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호성
구소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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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호성>은 제20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구소현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여덟 개의 작품은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년에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가 있었다면 올해는 구소현 작가의

<환호성> 이 아닐까 싶다.

진짜와 가짜, 선과 악의 미묘한 경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좋은 질문이 담긴 소설을 보면 바로 독서모임을 하고 싶어 지는데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사이비종교나 사기에 당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정말 바보가 아니고서야 그걸 믿는다고?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말을 못 할 것 같다.


대부분의 소설들엔 소외당하거나 폭력을 당한 약자들이 나오고 그들을 도와주는

또 다른 약자들이 등장한다.

절박한 심정을 누구보다 아는 이들이기에 그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기도원에서 함께 자란 승현과 재원은 사이비종교의 교주가 따라 부모가 죽자 고아가 된다.

시간이 흘러 둘 다 성인이 되었으나 승현도 재원도 둘 다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의심이 들 때마다 말이야. 속고 있다는 기분을...... 믿고 있다는  기분으로

바꿔서 생각하면 가능해. 나는 지금 속고 있는 게 아니야. 믿고 있는 거야. 이렇게. 지금 이 순간을 믿을 건지

속았다고 생각할 건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 끝까지, 정말 끝까지 가보면 돼." p.51


회사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던 승현은 누군가 자신을 망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재원을 만나는데 재원은 그동안 자신들이 몸담았던 사이비종교를 다시 부활시켜 놓았던 것. 사람들이 재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수록 재원은 마음이 무거워지고 끝내 자살을 선택한다.  


보육원에서 함께 자란 조와 도르마무의 이야기인 <완치>를 보면 승현과 재원의 또 다른 버전을 보는 듯하다. 암에 걸린 도르마무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던 조는 신약 사기에 걸리고 그 마음을 이용해 다시 사기를 친다. 암환자가족을 상대로 가짜 약을 판매하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바로 자신이 그 심정이었기 때문에.

<화이트데이>의 재원과 <완치>의 조는 믿을 수 있는 것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동시에 그들을 속인 자들이다. 그리고 그 벌을 도르마무가 받는다.


<환호성>의 세경은 회사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승현과 꼭 닮아 있다. 생일자 명단에서도 문서에서도

사람들은 세경을 상습적으로 누락시킨다. 일곱 개의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왕따를 시키고 누구는 그 사실 때문에 울적하다.

스스로 생일을 자축하던 세경은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동창 콘을 따라 부산으로 향한다.

6년 전 고졸에 무직자였던 세경은 콘을 못 본 척했는데 오늘 생일이라는 말에 콘은 선물까지 사서 안긴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 챕터일 수도 있는 시기, 테러를 앞둔 콘은 세경에게 파도소리를 녹음해 들려준다.


이 파도는 너를 위해 박수 치고 있는거야. 너에게 보내는 환호성이야. 힘들 때 들으면 힘이 좀 될걸.:) p.151


세경과 콘의 이야기는 아버지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다 살인을 저지른 복현과 그녀를 잠시 가르쳤던 입시학원 선생 은호이야기로 연결된다. 복현은 살인을 저지르고 바로 은호를 찾아오는데 은호는 뿌리치지 못하고

숨겨준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관계들은 툭하고 건드리면 바로 끊어지는 관계다. 혈연은 더이상 방패박도

안정망도 아니다.

은호가 자수를 앞둔 복현에게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구해주는 장면에서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순간 바로 헌것이 되어버리는 광고계에서 지한이 선택한 18개월의 최면은

너무 가슴이 아파왔다. 죽은것도 아니고 산것도 아닌 상태로 삶을 견디는 지한은

존재하고 있지만 살아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매번 실감하는 유령 공선을 보는 듯 했다. 

10년차 유령인 공선의 가장 큰 일과는 독서메이트를 찾는 것이다. 마침내 공선이 찾아낸 주인공은

학교 도서관에서 찾은 효주. 효주는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시간이 오래 걸려도 틈틈이 끝까지 다 읽는

모범생과다. 

공선을 생각하면 꾸준히 오래오래 읽어야 할 것 같다.


그 짧은 찰나의 선행이 마음속에 콕콕 박혀 폭죽을 터트리고 싶은 소설,

<환호성>이었다.

#환호성 #구소현 #소설집 #문학과지성사

#자몽커피 #서평단 #진짜가짜 #선과악 #사이비

#지구종말 #가정폭력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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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문명 - 숲이 물러난 자리에 새겨진 5,000년의 기록
존 펄린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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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무 같은 책이 도착했다. 당연하다. 책은 나무로 만들어지니까.

