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나탈리아 쇼스타크 지음, 정보라 옮김 / 스프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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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나탈리아 쇼스타크와 정보라 작가의 인연은  2022년에 시작되었다.

정보라 작가의 소설이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가 되어 폴란드에 방문을 했고 주 폴란드

한국문화원에서 <저주 토끼>에 대한 대담을 하게 되었을 때, 그때 진행자가 쇼스타크 기자였다고 한다.

2023년에 쇼스타크의 <상실>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SNS로 보고 바로 해외 직구로 구입했다는 정보라 작가.

 

기자가 쓴 폴란드 가족이야기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가족 몰래 큰 빚을 진 아빠로 인해 네 가족과 강아지는 흩어진다. 엄마, 아빠는 빚을 갚기 위해 영국으로 떠나고 14살, 11살인 마리안나와 야쿱은 할머니 집으로 들어간다. 마리안나가 데려온 프라이다는 다시 보호소로 돌아간다.

혼자서 아들을 키운 알리치아는 61세의 나이에도 공증사무소에서 일을 하며 혼자 살아가는 노년 여성이다. 아들과 손주를 사랑하지만 평생직장일을 해야 했던 그녀에게 그들은 낯익은 손님일 뿐이었다. 아들의 빚은 그녀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엄마로서의 의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알리치아가 직장을 그만두고 손주들 돌봄을 맡았을 때 이미 균열을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집을 불편하게 여겼던  마리아나는 결코 할머니에게 자신의 고민을 얘기하지도 엄마 아빠에 대한 불안을 얘기하지도 않는다.


첫째, 특히 딸들은 엄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다. 잔병치레가 많았던 동생에게 엄마 아빠의 관심이 더 가는 것도 마리안나는 이해한다. 자신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마가 편히 쉴 수 있기 때문이다.

표지 작가를 찾아보니 조진주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토대로 살펴보니 잠자리, 나비, 파리 같은 곤충을 메타포로 활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파랗게 질린 소녀의 얼굴에 붙어 있는 사마귀 한 마리.

작품제목이 '그루밍'으로 되어 있다. 그루밍은 동물이 혀나 이빨, 발톱 등을 써서 털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손질하는 일을 말한다.

사마귀 딴에 이물질을 제거하려고 발길질을 하면 할수록 상처만 낼뿐이다.

마리안나는 착하잖아. 야쿱은 몸이 약해. 네가 누나니까 더 현명하게 굴어야지. 양보해. 이젠 어린애가 아니야.

장녀인 나도 어려서부터 꾸준히 들어온 말이다. 누구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마리안나에게 이런 말들은

결국 그녀의 입을 닫게 만든다. 목소리를 내려고 해도 한숨만 나올 뿐이다.


마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것 같았다. 빗방울이 땅에서 하늘로 떨어지고, 강이 하류에서 상류로 흐르고, 마리안나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p.9



아들의 빚으로 두 손주를 떠맡게 된 할머니 알리치아, 남편의 빚으로 타국생활을 해야 하는 아내 한나, 아빠의 빚으로 엄마 아빠와 헤어져 할머니집으로 들어간 마리안나의 심리묘사가 압권이다.

이 세명의 여성은 독립적인 때 개성을 마음껏 발산하는 인물들이다.

남편 없이 아들을 키워냈고 노년의 나이에도 자유연애를 즐기며 경제적으로도 자식들에게 손을 빌리지 않는 알리치아가 굉장히 멋있다고 느껴졌다. 푸근한 느낌의 할머니와 거리가 멀다고 해서 그녀가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삶에 폭탄처럼 던져진 손주들. 십 대인 마리안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둘째는 하루 종일 따라다녀 정신을 쏙 빼놓는다.

지금까지  냉동식품으로 살아온 삶을 손주들을 위해 부엌살림을 할 마음도 없다.

번역일을 하며 아이들 성적과 진로에 관심이 많았던 한나는 외국에 있으면서도 그 끈을 놓지 않는 열혈엄마다.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낯선 나라에서 접시를 닦는 삶이라니. 돈 때문에 크리스마스에도 아이들을 보러 가지 못했는데 어쩌면 한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

그녀의 모든 사정을 아는데도 호감을 표시하는 남자가 나타나고 이를 남편에게 말하자 그제고시는 잠적을 택한다.


그게 전부인가?

서로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 버렸는가?

한나는 고개를 저었다. p.317


아픈 동생을 돌보느라 동급생과의 우정이 잘 풀리지 않는 마리안나는 자신만의 친구가 필요했다. 동물을 키우고 싶지 않았던 엄마도 결국 마리안나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폴란드어로 예상외의 기쁨, 커다란 즐거움이란 뜻을 가진 프라이다는 가족해체가 되면서 가장 먼저 버려진다.

영국에 있어야 할 아빠가 예전에 살았던  집에 몰래 숨어 산다는 사실을 마주한 마리안나는 가출을 감행한다.

과연 이들 가족은 어떻게 될까?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낯익은 타인들을 우리는 어디까지 껴안을 수 있을까? 가족이란 이름으로 상처를 내고 있는 모든 사마귀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 <상실>이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무거우면 바람에 날려 가지 않을 거잖아요."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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