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스트레스와 만성적인 각성 상태‘ 라는 주제의 글에서 이와 관련한 한 가지 사례가 나온다. 지난번 포스팅부터 쭉 이어지는 사례인데, 아이의 이상행동을 근본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물처방이 아니라 스트레스 유발 요인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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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저자는 경제적 안정이 집중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는 핀란드에서 실제로 실행했던 기본소득과 관련한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여기서의 핵심은 기본소득으로 인해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되자 사람들의 집중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집중력 측면에서만 본다면 이는 어느 정도 수긍이 되는 얘기다. 만약 돈이 없어서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을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아무래도 경제활동 외의 다른 활동들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기본소득이 주어졌을때 향후 발생할 인플레이션 문제 같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당장 하루 이틀 먹고 사는 것이 급한 상황에 처해있는 분들의 경우에는 인플레이션 따위가 뭔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는 건 기본적으로 시중에 돈이 풀리는 것이기에 통화량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고 이로 인해 화폐가치가 폭락하여 과거 100 원이면 살 물건들을 이제는 1000 원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 식의 일들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기본소득이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려면 세금을 많이 걷든가 국가에서 돈을 계속 찍어내야 하는데, 전자의 경우 조세저항이 심하게 되어 사람들이 근로의욕이 떨어질 수 있고, 후자의 경우는 위에 언급했듯이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기에 경제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는 기본소득을 주는 것이 좀 우려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제시한 사례에 대해 약간은 비판적인 사고로 생각해봤는데, 이 책은 책의 제목인 ‘도둑맞은 집중력‘을 되찾아 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기에 독자인 내가 언급한 경제적인 측면의 경우 굳이 이 책에서 심도있는 고려 대상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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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 바꿔서 11장에서는 집중력과 생산성의 관계에 관한 글이 나온다. 본문에는 주4일제와 관련된 논의들이 나오는데, 무조건 많이 일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집중력있게 일하면 더 적은 시간을 일해도 집중력없이 몇 시간 더 일하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게 여기서의 핵심 내용이다.

잘 생각해보면 잠을 줄인다고 해서 깨어있는 시간에 집중도가 올라간다거나 혹은 투입시간 대비 일의 효율이 꼭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독자인 나는 종종 느꼈다. 그래서 본문에 나온 저자의 얘기가 더욱더 공감이 갔다. 오히려 집중도가 떨어지면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시간을 소진하게 되고 이는 결국 악순환으로 이어져 별도의 휴식을 취하지 않는 한 피곤한 상태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지만 노파심에 추가로 덧붙이자면 이것은 집중력이 좋아졌을 때 그 사람이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기에 지나치게 게으른 사람들에게 적용하기는 힘들 것이다. 최소한 근로하려는 의욕이 있는 사람들이 번아웃이 오는 상황에 처해있을 때 가장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문득 워라벨의 최적 균형점은 과연 어디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업종마다 천차만별이기에 획일화하기는 힘들겠지만, 사람들마다 자신의 최적 균형점을 찾아서 그에 맞게 생활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하지만 말처럼 참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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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절인 12장에서는 우리가 먹는 식단이 우리의 집중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진짜 아무 음식이나 먹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급격한 에너지의 변동은 처음엔 잠깐 괜찮을지 모르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이후부터는 소위말하는 멘붕상태로 접어들기 때문에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하는데 있어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 부분의 핵심이었다.

또한 요즘에 나오는 이런저런 첨가물들이 들어간 가공식품들은 뇌가 제대로 발달하고 기능하는데 필요한 영양소가 별로 없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마약처럼 작용하는 듯 보이는 화학물질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집중력에 나쁘다는 말도 나오는데, 이런 것들을 보면서 먹는 것에 대해 전문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기본적인 지식은 갖추고 있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몸에 안좋다고 알려진 것들부터 가급적 먹지 않도록 신경 좀 써야겠다.

"어떤 아이가 끔찍한 행동을 하면 대개 그건 옳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신체에 알리는 아이만의 훌륭한 방법이에요." - P277

아이들이 집중하지 못한다면 종종 그건 끔찍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신호 - P277

"그러한 상황에 처한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건 한통속이 되어 아이들을 폭력적이거나 용납 불가능한 상황에 남겨두는 거예요." - P277

"저는 이것[집중하지 못하는 상태]의 원인이 [아이의] 몸이 너무 많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만들어내고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할 겁니다. 먼저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아이가 경험하거나 목격하고 있는 무섭거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소들을 제한해야 합니다. 그리고 완충장치와 돌봄, 보살핌을 켜켜이 쌓아야 합니다. 그럴 수 있으려면 아이의 부모인 당신이 자기 삶의 역사를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 P278

"사람들이 겪는 문제의 규모만큼 그들에게 제공하는 수단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 - P279

"우리에게는 변화할 능력이 있"다. - P279

"이런 부처님 말씀이 있습니다. 너의 고통에 감사하라. 그 고통 덕분에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으니." - P280

연구실에서 나온 증거에 따르면 가볍거나 중간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단기적으로는 집중력을 요구하는 과제를 더 잘 수행하게 된다. - P281

"스트레스가 장기적 영향을 미치면 두뇌에 구조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이제 명백하다." - P281

스트레스가 종종 집중력 저하를 일으키는 다른 문제를 촉발한다 - P281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긴장을 풀 수 없는데, 우리 몸이 위험 상황이라고, 정신을 바짝 차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 P282

"자신의 경제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면... 뇌가 가진 능력의 상당 부분이 거기에 쓰입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으면 다른 것들을 생각할 능력이 생기죠." - P284

스트레스를 줄이는 요인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깊이 집중하는 능력도 개선한다. - P284

스트레스가 심한 사회는 방해 요소에 저항하는 능력이 낮아질 것이다. - P284

"휴식을 취한 뒤 생산성이 더욱 높아지는 것이 인간이 설계된 방식" - P295

푹 쉬고 나서 일터로 돌아오면 "더욱 활기가 넘친"다 - P295

"정신이 덜 산만해졌"다 - P295

"제 생각에는 계속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면 뇌의 스위치가 쉽게 꺼지지 않아요. 스위치를 끄고 휴식을 취할 시간이 없죠・・・ 우리 뇌는 끊임없이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요." - P296

