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이 책의 전반에 걸쳐 이미 다 완성되어 더이상 새롭게 변할 것이 없고 그 사회에 속한 구성원들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완성된 사회‘라는 용어로 지칭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완성된 줄로만 알았던 사회도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부조리함과 개선해야 할 것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와 동시에 이러한 것들에 저항하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하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사회에 대한 저항을 위해 택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ㅈㅅ‘ 이다.

솔직히 ‘ㅈㅅ‘이라는 말의 어감자체가 굉장히 부정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에 독자인 나는 이 페이퍼를 쓰면서도 모음을 제외한 초성만 쓰는 것을 양해바란다.

다만 본문을 읽다보면 이 ‘ㅈㅅ‘을 택하는 그들 나름의 논리가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읽으면서 그들의 행위에는 솔직한 심정으로 동의하는 것이 어렵지만, 독자인 나도 그들의 생각과 의도, 취지 같은 것은 어느정도 이해가 되었다. 이제 4분의 3정도 읽고 있는데, 뒤에 남아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가 독자들에게 진정으로 말하고자하는 바에 대해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한 세대가 주도권을 갖게 됐다는 것은 완성된 사회에서 그냥 그 세대가 중장년층이 되어 각 조직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 그 세대가 사회구조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현재 사회는 결코 정체된 것이 아니며 불안정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단순히 ‘완성‘이라는 개념을 서로 달리 쓰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맨눈으로 보면 다 굳어서 더 움직이지 않지만 현미경으로 보면 불안정하게 흐르고 있는 물질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유리죠. 그렇다고 유리를 액체라고 해야 하나요?

제 생각에 ㅈㅅ선언은 이를테면 헵번스타일이라든가, 로큰롤과 같은 것입니다. 한 젊은이가 자기주장을 펼치는 표현 방법이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하기를 의도하고 있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목표나 책임감은 없습니다.

연쇄살인범 중 일부는 자신을 신으로 착각해 자신과 타인의 목숨을 ‘관장‘해야 한다고 여긴다 ...(중략)... 그들은 남이 자신의 목숨에 손대는 행위를 용인하지 않는다.

연쇄살인범이 어릴 때 보이는 세 가지 징후가 있다고 한다. 야뇨증, 방화, 동물 학대가 그것이다.

"가장 두려워하는 방법으로 죽어야만 이게 고통의 회피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수 있어."

투쟁의 수단이나 삶을 완결시키는 방법으로서의 죽음이 아닌, 자신이 맞이하려는 죽음 그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올라온 사람의 절반 정도가 그냥 내려간다."

육체를 의지로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형 선고가 죄수들에게 기괴하게 삶에 대한 집착을 부추긴다고 들었다. 우리 모두가 사형선고를 받고 태어나는 셈인걸 감안하면 이상한 일이다.

이번에도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거겠지.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재키는 존 F. 케네디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애칭이다.

소크라테스는 미망인이 된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한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의 미들 네임이다.

하비는 케네디 암살범인 리 하비 오스왈드의 미들 네임이다. 오스왈드는 잭 루비에게 살해당한다.

제리 헤인스는 케네디의 암살 사건을 처음으로 보도한 사람이다.

메리 무어맨은 케네디 암살 목격자 중 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재키, 소크라테스, 재프루더, 루비, 하비, 제리, 메리라는 이름을 영어로 구글 검색창에 입력하면 쉽게 답이 나왔을 문제였던 것이다. 위키피디아에는 ‘케네디 암살의 목격자들‘ 이라는 카테고리까지 있으니까.

케네디는 하나의 상징물이며, 오직 상징으로서만 기능하는 존재고, 그 상징은 그의 죽음과 분리되지 않는다.

선박왕 오나시스와 같은 대부호도, 재클린 오나시스와 같은 명사도, 후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들과 케네디가 붙어다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에이브러햄 재프루더나 리 하비 오스왈드, 잭 루비, 제리 헤인스, 메리 무어맨과 같은 보통 사람들은 케네디와의 관계가 아니었더라면 후대 사람들에게 언급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케네디도 찰스 맨슨과 비슷했다. 별 내용도 없는 연설을 하고 강한 개인적 매력으로 주변 사람들을 매료시켰으며, 불멸성을 얻어 현대의 아이콘이 됐다.

읽는 이의 가슴에 호소하는 산문시를 두고 입증되지 않은 논리라든가 객관적인 데이터가 없다든가 하는 식으로 비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이 선언에 맞서려면 이 선언과 같은 수준에서 직관적이고 가슴에 와닿는 반박 논리를 펼쳐야 한다. 곳곳의 빈틈을 공격해봐야 핵심을 놓친 트집 잡기처럼 보일 뿐인데, 그게 여러 언론사의 논설위원들이 저지르는 오류였다.

귀신은 함부로 마음을 열지 않는 수줍음 많은 처녀였으며,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르는 강한 자의식의 소유자였다. 처녀귀신은 꿈을 간직한 순수한 영혼이었지만, 죽은 뒤에야 그 꿈을 이룬 소망의 존재, 비운의 주인공이다.

죽음 그 자체와 아무도 자신의 뒤를 따르지 않아 자신의 죽음이 무의미하게 되어버리는 상황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두려운지 알 수 없었다. 그토록 부정해오던 절대자에게 기도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의연하게 구는 것이 가장 자발적인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

‘제자들‘을 자기와 같은 결론으로 유도해 다짐을 받고, 의지를 북돋워주고 흔들리지 않게 하는 데에는 엄청난 감정적 에너지가 필요했다.

이미 결혼을 결심할 때 세연과의 약속은 저버린 거야. 세연과 한 약속만 지켜야 하고 예식장에서 한 약속은 안 지켜도 되나?

