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밑줄 치진 않았지만 대학 졸업해서 받는 초봉은 대기업, 전문직을 제외하고 평균 2천 중후반대 정도로 대동소이한 반면 현장 기술직으로 벌어들이는 봉급은 대졸 초봉보다 2배에서 많게는 3배 가까이 높다는 자료를 볼 수 있었다. 물론 저자가 여타 다를 이유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기술직을 하기로 선택했겠지만, 경제적인 이유의 비중을 결코 간과할 수 없음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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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으면서 여기 일일이 밑줄 긋진 않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거친 기질에 대해 각종 사례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현장 작업자들의 거친 기질을 타산지석 삼아 자신의 경쟁력을 스스로 깨달은 저자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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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이들 하는 논쟁 중에 성공의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재능이냐 노력이냐 하는 걸로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데서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이 책의 저자가 제시한 사례(p.36)를 본다면 그 답은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인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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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의 저자의 경험담을 보면서 몇 달 전에 읽었던 세이노의 가르침에서 읽었던 내용과 비슷한 점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세이노 저자는 무슨 일을 하든지 그 분야의 달인이 될 정도로 상세히 알고 있어야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했었는데, 이 디깅의 저자 역시 자신의 분야를 세세하게 파고들어 알고자하는 마음가짐이 글속에서 느껴졌다.

사람마다 종사하는 분야가 다들 다르지만, 자신의 분야에 대해 전문가가 될 정도의 실력을 갖춘다면 금전적인 것은 부수적으로 따라올 수 밖에 없음을 머리만이 아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성공은 ‘될 때까지 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월계관이다 - P4

한 우물을 판다는 것은 삶의 방향성이 설정되는 것과 같다. 군더더기에 신경쓸 필요없이 본질에만 집중하면 된다.
매우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삶의 방식이다. 잘하든 못하든 한우물만 꾸준히 파면 ‘근거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 핵심 역량이라는 필살기를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 P5

비가 내릴 때까지 지내는 기우제처럼 그것이 무엇이든 될때까지 해낸 집념이었다. - P5

무슨 일이든 일련의 수준에 도달하려면 ‘시간을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든 그렇다. 최소 3년은 디깅해야 한다. 업종과 직종을 막론하고 기본기를 배우는 3년 동안은 실력이 대동소이하다. 그 격차는 5~10년 후 급격하게 벌어진다. - P6

직장에 의존하지 않고 일에 종속당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역설적이지만 인생의 한 시기를 철저히 일에 저당 잡힐 필요가 있다. 얕은 우물은 금방 완성되지만 깊고 넓은 우물을 파려면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 P6

한놈만 패겠다는 한 우물만 파겠다는 여기서 끝장을 보겠다는 강한 집요함과 집념만 있으면 누구라도 성공이라는 이름의 계단을 오를 수 있다. - P7

한 우물을 판다는 건 결국 전문가가 된다는 뜻이다. 전문성은 경험을 축적하고 기술을 숙련하는 지난한 과정 위에 쌓인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지루한 반복을 지속해야만 익숙함을 변주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100가지 기술을 가진 사람보다 한 가지 기술을 100번 연습한 사람이 더 무서운 법이다.
누구는 출발선에서 포기하고, 누구는 중간에서 유턴한다.
그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사람만이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대충, 적당히는 누구나 한다. 그래서 대충,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 지속적이고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 P7

넓게 파려면 깊이 파야 한다. 높이 올라가려면 더 깊게 파야 한다. 자잘한 우물 100개보다 제대로 된 우물 하나를 파는게 중요하다. 그 우물 하나가 100가지 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우물을 파고 있는가? - P7

위대한 이들은 목적을 갖고, 그외 사람들은 소원을 갖는다.《워싱턴 어빙, 소설가》 - P14

스마트폰 하나를 사도 사양과 성능, 요금 등을 꼼꼼히 비교하면서 왜 우리 삶의 전반을 투자하는 인생 최대의 투자처인 ‘일‘에 대해서는 별다른 점검을 하지 않는 걸까? - P16

