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도둑 비룡소의 그림동화 25
junaida 지음, 송태욱 옮김 / 비룡소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열쇠는 많을 필요도

많은 사람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하나,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나와 마음이 닿는

어떤 만남이면 충분하다고 믿습니다."_주나이다



마을 산책길에 책사진을 찍고 있는데 나를 유심히 관찰하는 한 어르신이 있었다.

내 곁에 수줍게 오시더니 책에 관심을 보이시면서 "좋은 책을 읽으시네." 말을 거신다.

그동안 책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책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답을 하니

"살기 위해서 책을 읽었어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살기 위해서"라, 그 속사정은 다 알 수 없지만 작가들이 책을 써야 하는 백만 가지 이유 중

최고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사람이나 물건이 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분명 책에는 있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인간관계를 넓히거나

쇼핑으로 물건을 가득 쌓아놓는 사람들을 종종 보곤 한다.

그림책 속 주인공인 괴물은 마을 전체를 아예 옮겨버린다.



거인이 사는 산꼭대기에 마을이 하나 생긴 것이다.

경치도 좋고 물도 좋고 과일도 많고 마을사람들은 모두 

만족하며 다 함께 기쁘게 살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야기는 끝날 것 같지만 거인은 무슨 까닭인지

여전히 외롭다. 풍요 속에 빈곤인가. 

혼자 있어도 외롭지만 함께 있어도 외로운 건 어쩔 수 없는 걸까?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일본 북 디자인 콩쿠르 2회 선정 작가이자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는 그림책 장인

주나이다가 전하는 소유와 고독, 관계의 이야기



앞표지그림을 제외하고 책등과 뒤표지를 패브릭으로 마감해 두 개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데 매끈한 손바닥에 패브릭이 닿아서 책을 읽는 느낌보다는 옷을

만지고 있는 느낌이 드는 특별한 책이다.




외로움과 고독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외로움은 타인과의 부재에서 오는 결핍이나 허전함을

고독은 자신을 만나는 통로라고도 한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그 시간을 충만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마을을 통째로 옮겨와도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마음을 나눌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괴물은 산을 떠나 마을이 있던 산기슭으로 내려간다.

그곳에 누구의 부름도 받지 못한 한 소년이 혼자 살고 있었다.

둘은 금새 친구가 된다.

소년이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음을 나누고 책을 나눌 수 있는 독서모임이 있어서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같다.

​산책길에 만난 어르신이 자꾸 생각난다. 책얘기를 좀 더 해볼 것을.

​혹시라도 다음에 만나게 되면 제일 좋았던 책이 무엇인지 물어보겠다.


#마을도둑 #주나이다 #비룡소 #그림동화 #그림책
#서평단 #자몽커피 #책서평 #책리뷰 #외로움 #고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실
나탈리아 쇼스타크 지음, 정보라 옮김 / 스프링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인 나탈리아 쇼스타크와 정보라 작가의 인연은  2022년에 시작되었다.

정보라 작가의 소설이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가 되어 폴란드에 방문을 했고 주 폴란드

한국문화원에서 <저주 토끼>에 대한 대담을 하게 되었을 때, 그때 진행자가 쇼스타크 기자였다고 한다.

2023년에 쇼스타크의 <상실>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SNS로 보고 바로 해외 직구로 구입했다는 정보라 작가.

 

기자가 쓴 폴란드 가족이야기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가족 몰래 큰 빚을 진 아빠로 인해 네 가족과 강아지는 흩어진다. 엄마, 아빠는 빚을 갚기 위해 영국으로 떠나고 14살, 11살인 마리안나와 야쿱은 할머니 집으로 들어간다. 마리안나가 데려온 프라이다는 다시 보호소로 돌아간다.

혼자서 아들을 키운 알리치아는 61세의 나이에도 공증사무소에서 일을 하며 혼자 살아가는 노년 여성이다. 아들과 손주를 사랑하지만 평생직장일을 해야 했던 그녀에게 그들은 낯익은 손님일 뿐이었다. 아들의 빚은 그녀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엄마로서의 의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알리치아가 직장을 그만두고 손주들 돌봄을 맡았을 때 이미 균열을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집을 불편하게 여겼던  마리아나는 결코 할머니에게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지도 엄마 아빠에 대한 불안을 얘기하지도 않는다.


첫째, 특히 딸들은 엄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다. 잔병치레가 많았던 동생에게 엄마 아빠의 관심이 더 가는 것도 마리안나는 이해한다. 자신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마가 편히 쉴 수 있기 때문이다.

