유자로서 일찍이 젊은 시절부터 정신병적 고통을 경험한 그는 그런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시, 음악, 그림 등을 통해 자연과 사회에 화합하는 삶의 길을 모색해 왔다. 작품 전면에 흐르는 자신에게 이르는 길, 구도의 길이 주제인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기인한다. <데미안>, <싯다르타>가 여전히 사랑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내부에 공존하고 있는 양면성을 발견하고, 그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통일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야 말로 헤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 중에 하나다. 낮과 밤, 남자와 여자, 선과 악, 이성과 감성, 신성과 마성 등 자연과 인간내면세계의 양면성을 관찰하고 이들의 조화를 꿈꾸었다.    

 

 무의식의 세계에 있는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에서 '데미안'은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어두운 세계를 보여준 프란츠 크로머, 술에 절어 사는 알폰스 베크, 꿈과 현실에서 방황하는 피스토리우스, 자살을 시도한 크나우어는 어찌 보면 헤세의 자전적 모습이기도 하다.

데미안을 읽을 때마다 그때그때 들어오는 인물이 매번 달랐는데 이번에는 크로머였다.

소설의 맨 마지막에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프란츠 크로머'를 기억하냐고 묻는다.

싱클레어에게 크로머는 평생 꺼내기 싫은 자신의 치부이자 부끄러움 그 자체다. 자신을 도와준

데미안을 1년간 모른척 할 정도였으니까.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기 위한 첫 단계는 결국 '프란츠 크로머'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소설을 관통하는 '온전한 자기 자신에게 도달하는 길'은 여정이지 완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일이 바로 자신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데 이제는 공감한다.


그 모습은 이제 그와 완전히 닮았다. 마침내 나의 친구이자 안내자인 그와 완전히

똑같은 내 모습이 보인다. p.267



#데미안 #헤르만헤세 #비룡소 #정여울 #서평단

#자몽커피 #책서평 #책리뷰 #에밀싱클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