"휴식할 하루가 추가로 생기자" 긴장을 풀 수 있었고, 다시 일터로 돌아왔을 때 정신이 더욱 맑아졌다. - P296

일을 줄이면 집중력이 크게 개선된다 - P298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언제나 더 좋다는 논리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 P298

"시간과 사색, 어느 정도의 휴식은 더 나은 결정을 하게 도와줍니다. 그러므로 그럴 기회를 만들면 내가 하는 일과 직원들이 하는 일의 질이 높아져요." - P298

우리는 더 빨리 걷고 더 빨리 말하고 더 오래 일하라고 명령하는 문화에 살며, 바로 거기서 생산성과 성공이 나온다고 생각하게끔 배웠다. - P299

우리는 속도를 줄일 것이고, 휴식과 집중을 위한 공간을 더 많이 마련할 겁니다. - P299

근무시간 단축은 규칙을 바꾸려는 집단적 노력을 통해서만 이뤄낼 수 있다. - P302

코로나19는 주4일 근무와 관련된 또 다른 점도 보여주었다. 사업체가 매우 짧은 시간 내에 노동 관습을 바꾸고 아무 문제없이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 P302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확고해서 바꿀 수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방식은 바뀔 수 있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애초에 꼭 그럴 필요가 없었음을 깨닫게 된다. - P303

우리에게는 명확히 정해진 근무시간을 가질 자격이 있다. 그리고 그 근무시간이 끝나면 연결을 끊을 자격이 있다. - P304

모두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가져야 한다 - P304

"당신이 자동차 엔진에 샴푸를 넣는다면 엔진이 고장 났을 때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서구 전역에서는 "인간의 연료로 쓰던 것과는 매우 동떨어진" 물질을 매일 자기 몸에 밀어 넣고 있다. - P308

"세네빠 누히뛰흐! Celest pas nourriture" 이건 음식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 P310

음식의 변화가 우리 집중력의 상당 부분을 앗아가고 있다 - P310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신체 과정이며, 이 과정이 일어나려면 우리 몸이 특정한 일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 P311

현재 우리가 먹는 식단이 에너지의 급상승과 급강하를 주기적으로 유발한다 - P311

"전형적인 패턴을 한번 보세요. 사람들은 아침에 시리얼 한 그릇이나 토스트 한 조각을 먹습니다. 보통은 콘푸로스트와 흰 빵이죠." 이 음식들에는 섬유질이 매우 적어서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는 포도당이 "아주아주 빠른 속도로 방출"된다. "그러면 혈당이 매우 빠르게 높아집니다. 좋은 일이죠, 약 20분 동안은요." 그러다 혈당은 "다시 급락하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완전히 나가떨어지며, 머릿속이 뿌옇게"된다. - P312

"크루아상을 먹으면 분명 혈당이 급상승합니다. 하지만 크루아상을 커피와 함께 먹으면 혈당이 더더욱 치솟고 그만큼 급강하가 따라옵니다." - P312

아이들의 집중력을 개선하고 싶다면 먼저 "아침 식사로 망할 코카콜라와 다디단 시리얼 한 그릇을 주는 걸 그만둬야" 한다 - P313

"먼저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려고 노력하세요." 그렇게 하면 결과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는데, "발달 중인 뇌는 변화에 즉각 반응"하기 때문이다. - P313

현재 우리 대다수가 먹는 음식에 뇌가 제대로 발달하고 기능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이 없다 - P313

우리 인간이 먹도록 진화한 종류의 음식을 섭취하면 우리의 뇌가 더 잘 기능한다 - P315

영양 정신의학은 식사 방식과 정신적 문제의 연관성을 밝히는 새로운 분야다. - P315

"뇌는 음식 섭취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연관성이 있죠." ...(중략)... 우리의 뇌가 다양한 주요 영양소를 섭취해야만 성장하고 잘 기능할 수 있다 - P315

오메가-3 (주로 생선에 들어 있다)가 부족한 식단을 먹으면 우리의 뇌는 온전히 기능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식품을 보충제로 대체하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은데, 우리의 몸은 캡슐보다는 진짜 식품을 통해 훨씬 효율적으로 영양소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 P316

현재 식단은 우리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부족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뇌에 거의 마약처럼 작용하는 듯 보이는 화학물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 P316

식용색소를 마신 아이들은 과잉 행동을 보일 확률이 훨씬 더 높았다. - P316

"모두를 하나로 묶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들 모두가 우리를 아프게 만드는 쓰레기를 애초에 먹지 않습니다. 정제 탄수화물과 가공식품, 질 낮은 기름을 먹지 않죠 그들 모두가 자연식품 위주로 먹습니다. 바로 그게 열쇠예요. 그게 마법의 해결책이에요. 자연식품으로, 본래부터 음식이었던 음식으로 돌아가는 거요." - P317

즉 우리는 입구에 진열된 과일과 채소, 끝에 진열된 육류와 생선만 구매해야 한다. ...(중략)... 슈퍼마켓의 가운데에 진열된 것들은 사실상 전혀 음식이 아니라고 - P317

오늘날 "명백한 연관성은, 학생들이 가공식품인 초콜릿 바와 쿠키를 먹으면 분명히" 집중력 문제 증가로 이어지리라는 것이다. - P317

우리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할 때마다 화면 너머에서 엔지니어 천여 명이 우리가 다시 핸드폰을 집어 들게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듯이, 우리가 가공식품을 포기하려 할 때마다 전문 마케터로 이루어진 팀이 우리가 다짐을 깨고 다시 돌아오게 만들려고 최선을 다한다. - P319