ㅈㅅ선언에 대한 내 반론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세연은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의 존경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무가치한 것처럼 얘기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잖아.

좋은 음악이나 그림, 음식을 즐기는 데서 오는 즐거움은 본능적인 것이고,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만들거나 만드는 기술을 갈고 닦는 데에는 왜 우리가 그걸 해야 하는지,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애써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어. 그러니 그런 일을 하면서 보내는 삶에도 가치는 있는 거야.

‘인정에 대한 욕구‘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패배나 사회변혁이 없어도 적절한 수준에서 채워질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앞의 세대라고 해서 그 사람 중 어느 누구 한 명이 자기 힘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것은 아니잖아. 그네들이 가진 자부심도 하나하나 쪼개놓고 보면 나도 가방 하나 들고 해외출장 나가봤다, 밤새워 일해봤다, 거리에서 돌 던져봤다, 그런 일들 아닌가.

ㅈㅅ선언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ㅈㅅ선언은 내가 야망이 없는 시시한 인간이라고 주장하는데, 나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ㅈㅅ선언을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야망과 의미를 부여한다는 얘기에는 더더구나 찬성할 수 없다. 내가 ㅈㅅ선언에 반대하는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다.

ㅈㅅ선언은 잘못됐다. 나는 그것을 안다. 그러나 내가 적절한 반론을 찾지 못하는 사이에 그 선언은 역병처럼 번지고 있었고, 감염자 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더더욱 야망이 없는 시시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걸 막고 싶었다.

‘야심이 너무 큰 나머지 자기 자신이 그 야심의 희생물이 되어버렸다‘

위대한 일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고, 그것은 곧 다른 사람의 애정과 관심을 바라는 욕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누군가 어른스럽게 삶을 사는 법을 세연에게 보여줬어야 했다. 불행히도 우리 주위에는, 아니 한국 사회 전체에 그렇게 성숙한 삶을 사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7급 공무원으로서 나는 재미없고 불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이런 괴로움을 참고 견딘다고 해서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주거나 세상을 바꿀 업적이 생길 것 같지도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내가 ㅈㅅ선언을 허황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그 선언을 제대로 반박하려면 반대로 멋있게 사는 법을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음을 나는 깨달았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생활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음은 차분한데 심장은 왜이리 뛰는 걸까. 도망치려면 지금이라도 도망칠 수 있어.

나는 왜 세연이 물을 그렇게 두려워했는지 궁금했다. 문학작품 속에서 물은 생명과 재생의 이미지가 아니던가? 어렸을 때 물에 빠져 죽을 뻔하기라도 했나?

"그 계획은 잘못됐어. 사람의 목숨을 그렇게 우습게 여기는 생각이 정말 옳은 거라고 믿어?"
"어차피 다들 시시한 인생이잖아."

"내가 연락하지 않았다고 해서 죽어도 괜찮은 건 아니잖아."

언니는 유리 같은 사람이었어. 날카롭지만 깨지기도 쉬웠지.

뭔가 함정이 있음을 직감하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건 일흔 살이 넘어서였어. 그런데 넬슨 만델라가 예순 살 때까지만 해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 상황은 그냥 절망스럽기만 했어.

정말 위대한 생각은 말이지, 어쩌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한테도 인정받지 못할 수 있어. 그래도 위대한 정신이라면 그 고독을 견뎌내지.

지금 세상은 너희들이 결론지은 것만큼 결코 완벽한 게 아냐.

나도 따라 뛰어들었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이것은 내가 기다려온 죽음의 방식이다. 선로에 뛰어든 어린아이를 구하려다 지하철에 치여 죽는 것을 내가 얼마나 바랐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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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전직 절대자는 아카데미 펫 관리자 08 전직 절대자는 아카데미 펫 관리자 8
말랑부들 / ARC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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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생을 물 위에 떠다니며 흘러가는 낙엽에 빗대어 표현한 장면이었다. 본문에선 이것을 제3자의 시선과 낙엽 자체의 시선 이렇게 2가지로 살펴보는데, 이를 통해 한걸음 떨어져서 넓은 시야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스스로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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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표백 세대‘로 일컬어지는 세대의 한계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그들의 잘못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소위 말하는 ‘완성된 사회‘가 그들에게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고민 등과 같은 것들을 할 필요조차 없게 만든 측면도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쉽게 말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좀 더 크다는 말이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이렇게 중간중간 나오는 저자의 날카로운 시대통찰(?) 같은 것들이 독자인 나에게는 뭔가 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는 저자의 시대통찰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이 시대를 통찰하는 시각은 뭔가 예리함이 느껴졌다.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고민과 생각을 깊게 했던 흔적들이 엿보였다고나 할까. 독자인 나로썬 훌륭한 인사이트(통찰력)를 얻어가는 느낌도 들었다. 저자께 감사드린다.

이런 한계 속에서 표백 세대의 내면은 추하게 일그러진다. 그들은 자신의 역사적인 위치나 사명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이 없으므로 역사의식이 희박해지며, 민족주의처럼 그들의 자존감을 손쉽게 높여줄 수 있는 불합리하고 값싼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긴다.

박탈감과 좌절감은 뿌리 깊이 박혀 있지만 이런 좌절감은 집단적인 분노로 발전하지 못한다. 투쟁은 손해보는 일이라는 것을 모두 다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선배와 상사, 기성세대를 찢어죽일 것처럼 성토하다가도 면접 시험장에서는 한없이 고분고분해지고 공손해진다.