표지 작가를 찾아보니 조진주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토대로 살펴보니 잠자리, 나비, 파리 같은 곤충을 메타포로 활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파랗게 질린 소녀의 얼굴에 붙어 있는 사마귀 한 마리.

작품제목이 '그루밍'으로 되어 있다. 그루밍은 동물이 혀나 이빨, 발톱 등을 써서 털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손질하는 일을 말한다.

사마귀 딴에 이물질을 제거하려고 발길질을 하면 할수록 상처만 낼뿐이다.

마리안나는 착하잖아. 야쿱은 몸이 약해. 네가 누나니까 더 현명하게 굴어야지. 양보해. 이젠 어린애가 아니야.

장녀인 나도 어려서부터 꾸준히 들어온 말이다. 누구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마리안나에게 이런 말들은

결국 그녀의 입을 닫게 만든다. 목소리를 내려고 해도 한숨만 나올 뿐이다.


마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것 같았다. 빗방울이 땅에서 하늘로 떨어지고, 강이 하류에서 상류로 흐르고, 마리안나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p.9



아들의 빚으로 두 손주를 떠맡게 된 할머니 알리치아, 남편의 빚으로 타국생활을 해야 하는 아내 한나, 아빠의 빚으로 엄마 아빠와 헤어져 할머니집으로 들어간 마리안나의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이 세명의 여성은 독립적인 때 개성을 마음껏 발산하는 인물들이다.

남편 없이 아들을 키워냈고 노년의 나이에도 자유연애를 즐기며 경제적으로도 자식들에게 손을 빌리지 않는 알리치아가 굉장히 멋있다고 느껴졌다. 푸근한 느낌의 할머니와 거리가 멀다고 해서 그녀가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삶에 폭탄처럼 던져진 손주들. 십 대인 마리안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둘째는 하루 종일 따라다녀 정신을 쏙 빼놓는다.

지금까지  냉동식품으로 살아온 삶을 손주들을 위해 부엌살림을 할 마음도 없다.

번역일을 하며 아이들 성적과 진로에 관심이 많았던 한나는 외국에 있으면서도 그 끈을 놓지 않는 열혈엄마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낯선 나라에서 접시를 닦는 삶이라니. 돈 때문에 크리스마스에도 아이들을 보러 가지 못했는데 어쩌면 한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

그녀의 모든 사정을 아는데도 호감을 표시하는 남자가 나타나고 이를 남편에게 말하자 그제고시는 잠적을 택한다.


그게 전부인가?

서로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는가?

한나는 고개를 저었다. p.317


아픈 동생을 돌보느라 동급생과의 우정이 잘 풀리지 않는 마리안나는 자신만의 친구가 필요했다. 동물을 키우고 싶지 않았던 엄마도 결국 마리안나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폴란드어로 예상외의 기쁨, 커다란 즐거움이란 뜻을 가진 프라이다는 가족해체가 되면서 가장 먼저 버려진다.

영국에 있어야 할 아빠가 예전에 살았던  집에 몰래 숨어 산다는 사실을 마주한 마리안나는 가출을 감행한다.

과연 이들 가족은 어떻게 될까?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낯익은 타인들을 우리는 어디까지 껴안을 수 있을까? 가족이란 이름으로 상처를 내고 있는 모든 사마귀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 <상실>이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무거우면 바람에 날려 가지 않을 거잖아요." p.310



#상실 #나탈리아쇼스타크 #정보라옮김 #스프링 #김겨울작가추천 #서평단 #자몽커피 #책서평 #책리뷰 #폴란드문학
#가족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에나방
마태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읽자마자 손에서 놓을 수 없을 정도로 흡인력이 대단한 작품이었다.

장르문학 IP 대상 수상자인 마태 작가의 신작 <누에나방>은 비틀린 욕망의 화신인 엄마의 이야기다.

누에를 보고 모성애를 생각했다는 작가는 무한한 자기희생과 포용력을 가진 모성애를 보고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엄청나게 떠받들여지다가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기준에 의해 너무 쉽게 비난을 받기도

하기 때문이다.

육아와 입시를 생각하면 인간은 거의 20년 가까이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종이다. 부성애도 마찬가지겠지만 모성애가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원천적인 문제라고 해야 할까?

최근에 읽은 책에서 새끼를 대하는 극과 극의 물고기이야기가 나온다.