이들은 우리가 의식하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이 건강하지 않은 음식에 긍정적이 되도록 작업해왔다. 이들은 나의 뇌 건강이 아니라 자기들의 수익에 도움이 되도록 나를 프로그래밍했으며, 이렇게 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이 시스템이 다음 세대의 입맛을 왜곡하고 그들의 집중력을 앗아가지 못하도록 반드시 시스템의 작동을 멈춰야 한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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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 진심인 저자의 얘기를 읽으면서 독자인 나는 과연 내 분야에서 저자만큼의 열정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저자의 축구에 대한 열정을 ‘아름다운 열정‘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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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저자가 경기를 뛰고 온 뒤 느끼는 심리상태와 몸 상태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는 마치 우리가 어떤 가슴 뛰는 경험을 한 뒤 느끼는 감정들이나 몸의 컨디션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저자같은 축구선수가 아니기에 어떤 느낌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나마 비슷한 느낌을 찾아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온 몸에 전율이 돋으면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그런 짜릿한 느낌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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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저자의 일터(?)인 런던의 일상에 대해서도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저자가 ‘집돌이‘라 많은 곳이 소개되어 있지는 않지만, 홈 경기장인 토트넘 홋스퍼 스다디움을 비롯해 런던아이, 하이드파크 등이 본문에 나온다. 책을 잠시 덮고 인터넷으로 해당 장소들을 검색해보니 한 번쯤 방문해보는 것도 재밌는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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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나온 이야기들은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2018러시아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여기서부터는 나도 TV로 직접 봤던 것들이라 그랬는지 저자의 글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본문의 글과 머릿속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때의 영상이 오버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축구를 좋아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아한다. 쉴 때도 나는 축구영상을 찾아본다. 내 경기 영상도 자주 본다. 상황마다 다른 판단을 했을 때를 상상해 본다. 다른 팀이나 선수의 영상을 보면서 잘한 부분과 못한 부분을 찾아내며 공부한다. - P157

훈련과 경기를 위해서 그라운드 안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 - P157

어제 경기에서 져도, 파파라치 컷으로 곤욕을 치러도, 다른 엉뚱한 일들이 끊이지 않아도 일단 축구화를 신고 잔디 위에서 축구공을 차는 순간 머릿속에 있던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 P157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것도 축구,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도 축구다. 축구만 할 수 있다면 나는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 컴퓨터를 리부팅하면 속도가 빨라지는 그런 느낌이다. - P157

‘오늘 최선을 다해 행복해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신념도 나를 지켜 준 원동력이었다. - P157

어제의 일을 계속 끌어안거나 내일을 걱정하는 통에 오늘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내일이 되어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다. - P157

지금 나는 행복하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이 기회를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오늘 나의 축구는 행복하고 즐거워야 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 P157

운동장을 나와서 혼자 있을 때도 계속 축구만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다른 생각들이 치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아야 했다. - P159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인터넷 가십란이 아니라 푸른 잔디 위다. 그곳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나를 잡아 준 축구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 P160

내가 아무리 잘해도 경기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 P167

이적은 일반 직장인의 이직과 비슷하다. 회사를 옮기는 행위다. - P169

기쁜 일만큼 슬픈 일도 많았다. 꿈만 바라보고 노력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축구를 더 잘하고 싶어서 쉬지 않고 훈련했다. - P176

많은 운동선수, 특히 나는 경기를 마친 직후에는 좀처럼 쉽게 잠들지 못한다. 우선 공허함 때문이다. ...(중략)... 아마도 환경이 순식간에 바뀌면서 느끼는 허전함인 것 같다. 그런 환경 급변은 내 신체에도 영향을 끼친다. 경기 중 과다 분비된 아드레날린과 근육을 달궜던 열기가 몸 안에서 금방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정신이 말똥말똥해서 잠을 자기가 굉장히 어렵다. 몸에서 열이 나는 탓에 침대위에서 계속 뒤척이다 보면 새벽 3~4시를 훌쩍 넘길 때가 많다. - P179

30분 정도 천천히 찬물에서 몸을 식힌 뒤에 침대에 누우면 몸이 훨씬 편안하다. - P179

근육 마사지는 한 번에 세 시간씩 걸리는 큰일이다. 연말연시처럼 사흘 간격으로 경기를 계속 치르는 시기에는 이런 근육 케어를 매일 받는다. 근육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해야 부상도 방지할 수 있다. - P180

무엇보다 컨디션 유지에 제일 좋은 방법이 바로 휴식이다. 훈련과 경기는 한 번에 1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직업 특성상 짧은 시간에 내 안에 축적한 에너지를 모두 쏟아야 한다. 축구외에 다른 일로 소모되는 에너지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소리다. 하루 중 22시간을 웅크리고 있다가 2시간 동안 폭발시킨다고 생각하면 된다. - P180

훈련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순간부터 다음 날 훈련의 준비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잘 쉬고, 내 몸에 맞춰 개인 운동이나 근육 마사지를 받는다. 영화, 드라마, 게임 등으로 심적 스트레스를 푼다. 그리고 충분히 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 P181

오늘 만족하지 않고 내일 더 잘하고 싶다. 오늘 훈련보다 내일 훈련에서 더 잘하고 싶다. 다가오는 경기에서 이길 수 있게 팀을 돕고 싶다. 훈련이든 경기든 나는 최고가 되고 싶다. 그래야 프리미어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뛰는 기회를 허투루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뛸 수 있는 현역 시간도 아주 짧다. 그 값을 치러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 P184

10개월 내내 저녁 10시전에 잠자기, 10개월 내내 정크푸드 먹지 않기. 10개월 내내 자유시간에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쉬기. 10개월 내내 스트레스를 빨리 털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 P183

다행히 영어는 독어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서로 겹치는 단어들도 있었다. - P186

전술적 움직임을 중시하는 분데스리가와 달리 프리미어리그는 선수 개개인의 힘과 피지컬, 속도가 굉장히 중요했다. 개개인이 상대를 부수는 스타일이어서, 반대로 대인 마크도 거칠었다. 무엇보다 경기 템포가 정말 빨랐다. 이런 속도로 90분을 소화하려면 무조건 체력이 필요하다.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대표팀 선배들이 왜 그렇게 상체 근육을 키우는지 알 것 같았다. 상대와 계속 싸우고 달리려면 근력이 필요했다. - P190