패배를 자연스러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이들 중 몇몇은 정면 승부를 벌이고 작은 이득을 위해 아득바득 싸우는 태도를 촌스럽다고 여기게 된다. 기왕에 지는 것, 한발 물러난 자세로 "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와 같은 태도를 보이거나 아예 싸움을 피하는 것이 그나마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다. 그것이 ‘쿨한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

진정으로 새로운 주장이나 사상이 없는 상태에서 조롱과 비아냥거림, 의미 없는 장난이 이 세대(표백 세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사유와 생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표백 세대는 소비를 삶의 표현 방식으로 삼는데, 이는 여가와 사교 활동에서 문화예술 및 창작 활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 걸쳐 이들의 사고와 행태에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들(표백 세대)이라고 해서 바보는 아니며, ‘뭔가가 잘못됐다‘는 느낌 정도는 갖고 있다. 그러나 논리적으로 모순이 없는 사회에 대해 그런 의심을 품는 행위는 자칫 그 자신을 바보라고 인정하는 셈이 될 수도 있기에, 이들은 그런 생각을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다. 고로, 음흉함은 그들의 제2의 천성이 된다.

마르크스는 노예는 자신의 노예적 존재를 지속할 수 있는 일정한 조건을 보장받는 데 비해 노동자는 그 계급적 지위가 점점 가라앉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노동자는 노예보다 더 비참하다고 주장했다.

표백 세대는 정신적인 면에서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보다도 더 한심한 처지에 있다.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사회라는 ‘다음 단계‘를 꿈꾸며, 프롤레타리아운동의 주체로서 뚜렷한 이념과 이상을 갖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표백 세대는 지배 이념에 맞서 그들을 묶어 주거나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이념이 없으며, 그렇기에 원자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낙원‘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이상향은 있을 수 없기에, 표백 세대는 혁명과 변혁에 관한 한 아무런 희망을 품을 수 없다. 이들은 사회를 비난할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 세대의 실패는 그들 개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

표백 세대가 완성된 사회를 살아가는 방법은 순응, 타협, 소극적 저항, 적극적 저항의 네 가지로 분류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순응은 완성된 사회의 시스템과 경쟁 체제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 판검사나 의사가 되거나 좋은 기업에 취직해 ‘치열하게‘ 살다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 목표다. 존경받는 기업인이나 법조인, 정치인들은 거의 다 이 분류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고시 폐인‘ , 범죄자와 사기꾼, 실패한 사업가나 장사꾼, ‘악바리‘ 혹은 ‘또순이‘라는 칭찬을 듣는 저소득층도 이 유형에 속한다.

타협은 완성된 사회의 가치관에 대해 약간의 의심을 품으면서도 대체로 그에 따라가는 삶의 형태다. 이런 삶의 유형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이타적인 행위를 통해 자기만족을 얻으며 그런 의심을 억누른다. 여가 시간에 봉사활동을 하거나, 권력에 대한 의지 없이 선의로 정당 활동에 참여하거나 기부금을 내는 행동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그런 활동이 근본적으로 삶의 우선순위에서 가장 앞에 오는 것이 아니며, 그런 활동들에 대한 욕구도 따지고 보면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삶의 형태는 완성된 사회에 대단한 위협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권장되기까지 한다.

소극적 저항은 완성된 사회의 가치관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없으나 적어도 그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닌 삶의 형태다. 예술가, 종교인, 전업 NGO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돈 되는 일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직업인, "패배자라고 불려도 좋으니 아등바등 살지 않고 속 편하게 생활하고 싶다" 라며 교직원이나 하급 공무원, 카페 사장 따위를 꿈꾸는 부류도 이에 속한다.

이들(소극적 저항자)은 완성된 사회의 가치관을 따르는 일을 경멸하지만, 자신들이 완성된 사회로부터 제대로 된 존경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들 중 일부는 경쟁 시스템에서 도피하기 위해 이런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세속적인 성공을 거머쥐게 되면 언제든지 ‘순응형‘이나 ‘타협형‘으로 태도를 바꿀 준비가 돼 있다.

소극적 저항자들은 대체로 연대를 하지 않으며 사회시스템을 전복하려는 의도가 없기 때문에, 수가 너무 많아지지 않는 한 완성된 사회의 관점에서 대체로 무해하다.

적극적 저항은 사회에 대한 폭력적인 타도를 시도하는 것이다. 정의에 따라, 완성된 사회에서 적극적 저항은 이념적 근거를 가질 수 없다. 적극적 저항자들은 처참할 정도로 논리가 없거나 아니면 일반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극단적인 원리주의를 자신들의 이념으로 채택한다. 프랑스나 그리스 등에서 간혹 보는 방향성 없는 학생 폭동이 전자의 예이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나 대단히 공격적이고 반체제적인 환경주의, 공산주의, 민족주의 그룹 등이 후자의 예다.

완성된 사회는 이들(적극적 저항자)을 사회의 적으로 규정하는 데 망설임이 없으며 이념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적극적 저항자들의 성공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기껏해야 기억에 남는 테러를 몇 건 저지를 수 있을 따름이다.

물을 인정할 수 없는 물고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다.

자살 선언자들은 완성된 사회에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미약한 대가를 사양하며, 완성된 사회를 긍정해 그 구조 안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죽음의 고통과 사후에 당할 모욕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사후 세계에 대한 어떤 기대나 선망도 갖고 있지 않다.

기실 완성된 사회는 어떤 사상이나 자존심을 위해 개인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행위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완성된 사회는 인간을 하찮은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자살 선언자는 그 존재만으로 완성된 사회의 기본 가정을 부수며, 완성된 사회가 완전하지 않음을 고발한다. 자살 선언자는 희고 완벽한 완성된 사회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점 얼룩이다.

완성된 사회는 자살 선언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능력이 없으며, 자살 선언자의 행위를 이해조차 할 수 없다.