자기 새끼를 먹이인 양 잡아먹는 구피,  부성애가 지극한 흰동가리, 세대를 이어가며 새끼를 기르는 브리샤르디. 이들을 보면서 과연 모성이 뭘까 생각해 본다.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 말이 많지만 아기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생명줄이 바로 모성애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소멸하는 이타성을 윤리적으로 희소하며 숭고하다고 칭찬하다가

그것이 조금만 온도계를 벗어나면 진상 엄마라는 죄목으로 화형에 처해지는

풍경에서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p.298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소영은 1년간 병원생활을 해야 했다. 식물인간이었던 소영은

1년간의 재활로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었지만 기억은 모두 잃어버린 상태. 그런 그녀에게 엄마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1년 동안 집과 병원을 오가며 가족을 돌보는 데만 매달린 엄마를 생각하면 소영은 마음이 아프다.

택시를 타고 드디어 집으로 가는 날 이상하게 소영은 설렘이 아니라  불안에 휩싸인다.

엄마가 사준 원피스와 커다란 인형이 붙어 있는 머리핀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열일곱 살인 나이에 이게 맞나 싶다.

정말 옆 침대에 있던 꼬마의 말처럼 엄마는 이상한 사람일까?

소영은 병원생활 내내 엄마 외에는 그 누구와도 말을 섞어보지 않았던 자신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자신이 누군가와의 대화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엄마가 그렇게 만든 것 같기도.

퇴원 후 학교에도 가고 아빠도 만날 생각에 마냥 들떴던 소영은 괴이한 집을 보자마자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다.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말에도 엄마는 화를 내고 경멸과 무시를 일삼는다.

학교를 보내지 않겠다는 엄마도 이상했지만 그녀의 방에 물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소영은 병원에서 보았던 학생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엄마가 거짓말을 했다. 엄마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  p.56

꼭 사람이 살지 않는 집 같았다. p.72


집에 와서 마주한 아빠의 상태는 심각했다. 손가락만 겨우 움직일 뿐 말도 못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빠.

이런 아빠와 자신을 돌봤을 엄마를 생각하니 소영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집인데 왜 엄마의 감시를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인지, 연필 한 자루도 남아 있지 않은 자신의 책상을 보면서

어떤 반응을 보여하 하는 것인지. 엄마가 자신의 기억이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하다.

이 집안에 흐르는 무언의 규칙, 무언의 약속, 무언의 함정이 숨어있다는 것이 소름 끼친다.

소영이 느끼는 불안감이 온전히 느껴질 만큼 읽는 내내 나 또한 떨면서 읽었다.


이 엄마 도대체 뭐야? 뭐냐고!



개수대에 밥과 국을 모두 던지고 다시 밥상을 차리면서  '다시 하자. 우리는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어'라고 하는 모습에서 사이코패스라고 단정 지었다.  엄마의 기분에 맞춰 연극을 해야 하는 살얼음 같은 현실이라니!

이건 엄마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곳은 탈출해야 하는 지옥이다.

우연히 침대 밑 액자에서 발견한 쪽지, 병원에서 만난 민지, 낡은 노트를 통해 서서히 엄마의 정체가

드러난다. 엄마의 정체를 상상할 수 있을까?



내가 죽으면 엄마 때문이다. p.120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만들었다는 엄마! 모성애가 욕망과 만나면 이런 끔찍한 비극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이야기.  나방이 된 누에는 필요성을 상실하지만 또 다른 누에를 낳는다는 점에서

유용하다는 말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상상할 수 없는 최고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소설, <누에나방>이었다.



#누에나방 #마태 #자몽커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계단의 왕 비룡소 창작그림책 83
정진호 지음 / 비룡소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야기가 담긴 집을 짓는 작가 정진호 신작 그림책

허울뿐인 권력과 무의미한 일상에 물음을 던지는 유쾌한 우화



이번 책이 나오기까지 5~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작가님도 대단하지만 그 시간을 기다려준 비룡소 편집부도 대단하는 생각이.

이 책은 작가님의 그림책 <벽>의 다음 책으로 기획한 책이라고 한다.

제목도 심플하게 <계단>이었다.

2021년 3월 17일 새벽 5시 콘티가 완성이 되었으나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완성본을 보니 댓구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벽>과 비슷한 구도로 되어 있어서

제목만 바뀌었을 뿐 새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3D로 여러 구도로 돌려가며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스토리가 문제였다.

정작 어린이들이 왜 계단을 오르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는 주인공이 어린이 두 명이었다.