선발 출전은 코칭스태프가 선수를 신뢰한다는 증거다. - P201

영어 적응도 순조로웠다. 아무래도 독일어에 능통하다는 점이 플러스 요인이 되었다. 처음에는 동료들의 빠른 영국식 억양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모르는 말이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물어봤다. 영어를 빨리 배우려는 나의 노력은 동료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줬다.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는 자세에서 존중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는 게 상책이다. - P203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다 - P203

부상자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통증이 아니다. 주전 경쟁에서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 P205

지금 감사하며 즐겨야 한다. 나의 행복 철학이다. 그라운드에 서서 축구공과 함께 있는 순간을 최대한 즐기는 것이 행복이다. 어제를 떨치지 못하거나 내일을 걱정하는 삶은 오늘의 행복을 방해한다. - P209

영국에서 나는 ‘스마일 보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동료들도 "어떻게 너는 매일 아침 웃으면서 돌아다닐 수 있는 거냐?"라면서 신기해한다. 간단하다. 웃어서 행복한 거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라고 다짐한다. - P209

몸값은 숫자일 뿐 내 자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나도 잘 안다. 단, 공평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황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 P210

내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다. 사생결단으로 반등해야 했다.
무조건. - P216

그라운드 안에서는 모든 게 행복하다. 그곳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잘할 수 있는 축구가 있다. 플레이만 신경 쓰면 되니까 편하다. 골까지 넣는 순간에는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다. 훈련도 마찬가지다. 시작부터 끝까지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 그라운드에서 벗어나면?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 P217

계속 강조하지만 ‘손흥민 존‘은 재능이 아니라 훈련의 결과다. 2011년 여름의 지옥 훈련을 시작으로, 시즌 중에도 일정 기간 이상 선발로 출전하지 못할 때마다 아버지와 나는 따로 슈팅 훈련을 가졌다. 함부르크 두 번째 시즌에는 6개월 동안 매일 슈팅 훈련을 하기도 했다. - P219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고, 반대로 재수가 좋으면 골키퍼에게 걸려도 골이 들어간다. 요즘 말로 ‘될놈될‘이다. - P21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강하게 튀어오른다‘라는 표현을 썼었다. 드라마틱한 모습으로 부진에서 벗어나면 정상 궤도 복귀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 P221

나는 항상 내 기록을 챙긴다. 지난 시즌보다 잘하는 것이 기본 목표이기 때문이다. - P223

타임머신이 있다면 1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힘들어하는 나를 찾아가 "괜찮아. 좋은 날이 올 거야"라며 어깨라도 두드려 줄 수 있을 텐데. - P224

결정적 참고서는 내 플레이 영상이다. 사실 팬들이 편집해서 올린 골 모음 영상도 몇 번씩 돌려 본다.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도 있고, ‘저기서 다르게 해볼 수도 있겠다‘ 라면서 이미지 트레이닝도 한다. - P226

영상으로나 혹은 관중석에서 축구를 보면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실제 경기 안에서는 모든 게 너무 빠르게 돌아간다. 0.0001초의 차이로 성패가 갈리기 때문에 이것저것 고민하거나 잴 여유가 없다. 그걸 영상으로 보면 피치 위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옵션들을 찾아낼 수 있다. 그게 정말 큰 공부가 된다. 실제로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 생길 때 써먹어 보는 힌트도 많다. 인터뷰에서 내가 "더 공부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내가 잘했던 장면도 영상으로 보면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보인다. - P226

‘있을 때 더 잘해야 한다‘ - P235

성격상 나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힘들다고 말하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는 사람도 힘들게 한다. - P239

저는 축구 외에는 진짜 하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 P242

경기장에서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하니까 지루하더라도 웬만하면 집에 있죠. - P243

한 번도, 축구를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축구가 제일 재미있어요. 그러니까 늘 웃을 수밖에 없죠. - P245

어린 친구들이 축구 그 자체를 즐겼으면 좋겠어요. - P246

저희 팀은 항상 축구를 즐기지만 그 어느 팀보다 지는 걸 싫어하죠. - P247

월드컵에서는 우리가 제일 약한 팀이다. 패배가 순리, 승리는 이변이다. 어차피 질 테니까 쓸데없이 기대하지 말라는 비관주의는 아니다. 제일 약한 팀이 원하는 결과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려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소리다. 자신감? 패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1명 모두가 상대보다 한 발, 두 발 더 뛰어야 한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서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 우리 안에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 한다. 두 발로 걸어 나올 생각을 버려야 한다. - P250

한국 축구의 투혼? 월드컵에서 투혼 없는 팀은 없다. 그걸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내 안에서 걱정이 컸다. - P250

‘이대로 돌아갈 순 없다‘ - P252

디펜딩 챔피언에 두들겨 맞을지도 모르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죽기 살기로 하는 수밖에. 아침 식사를 하면서 "축구의 신 11명이 내려와서 우리가 독일을 이기게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만큼 간절했다. - P252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그리고 나오는 결과를 받아들인다. 딱 두 가지를 마음에 품고 그라운드로 나갔다.
붉은색 팬들 그리고 태극기가 눈에 들어왔다. - P252