워런 버핏의 투자 제1원칙은 "절대로 돈을 잃지 마라"이고, 제2원칙은 "제1원칙을 잊지 마라"다. 한마디로 잃지 않는 투자를 하라는 말이다. 지금 어떤 일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중년 이후 수익률은 엄청나게 달라진다. - P16

실제로 대기업과 전문직이 아닌 이상 사회 초년생의 연봉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 격차는 경력 5~10년 차에 급격히 벌어진다. 연차가 쌓여도 연봉이 고만고만하거나 직급이 높아질수록 퇴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면 ‘잃는 투자처‘ 가 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지금 자신이 어디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지, 그 투자로 받게 될 이익과 혜택은 무엇인지 점검해 봐야 한다. - P16

자본 가치는 경제적 가치를 의미한다. 자신의 커리어가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재산이 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5년, 10년후 샐러리맨 영업직의 자본 가치는 얼마일까? 제로다. - P17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를 찾는 잡 노마드 job nomad 시대다. ‘특화 영역‘이 없으면 노마드라는 단어에 걸맞게 일거리를 쫓는 유목민이 될 확률이 높다. 현장에서도 보면 특화 영역이 없는 잡부 철거 인력이 가장 바쁘고 정신없다. 가장 힘든 일을 하는데 가장 낮은 일당을 받는다. 역량은 일의 고됨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5년후 자본 가치를 계산해 보라. 그러면 답이 나올 것이다. - P17

그런데 여전히 늙은 말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
바로 현장이다. 현장에서는 축적된 연륜과 집약된 노하우, 한마디로 특화 역량을 가진 기술자가 주도권을 잡는다.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경험하고 수습해 온 시간이 강력한 자본 가치를 만들어낸다. 숙련된 시간과 몸값의 정당한 등가 교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 P19

어린 시절부터 나는 ‘선택받는 사람‘이 아닌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조직에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넘쳐난다. 아무리 애써도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넘사벽,
완전체가 많아도 너무 많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싸움이라면링 위에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 체급이 다른 상대와 붙어 봤자 실컷 두들겨 맞을 뿐이다. 차라리 그레이드를 낮춰 지렁이라도 머리가 될 수 있는 영역을 찾는 게 낫다. - P20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하나다. 무엇으로 남과 다른 변별력을 갖출 것인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특별한 삶을 살려면 전문성이라는 차별화로 평범함을 커버해야한다. 이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성장 공식이다. 그래서 나는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 P20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더라도 신경 쓰지 마라.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마라.
-필 나이트, ‘나이키‘ 명예 회장 - P21

인간이 자의적으로 안전 경로를 벗어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현재 상태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다. 두 번째, 필요를 발견하고 이를 찾아갈 때다. 세번째, 타고난 재능이나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뒤늦게 발견했을 때다. - P21

세계적인 애널리스트 윌리엄 오닐 William O‘Nell은 "많은 투자자가 지나치게 분산투자를 한다. 최고 실적은 집중에서 나온다. 관심을 집중할 수 있는 바구니에만 달걀을 담는 게 좋다. 보유 종목의 숫자가 많을수록 빠져나오기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 P22

시드머니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집중투자가 필요하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을 쪼개 여러 종목에 투자하면 주식이 올라도 큰 수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괜히 이것저것 관리하다가 팔 때와 살 때를 놓치고, 결국에는 감당하지 못할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분산투자가 오히려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 P22

인생도 마찬가지다. 경험 자본, 능력 자본, 인력 자본, 금전 자본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특화 영역을 발굴해야 한다. 얕은 우물 100개를 파는 것보다 깊은 우물 하나를 제대로 파는 게 중요하다. 제대로 판 그 우물 하나가 100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디깅의 힘이다. - P23

‘채굴, 발굴‘을 뜻하는 디깅은 어떤 것에 집중해 깊게 파고드는 행위를 뜻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혁신의 아이콘을 보라. 무서울 정도의 집요함과 답답할 정도의 진득함으로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굴해 낸 디거 digger. 깊게 파는 사람들이다. - P23

