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그렇게 바뀌었다
류쭝쿤 지음, 강초아 옮김 / 들녘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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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먼저 하고 법을 따라오게 하라!"



이 책을 읽고 나서 든 단어가 있는데 바로 '꾸역꾸역'이다.

유시민 작가가 유튜브 방송에서 한 말인데 답답해도 한 발자국씩

꾸역꾸역 나아가는 게 세상이치라는 것!

꿰맨 자국이 없는 옷,

즉 천의무봉이 없는 것처럼 세상은 일사천리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중국인 류. 쭝. 쿤이다.

중국 베이징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으로 이주해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변호사로 활동했다고 한다.

무제 출판사의 박정민 대표가 넷플릭스 대신 혼모노를 선택했다면

나는 단연코 이 책이라고 말하겠다.


공산주의 나라에서 배우고 자란 중국인의 눈으로 본 미국 법정의

역사라니! 과연 그의 눈에 비친 미국은 자유와 평등을 수호하는 나라였을까?

이 책은 미국법정에서 벌어진 가장 격렬한 전투들을 담고 있다.

법원의 판결문과 사건기록에 근거하여 책을 썼지만 이 책은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에 집중한다.

사건의 경위, 갈등과 분쟁이 시작, 변호사의 배경, 일선 법원에서 대법원까지의 과정,

법관의 개인적 경력, 배심원들의 성향까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수정헌법 14조는 백인에게만 해당되는 반쪽짜리 헌법으로

자리매김했다. 우생학과 노예문제만큼 미국의 흑역사가 또 있을까?

이 책을 보면 내가 흑인으로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정의를 향해서든 기존 질서를 지키는 것 모두 나름의 원칙이 있으며 정당한 사유를 보여준다.

그 당시 미국의 정서, 정치, 문화 등을 포괄하는 역사서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너무 어이없는 일들도 그 당시에는 그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남북전쟁 이후 남부의 보수화, 복음주의, 폐쇄적 후진성, 인종 차별문제는 경제구조와 연결 지어서 생각하면 이해를 못 할 바도 아니다. 




같은 헌법, 같은 헌법 수정안, 같은 조항이지만 대법원은 상반된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서문에도 쓰여 있듯이 이 책은 미국 법원의 판례에 근거하여 쓰인 보통 사람의 생활사라고도 할 수 있다. 약 150여 년에 걸쳐 판결문에 나타난 무수한 삶의 조각들이 시대의 변화를 비춘다.



*피부색이 백인에 가까워도 조상중에 흑인이 있다면 이들은 모두 흑인이다. 8분의 7이 백인의 피여도 소용없다. 노예로 팔린 백인 소녀 모리슨과 22세 흑인 청년 머레이가 당한 차별은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이 순혈주의에 매몰된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의 결혼을 강간이라고 보았던 시대에 사랑을 하고 자녀를 낳은 러빙 부부가 당한 차별은 과연 누가 보상을 해주어야 할까?



*흑인 가정부 사이에서 딸을 낳은 서먼드 이야기는 옳고 그름이라는 잣대로 들이밀 수 없는 인생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판사를 거쳐 정치인의 길을 간 서먼드는 대통령 선거까지 나간 인물이다. 겉으로는 흑인을 차별하고 북부의 산업화를 비판하는 연설을 하는 정치인이었지만 딸의 학업을 격려하고  생활비와 교육비를 지원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딸과 정치사이에서 줄타기를 했어야 했던 한 인간의 비애가 느껴진다.


 * 세 번째 아이를 가진 제인 로는 소송 중에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음에도 소송을 진행한다. 자신은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이 이기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은 혜택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1973년 연방대법원은 낙태금지법이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이야기가 여기에서 끝났을까? 아니다. 2022년에 다시 연방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뒤집고 헌법이 여성 낙태권을 보호한다는 해석을 폐기했다. 자신들을 낙태시키려 했던 제인 로의 세 자녀들은 엄마를 과연 용서할 수 있었을까?


 *2020년 경찰에 의해 9분 29초 동안 목이 눌려 결국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그 당시 분노한 시위대를 뉴스로 본 기억이 난다. 백인 경찰인 데릭 쇼빈은 3가지 혐의로 기소가 되었고 유죄판결이 나오려면 배심원 12명의 만장일치가 필요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17살 다르넬라가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던 점, 9살 주디아의 담담한 증언을 보면서 과연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반성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미국이 인종차별 법률을 개정한 지 거의 100년이 흘렀지만, 흑인이 차별받은 풍조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총기사용을 보면서 왜 저러나 싶을 때가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왜 미국이 총기소지에

찬성하는지 알게 되었다. 열여섯 아이 생일 선물로 총을 사주고 사격장에 데려가 연습을 시키는

부모. 아들이 24개의 범죄 혐의로 기소가 되자마자 바로 도망친 크럼블리 부부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형사 사건의 재판에서는 법적인 승패가 존재하지만, 이미 발생한 폭력에는 승자가 없다.

 피해자에게 법의 정의는 언제나 너무 늦게 온다. p.324



분리정책이 철폐되는 데는 60년이 걸렸으며, 인종간 결혼이 미국전역에서

합법화되기까지는 84년이 걸렸다. 

이주민 학생을 추방한 텍사스주의 법이 헌법에 위배되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결정은 

1982년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1973년 연방대법원은 텍사스 낙태 금지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2022년 

기존 판례를 뒤집고 헌법이 여성 낙태권을 보호한다는 해석을 폐기하기도 했다.

2022년 미국은 마침내 총기 규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모두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완벽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헌법은 살아있는 텍스트이며 시대와 동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는 것, 법관 역시 미리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작동하는 법률 기계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또한 지금의 판결이 나중에 가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인류 역사의 대다수의 진보는 불가능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덕에 이루어졌다.

몇 년이 걸리는 재판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다시 꾸역꾸역을 생각한다. 느리지만 세상은 좋은 쪽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런 믿음을 준 책, <법은 그렇게 바뀌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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