월드컵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잡고 깨달았다. 우리는 정말 멋진 팀이었다. 한국 축구는 여전히 할 수 있다. 16강에 오르진 못했지만 우리는 또 하나의 위대한 목표를 달성했다. 경기가 끝난 그라운드에 아무것도 남기지 말자는 목표. 그리고 악플과 계란보다, 박수와 응원을 보내 주시는 팬들이 훨씬 많았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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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30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30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연한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목차를 잠깐 봤는데, 책 제목처럼 보통의 언어들이 그 이면에 품고 있는 숨은 뜻을 온전히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언어의 맛을 곱씹어보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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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선을 긋다‘ 라는 제목의 글을 만났는데, 인간관계에 관한 저자의 생각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인간관계라는 것을 보다 명확하게 글로 표현해주셔서 마치 어렴풋이 보이던 무언가의 초점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별히 ‘배려‘ 라는 것을 저자만의 언어로 풀어쓴 부분은 독자인 나 또한 읽으면서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저자의 섬세한 감성 또한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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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사과하다‘ 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상대방에게 고의든 의도치 않았든 관계없이 미안해서 사과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단순히 사과한다는 말 한마디보다는 그 이후의 과정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저자는 본문에서 이것을 전쟁 이후의 삶에 비유했는데 굉장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 글을 통해 내가 살면서 사과할 일이 있었을 때 미안하다는 말을 한 이후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리고 향후에 이와 유사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처신하는 게 바람직할지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언어는 살아가는 날들과 환경에 따라 민감하게 변하기도 하고, 나의 다짐, 기대, 성숙함, 비좁음, 어리석음만큼 다르게 쓰이고 해석되며 자라납니다.

언어의 차이는 오해를 낳기도 하지만, 어떤 오해는 피었다 지어버린 자리가 아무것도 없던 자리보다 아름답게 남겨지기도 합니다. 언어에는 생명력이 있으니, 그 자체의 특성을 점점 존중하게 됩니다.

‘적당히‘가 제일 어렵다는 말은 살아갈수록 모든 면에서 진리인가 봅니다.

감정이 원형 그대로 전달될 수 있으려면, 글자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때로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같은 언어를 서로 미세하게 다르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만나면 반가운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헤어져 있는 어느 때 못 견디게 보고 싶다면, 사랑일 확률이 높다.

연인 사이에 사랑의 속성 중 하나는 ‘그리움‘이다. 그리움이라는 건 빈 곳이 느껴진다는 것, 다시 말해 이 곳이 당신으로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사람은 소유할 수 없다지만, 어쩔 수 없이 소유하고 싶어지는 얄궂은 마음이 사랑이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반대로 조건이 없다.

해가 좋은 날 널려진 빨래가 된 것처럼 뽀송뽀송 유쾌한 기분만 줄 수 있는 건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나를 붕 뜨게 하기도, 한없이 추락하게 하기도 하는 역동성을 띤 반면 좋아하는 마음은 온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리게 해주는 안정성이 있다.

"우리는 서로를 실망시키는 데 두려움이 없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는 말은 완벽히 상대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나 하나만 놓고 보자면, 나는 완벽하다. 잘난 부분 딱 그만큼의 못난 부분을 갖춘, 완벽한 밸런스를 갖춘 사람이다. 비틀어진 부분이 있고, 그래서 나오는 독특한 시각과 표현력이 있다. 모나게 튀어나온 못된 심술도 있고, 그 반대편엔 튀어나온 만큼 쑥 패여서 무언가를 담아내는 포용력이 있다. 대부분의 장점과 단점은 이렇게 서로 등을 지는 형태라 떼어놓고는 말할수가 없다. 예민함과 섬세함, 둔함과 털털함처럼.

어디에나 맞는 만능 퍼즐조각이 없듯, 이렇게 각자의 모양으로 존재하는 우리는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상대의 단면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았을 때 종종 실망이란 것을 한다.

실망이라 함은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상한 마음‘을 뜻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상한 마음‘
이 아니라 ‘바라던 일‘이다. 실망은 결국 상대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다. 무언가를 바란, 기대를 한, 또는 속단하고 추측한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고유의 모양으로 존재하는데,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그렇다. 나의 경험치와 취향, 태생적 기질 등이 빚어낸 지극히 사적인 시선으로 서로를 볼 수밖에 없다.

‘기대‘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가늠하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자 낭만이니까. 그게 없이 어찌 사랑에 빠지거나 연민을 느낄 수 있겠는가.

둘 다 사적인 시각에서 비롯되지만, 기대에는 애정이 그 시작점에 관여를 하고 오해와 편견에는 그에 반대되는 감정이 관여했다는 차이만 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인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인 소수와의 관계는 견고한 것이다.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고서는, 나는 누군가와 진실로 가까울 자신이 없다. 우리, 마음껏 실망하자. 그리고 자유롭게 도란거리자.

한 명의 사람이 누구를 대하든 매끄럽다면, 그 사람은 흡사 존재하지 않는 것과도 같은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긴 대로 살아야겠다는 것‘

생각해보면 잘 모르는 사람이 내게 갖는 부정적인 감정은 차라리 당연하다. 사람은 서로를 각자의 주관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 앵글에서 모두에게 완벽한 피사체이고 싶은 마음을 가지면 그건 지옥의 시작일 테다. 대신 생긴대로 살아가다 거름망에 걸러지는 내 사람들은 사금처럼 귀하다.

‘대충 미움받고, 확실하게 사랑받자.‘ 미움받을 용기까지는 없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나의 인생관이다.

함께 있기만 해도 나를 좋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있어요. 그 순간 비로소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또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사랑하기에 좋은 사람은, 이 사람과 함께할 때 나의 가장 성숙하고 괜찮은 모습이 나오는 사람이다.

나는 어차피 누구에게도 완벽하거나 객관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다. 대상과 상황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한 모습을 끊임없이 비춰주는 사람에게 혹여 ‘이런 사람이 그래도 나를 발전시켜주겠지‘라는 마음에 매여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만 발견되는 나의 고유한 아름다움, 훌륭함이란 건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런 좋은 모습을 볼수록, 나 역시도 스스로를 그렇게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런 관계에서는 마르지 않는 시너지가 샘솟는다. 지나친 미화에만 길들여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당신 곁의 수많은 거울들을 떠올려보라. 어떤 거울앞에서 나는 가장 괜찮은 사람이었는가?

누군가에게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때, 그것을 그렇다고 말하거나 표현하는 것을 두고 ‘선을 긋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표현에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감정은 서운함이다. 그걸 모두가 알고 있기에, 선 그을 펜을 쥔 사람은 머뭇거리게 된다. 어쩐지 매몰찬 행동 같으니까.