자살 선언자들의 목표는 완성된 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완성된 사회의 천박함과 불완전성을 고발하고 자신들이 품고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증명하는 데 있으며, 그 방법은 오로지 죽음이라는 완전한 거부 뿐이다. 왜냐하면 봉건시대의 부르주아지와 산업 시대의 프롤레타리아에게는 대안과 미래가 있었으나 표백 세대와 자살 선언자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완성된 사회는 구성원들의 최대 복리를 위해 시스템을 움직이지만 구성원들의 자존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웅으로 태어났으나 우리가 태어난 이 세상은 영웅의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영웅다운 죽음뿐이다.

부모 세대가 만들어놓은 무대 위에서 하찮은 욕망을 채우는데 시간과 열정을 허비하며 의미 없는 삶을 보내고 우리 세대가 별 볼일 없음을 시인할 것인가, 아니면 담대한 결단으로 그대 안에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증명하고 우리를 비웃어오던 세상에 충격과 공포를 줄 것인가. 선택은 그대에게 달렸다.

하급 공무원은 사무관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사무관은 국-과장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국-과장은 실장과 차관, 장관 눈치를 살펴야 하고, 장관은 청와대와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데, 여론은 공무원들이 에어컨 바람 쐬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니 냉방관련 지침을 바꾸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공무원들은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하급공무원들도 그랬고, 국-과장들도 똑같았다. 황당한 지시가 떨어지지 않도록 장차관의 마음을 교묘히 움직이는 재주가 있는 국-과장들이 능력있는 상사로 칭송을 받았다. 그러니 느는 것은 눈치밖에 없었다.

잡기가 사실과 진실의 기록일 때에만 거기에서 힘이 나올 것

근처에 있던 네 사람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선언은 그냥 우스갯거리일 뿐이다.

재키는 그들에게 출구를 열어두었다. 4년 뒤에 그들은 한 번 더 선택할 수 있다. 그건 출구가 있다고 말해놓음으로써 예비 선언자들을 더 교묘히 얽어매기 위함이기도 했다. 약속은 그냥 파기해도 되지만, 이 출구를 통해 나가려면 ‘왜 나는 이 세상을 살기로 결심했는가‘를 설명해야 한다.

직장과 직업이 한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결정짓고, 사회적 신분이 그 사람의 내면과 성격을 좌우하는 것 같았으며,

이렇게 저열한 불편과 냉대를 당하고, 늘 기다려야 하고, 모든 걸 상대방 편한 대로 해야하는 것은 노동 계급의 생활에선 당연한 일이다... 그는 행동하는 게 아니라 무엇에 따라 처신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신비로운 권위의 노예임을 자각하며, 자신이 이것이나 저것이나 다른 그 무엇을 원해도 ‘그들‘이 결코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완성된 사회에서 자살은 낙오이며, 낙오자에게 완성된 사회가 해줄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낙오자 수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은 구조적인 실패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기에 완성된 사회는 그 사실을 알리는 데 인색하다.

충격적인 아이디어를 열심히 짜내보라

"너, 사람이 우울증 약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좀비처럼 돼. 그게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약이 아니라 머리를 멍하게 해서 기쁜 일이고 슬픈 일이고 못 느끼게 만드는 약이야."

"거대한 마귀가 아니라 아주 작은 악마가 이반 카라마조프를 괴롭혔듯이, 나를 그저 우러러보기만 하고 아무 자존감이 없어 보이는 네가 나한텐 골칫덩이였지. 그런데 너를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자기혐오에 빠지고 상처받는 사람은 나였거든. 너를 경멸할수록 너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지. 너한테는 이상한 매력이 있어. 그러다가 나는 깨달았어.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랑을 어찌할 수 없다는 걸."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이 이런 것 같아. 고통이야. 그러나 그 사랑의 정체가 고통이라고 해서 그게 사랑이 아닌 건 아니야. 세상에는 그런 사랑도 있어."

내 남은 삶을 24시간으로 확정한 이제야, 나는 사물을 보다 뚜렷이 볼 수 있게 됐다. 그토록 손에 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너의 모습이 보이고, 너의 생각들이 분명하게 이해되기 시작한다.

나는 너 때문에 죽는 게 아니면서, 너 때문에 죽는다.

너는 내가 끊임없이 좌절하고 절망해야 했던 이유가 내 잘못 때문이 아님을 일깨워줬다. 네가 그런 사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 자책만 하면서 계속 살아갔겠지.

나는 너를 쫓아 죽는 게 아니면서, 너를 쫓아 죽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도 정치를 이용한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알 때만, 아니 자신의 적수가 누구인지를 알 때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그가 겪고 있는 문제를 안다는 것은 곧 그 자신을 아는 일이었다.

표백 세대의 좌절은 돈이 많거나 적은 것과는 상관이 없어.

숭배자들은 어느 시점이 됐을 때 모두 재키에게 "너한테 나는 무슨 의미냐" 라고 따졌다. 재키는 그런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네가 나를 의심하는 것만큼 나도 너를 의심하고 있어.

"왜냐하면 마음속에 의심을 가진 채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야. 그러니 너도 나를 의심하지마. 나를 믿고 스스로를 구원하도록 해."

개인적인 ‘성공 신화‘는 완성된 사회에서도 계속 나타날 것입니다만, 그것이 사회의 변화를 일으킬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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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립백 바깥여름 - 12g, 7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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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에 이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드립백 바깥여름'입니다. 이번 시즌에도 기존에 출시되었던 드립백들과 더불어 아직 출시되지 않은 드립백도 함께 맛볼 수 있었습니다.