책을 드는 순간 일단 손목이 시큰하니 아파온다.

페이지를 확인하니 640여 쪽, 벽돌책의 범주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나의 기준으로 보자면 벽돌책이다.

올해 <총, 균, 쇠>로 독서모임을 해서인지 생태학계의  <총, 균, 쇠>라는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숲과 문명의 상관관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사담이지만 벽돌책을 읽기 전 일단 뇌를 속이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

이 책은 얇은 책이라고.^^

집에 있는 더 두꺼운 책들을 찾아 그 사이에 쏙~ 끼워 넣으면 그나마 귀엽고 앙증맞은

사이즈로 변한다.

받자마자 바로 200페이지를 읽었으니 사실 위에 적은 나의 루틴은 불필요한 의례였다.

숲과 나무가 들어간 세상의 모든 자료가 담겨 있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도 연표는 기본이고 전 세계 숲 사진 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충분하다.

주석이나 부록으로 몇 십 페이지를 차지하는 책들이 많은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숲과 나무의 비극을 나무에 새긴 종이책을 읽고 있자니

뭔가 죄를 짓는듯한 복잡한 심경이 들기도 했다.


<숲과 문명>은 파타고니아 설립자인 이본 쉬나드가 30년 넘게 대중에게 추천한

유일한 역사책이라고 한다.

서치를 해보니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살았었고 북한산 인수봉에는 쉬나드의 이름이 들어간 코스가 있다고 한다.

암벽등반 덕후였던 그가 직접 만든 브랜드가 바로 파타고니아.

등산하고는 담을 쌓고 있어서 나에게는 생소한 브랜드였는데 미국의 대표적인

친환경 기업이라고 한다.


숲이 없었다면 문명도 없었을 거라는 말이 이 책에서 말하는 주제이자 경고이다.

숲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어떤 사회의 쇠퇴뿐이다.

숲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인간은 그들의 최대 적이다.


인류와 숲의 거듭된 전쟁이 21세기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경고!!


목차는 크게 구세계와 신세계로 나누어 각각의 문명이 어떻게 숲으로 흥하고 망했는지를 보여준다.

온실가스 배출과 지구 온도 상승의 원인을 그동안 산업혁명 이후로 생각했던 나에게

문명초기부터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는 사실 충격이었다.

인류의 시작이 곧 숲의 파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면 인간이 저지른 죄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많이 축적된 것이 아닌가 싶다. 왜냐면 앞으로도 숲의 파괴는 멈추지 않을 것이기에.


길가메시의 전쟁 구호인 "나는 저 거대한 숲을 베어버릴 것이다"는 온 사회의 주문이 되었으며,

숲은 그 구호 아래 하나씩 하나씩 무자비하게 벌목당했다. p.62


금성은 지구의 쌍둥이로 불릴 만큼 크기도 거의 같고 태양과의 거리도 비슷하다.

우주탐사선이 금성의 대기를 통과하기 전까지 저명한 천문학자들은 금성도 지구처럼

구름에서 비가 내려 식물들에게 영양을 공급할 것이라고 보았다.

나무가 없는 금성은 열대의 낙원이 아닌 온실효과의 끝판왕인 거대한 지옥임이 밝혀졌다.

표면 온도 섭씨 480도.

놀라운 것은 지구도 금성만큼 이산화탄소가 많다는 사실이다.

아르케옵테리스가 출현하지 않았다면 지구도 금성과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다.

세계 최초의 나무로 알려진 아르케옵테리스 덕에 식물과 무척추동물, 척추동물까지 있는 살기 좋은 기후가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선택지만 남겨져 있는 셈이다.

숲이 우거진 지구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숲이 황폐해진 금성을 만들 것인지.

이대로 숲을 망가뜨린다면 우리는 2억 5000만 년 전과 동일한 세계를 맞닥뜨릴 수도 있다.


문명의 진보는 오로지 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분별한 벌목으로 목재가 고갈되면 문명의 선택지는 세 가지였다.

다른 곳으로 떠나거나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거나 빼앗거나.

나무를 귀하게 여기지 않은 모든 문명은 이러한 전철을 밟아 사라졌다.

기원전 600년 전에 나온 우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전쟁을 일으켜 인간을 수많은 죽음으로

비우는 이유가 지구를 치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인간은 이미 이때부터 알고 있었다.