‘소중한 사람일수록 잘 바라보아야 한다. 세심히 살펴야한다. 무언가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 한 발자국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당연히 잘 안다고 여기는 순간, 관계는 V3가 깔리지 않은 컴퓨터가 된다.‘

선을 긋는다는 말은 내겐 ‘모양을 그린다‘는 말과 같다. 5개의 선을 그어 만들어지는 게 별 모양이다. 다시 말해 ‘나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야‘라고 알리는 행위가, 선을 긋는다는 의미이다.

간단하게 지도를 떠올려보자. 꼬불꼬불한 선으로 나뉘어 있는 수많은 국가들은, 선이 있다고 해서 서로 단절된 관계들은 아니다. 한 예로 유럽의 경우 각국의 법령, 풍습, 기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차이들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지키기 위한 테두리로 그려져 있지 않은가.

밤하늘의 셀 수 없는 별들이 그러하듯 사람 마음의 모양은 전부 다 다르다.

선을 긋지 않는다는 건, 모양이 없는 액체 괴물처럼 살아가라는 말로 들린다.

선을 긋는건, 여리고 약한 혹은 못나고 부족한 내 어딘가에 누군가 닿았을 때 ‘나의 이곳은 이렇게 생겼어‘라고 고백하는 행위다.

어떤 관계는, 나도 몰랐던 내 영역을 알게 해준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통해 확장되기도, 스스로를 알아가기도 한다.

살다 보면 부득이 선을 긋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 이들은 나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나를 관찰해주고, 그걸 토대로 내 성향을 점선으로나마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밑그림이 나의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때, 나는 무장해제되곤 한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기에,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나 또한 열심히 점선으로 상대를 스케치해본다. ‘이곳이 예민하겠지‘, ‘이곳을 흥미로워하겠지‘ 하면서. 그리고 이런 식으로 그려지는 사람의 모양은 수시로 바뀌기도 하기에 끊임없는 관찰이 필요하다. 이 섬세한 과정을 통치는 말이 ‘배려‘인 것 같다.

나와 상대방 사이에 있는 틈은 서로가 서로를 잘 바라보기 위한 것일 테다.

사람의 감정에도 시차가 있다. 감정이 빠르게 익는 금사빠가 있는 반면, ‘사랑‘이라는 말에 걸맞을 만큼 달궈질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들도 있다.

‘대화의 본질‘은 언어가 아닌, 눈에 보이는 그 모든 풍경에 있다

대화의 사전적 의미는 ‘마주 대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 이다.

응시하거나 시선을 피하거나, 손을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팔짱을 끼거나, 얼굴을 만지거나 시계를 바라보는 모든 행동들은, 언어 아래 숨겨진 상대의 마음을 읽는 가장 중요한 단서이다. 즉, 대화는 관찰이자 탐색이다.

대화의 가장 결정적인 열쇠는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마음을 잘 살필 수 있는가‘ 이다.

사과를 전장의 백기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선언하고 나면 모든 게 종결되는 것처럼.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평화인 경우는 없다. 특히 피해를 입은 국가라면 그때부터가 오히려 아픔의 시작이다. 전쟁통에는 생존만이 문제였다면, 전쟁이 휩쓸고 앗아간 모든 것들을 복구해 나가며 겪는 고통이 삶의 일상이 되는 것은 가장 슬픈 풍경이다.

다툼은 작은 의미에서 전쟁과 속성이 같다. 이권이 부딪히고, 신념이 충돌하고, 분노 분출 외에는 방법이 없을 때 우리는 다툰다.

사과를 하는 쪽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주도권을 갖는 착각을 한다. 물론 사과하는 일은 어렵다. 그렇기 때문인지 ‘사과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에 심취해서포커스를 상대가 내 사과를 어떻게 받는지에 맞추기 시작한다.

‘미안하다고 했잖아‘라는 말. 이 문장만 봐도 이유도 생각나지 않는 짜증이 밀려오지 않는가? 그만큼 사과를 하고 받을 만한 일에서 중요한 건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이후의 과정인 것 같다.

사과를 받을 입장일 때를 떠올려보자. 상대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순간은 마치 끓는 냄비가 올라간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는 것과도 같다. 더 끓일 의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바로 식지는 못한다.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때, 흔들리는 동공으로 잔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미안한 줄 알면 그러지 말았어야지‘,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등등이 단골 대사다. 물론, 이 말을 하지 않는다면 베스트다. 그러나 사과를 하는 입장에서 사과를 받는 태도에 점수를 매길 권한은 없다.

사과를 받은 사람 쪽에서 필요한 겸연쩍은 시간이란 게 있다. 마지못해 내민 손을 잡아주고, 다시 웃으며 이야기 나누기까지 떼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몹시도 무겁다. 이 무거운 발걸음을 기다려주는 것까지가, 진짜 사과다.

소중한 관계를 이어가는 비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잘 화해하는 거라고 대답한다. 호시절에 잘해주는 건 쉽고도 당연한 일이다. 소중한 관계일수록, 거리가 가깝고 가까울수록, 갈등이 생길 확률은 높다. 그러니 이 갈등을 어떻게 어루만져 다음 단계로 가는지가 중요하다. 잘 마무리된 다툼만큼 관계를 돈독히 해주는 건 없다. 잘못을 저지른 경우라면 차라리 당신에게 이 관계를 더 견고히 만들 기회가 주어진 거다. 잊지 말자, 사과는 A/S기간이 가장 중요하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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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를 찾아라 - 법정 스님 미공개 강연록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평점 :
절판


저자께서 수십년전에 한 강연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르침이 현 시대에도 변함없이 적용되는 것을 보면서 저자의 깨달음이 얼마나 깊이 있었는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불자가 아닌 분들이 읽어도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 범용성있는 내용들이 많기에 일반 독자분들에게도 유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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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최재천 교수의《곤충사회》라는 책에서 생태계의 조화를 늘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그와 비슷한 얘기를 볼 수 있었다. 특정 부분만을 보기보다는 보다 넓고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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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차茶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데, 차에 담겨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차에 관한 실용적인 정보들도 덤으로 배울 수 있어서 유익했다. 그리고 차茶를 마실 때 쓰는 그릇에 관한 얘기도 나오는데, 그릇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깊게 느껴졌다.