알라딘에서 드립백 커피가 출시되면 거의 빠짐없이 구매하여 마셔보는 편인데, 특별히 이번 패키지에는 '페루 라 리마 문도노보' 라는 이름의 커피가 새롭게 눈에 띄었습니다. 찾아보니 역시나 아직 출시되지 않은 드립백 커피였습니다. 먼저 이 드립백 커피에 대해 얘기하자면 포장을 뜯었을 때 그 향이 굉장히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향만 맡았을뿐인데 마치 커피를 절반은 마신 것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아무튼 이 커피를 내리자마자 마셔보니 처음에는 은은한 풋사과향과 오렌지 껍질에서 나는 향같은 게 느껴졌고 마지막 목넘김때는 연한 캐러멜 맛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로 리뷰해볼 드립백은 '콜롬비아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나에어로빅' 이라는 커피입니다. 이 커피는 원두로는 나온 적이 있으나 드립백으로는 아직 나온 적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처음 경험해봤는데, 이 드립백 또한 포장을 뜯었을 때 향이 강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뜨거운 물에 내려서 마셔보니 은은한 라즈베리 향과 함께 건자두(Dried Plum)와 사탕수수의 일종이라고 알려진 럼(RUM)이 더해져 다른 커피에 비해 달달함을 보다 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에티오피아 넨세보 불가 내추럴' 인데, 이 커피는 몇 달전에 드립백으로도 출시되었으나 그당시 아쉽게도 경험해보지 못했다가 이번에 기회가 되어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자몽만의 상큼하면서도 약간은 씁쓸한 향이 느껴졌고, 홍차의 그득함과 함께 아카시아 꿀이 들어가서 그런지 뒷맛에서 은은한 달달함이 느껴졌습니다.

네번째로는 '인도 리버데일 SL-9' 인데 이것은 예전에 단독으로 출시된 적도 있고 과거 '드립백 가을하다'에 패키징되어 출시된 적도 있는 커피입니다. 겉봉에 써있는 것처럼 오렌지의 상큼함과 팝콘의 고소함과 다크 초콜릿의 깊고 진한 맛이 느껴지는 커피입니다.

나머지 브라질 캄포 베르텐데스 카투아이 허니, 블렌드 블랙슈가, 블렌드 오렌지선셋의 경우 이미 출시되었던 드립백이고 각각의 해당 제품란에 제가 100자평을 별도로 남겨 놓았으니 관련 내용을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각각의 드립백마다 미묘하게 맛과 향이 차이는 있을지언정 무더운 날씨에 잠시 쉬어갈 때 리프레시하기에는 더할 나위없이 유용한 '드립백 바깥여름' 이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리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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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뇌의 복잡성을 이해하기 위해 공학적인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여기서 공학적인 방식이라는 것은 건축물의 구조를 하나하나 쪼개서 보는 것과 비슷하게 뇌의 구조를 각각의 영역별로 쪼개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포스팅에서는 뇌의 전체적인 구조가 구 모양으로 된 이유 및 세포 단위로 이루어진 뇌의 구성 요소들에 대해 살펴봤었고, 오늘은 이러한 세포들이 고도의 통합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일부 용어들은 좀 생소하게 느껴져서 인터넷에 검색해가면서 읽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기존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개념들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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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에서는 뇌에 대한 파편화된 지식들을 하나하나 꿰어가면서 마음을 만들어 내는 물리 과정에 대해 살펴본다. 이를 통해 뇌의 각 부분이 어떻게 상호연관되어 작동하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독자인 나는 뇌과학자가 아니기에 전문적으로 뇌를 연구하는 연구자들만큼의 수준에는 당연히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뇌의 작동원리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얼마전에 읽었던 《뉴턴 하이라이트, 수면과 기억의 뇌과학》이라는 책에서 뇌의 구조와 관련된 그래픽들을 일부 접해봤던터라, 지금 읽고 있는 이 《통섭》에 나오는 각종 설명들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확실히 텍스트만 읽는 것보다는 관련된 이미지를 함께 떠올리며 생각하는 것이 이해도를 높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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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는 마음과 의식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어떻게 표현되고 설명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는데, 이것들을 보면서 과학자들의 사고방식과 과학자가 아닌 일반사람들의 사고방식은 확실히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작년에 공들여 읽었던 유시민 작가의《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라는 책에 나왔던 내용을 떠올려보자면, 어떤 동일한 대상을 보더라도 과학자들과 비과학자들 간에는 그것을 보는 관점이나 생각이 엄연히 다르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이에 대해 조금 더 부연하자면 과학자들은 어떤 것을 말할 때 객관적이거나 실험 등을 통해 밝혀진 물리적인 증거에 입각해서 얘기하는 반면, 비과학자들은 객관적으로 증명된 것에 근거하기보다는 단지 직감이나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 또는 느낌에 따라 얘기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솔직히 작년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단지 머리로만 이해했었는데, 오늘 이《통섭》의 본문에 나온 마음과 의식에 대한 과학자의 정의를 보면서 유시민 작가가 했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를 비로소 마음으로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아마도 이해의 깊이가 한 층 더 깊어진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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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뇌의 속성에 대해 잠시 살펴봤는데, 독자인 내가 느낀 핵심만 간단히 언급하자면 ‘뇌는 그저 존재할 뿐이고, 각각의 영역이 신경 활동에 의해 얽힐 때 의식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다음 포스팅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추가로 좀 더 다뤄보겠다.