빌 게이츠는 코딩, 스티브잡스는 디자인, 일론 머스크는 우주라는 특화 영역을 통해 비범한 생각,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채굴해 낸다. 무엇이든 뚫고 나가는 드릴처럼 자신의 한계를 뚫을 때까지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일단 방향이 결정되면 시간이 얼마 걸리든 멀리 돌아가든 개의치 않고 어떻게든 그것을 완성해낸다. - P23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시작할 때마다 새로운 책과 문제집부터 찾는 사람이 있다. 반면 한 문제집을 마지막 장까지 풀어내는 사람도 있다. 누구의 성적이 더 좋겠는가. 학창 시절태권도 선수 생활을 꽤 오래했다. 그런데 당시 나를 두렵게만드는 상대는 100가지 기술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발차기 기술 한 가지를 100번, 1,000번 연습한 사람이 더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감히 성공은 학력이 아닌 태도, 환경이 아닌 마인드, 자본이 아닌 실행력이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 P24

혹자는 "인맥이 없으면 노동력 착취당하는 게 노가다 판이다"라고 말하지만 어떤 업종, 어떤 조직이나 마찬가지다. 인떡보다 중요한 게 실력이고 실력보다 중요한 게 태도다. 본질을 헷갈리지 마라. - P24

시작도 하기 전에 "안 된다" "이미 해 봤다"라는 사람들의 말은 노이즈일 뿐이다. 건전한 비판이 아닌 비관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의 말을 듣고 ‘잘못된 합의 효과‘
에 휩쓸려선 안 된다. 잘못된 합의 효과는 자신의 의견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적 가치로 간주하고 근거 없이 다른사람도 자기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성을 말한다.
자기합리화를 잘하는 사람이 주로 사용하는 프레임이다. - P25

이런 유형의 사람은 타인의 노력을 혐오하고 비하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다른 사람의 피땀 어린 고군분투를조롱하며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고 든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욕심 없이 무념무상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차라리 낫다. 돈에 대한 욕심, 성공에 대한 열망은 끊어넘치는데 노력하지 않는 삶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잘되는 놈은 꼴 보기 싫고, 잘나가는 놈은 죄다 사기꾼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 P25

늘 그렇듯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낡은 지도를 손에 들고 금과옥조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잘못된 길을 찾아 헤맬 때, 새로운 지도를 손에 넣은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전진한다. 제일 높은 곳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낡은 지도를 들고 올라오는 이들을 여유롭게 바라본다.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앉을 자리가 없다고 한탄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 P26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넘기는 미루기 대마왕, 아무런 의욕과위기의식이 없는 귀차니스트, 생각만 많고 실행은 하지 않는게으른 완벽주의자, 말만 번지르르한 방구석 전문가가 목표를 이루는 것을 보지 못했다. ‘지금‘ ‘오늘‘ ‘여기‘ ‘당장‘이 아은 "내일 ‘다음‘ ‘언젠가‘를 선택하는 사람에게 변화의 문이 열리는 것도 보지 못했다. - P26

98퍼센트가 장애물을 바라볼 때 나머지 2퍼센트의 디거는목표를 본다. 장애물을 피할 방법이 아니라 디깅을 이어 나갈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 노력이 반드시 성과로 이어지진 않지만,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에게 뛰어난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 P27

그러니 다른 사람의 성과를 시기, 질투할 에너지를 오로지나 자신에게 써라. 핵심 영역 강화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전문성을 기반으로 차별화를 만드는 디거가 돼라. 그러면 어느새 시기와 질투를 받는 존재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 P27

같이 일하기 힘든 사람은 마인드가 가난한 사람이다.
아주 많은 생각을 하지만 장님보다 적은 일을 한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 - P28

기술은 곧 권력이 되기도 한다. - P29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은 도구를 통해 매개된다"라고 말한다. 실제 일부 학자는 서양인이 동양인에 비해 공격적인 이유를 ‘식사할 때 사용하는 도구‘ 차이로 보기도 한다. 숟가락을 들면 음식을 뜨고, 젓가락을 쥐면 음식을 잡고, 포크를 잡으면 음식을 찌르고, 나이프를 들면 음식을 자르게 된다. 365일 하루 세 번 뜨고 집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과 찌르고 자르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의 의식과 행동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 P32