개인적인 얘기를 잠깐 하자면 내 경우 드립백 커피를 즐겨마시는데 커피를 마실 때 주로 사용하는 컵과 텀블러가 각각 하나씩 있다. 솔직히 겉모습만 보면 그닥 특이할 것 없이 평범하게 생긴 것들이지만,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보니 왠지 모르게 정情 같은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 저자도 차茶를 마시는 그릇에서 이와 비슷한 정情을 느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체를 봐야지 어느 한 부분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소위 과학자니 전문가니 하는 사람들도 한 부분밖에 볼 줄 몰라요. 과학을 맹신하지 말고 자연을 이해해야 합니다. - P238

업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밭에 뿌리는 씨와 같습니다. 이 업이라는 씨는 인간이 예상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게 업의 파장이고 흐름이에요. 이 흐름은 결코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 P240

눈에 안 보이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 P242

이 세상 모든 것은 우리가 그것을 눈으로 인식하기 전부터 존재합니다.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해서 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꽃망울 속에 꽃이 들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 P244

안 보이는 상태에서 인因을 쌓고, 그것이 드러나 연緣이 되는 것입니다. - P244

눈에 보이는 것은 사라져도 그 안에 든 것은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생명은 우주의 영원한 원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P244

근원적으로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변화하는 세계가 있을 뿐이에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다른 이름으로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삶을 사느냐, 어떤 삶을 이루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 P245

우리가 몸으로 움직이는 동작과, 입으로 하는 말과, 마음으로 하는 생각은 모두 업이 됩니다. 업이라는 것은 하나의 행위입니다. 좋은 행동이라든가, 좋은 말이라든가,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업을 쌓게 돼요. 이와 반대로 행동하면 어두운 업을 쌓게 됩니다. 나쁜 업이 자꾸 되풀이되면 하나의 힘으로 변하게 돼요. 그것을 업력業力이라고 합니다. 혹은 업장業障이라고도 해요. - P245

업력이 커지면 이성의 힘으로는 도저히 억제할 수 없게 됩니다. 마치 물리학에서 말하는 관성 법칙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가게 돼요. 내 정신으로, 내 의지로 억제할 수 없는 힘, 자제할 수 없는 그런 힘이 되어 버립니다. - P245

모든 것이 그렇듯 문화나 제도가 사람 위에 있을 수 없어요. 차를 마시는 것도 사람, 차를 즐기는 것도 사람이지, 차가 규약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에요. 차는 그냥 마시는 것이고, 그냥 즐기는 것입니다. 과도한 격식은 경계해야 합니다. - P254

흔히 차를 기호품嗜好品이라고 하지요. 기嗜는 즐기다, 호好는 좋다, 이런 뜻입니다. 좋아서 즐기는 거예요. 하지만 적당히 즐겨야지 이를 너무 지나치게 가까이 하면 해가 됩니다. 무엇이든지 그렇지 않습니까? - P256

차는 한마디로 청적淸寂의 세계입니다. 청淸은 맑다는 뜻이고 적寂은 고요하다는 뜻인데, 그렇다고 단순히 맑고 고요하다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때의 적寂은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난 상태, 모든 복잡함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뜻합니다. 조금 다른 의미에서 말하자면 침묵의 세계예요. - P258

차를 마시는 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생잎을덖은 후 마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발효를 시킨 후 마시는것입니다. 녹차가 전자이고, 홍차나 보이차 같은 것이 후자입니다. - P259

좋은 차는 빛깔과 향기와 맛을 두루 갖춰야 돼요. 이것은 꼭 차만이 아닙니다. 음식도 그래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하더라도 음식 빛깔이 죽어 있으면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들잖아요. 또 그 음식 나름의 어떤 향취가 있어야 돼요.
물론 맛도 있어야 되지요. 이렇게 빛깔과 향기와 맛을 두루갖춘 것이 좋은 차입니다. - P259

너무 쉽게 얻으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니까요. - P262

두 번째로 올라온 찻잎이 좋습니다. - P264

차 생산에는 수량水量도 중요한데, 비를 충분히 맞으면 부드러워집니다. 그래서 두 번째 딴 찻잎이 좋다고 하는 겁니다. 이때 제대로 맛이 숙성이 돼요. 처음 나온 찻잎이라고 해서 좋은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런 장삿속에 속지 마세요. - P264

찻잎은 적기에 따야 돼요. - P264

곡우에서 입하 사이에 따는 차가 제일 좋습니다. - P264

찻잎은 아주 섬세해야 돼요. 찻잎이 무슨 고춧잎처럼 커지고 그러면 섬세한 맛이 없어요. 섬세한 차는 양이 많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비싸요. - P264

처음 차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비싼 차 사서 마시지 않아도 돼요. 처음에는 비싼 거 마셔 봐야 뭔지 몰라요. 나중에 차 맛을 좀 알게 되면 그때 사도 됩니다. - P264

차는 보관도 잘해야 합니다. 잘못 보관하면 아무리 좋은 차도 그 맛이 변해요. 녹차는 일 년 지나면 못 먹습니다. - P264

보관이 잘된 차가 좋은 차입니다. 보관은 냉동실에 해야 돼요. 냉장해도 안 돼요. 그런데 차 파는 집에 가 보면 냉동 시설이 없는 곳이 많아요. 그러면 엽록소 보존이 안 돼요. 엽록소가 파괴되면 차의 싱그러운 맛이 사라집니다. - P265