고도의 통합이 뇌 속에서 이뤄지기 위해서는 뇌 속의 회로 배선이 매우 복잡하고 정확해야 한다. 그렇다면 뉴런의 연결이 어떤 경우에 가장 많아질 수 있을까? 뇌의 구성 요소가 살아 있는 세포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 보자. 많은 다른 세포체(cell body)에 개별적으로 닿고 전달되는 축삭의 끝부분들이 실처럼 연장되면서 자라날 때 뉴런 연결의 수가 최고로 증가한다. - P195

축삭의 방전은 축삭 나무의 말단 가지들로 이동한다. 이렇게 이동한 신호는 다른 세포체에 닿음으로써 수용된다. 또한, 신호 전달은 세포체뿐만 아니라 수상 돌기(dendrite)가 축삭 나무의 말단과 연결되는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 P195

전체 신경 세포를 축소된 오징어라고 상상해 보자. 한 묶음의 촉수들(수상 돌기)이 그 몸통으로부터 뻗어 나와 있다. 한 촉수(축삭)는 다른 촉수들보다 훨씬 더 길다. 그리고 그 촉수의 말단으로부터 더 많은 촉수들이 가지를 치고 나온다. 메시지는 오징어 몸통과 짧은 촉수들에 접수되어 긴 촉수를 따라 다른 오징어에 전달된다. 말하자면, 뇌는 1조 마리의 오징어가 함께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다. - P195

세포 간 연결 ㅡ좀 더 정확히 말해 연결점과 그 연결점 들을 분리하는 초미세 공간ㅡ 을 우리는 시냅스(synapse)라 부른다. - P195

전기 방전이 시냅스에 이르면 그 방전은 말단 가지의 끝부분으로 하여금 신경 전달 물질을 방출하도록 한다. 이때 방출되는 화학 물질은 수용 세포 내에서 방전을 일으키거나 방전을 일으키지 못하게 만든다. - P195

각 신경 세포는 축삭의 말단부에 위치한 시냅스를 통해서 신호를 수많은 다른 세포들에 전달하고 세포체와 수상 돌기에 있는 많은 시냅스를 통해서는 신호를 입력받는다. 각각의 경우에 신경 세포는 축삭을 따라 다른 세포들에 충격을 가하거나 가만히 내버려 둔다. 이 두 가지 반응은 신경 충격을 준 모든 세포들로부터 받은 신경 전달 물질의 총합에 따라 달라진다. - P196

전체 뇌의 활동, 즉 의식적 마음에 의해 경험된 각성과 일시적 기분은 수많은 시냅스를 적시고 있는 신경 전달 물질들의 수준들에 심대한 영향을 받는다. - P196

신경 전달 물질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세틸콜린,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rin), 세로토닌 그리고 도파민이다. 그밖에는 아미노산 감마아미노부티르산(r-aminobutyric acid, GABA)이 있으며 놀랍게도 기본적인 기체인 산화질소도 있다. - P196

어떤 신경 전달 물질은 자신이 접촉하는 뉴런을 흥분시키지만 다른 것들은 억제한다. 신경 체계 내부의 회로 위치에 따라 영향력을 행사하는 물질들도 있다. - P196

태아와 영아의 신경 체계가 발생하는 동안에 뉴런들은 마치 오징어의 촉수가 성장하듯이 축삭과 수상 돌기를 세포 환경 속으로 확장시킨다. - P196

뉴런들이 만드는 연결은 정확하게 프로그램되어 있고 그 운명은 화학적 자극이 결정한다. 각 뉴런들은 각 장소에서 신호 전달의 특수한 역할을 하도록 조화롭게 조직되어 있다. - P196

축삭은 몇백만분의 1미터나 수천분의 1미터 정도까지만 뻗어나갈 수도 있다. 수상 돌기와 축삭 나무 말단부는 수없이 다양한 모양을 가질 수 있다. 예컨대, 이파리가 다 떨어진 겨울나무같이 성길 수도 있고 펠트 융단처럼 촘촘할 수도 있다. - P196

순기능과 아름다움은 같이 가는 법이다. - P196

"밝은 색의 나비를 쫓는 곤충학자처럼 나는 복잡 미묘하고 우아한 형태를 가진 세포, 즉 영혼의 신비로운 나비를 회색 물질의 정원에서 사냥하고 있었다. 그 나비의 날갯짓은 언젠가 ㅡ그 누가 알랴?ㅡ인간 정신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줄지도 모른다." _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 P197

뉴런 체계들은 신호를 받고 중계하는 네트워크를 이룬다. 그 체계들은 다른 복합체들과 교신함으로써 체계들의 체계를 만들고 쌍방향의 회로를 형성한다. 이것은 마치 뱀이 자기 꼬리를 물 듯 맞물려 있는 꼴이다. - P197

각 뉴런은 다른 많은 뉴런들의 축삭 나무 말단부들에 접촉되어 있고 그 뉴런이 활성화될 것인지는 마치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 투표처럼 결정된다. - P197

신경 세포는 마치 모스 부호 체계처럼 띄엄띄엄 점화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외부에 전달한다. 세포가 만드는 연결들의 수, 신호의 전달 양상 그리고 사용되는 신호에 따라 그 세포가 뇌의 전체 활동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결정된다. - P197

당신이 호미니드의 뇌를 설계하려고 한다면 또 다른 최적 설계 원리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정보 전달이 특수화된 기능들을 충족시키는 뉴런 회로들이 집합체로서 함께 자리 잡을 때 향상된다는 점이다. 신경생물학자들에 따르면 감각 중계소, 통합 중추, 기억 모듈 그리고 감정 통제 중추 등이 진짜 뇌에서 그러한 집합체에 해당된다. - P197

신경 세포체들은 층이라 불리는 평평한 집합소 내에 모여 있고 핵을 에워싸고 있다. 대부분의 신경 세포체들은 뇌의 표면이나 그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들은 축삭들로 서로 엉켜 있을 뿐만 아니라 더 깊은 곳에 존재하는 뇌조직과 연결되어 있는 다른 세포체들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 결과,
다량의 세포체들로 인해 표면은 회색이나 밝은 갈색을 띠고 뇌의 안쪽 부분은 축삭의 미엘린 수초 때문에 흰색을 띤다. - P198

