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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화바이룽 지음, 김소희 옮김 / 서사원 / 2026년 5월
평점 :
살인자가 된 남편과 그의 자살, 마침내 마주한 기괴한 진실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려는 한 여자의 추적극
다른 여자가 생긴 거냐는 정팡의 물음에 밍런은 밑도 끝도 없이 코끼리 이야기를 꺼낸다.
결혼한 이래 코끼리가 존재했고, 코끼리를 집 삼아 살며 아이 둘을 낳았다고.
이제 큰아이가 일곱 살, 둘째가 여섯 살이 되었으니 더 이상 아빠로도, 남편으로도 살 수없다고 말이다.
반복되는 코끼리 꿈 때문에 이혼하자는 남자 밍런.
불라 불라 불라 순화시켜서 욕 한마디 해주고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누구한테나 말 못 할 사정은
있는 거니까.
"당신에 대한 감정이 죽었어. 어쩌면⸳⸳⸳ 당신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감정이 죽은 걸지도 몰라." p.28
결국 둘은 주에 3일씩 각자 아이들을 케어하고 일요일은 함께라는 조항을 넣어 이혼을 한다.
이 책의 매력은 결혼이란 환상을 이렇게까지 깨는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게 되는 책이다.
정팡의 결혼도 사랑이 전부가 아니었다. 여자 나이 마흔, 사회와 단절된 지 오래 그녀에게 결혼은
경제적인 안정을 위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갖기 위해 시험관 시술을 했던 것도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수단이지 않았냐는 밍런의 말에 정팡은 부인하지 못한다.
정팡은 아는 언니가 하는 흥신소를 통해 남편 뒷조사를 하게 되고
결과는 밍런이 동업자인 안커와 같이 카페에 있는 사진 4장이 전부다.
2분의 1의 삶을 살게 된 정팡은 갈 곳이 없다. 3일의 자유를 얻었지만 딱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
친정은 더더욱 가기가 싫다. 그동안 남편의 월급에서 친정 아버지 병원비로 대주고 있었기에 자신의
상황을 더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나 홀로 캠핑을 보내던 정팡에게 경찰에서 전화가 온다. 남편이 살인을 했고 자수를 했노라고.
같이 살 때는 몰랐던 남편의 모습을 이혼 후 더 잘 알게 된다는 설정이 자못 씁쓸하기도 했는데
어쩌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밍런에게 친형 밍룬이 어떤 의미였는지, 베이피 파우더는 왜 샀으며, 몸에 문신은 언제 생긴
것인지 둘의 결혼생활이 계속 이어졌다면 정팡은 끝내 몰랐을 거기 때문이다.
살인사건이 정당방위가 아니라 계획살인이라는 것이 밝혀져오자 밍런은 자살은 선택한다.
그리고 그 자살이 밍런이 결코 보이고 싶지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 때문이라는 것을 정팡이 알게 된다.
부부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아야 할까?
허용할 수 있는 범위의 비밀이 어디까지인지 쉽게 답을 내리기가 힘이 들었다.
나는 정팡이 남편에 대한 대단한 사랑이 남아서 '그 일'을 처리해줬다고 보지는 않는다.
소설 곳곳에 나오듯이 정팡도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두 아들을 잃은 시댁 어른들, 또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제목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밍런의 '판도라의 상자'가 무엇인지는 소설에서 확인하시길...
언제나 비밀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걸. 코끼리 전체는 무리고 다리 한 짝 정도는 목욕시켜 줄 수
있을 듯하다.
일곱 살, 여섯 살 남매인 샤오위와 막내의 대화도 어찌나 킥을 날리는지,
사춘기 아이들이 할 법한 대사를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서 이건 좀 검증이
필요해 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밍런의 말은 진심이었다. 나와 샤오위, 그리고 막내는 그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다. 우린 그저 형이 죽고 난 뒤, 밍런이 어쩔 수 없이 떠맡았던 가문 잇기의
임무였을 뿐.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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