물도 중요합니다. - P265

우리는 그냥 수돗물을 쓰면 됩니다. 정성을 좀 부린다면 하루쯤 받아 놔요. 그러면 침전물도 거를 수 있고 냄새도 사라져요. - P265

차를 우릴 때는 물을 충분히 끓이세요. 그렇다고 또 물을 너무 오래 끓이면 안 돼요. 그러면 좋은 성분이 파괴됩니다. - P266

물이 끓으면 다기를 가십니다. 다기를 가신 후에는 물을 알맞게 식혀야 돼요. 바로 뜨거운 물을 부어 버리면 데치는 거랑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건 참 맛없습니다. 찻잎이 섬세할수록 물을 잘 식혀야 돼요. - P266

우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것에 묘미가 있어요. 너무오래 두면 쓴맛이 일고, 빨리 따르면 덜 우러나요. - P266

홍차 같은 것은 한 잔 우려 마시면 그만이지만, 녹차는 석 잔까지도 우릴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 물을 가득 붓지 말아야 합니다. 잔의 한 절반쯤 차도록 부어야지 처음부터 그냥 가득가득 부으면 먹기 전에 배부르다니까. 한 절반쯤 붓는게 좋아요. 그래야 그 차에 운치가 담겨요. - P267

마시다 보면 저절로 요령이 생겨요. - P267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차 한잔 마시려면 그런 정성, 그런 집중 같은 게 있어야 된다, 그런 정도로 이해하면 돼요. 그래야 차 맛을 알아요. 차를 마셔야 되겠다고 하면 조금은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야 내 심성이 맑아집니다. - P267

차를 좋아하게 되면 그릇을 따지게 됩니다. "그릇이 있기에 차를 마셔야 된다." 이런 말도 있어요. 좋은 그릇, 아주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그릇이 있으면 차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든다는 뜻이에요. 물론 그릇이라는 건 차를 마시기 위한 도구이지만, 차를 마시다 보면 차만 훌쩍 마시는 게 아니고 다기를 매만지는 즐거움이 있어요. 차를 마시다 보면 그릇을 보는 심미안審美眼이 열립니다. - P268

차를 마시다 보면 묘한 것을 알게 돼요. 바로 그릇도 쉬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그릇도 사람처럼 쉬고 싶어 해요. 그걸읽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돼요. 안 그러면 나중에 꼭 그릇이 깨지더라고. 그릇도 쉬게 해 줘야 돼요. - P269

엄마들도 아이 표정을 보면 아이 기분이 어떻다는 걸 그냥 알 수 있잖아요. 그렇듯이 그릇도 표정을 짓습니다. 다기가 됐건 항아리가 됐건 그릇이 쉬고 싶어 할 때는 쉬도록 해 줘야 돼요. - P269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 너무 피로해서 쉬고 싶어 하면 그걸 읽을줄 알아야 해요. 그릇에 대한 것이든 사람에 대한 것이든 무감각한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해요. 사랑을 지닌 사람만이 내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 P269

그릇에는 두 개의 생애가 있어요. 하나는 전반생前半生 이고 하나는 후반생後半生입니다. 도공이 그릇을 막 만들었을 때, 그때 그 그릇의 생은 전반생입니다. 이때는 절반의 생명밖에 없습니다. 그릇을 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릇을 쓸 줄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때 후반생이 부여됩니다. - P269

처음에는 만든 사람의 입김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조금 낯설고 생소합니다. 그러다 그릇의 아름다움을 내가 발견하고 그릇의 쓰임새를 알면 그때부터는 내 따뜻한 정이 그릇에 들어갑니다. 내가 혼을 불어넣는 거예요. 그러면 그릇이 달라집니다. - P270

우리가 아무렇게 막사발로 쓰던 것을 다기로 써요. 그릇이 지닌 아름다움, 새로운 생명력을 캐낸 것이에요. 만든 사람은 그런 걸 생각을 안 하고 만든 것이지만, 쓰는 사람이 그걸 발견해 낸 거예요. 그걸 발견해 내는 눈을 가진 거예요. - P271

사람도 그렇잖아요. 누군가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짝을 제대로 만나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좋은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어요. - P271

여행을 할 때 어디를 가느냐, 이건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와 함께 가느냐, 이게 중요한 거예요. 여행길에서 스승을 만날 수도 있고 원수를 만날 수도 있는 거예요. - P271

여행길이 그런 것처럼 인생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길벗을 잘 만나야 돼요. 그리고 또 내가 좋은 길벗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비록 전반생은 힘들고 어려웠더라도 후반생이 빛이 납니다. 스승은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 P271

차의 성질이 그러하듯이 다기도 단순하고 수수한 것이 좋습니다. 수수해야 돼요. 어떤 그릇은 처음 보면 화려하고 예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런 그릇들은 쓰다 보면 싫증이 나기도 해요. 수수하고 무던한 거, 그게 좋은 거예요. 그런 그릇이 오래갑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좋은 친구는 담담한 차와 같고 수수한 다기와 같습니다. - P271

그릇도 수수하고 무던한 것, 마음 편하게 두고 쓸 수 있는 것이어야 싫증이 나지 않습니다. 싫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가닿았다는 뜻입니다. - P272

차를 마실 때는 사람이 많으면 안 된다고 해요. 사람이 많으면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시끄러우면 아늑하고 그윽한 분위기를 맛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즉 아취雅趣가 줄어듭니다. - P274

차를 마실 때, 나 홀로 마시는 것을 이속離俗이라고 해요.
세속을 떠났다는 의미예요. 차를 마시는 가장 높은 경지입니다. 또 둘이 마시면 즐겁다고 해요. 서넛까지도 괜찮아요 그런데 다섯이 넘어가면, 이건 참 곤란해요. 그때부터는 차 마시는 거 아니에요. - P274

번잡하게 여럿이 먹으면 그건 차한테 미안한 일입니다. 차는 좋은 친구와, 마음 활짝 열어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와 마실 때 즐겁고 좋은 겁니다. 이 즐거움이 마음을 포근하게 해요. - P276

또 차를 마실 때는 모든 일손을 놓아야 돼요. 마음이 한가해야 됩니다. 차분한 마음으로 다기도 매만지고 차의 빛깔과 향기도 음미해 보세요. - P276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함께 나눌수 있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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