당장은 돌도끼라도 손에 쥐어야 하는 입장이라서 그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쇠도끼를 얻으면 얼마든지 판을 뒤집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실력이 아닌 태도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결론이다. - P33

초보자는 특히 그렇다. 업종과 직종을 막론하고 일을 처음 배우는 사람의 실력은 거기서 거기다. 타고난 손재주와 센스에 따라 속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은 평균점까지 무난하게 도달한다. 이때 승패를 가르는 게 태도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태도가 만들어내는 완성도다. - P33

현장에서는 일당이 낮은 사람보다 일당이 높은 사람이 더 바쁘다. 이미 몇 달 치 일정이 잡혀 있어 스케줄을 조정하는데 애를 먹는 경우도 허다하다. 단지 속도 때문이 아니다. 끝까지 파고들어 일을 마무리하는 디테일, 즉 디깅력이 몸값을 결정하는 것이다. - P34

인생에는 두 개의 성장 곡선이 존재한다. 질보다 ‘양‘, 밀도보다 ‘부피‘를 기반으로 수평 성장하는 X점과 양보다 ‘질‘,
부피보다 ‘밀도‘를 기반으로 수직 성장하는 점이 그것이다.
이 두 개의 곡선이 교차할 때 비로소 폭발적 성장이 이루어진다. - P34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이 도예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재학생들을 무작위로 A, B 두 그룹으로 나눈 뒤 A그룹에게 다음과 같은 미션을 내렸다.
"남은 한 학기 동안 ‘퀄리티‘에 집중해 최대한 멋진 도자기를 구워 오세요. 학점은 퀄리티 순으로 부여하겠습니다."
반면 B그룹에게는 A그룹과 다르게 최대한 많은 도자기를구워 올 것을 지시했다.
"퀄리티는 신경 쓰지 말고 최대한 많은 양의 도자기를 구워 오세요. 가장 많이 만든 사람이 높은 점수를 받게 됩니다." - P34

과연 최고 도자기는 어느 그룹에서 나왔을까? 의외로 품질이 아닌 개수로 승부한 B그룹에서 탄생했다.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실행의 양이 퀄리티를 일궈낸 것이다. - P35

대충, 대강, 적당히, 정도껏은 누구나 한다. 그래서 남들이 안하는, 아니 못하는 일을 ‘끝까지‘ ‘마지막까지‘ 하는 사람이승자의 자리에 서는 것이다. - P35

성공은 숫자 게임이다. 3점슛 연습을 100번 한 사람과 1,000번 한 사람, 1만 번 한 사람의 감각이 같을 수 없다. 누가 더 많이 시도하느냐가 승부를 결정한다. 현장에서도 보면 못질을 10년 이상 한 사람은 망치를 내려치는 손목의 스냅부터 다르다. - P35

한 달에 한 번 타일을 붙이는 사람과 한 달에 15번 타일을 붙여본 사람의 경험치는 절대적으로 다르다. 1년이면 168번, 2년 336번, 3년 504번의 차이가 난다. 이 집약적 수치가 만들어내는 레벨업의 속도는 그야말로 어마무시하다. 한 달 걸리던 일을 15일, 일주일, 하루로 단축시키고 결국에는 반나절이면 끝낼 수 있게 만든다. - P36

사람들은 ‘최선‘이라는 노력이 눈에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선이라는 노력은 남과 다른 디테일로 그 역량을 드러낸다. 마지막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요한 태도가 승부를 가르는 것이다. - P36

19세기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로 꼽히는 파블로 데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는 "3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14시간씩 연습했는데, 사람들은 나를 천재라고 부른다"라며 재능보다 노력이 한 수 위임을 강조했다. 고통스러을 정도로 지루한 과정을 거쳐야만 ‘익숙함을 변주하는 경지‘에 오를 수 있다. - P36