공화정 시대에 숲이 사라졌다는 로마는 북아프리카로 눈을 돌리고 나무가 부족한 영국은

북미로 눈을 돌린다.

어떤 나무는 한 그루의 품종도 남지 않은 채 모두 잔인하게 베어졌다.

역사학자인 윌리엄 리틀은 '보스턴 피타피'가 '소나무 폭동'보다 유명한 이유는

기록의 유무일 뿐이라고 말한다.


아프리카도 숲이 풍성했을 때는 철강업이 발달했다.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토고의 바사르 지역에서 흥했던

제철산업은 나무가 소실되면서 막을 내렸는데 이런 루틴은 모든 나라에서 동일하게 반복된다.

나무가 부족할 때마다 기술혁신이 이루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나무의존도가 얼마나

높은지 말해주는 반증이다.  


이산화탄소 저장고 역할을 하려면 최소 50년에서 100년 정도의  오래 자란 나무들이어야

하는데 이런 나무들이 가장 먼저 베어진다는 점이 문제다.

이제 지구는 더 이상 4억 년 동안 온화한 기후를 유지하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

40도만 돼도 뇌가 익을 같은 날씨를 만든 결국 인간이었다.

나는 금성에서 살고 싶지 않다.


"우리가 숲을 불모지로 만들어버렸네. 우리의 신에게 뭐라고 대답하지?"p.637






#숲과문명 #존펄린 #더퀘스트 #자몽커피

#서평단 #파타고니아 #벽돌책 

#오퀘스트라4기 #숲 #문명 #책추천 #총균쇠

#트로이전쟁 #지구온난화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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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바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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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작가의 작품이 맘에 들면 모든 책을 읽는 편이다. 그래서 첫 책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은 작가들마다 기복이 있다는 것을 너그러이 이해하게 되었지만

한 작품으로 작가를 평가했던 때도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첫 책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었다.

당연히 <용의자 X의 헌신>으로 이어졌고 알음알음 읽은 책이 제법 된다.


모두를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느낀 이 작가의 한줄평은 참 평이하다는 것이다.

이 평이하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냐면 실망하거나 별로였던 책이 없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품수가 말해주는 성실성에 매번 감탄을 했던 것 같다.

지난달에 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작가의 나이를 알게 되었는데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 같아 마음이 조금 그랬다.


이번에 읽은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 또한 감탄이 나온 책이었다.

정통 추리소설의 정수를 보여주는 건 기본이고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선물이 무엇일지 기대하면서 읽었다.

이번 책에서는 범인이 누구인가 보다 사건을 얽어놓은 방식에

무릎을 치게 만든다.


1년 전 겨울 나오코의 오빠 고이치가 하쿠바에 있는 펜션에서 자살한 사건이 일어난다.

오빠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나오코는 친구 마코토와 함께 펜션으로 향한다.

나오코는 오빠가 죽기 직전 보낸 엽서의 내용을 봐서라도 절대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오코와 마코토는 오빠가 죽은 방을 빌리고 펜션에 오는 투숙객들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오빠가 죽은 펜션은 여덟 개의 방마다 영국 동요 <마더구스>의 노랫말이 적혀

있는 곳으로 해마다 같은 시기에 같은 투숙객들이 머무는 조금은 특이한 곳이다.

작년에 오빠와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 모이는 이 시기를 나오코는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오코가 펜션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은 오빠가 죽기 1년 전에도 사망사건이 있었다는 점.

숙소 뒤쪽 계곡에 낡은 돌다리가 있는데 거기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이었다. 추락사다 보니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었다는 점.

그리고 올해도 추락사한 사망사건이 일어나면서 나오코는 오빠의 사망 사건이 이 두 사건과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여기에 모두 모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니라,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p.62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의 가장 큰 키는 바로 <마더구스> 노랫말이다.

런던 브리지와 올드 머더구스, 잭 앤 질, 험프티 덤프티, 거위와 키다리 아저씨 등

특별한 뜻도 없는 노랫말을 가지고 스토리를 짜낸 작가가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른 자신에게 얼마나 신이 났을까?


나오코의 오빠 고이치는 여덟 개의 방에 적혀있는

 <머더구스> 노랫말을 파헤치다 죽음을 당했던 것.

펜션 주인과 요리사, 펜션의 두 종업원, 여덟 개 방의 투숙객, 거기에 경찰까지.


애초에 이 펜션자체가 커다라 비밀을 숨겨놓은 사건 현장이었던 것!


"아시겠습니까? 당신이나 에마미 씨는 한 푼도 얻지 못할 범죄를 되풀이한 겁니다.