계단이라는 한정적인 장면을 넓혀보기 위해 놀이터 버전을

만들기도 하고 정전이 돼서 계단을 오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고.

그러다 2022년 7월 편집자가 바뀌게 된다. 무려 3년 동안 잠실교보에서 이루어진 미팅.

이때 나온 아이디어는 청소년 소설 버전, 논픽션 버전을 떠올랐지만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유현준 건축가의 유튜브를 보고

권력자들의 건축물 즉, 피라미드, 만리장성, 세계무역센터, 브루즈 할리파가 가능했던

이유를 계단에서 찾게 된다.

높이는 권력에서 나오고 계단이 이루어준다는 것.

뭔가 감이 오는 느낌이 이때부터 들었다고 한다. 권력의 시녀로서 계단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그러다 2024년 10월 10일 전환점을 맞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날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는 분이 있을까?

바로~~~~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속보로 뜬 날이다.

스웨덴 왕이 직접 상을 수여하는 장면이

번뜩하고 떠오르면서 주인공이 드디어 '왕'으로 결정된 날이기도 하다.

그해 12.3 계엄이 터지면서 이 작품에서 건드리고 있는 주제와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에

작가로서 자부심이 생겼다고도 한다.

이 책의 주제가 권력의 허무함, 무상함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 궁금했던 점이 왜 92번째 왕인가였다. 사실 작가님도 이 부분을 엄청 고민했다고.

일단 계단을 내려오는데 하루 종일 걸린다는 설정에 맞게 100번째를 생각했지만

그냥 특정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수를 생각했고

그러다 92가 선택되었다고 한다.

91명의 왕의 계보는 바로 작가님이 숨겨놓은 또다른 매력 포인트다.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너무나 소박하고 하찮은 이유로도 왕이 되었기 때문.

평생 빵만 먹어서, 텔레비젼을 사랑해서 왕이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배경을 다양한 건축물(임금님이 사는 성)로 보여주고

또 성들을 연결하는 계단을 표혀한

작가님의 연출력을 확인하시길

6년이란 세월을 품고 또 품고서야 나온 책이니 이번 책 진짜

역대급이라 할 수 있다.

TMI지만

작가님은 실제 10층에 사신다나 뭐라나~^^



구두굽이 부러져 엉거주춤 걸었던 기억이 난다. 양쪽을 다 날리고 자유롭게 걸으면

되었을 것을 뭔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사고로 인해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오게 된 92번째 임금님은 비로소 백성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92층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았다는 이야기.

오늘만큼은 모든 내려놓고 자유인이 되고 싶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새롭게 해석한 <계단의 왕>

그나저나 92개의 성은 무엇이 되었으려나~



계단을 다 내려오고

임금님은 깨달았어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는 걸.

#계단의왕 #정진호 #비룡소 #벽 #자몽커피

#서평단 #책리뷰 #그림책 #신간

#책서평 #한강작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법은 그렇게 바뀌었다
류쭝쿤 지음, 강초아 옮김 / 들녘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먼저 하고 법을 따라오게 하라!"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단어가 있는데 바로 '꾸역꾸역'이다.

유시민 작가가 유튜브 방송에서 한 말인데 답답해도 한 발자국씩

꾸역꾸역 나아가는 게 세상이치라는 것!

꿰맨 자국이 없는 옷,

즉 천의무봉이 없는 것처럼 세상은 일사천리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중국인 류. 쭝. 쿤이다.

중국 베이징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으로 이주해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변호사로 활동했다고 한다.

무제 출판사의 박정민 대표가 넷플릭스 대신 혼모노를 선택했다면

나는 단연코 이 책이라고 말하겠다.


공산주의 나라에서 배우고 자란 중국인의 눈으로 본 미국 법정의

역사라니! 과연 그의 눈에 비친 미국은 자유와 평등을 수호하는 나라였을까?

이 책은 미국법정에서 벌어진 가장 격렬한 전투들을 담고 있다.

법원의 판결문과 사건기록에 근거하여 책을 썼지만 이 책은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에 집중한다.

사건의 경위, 갈등과 분쟁이 시작, 변호사의 배경, 일선 법원에서 대법원까지의 과정,

법관의 개인적 경력, 배심원들의 성향까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수정헌법 14조는 백인에게만 해당되는 반쪽짜리 헌법으로

자리매김했다. 우생학과 노예문제만큼 미국의 흑역사가 또 있을까?