명확히 설정된 목표가 없으면 사소한 일상을 충실히 살다가결국 그 일상의 노예가 되고 만다.
-로버트 하인라인, 소설가 - P37

중국을 대표하는 문장가이자 시인 소동파는 "새는 갇혀 있어도 비행을 잊지 않고, 말은 매여 있어도 항상 달릴 것을 생각한다"라는 글을 남겼다. 현재 위치와 자리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나 역시 그랬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지금 이 순간 뭘 배우고 있는가‘를 항상 체크했다. - P38

초보 시절 일 년 동안 허드렛일만 도맡아 할 때는 모든 공정을 따라다니며 눈에 익혔다. 싱크대를 철거하면 싱크대가 뜯겨 나간 자리는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했다. 욕실, 세탁, 수도 배관 등 책에서만 보던 설비를 현장에서 두 눈으로 확인하며 관련 이해도를 높여나갔다. 철거가 끝나면 눈치껏 천장, 바닥, 주방, 욕실 등의 소재와 마감재도 파악했다. 현장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 P39

현장에서는 숙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을 기공이라고 부른다. 반면 경험과 기술이 부족한 초짜는 데모도(조공)라고 한다. 철거가 끝나면 기진맥진하기 일쑤였지만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모든 공정의 데모도를 자처하고 나섰다. 변기를 교체하고 조명 하나 설치하는 데도 엄청난 궁리가 필요했지만그 과정을 통해 남보다 빠르게 기술을 익혀 나갈 수 있었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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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풍경이나 사람, 사물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하나하나가 정말로 섬세하게 느껴졌다. 소설 속 배경은 크게 일제시대와 해방이후로 나눠볼 수 있는데 소설 속 내용에 몰입하다보니 책을 읽으면서 마치 그 시대 속으로 잠시 들어갔다가 나온듯한 느낌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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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일제시대가 막을 내리고 광복이 찾아온다. 이후에 친일파들에 대한 재판들이 열리는데, 이것은 현재까지도 논란이 있는 부분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을 괴롭게 한 일본군의 조력자 역할을 했던 친일파들을 모조리 척결해야한다는 의견과 목숨을 부지하면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일할 수 밖에 없었다는 두 의견이 대표적이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있기에 단정지어 얘기할 수 없지만, 양 쪽 모두 나름의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이 소설에서는 이명보라는 인물과 김성수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전자는 독립운동에 힘썼던 인물이고, 후자는 소위 말하는 친일파에 가까운 사람으로 그려진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이 둘이 서로 아는 관계로 이명보가 독립운동을 하는데 필요한 수단으로 김성수에게 독립운동에 필요한 물품들을 지원 받는 장면도 나오기는 하나, 김성수라는 캐릭터 자체의 무게중심은 애국심에 불타는 쪽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 쪽에 좀 더 쏠려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인물간의 구도가 있는데, 이명보와 김성수라는 두 캐릭터에 수반되어 옥희나 그 주변의 인물들 그리고 한철과 정호까지 얼키고 설킨 채로 이어져 있다.

아직 끝까지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제 슬슬 막바지에 치닫고 있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소설 속 시대인 일제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어떤 캐릭터와 가장 유사하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에 대해 문득 생각해보게 되었다.

생각해봤는데, 내 자신의 실제 성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어떤 한 캐릭터와 유사한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예상해보게 되었다. 굳이 어떤 캐릭터인지를 여기서 밝히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기에 따로 말하진 않겠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각자 사람이 처해있는 각종 환경과 입장이 다들 다르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질자체도 달라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가 약간은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막말로 사람은 생긴대로 사는 동물(?)이라, 자신의 부모님의 직업이 무엇이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의 진로에 있어 어떤 커다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고, 가정환경이라든가 성장배경에 따라 정말 다양한 길로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살펴보면 어릴때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찢어지게 가난한 채로 성장해온 캐릭터도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집안 배경이 좋아서 유복하게 자라난 캐릭터도 있으며, 어릴적 가정환경이 불우한 나머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이른 나이에 사회에 나와서 일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캐릭터들도 나온다.

어떤 캐릭터가 되었든 간에 인간이라는 동물은 생존 본능에 따라 거기에 맞게 적응하기도 하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존재이다.

