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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평점 :

이 책은 1998년에 출간된 「여행의 책」의 개정판으로 챕터마다 표지색과 서체가 다르다. 블랙 표지의 인사말은 시작부터 강한 느낌인데 '여행의 책'이라는 이름의 책이 살아 있는 것처럼 독자에게 말을 건다.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특별히 애쓰지 않아도 읽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데 책의 말에 응답하듯 책을 펼쳤고, 읽는 동안 나는 잠시 다른 세계에 머물렀다.

블랙 표지의 인사말을 지나면 공기와 흙, 불과 물의 세계가 차례로 펼쳐진다. 이 책의 주인공은 ‘나’이고, 책은 나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색이 다른 다섯 개의 표지는 이 책이 천천히 호흡하듯 구성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스크루지가 여행을 떠나듯, 책과 함께 네 개의 원소로 이루어진 네 개의 파트를 건너며 경이롭고 신기한 기분으로 나의 내면 여행을 떠나보았다.

첫번째 여정은 '공기의 세계'다. 정신의 힘으로 투명한 신천옹(信天翁)의 모습이 되어 하늘을 날며 지구를 내려다본다. 대양과 화산, 대륙과 사막 그리고 도시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육체의 한계를 넘어 정신의 자유를 꿈꿔왔다. 마약이나 종교, 첨단기술에 기대지 않더라도, 마음만 있다면 사유의 힘만으로도 세계와 우주를 발견할 수 있다고 책은 조용히 말한다.

프랑스어 앵베실(imbecile)의 어원을 떠올려보면, 참된 의미의 바보란 목발도 지팡이도 보호자도 없이 홀로 서서 걸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비틀거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넘어질 듯 흔들리면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간다. 홀로 걷는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용기이자 선택이 된다. 그래서 바보라는 말은, 삶 앞에서 가장 순수한 찬사처럼 들린다. 이 문장을 읽으며 삼십 년 전 유행했던 「홀로서기」 시집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도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면, 불완전함을 인정한 채 계속 나아가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계속 걸어가고 있다면 충분하다고 이 책은 말해주는 듯하다. 세계와 우주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여정은 '흙의 세계'다. 책은 나만의 아늑한 안식처를 지어보라고 말한다. 그것은 정신속에만 존재하지만 머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당면한 문제를 천천히 마주하고, 나의 상징을 꺼내어 심장깊숙이 넣어보라고 한다. 결국 이 여정은 자기 생각의 주인공이 되는 일로 이어진다. 나의 상징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에 오래 머무를수록, 나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그리고 점점,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간다. 흙의 세계는 그렇게 나를 내 안쪽으로 천천히 데려간다.

세번째 여정은 '불의 세계'다. 책은 역사적 전쟁터를 지나 개인의 전쟁터로 향하게 한다. 그곳에서 사회체제, 질병, 불운, 죽음,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적을 만난다. 이 여정은 적을 제거하기보다 직면하고 통과하는 과정에 가깝다. 가장 중요한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대면이다. 책은 과거의 실수와 부족함을 상징하는 장면을 제시하며, 잊고 싶은 기억을 피하지 말고 바라보라고 한다. 자기 비난의 반복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불의 세계가 제시하는 해법은 인정이다. 자신의 한계와 결핍을 받아들이는 순간, 갈등은 완화된다. 이 여정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화해다.

네번째 여정은 '물의 세계'다. 이 여정에서 독자는 자신의 탄생을 마주하고, 시선을 더 넓혀 지구와 은하의 탄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개인의 시작과 우주의 기원을 나란히 놓으며, 삶을 하나의 흐름 속에 위치시킨다. 물의 세계는 시작과 순환, 그리고 존재의 근원을 차분히 바라보게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 스스로를 비우는 일, 그리고 세계와 우주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존재는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메시지가 기억에 남는다. 정신의 자유는 내가 이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만큼만 확장된다는 말처럼, 곱씹게 되는 문장이 많은 책이다. 소설로만 알던 베르베르를 에세이로 만나는 경험도 인상적이다.

이 책은 세계와 우주를 나만의 방법으로 새로이 발견하도록 돕는 열쇠같은 형식을 지닌다. 읽는 동안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가라앉아 명상에 가까운 상태가 되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책은 조용한 안내자가 되어 나를 자신의 내면으로 이끈다.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독자를 안쪽으로 이끄는 신비하고 기이한 책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쉽게 놓치게 되는 ‘나 자신만을 바라보는 시간’의 필요성을 조용히 상기시킨다. 여행하듯 책을 읽으며 지친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저자님이 집필하며 함께 들었다는 음악들을 틀어두고 이 책과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내면에 다가가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에게, 이 책은 그 문을 여는 하나의 열쇠가 될것이다.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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