이 책을 보면 내가 흑인으로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정의를 향해서든 기존 질서를 지키는 것 모두 나름의 원칙이 있으며 정당한 사유를 보여준다.

그 당시 미국의 정서, 정치, 문화 등을 포괄하는 역사서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너무 어이없는 일들도 그 당시에는 그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전쟁 이후 남부의 보수화, 복음주의, 폐쇄적 후진성, 인종 차별문제는 경제구조와 연결 지어서 생각하면 이해를 못 할 바도 아니다. 




같은 헌법, 같은 헌법 수정안, 같은 조항이지만 대법원은 상반된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서문에도 쓰여 있듯이 이 책은 미국 법원의 판례에 근거하여 쓰인 보통 사람의 생활사라고도 할 수 있다. 약 150여 년에 걸쳐 판결문에 나타난 무수한 삶의 조각들이 시대의 변화를 비춘다.



*피부색이 백인에 가까워도 조상중에 흑인이 있다면 이들은 모두 흑인이다. 8분의 7이 백인의 피여도 소용없다. 노예로 팔린 백인 소녀 모리슨과 22세 흑인 청년 머레이가 당한 차별은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이 순혈주의에 매몰된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의 결혼을 강간이라고 보았던 시대에 사랑을 하고 자녀를 낳은 러빙 부부가 당한 차별은 과연 누가 보상을 해주어야 할까?



*흑인 가정부 사이에서 딸을 낳은 서먼드 이야기는 옳고 그름이라는 잣대로 들이밀 수 없는 인생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판사를 거쳐 정치인의 길을 간 서먼드는 대통령 선거까지 나간 인물이다. 겉으로는 흑인을 차별하고 북부의 산업화를 비판하는 연설을 하는 정치인이었지만 딸의 학업을 격려하고  생활비와 교육비를 지원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딸과 정치사이에서 줄타기를 했어야 했던 한 인간의 비애가 느껴진다.


 * 세 번째 아이를 가진 제인 로는 소송 중에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음에도 소송을 진행한다. 자신은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이 이기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은 혜택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1973년 연방대법원은 낙태금지법이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났을까? 아니다. 2022년에 다시 연방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뒤집고 헌법이 여성 낙태권을 보호한다는 해석을 폐기했다. 자신들을 낙태시키려 했던 제인 로의 세 자녀들은 엄마를 과연 용서할 수 있었을까?


 *2020년 경찰에 의해 9분 29초 동안 목이 눌려 결국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그 당시 분노한 시위대를 뉴스로 본 기억이 난다. 백인 경찰인 데릭 쇼빈은 3가지 혐의로 기소가 되었고 유죄판결이 나오려면 배심원 12명의 만장일치가 필요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17살 다르넬라가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던 점, 9살 주디아의 담담한 증언을 보면서 과연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반성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미국이 인종차별 법률을 개정한 지 거의 100년이 흘렀지만, 흑인이 차별받은 풍조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총기사용을 보면서 왜 저러나 싶을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왜 미국이 총기소지에

찬성하는지 알게 되었다. 열여섯 아이 생일 선물로 총을 사주고 사격장에 데려가 연습을 시키는

부모. 아들이 24개의 범죄 혐의로 기소가 되자마자 바로 도망친 크럼블리 부부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형사 사건의 재판에서는 법적인 승패가 존재하지만, 이미 발생한 폭력에는 승자가 없다.

 피해자에게 법의 정의는 언제나 너무 늦게 온다. p.324



분리정책이 철폐되는 데는 60년이 걸렸으며, 인종간 결혼이 미국전역에서

합법화되기까지는 84년이 걸렸다. 

이주민 학생을 추방한 텍사스주의 법이 헌법에 위배되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결정은 

1982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1973년 연방대법원은 텍사스 낙태 금지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2022년 

기존 판례를 뒤집고 헌법이 여성 낙태권을 보호한다는 해석을 폐기하기도 했다.

2022년 미국은 마침내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완벽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헌법은 살아있는 텍스트이며 시대와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는 것, 법관 역시 미리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작동하는 법률 기계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또한 지금의 판결이 나중에 가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인류 역사의 대다수의 진보는 불가능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덕에 이루어졌다.

몇 년이 걸리는 재판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시 꾸역꾸역을 생각한다. 느리지만 세상은 좋은 쪽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런 믿음을 준 책, <법은 그렇게 바뀌었다>였다.





#법은그렇게바뀌었다 #류쭝쿤 #강초아 #들녘#서평단 #자몽커피 #책서평  #차별금지법 #혐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