지금 나는 어떤 것에 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두고 살고 있는지 다시금 돌아보고 자신이 그에 걸맞게 잘 살고 있다면 그대로 가면 될 것이고 혹시라도 그 의미나 가치가 헛된 것이라면 또다른 의미나 가치를 찾거나 부여하고 거기에 걸맞는 삶을 살다가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내게 주어진 인생을 가치있고 보람되게 살아야 후회가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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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부분을 더 읽으면서 어떠한(?) 계기로 인해 옥희와 한철 그리고 옥희와 정호가 다시 재회하며 두 사람 사이의 관계들을 추억해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전에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들에 대해 용서를 구하면서 화해하는 모습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별히 정호가 옥희에게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 아쉬움을 나타내는 모습은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독자들에게도 뭔가 마음에 짠한 여운을 남겨주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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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이 되고 시간도 어느정도 지난 무렵 정부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을 색출하여 잡아들이는 일을 하는데, 정호가 예전에 고려공산당의 일원이었던 이명보와의 친분이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수사를 받게 된다. 소설 속 수사과정을 보면 약간은 억지로 끼워 맞춰 넣는듯한 느낌도 받지만 이게 또 묘하게 앞에서 나왔던 뭔가 의미있었던 물건(?)들이 겹쳐지면서 정호에게 불리한 증거로 이용되는 장면이 나온다. 예전에는 이 물건(?)들이 정호의 목숨을 살렸던 물건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물건들이 정호의 인생의 장애물(?)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물리적으로는 동일한 물건임에도 시간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생각해보도록 한다는 느낌도 살짝 받았다.

생각을 조금 확장하여 우리 일상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너무나도 귀하디 귀했던 물건이 어느 순간 내 발목을 잡는다든가 하는 물건이 혹시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소설 속 시대 상황과 지금은 완전히 다른 시대이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한 번 쯤 생각해봐도 괜찮은 주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독자마다 삶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이 다 다를 것이기에 특정한 것으로 일반화하기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각자가 소중히 여겼던 물건들을 생각해보며 주변 친구 등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 주제를 놓고 수다를 떨어보는 것도 나름 소소한 재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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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전 마지막 부분에 정호가 군중들의 돌팔매질에 맞아 죽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마치 예수가 십자가를 지러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면서 로마군인들에게 채찍에 맞고, 침뱉음을 당하며 조롱당했던 장면과 묘하게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실제 작가의 의도가 그러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장면도 독자들에 따라 느끼는 바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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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에서는 화자가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바뀌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서 주인공은 옥희다.

밑줄친 부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옥희는 정호와 한철과의 추억을 곱씹으며 좋지 못한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았던 것을 훨씬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좋지 못한 일들에 대한 기억들은 흐릿해져서 기억을 더듬으려 해도 잘 생각나지 않는 반면, 좋았거나 행복했던 일들에 대한 기억들은 흐릿해지기보다는 기억을 더듬으면 더듬을수록 더욱더 선명하게 떠오름을 고백한다.

이러한 옥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과연 예전의 추억들, 기억들을 더듬어 돌이켜볼때 과연 어떨지 잠시 책을 덮고 생각해봤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도 살면서 안좋았던 기억들보다는 좋았던 기억들이 보다 선명하게 그리고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것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인간의 본능안에 부정적인 것보다는 긍정적인 것들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고자하는 어떤 시스템이 확립되어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이 한번 보거나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잊지 않고 다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좋은 경험도 물론 하지만,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좋지못한 경험을 하게 될 경우 그러한 모든 것들을 잊지않고 기억할 경우 감정적으로 울분이 차올라 넘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도 있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이유로 감당하기 힘든 어떤 고통이 새롭게 찾아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간에 소설로 다시 돌아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옥희가 좋은 것만 기억하고 떠올리려는 저 모습은 뭔가 희망을 놓지 않고 다가올 미래를 위한 원동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독자인 나의 마음 또한 왠지모르게 훈훈해졌다.




명보는 인연을 믿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 만나게 해주는 보이지않는 실타래가 우주의 섭리에 따라 미리 정해져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가장 중요하고 좋은 인연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연이었다. 이는 하늘이 정해준 천륜이며, 그 어떤 것으로도 단절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오래 전에 깨달은 터였다.