목숨을 걸고 실행에 옮겼겠지만 그 대가는 그저 색깔을 입힌 유리알일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역시 당신이 가와사키 씨를 죽이면서 일어난 비극이죠." p.340


사랑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이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파멸시키는 것과

그것을 알아차린 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중 누가 더 잔인한 것일까?

누구나 한번쯤은 아무 의심 없이 내가 파는 곳에 보물이 있다고 느끼며

나아갈 때가 있다.

어쩌면 이 엉뚱한 삽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지...


백골이 된 어린이 사체가 드러나며 하쿠바 펜션은 문을 닫게 된다.

마지막 무더위를 날려줄 소설, <하쿠바 산장 살인사건>이었다. 




#하쿠바산장살인사건 #히가시노게이노 #RHK

#자몽커피 #서평단 #추리소설 #밀실소설

#연쇄살인 #반전의연속

#정통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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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인문학 - 비늘과 딱지, 날개맥이 누설하는 지식 벽돌
이상헌 지음 / 초봄책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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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분명 <곤충 인문학> 임에도 불구하고  '곤충도감책'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동안 읽은 곤충에 관한 책은 거의 다 도감류였기 때문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꾼의 글, 예술가의 눈썰미로 고른 사진, 인문사회과학자의 잣대로 모은 정보를 기반으로

쓰여졌다는 이책, 잘 짜여진 그물같다. 


이 책에 실린곤충사진만 봐도 곤충전문가임을 알겠다. 

그런데 저자 소개를 보니 투자가로 나온다.

'풀벌레 벽치'가 쓱쓱 버무린 한 상을 펼칠 테니 받으라고 한다.

나는 겸손한 사람도 좋아하지만 자신감이 뿜뿜한 사람도 좋아한다.

그 대신 후자에겐 기대치가 더 높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벽치는 '한 가지에 편협하게 빠진 바보들’을 비꼴 때 쓰는 단어지만 정작 이 소리를 듣는

벽치들은 오히려 이런 표현을 영예로 삼는다.

스스로를 ‘책만 읽는 바보’인  ‘간서치(看書癡)’라고 여기는 분들에게  비밀리에 소개해 주고 싶은 책이다.

왜냐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방식이 약간 독특하다.

저자가 알고 있는 정보를  100프로 풀어놓지 않는다.

약을 살살 올린다고 해야 하나.

더 정확히는 각 챕터마다 3~4회 정도가 더 남은 연속극을 보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끝나지 않는다.


문자로만 자세히 풀어놓았다는 정약전의 <자산어보>.  

원래는 그림을 넣어 '해족도설'이라는 도감형식으로 만들려고 했었단다. 

그러나 동생 정약용이 그림의 왜곡을 언급하며 글자로만 기술하기를 권하였다고.

어부의 집에 벽지로 붙어 있던 원고를 모아 책으로 낸 것이 지금의 <자산어보>이다.

일본 최초의 곤충도감인 <천충보>를 펴낸이는 쿠리모토 탄슈인데 막무시대 사무라이이다.

당시 네덜라드 현미경을 통해 본 벼룩과 이 같은 기생충이 그려져 있는데

색까지 입히고 크기도 엄청 크게 그렸다.

각자의 환경에서 생물 연구에 매진했던 문인과 무인의 두 책, 함께 읽고 싶어졌다.


<롤리타>로 부와 명성을 얻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박물관의 곤충 표본을 정리할 정도로 곤충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고 한다. 그가 세운 부전나비 가설이 학계에 인정을 받으면서 생물학에 업적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76세에 나비를 채집하다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나비 사랑이 어느정도인지 알겠다.

러시아 혁명이 없었다면 결코 소설을 쓰지 않았을 거라는 나보코프.

 <롤리타> 초판본에 나비 그림이 그려져 있다고 하니 검색을 안 할 수가 있나!


세계 유명 인사의 이름을 딴 곤충이 있다는 사실?

2005년 상주 해수욕장에서 발견한 갑각류의 이름은 세종대왕.

2017년 발견한 신종 응애 이름은 000 대통령.  

1937년 슬로베니아에서 채집한 딱정벌레 이름은 히틀러.

바다 달팽이와 해파리 이름 'hirohitoi'는 2차 세계대전 전범인 히로히토.

무엇이 되었든 곤충에 사람이름이 들어간 건 별루인 것 같다는 생각이.


풀벌레 세상에는 힘센 포식자를 흉내 내는 수많은 닮은 꼴이 있다.