인간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큰 동물들 중에서 몸 크기에 비해 뇌용량이 가장 큰 동물일 것이다. 영장류의 한 종으로서 인류의 뇌는 틀림없이 물리적 한계점에 이르렀거나 그것에 가까이 가 있다. - P198

심지어 어른 뇌 크기조차도 공학적으로 보았을 때 위험하다. 왜냐하면 머리는 깨지기 쉽고 그 내부에는 뼈와 살이 복잡 미묘한 방식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게다가 그 사이에 액체가 차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속에 있는 뇌는 손상되기 쉬울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인간은 쉽게 정신을 잃기도 하고 뇌와 관련된 장애로 고통받기도 한다. - P198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물리적으로 폭력적인 접촉을 피하려고 한다. 우리 조상이 야만적인 힘과 지성을 맞바꾸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송곳니로 무장한 적을 붙잡고 때려눕힐 필요가 없다. - P198

뇌의 용량이 이렇게 본래부터 제한되어 있다면 의식적 사고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고차원의 통합 체계와 기억 은행을 두개골 속을 집어넣으려면 묘수가 있어야 한다. 실현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뇌의 표면적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 P198

넓은 종이에 세포들을 뿌려 놓고 그것을 구겨서 공 모양으로 만들어 보자. 인간의 대뇌 피질은 표면적이 1,000제곱인치 정도의 종이와도 같다. 그 대뇌 피질은 1제곱인치당 수백만 개의 세포체로 쌓여 있고 종이접기와 같이 꾸불꾸불하게 접히고 뭉쳐져서 1리터 정도의 두개골 공동 속에 쏙 들어간다. - P198

우리가 어떤 좋은 것을 소유하고 있건 그것은 길고 지난한 진화의 역사를 통해 얻어낸 것이다. 인간의 뇌는 4억 년간 이뤄진 시행착오의 증인이다. 그리고 그 흔적은 화석 기록과 분자계통학적 분석을 통해 추적할 수 있다. - P199

분자생물학적 상동 관계를 따지는 분자계통학에 따르면 어류, 양서류, 파충류, 초기 포유류 그리고 인간을 제외한 모든영장류가 거의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서열들이 존재한다. 마지막 단계인 인간에 와서 뇌는 언어와 문화에 적합하게끔 급진적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이것은 텅 빈 두개골 속에 최신 컴퓨터를 이식하는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뇌에는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 P199

과거의 뇌는 원래 본능의 운반자로서 조직되었는데 새로운 부분들이 조금씩 추가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진화했다. 새로운 뇌는 옛날 뇌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른 기능들을 추가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생명은 다음 세대까지 살아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인간 본성이라는것이 생겨났다. - P199

동물적 기교와 감정을 물려받기는 했지만 정치와 예술의 열정을 합리성과 함께 묶어 낸 천재. 우리는 생존의 새로운 장치를 창조하기 위해 이런 천재가 되었다. - P199

열정과 이성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P199

감정은 이성을 당혹케 만드는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다. - P200

진보는 사소한 발견과 조심스러운 추론을 통해 이뤄지는 법이다. - P200

인간 뇌는 어류에서 포유류에 이르는 척추동물 전체에서 발견되는 세 가지 원시적인 구역을 보존하고 있다. 능뇌(能腦, hindbrain), 중뇌(中腦, midbrain), 전뇌(前腦, forebrain)가 그것이다. 뇌간으로 지칭되는 능뇌와 중뇌는 부풀어 오른 전뇌를 떠받치고 있다. - P200

능뇌는 뇌교(腦橋, pons), 연수(延髓, medulla), 소뇌(小腦, cerebellum)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들이 공동으로 호흡과 심장 박동과 신체 움직임을 조절한다. 중뇌는 잠과 각성을 통제하며 청각 반응과 지각을 부분적으로 조절한다. - P200

전뇌의 중심에는 감각 정보의 통합과 전달뿐만 아니라 감정적 반응들을 조절하는 교통 통제소인 변연계(limbic system)가 있다. 전뇌의 핵심 부분은 편도체(감정), 해마(기억, 특히 단기 기억), 시상하부(기억, 온도 조절, 성적 충동, 배고픔, 목마름) 그리고 시상(온도 의식, 냄새를 제외한 모든 감각, 고통 의식 그리고 몇몇 기억 절차의 중재)이다. - P201

전뇌는 대뇌 피질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진화의 역사를 통해 성장하고 확장되어 결국 뇌의 다른 부위를 덮어 버렸다. 의식의 일차 소재지로서 전뇌는 감각 기관을 통해 만들어진 정보를 저장하고 대조한다. 전뇌는 자율 운동을 지휘하고 말하기 능력과 동기 부여를 포함하는 상위 기능들을 통합한다. - P201

이 세 가지 구획ㅡ능뇌와 중뇌를 합한 것. 변연계, 대뇌 피질ㅡ의 핵심 기능들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명확히 요약될 수 있다. 심박(heartbeat), 심금(heartstrings) 그리고 냉철(hearttless). - P201

의식 경험의 자리는 전뇌의 한 부분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정신 활동의 상위 단계는 전뇌의 여러 부분들에 퍼져 있는 회로들을 통해 구현된다. 가령 색깔을 보거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각 정보는 망막의 원추세포와 중간 신경 세포로부터 시상을 통해 뇌의 뒷부분에 있는 시각 피질로 전달된다. - P201