반면 그가 이제야 막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 있었으니, 돌이킬 수 없는 악연 또한 그만큼이나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노년이란, 인생의 모든 행복이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 아닌 이미 지나간 날들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삶을 위해 지불하기에 죽음은 아주 작은 대가였다.

빠르든 늦든, 결국 될 일은 되기 마련이라는 걸 한철은 경험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나 무서운 이야기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사실이었다.

이를 알게 되고부터 그는 남에게 좀 더 관대하게 행동하게 되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경험해 온 엄청난 규모의 일들을 겪거나 일으킬 능력과는 거리가 먼,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아닌가. 부품 공급자들, 그가 고용한 노동자들, 그리고 그의 조용하고 성실한 수행원도.

"그때만 해도 제 말을 믿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하지만 스스로 자기 자신을 믿으면, 결국 인생도 그 믿음을 따라 잘 풀려 나가더라고요."

"아, 자신감이란 타고나는 게 아니에요. 만약 처음부터 완벽한 자신감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는 말밖에 안 되지요."

"자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갖게 만드는 건 세상에 딱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본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는 것이죠. 운 좋게도 이 두 가지를 다 경험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해 충분한 믿음을 지니고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떠나지 마. 내 곁에 있어줘.‘ 한철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 말이 목구멍에 걸린 채 뭉쳐서 그의 목을 꽉 메웠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어." 대신 한철은 간신히 이렇게 말을 꺼냈다. "언젠가 그런 말을 한적이 있었지. 다른 누구에게서도 당신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감정은 느끼지 못할 거라고.... 지나보니 그 말이 맞았어."

"나도 그래, 천 번도 더 그래."

나는 모래시계 안에 갇혀 있었던 거라고.

"확률상 나는 오래전에 이미 죽었어야 했을 사람이야.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그 어떤 일도 두렵지 않아…………"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떤 일들은 조금 다르게 했다면 좋았을걸 싶어. 삶의 끝이 가까워지니 이제야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정호는 자신의 손으로 옥희의 작은 손을 감쌌다.

"아버지는 늘 그 호랑이가 환생한 우리 어머니였을 거라고 생각하셨어."

정호는 옥희의 눈을 들여다봤다. 옥희의 얼굴도 삶의 풍파에 많이 쓸렸지만, 그 검고 빛나는 눈만은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모습 그대로였다. 모래시계 안에서조차 영원히 시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정호의 마음이 아려왔다.

"그게 과연 맞는 말인지는 나도 몰라…………. 그냥 아버지 당신께서 그렇게 믿고 싶으셨던 거겠지. 먼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셔서 다른 삶을 살면서도 그분을 지켜주려 하셨던 거라고."

"왜냐면, 옥희야,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인연이니까. 길거리에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하잖아.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인연은 백년가약을 맺는 부부의 연이겠지.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인생에서 제일 아쉽고 후회스럽게 생각하는 점이야…………. 이번 생에서 너랑 그런 인연이 되지 못했다는 거."

정호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혹시나 옥희가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봐 평생 마음에 묻어두었던 말이었다. 그러나 이는 두 사람 모두 이미 아는 사실이었고, 또한 떨어져 있는 동안 경험한 모든 것을 돌이켜볼 때, 정호의 일생에서 가장 진실하게 선언할 수 있는 이 고백을 그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훨씬 더 일찍 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옥희야,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내가 이 세상의 모든 보석을 다 너한테 갖다줄 텐데…………."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들이 항상 그렇듯, 당시 느꼈던 갑작스러운 감정들은 이후에 오히려 더 깊고 충만하게 발전해 옥희가 그 장면을 마음속으로 다시 떠올릴 때마다 새로운 빛깔과 향기를 띠었다.

그 순간 정호는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기생들의 행렬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향해 꽃을 던진 어느 아름다운 소녀에게 첫눈에 반했던 바로 그 지점에 그가 지금 서 있었던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옥희를 만난 순간이었다.

