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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의 왕 ㅣ 비룡소 창작그림책 83
정진호 지음 / 비룡소 / 2025년 12월
평점 :
이야기가 담긴 집을 짓는 작가 정진호 신작 그림책
허울뿐인 권력과 무의미한 일상에 물음을 던지는 유쾌한 우화
이번 책이 나오기까지 5~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작가님도 대단하지만 그 시간을 기다려준 비룡소 편집부도 대단하는 생각이.
이 책은 작가님의 그림책 <벽>의 다음 책으로 기획한 책이라고 한다.
제목도 심플하게 <계단>이었다.
2021년 3월 17일 새벽 5시 콘티가 완성이 되었으나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완성본을 보니 댓구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벽>과 비슷한 구도로 되어 있어서
제목만 바뀌었을 뿐 새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3D로 여러 구도로 돌려가며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스토리가 문제였다.
정작 어린이들이 왜 계단을 오르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는 주인공이 어린이 두 명이었다.
계단이라는 한정적인 장면을 넓혀보기 위해 놀이터 버전을
만들기도 하고 정전이 돼서 계단을 오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 어느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고.
그러다 2022년 7월 편집자가 바뀌게 된다. 무려 3년 동안 잠실교보에서 이루어진 미팅.
이때 나온 아이디어는 청소년 소설 버전, 논픽션 버전을 떠올랐지만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 유현준 건축가의 유튜브를 보고
권력자들의 건축물 즉, 피라미드, 만리장성, 세계무역센터, 브루즈 할리파가 가능했던
이유를 계단에서 찾게 된다.
높이는 권력에서 나오고 계단이 이루어준다는 것.
뭔가 감이 오는 느낌이 이때부터 들었다고 한다. 권력의 시녀로서 계단이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그러다 2024년 10월 10일 전환점을 맞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날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는 분이 있을까?
바로~~~~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이 속보로 뜬 날이다.
스웨덴 왕이 직접 상을 수여하는 장면이
번뜩하고 떠오르면서 주인공이 드디어 '왕'으로 결정된 날이기도 하다.
그해 12.3 계엄이 터지면서 이 작품에서 건드리고 있는 주제와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에
작가로서 자부심이 생겼다고도 한다.
이 책의 주제가 권력의 허무함, 무상함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 궁금했던 점이 왜 92번째 왕인가였다. 사실 작가님도 이 부분을 엄청 고민했다고.
일단 계단을 내려오는데 하루 종일 걸린다는 설정에 맞게 100번째를 생각했지만
그냥 특정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수를 생각했고
그러다 92가 선택되었다고 한다.
91명의 왕의 계보는 바로 작가님이 숨겨놓은 또다른 매력 포인트다.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너무나 소박하고 하찮은 이유로도 왕이 되었기 때문.
평생 빵만 먹어서, 텔레비젼을 사랑해서 왕이 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배경을 다양한 건축물(임금님이 사는 성)로 보여주고
또 성들을 연결하는 계단을 표혀한
작가님의 연출력을 확인하시길
6년이란 세월을 품고 또 품고서야 나온 책이니 이번 책 진짜
역대급이라 할 수 있다.
TMI지만
작가님은 실제 10층에 사신다나 뭐라나~^^
구두굽이 부러져 엉거주춤 걸었던 기억이 난다. 양쪽을 다 날리고 자유롭게 걸으면
되었을 것을 뭔가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 같다.
사고로 인해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오게 된 92번째 임금님은 비로소 백성들의 얼굴을 보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92층 꼭대기에 올라가지 않았다는 이야기.
오늘만큼은 모든 걸 내려놓고 자유인이 되고 싶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새롭게 해석한 <계단의 왕>
그나저나 92개의 성은 무엇이 되었으려나~
계단을 다 내려오고
임금님은 깨달았어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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