그들 나름 생존방식일 텐데 일종의 사기극을 벌이는 곤충들을 보고 있자니 인간사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을 의태종이라고 부르는데 개미를 카피한 불개미거미와 벌을 카피한 호리꽃등에는 몇 번을 봐도 신기하다.


1306개의 다리를 가졌다는 노래기. 똥 구슬을 만드는 쇠똥구리 삼총사, 주검을 분해하는 송장벌레,

CO2를 좋아하는 모기, 4~8억 톤의 곤충을 먹어치우는 거미의 먹성, 배 끝으로 난타를 하는 큰 그물강도래까지.

전혀 다르게 다가올 곤충의 세계로 빠져보시길...


마지막으로 모기에 절대 물리지 않는 방법이 173페이지에 나와있다. 오호~


모기가 매개하는 질병(말라리아, 일본뇌염, 황열병, 뎅기열 등)을 차단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다.

오컴의 면도날occan's razor이요, 키스kiss, keep it simple &stupid다. 제일 단순한

방법이 가장 효과가 좋다는 의미다. p.173


#곤충인문학 #이상헌 #초봄책방

#곤충 #도감아님 #자몽커피 #서평단

#책리뷰 #공존 #지혜 #모기 #매미 #벌 #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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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어떻게 미래가 되는가 - AI부터 양자역학, 청색기술까지, 오래된 상상력의 비밀
이인식 지음 / 드림셀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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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신화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고갈되지 않는 상상력의 샘 같은 존재이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가진 이야기들은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이번에 나온 책은 신화 속 상상력이 오늘날 인공지능, 양자역학,

청색기술로 진화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냄으로써 인류의 오래된 판타지가

첨단 현실이 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보여준다.




그리스로마신화부터 중국, 게르만신화의 천지창조에는 항상 거인족이 나온다.

우라노스, 크라노스, 티탄, 반고, 오딘이 펼치는 골육상쟁은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장치일 것이다.

카오스가 일순간에 질서를 만들어내는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인물이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앙리 푸엥가레인데 너무나 하찮은 원인도 엄청나게

복잡한 결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나비효과'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미국 기상학자인 로렌츠가 초기 조건 값의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발견한

이후 카오스의 정의는 '초기조건에 민감한 의존성을 가진 시간 전개'라고 명명된다.

카오스의 발견은 카오스 과학을 등장시켰고 뇌, 심장, 주식시장 같이 생리학과 경제분야로 뻗어나간다.

지금은 생물학과 컴퓨터 과학이 융합된 인공생명 분야까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자식을 낳은 기계'까지 연구하고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신화는 허구가 아니라 인간이 가장 먼저 그려본 미래다!"


고대 이집트에서 발달한 미라 처리 기술은 20세기 인체 냉동보존술로 이어진다.

이 기술이 실현되려면 반드시 두 가지 기술이 개발되어야 하는데 첫째는 뇌를 냉동 상태에서

제대로 보존하는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해동 상태가 된 뒤 뇌의 세포를 복구하는 기술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스위스, 호주, 독일의 인체 냉동 시설에서 부활을 꿈꾸고 있는 냉동

인간이 500여 명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2030년이면 세포 수복 기능을 가진 나노

로봇이 개발될 거라는 전망에 <프랑켄슈타인>을 읽은 나로서는 참으로 복잡한 심정이었다. 


자원낭비와 환경파괴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청색기술'분야가

가장 흥미로웠다.

생물체로부터 영감을 얻어 혁신을 시도하는 기술인데 거미나 연잎, 솔방울 효과를

이용해 젖지도 때가 끼지도 않는 기능성 옷을 만들 때  사용된다.

떨어뜨려 화면에 금이 생겼을 때 스스로 복구하는 스마트폰이 나온다면 가격이 

얼마나 하려나 궁금하긴 하다.  


달탐사로 이어지는 아르테미스와 창어프로젝트는

아서 클라크의 <낙원의 샘>에 나오는 우주를 왕복하는

엘리베이터와 21세기 축지법인 원격이동으로 확장한다.

신화에서 시작해 과학과 환경에 이르는 방대한 지식이 이 한 권에 다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신화와 과학을 좋아하는 나에게 기성복이 아닌 완전 맞춤복 같은 책,

 <신화는 어떻게 미래가 되는가>였다.



#신화는어떻게미래가되는가 #이인식 #드림셀러 #서평단

#자몽커피 #신화 #과학 #양자역학 #청색기술 #달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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