정보가 각 단계에서 암호화되고 새롭게 통합된 후에 그 정보는 뉴런 점화 패턴을 통해 외측 피질의 언어 중추를 향해 퍼져 나간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빨간색을 보고 "빨갛다." 라고 말한다. 만일 이 현상을 생각한다면 그 패턴과 의미의 연결은 더 늘어나야 하고 따라서 뇌의 활성 부위는 더 넓어진다. 그 연결이 더 새롭고 복잡할수록 이런 확산 활성의 양은 더 늘어난다. 그런 경험을 통해 그 연결이 더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그것은 점점 자동화된다. 그래서 동일한 자극이 이후에 들어오면 새로운 활성은 줄어들고 그 회로는 좀 더 예측 가능해진다. 결국 이런 절차는 ‘습관‘이 된다. - P202

기억 형성 경로들 중 하나에서는 감각 정보가 대뇌 피질에서부터 편도체, 해마, 시상 그리고 전전두피질(이마 바로 뒤에 있다.)로 전달되고 다시 저장을 위한 피질의 원래 감각 영역으로 전달된다. 암호는 이런 과정을 통해 해독되고 뇌의 다른 부분들에서 들어오는 입력에 따라 변경된다. - P202

신경 세포가 워낙 작기 때문에 상당량의 회로는 매우 협소한 공간내에 묶일 수 있다. 뇌의 기저부에 있는 주요 중계 · 통제소인 시상하부는 대략 리마콩(강낭콩의 일종)만 하다. (다른 동물들의 신경계는 이보다 훨씬 더 작다. 예를 들어 모기를 비롯한 작은 곤충들의 뇌는 비행에서 짝짓기까지 복잡한 일련의 본능 행동들을 수행하기 위한 정보를 담고 있지만 육안으로는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작다.) - P202

인간 뇌의 특정 회로의 교란은 종종 기이한 결과들을 낳는다. 대뇌 피질의 옆면과 뒷면을 차지하고 있는 두정엽(頭頂葉, prietal lobe)과 후두엽(後頭葉, occipital lobe) 밑면의 특정 부위가 손상되면 실인증(prosopagnosia) 이라고 불리는 희귀한 증상이 나타난다. 실인증 환자는 사람의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을 알아보지는 못하지만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있다. 또 특이하게도 그 환자는 얼굴이 아닌 다른 대상들을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데 문제가 없다. - P202

자유 의지를 생성하고 지각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중추가 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전방 대상 고랑(anterior cingulate sulcus) 내부나 적어도 그 근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부위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자기 자신의 복지에 대한 주도권과 관심을 잃는다. 그들은 매순간 집중하지는 못하지만 압력을 받을 때에는 생각하고 반응한다. - P203

다른 복잡한 정신 작용들도 뇌의 많은 영역들이 관여함으로써 발생하는데 특정 부위에 교란이 생기면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측두엽 간질 환자는 종종 과종교증過宗敎症, hyperreligiosity)을 보인다. 예컨대 크든 작든 모든 사건들에 우주적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은 또한 자신들의 비전을 비전문가 수준에서 시, 편지, 소설 등의 형태로 표현하려는 강박증, 즉 과묘사증(過描寫症, hypergraphia)을 보이기도 한다. - P203

감각통합에 사용되는 신경 회로도 상당히 특수화되어 있다. 피험자가 동물의 사진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을 PET 영상으로 촬영하면 피험자의 시각 피질은 물체 외양의 미묘한 차이를 가려낼 때와 동일한 활성 패턴을 보인다. 반면 피험자가 조용히 연장이 그려진 사진들에 이름을 붙이면 신경 활성은 손의 움직임과 행동 단어들 ㅡ 가령, 연필에 대해서는 "쓰다."와 같은 ㅡ 과 연관된 피질 영역으로 전이된다. - P203

마음은 의식 경험과 잠재 의식 경험의 흐름이다. 마음의 뿌리에는 감각 인상의 암호화된 표상과 기억 그리고 감각 인상의 상상이 있다. - P204

마음을 구성하는 정보는 방향과 크기를 지시하는 벡터 암호를 통해서 저장되거나 쉽게 검출된다. 가령 어떤 맛은 각각 달다. 짜다. 시다의 정도를 표현하는 신경 세포들의 활동들을 합함으로써 분류할수도 있다. 만일 뇌가 각각의 맛을 10단계로 구분해 평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면 우리는 10×10×10=1,000개의 맛, 즉 물질을 구분해 낼 수 있을 것이다. - P204

의식은 그러한 암호화 네트워크가 병렬 처리되는 과정이다. 1초에 40번의 주기로 신경 세포의 동기화된 발화를 통해 많은 의식들이 연결되어 있다. 이런 과정 때문에 다중 감각 인상의 내부 지도 그리기가 동시적으로 이뤄진다. - P204

몇몇 인상은 신경계 밖의 계속적인 자극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실재를 표상하지만 다른 것들은 피질의 기억은행에서 회상되는 것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합해져서 시나리오를 창조하는데 이 시나리오는 실제로 시간에 따라 이리저리 흘러 다닌다. 그 시나리오들은 가상현실이다. 그것들은 외부 세계의 일부와 거의 일치할 수도 있지만 완전히 분리될 수도 있다. 그 시나리오들은 과거를 재창조하고 앞으로 하게 될 생각과 행동을 위한 선택 가능한 대안들을 구축한다. 또한 조밀하고 세밀하게 분화된 뇌 회로의 패턴을 구성한다. - P205

외부로부터의 입력에 완전히 개방되면 그 시나리오들은 감각 기관의 감시를 받는 몸의 활동들까지 포함한 환경의 모든 부분들에 잘 대응한다. - P205

뇌 안에서 누가 혹은 무엇이 이 모든 활동들을 감시하는가? 어떤 이도, 어떤 것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뇌의 어떤 영역도 그 시나리오를 볼 수는 없다. 그것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의식은 이 시나리오들로 구성된 가상 세계이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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