결국 정호는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래서 이 말을 전할 수 없다는 게 그에겐 큰 아픔으로 남았다. 나는 너를 사랑해.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또 다른 돌이 그의 귀를 적중했고, 군중의 야유는 점점 흐려져갔다. 정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 번에 한 걸음씩, 길이 끝나는 곳을 향해.

비단으로 감싸인 채 두 겹의 나무상자 안에 숨겨져 있던 그 물건들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달라진건 나 뿐이었다.

제주는 모든 것이 본토와 달랐다. 일단 바다부터 그랬다. 제주의 바닷물은 모래사장 근처에서는 밝은 청록색이다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에메랄드빛 초록에서 사파이어의 파랑으로 점점 더 깊은 색채를 띤다.

공기에서는 소금의 짠 내음과 잘 익은 감귤의 새콤한 향기가 풍겼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나를 반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를 내쫓지도 않았다. 섬사람들은 육지에서 온 사람을 경계했다.

하지만 끝없이 밀려오는 푸른 파도를 바라볼수록 내 마음은 행복했던 기억들로 더 쏠리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몇몇 이미지를 제외하고는 그동안 일어났던 모든 끔찍한 사건의 면모를 자세하게 기억해 내기란 어려웠다.

그런데도 이제는 막상 그날 저녁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정확히 어떻게 내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아직도 아주 선명하게 꺼내볼 수 있는 기억은 오직 아름다운 부분들뿐이다.

이웃 마을의 이장이 쓰던 중고 흑백 텔레비전 한 대를 구입한 뒤에야, 나는 마침내 동네 안에서 약간의 존경과 인정을 받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 마을 전체에서 텔레비전을 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의 매일 저녁 마을 사람들 전체가 뉴스를 보기 위해 우리 집으로 몰려들었다.

몇 달이나 물에 떠 있기와 물장구치기를 꾸준히 연습한 끝에, 나는 마침내 숨을 참고 해저로 잠수하는 단계를 허락받았다.

물속에서, 나는 과거의 ‘나‘들의 무게가 깊은 해저로 가라앉는 걸 느꼈다. 나는 그 모든 고통과 후회를 겪었던 그 사람이 더는 아닌 것 같았다.

제주도에 와서 내가 또 하나 알게 된건, 여기서는 봄여름에도 코스모스가 핀다는 사실이었다.

내 손바닥 위에 놓인 그것은, 새벽달처럼 옅은 분홍색과 회색으로 빛나는 진주 한 알이었다. 한참이나 그걸 바라보던 나는, 정호가 아직도 나를 돌봐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저세상에 가서도 말이다. 그리고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있을거라는 것도. 삶을 계속 놓아주고 또 붙잡고 버티면서, 오직 바다에서 온 나의 일부만이 남을 때까지.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원한 청색 파도 사이를 둥실둥실 부유했다.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그 어떤 것에 대한 소망도 동경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바다와 하나였다.

번역자는 그 책의 가장 꼼꼼한 독자라는 말이 있다.

한국어를 써본 경험이 있는 저자가 영어로 쓴 원문은 마치 이중으로 섬세하게 조각된 예술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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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즐라탄이즐라탄탄 > [100자평] 드립백 콜롬비아 엑셀소 디카페인 #4

1년 전엔 이 포장 디자인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얼마전 알라딘 커피가 리뉴얼 하면서 기존에 있던 드립백 포장 디자인도 전체적으로 바뀐듯 하다.

뭐 껍데기보다는 안에 있는 내용물이 더 중요한 법이니 크게 문제될 건 없지만, 예전 디자인에 익숙해져있어서 그런지 아직은 생소하다는 느낌이 좀 더 강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또 적응 되고 뭐 그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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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소설 속 배경이나 인물들의 감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인상적이었고, 밑줄 친 문장 중에서는 뭔가 와닿는 문장들도 있어서 좋았다. 이와 더불어 내 감성도 한 층 더 깊어진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미 너무 초췌하고 앙상해져 엄지와 중지를 구부려 팔꿈치를 잡을수 있을 정도였다. 군복은 마치 옷걸이에 걸어둔 것처럼 그의 말라빠진 몸에 겨우 걸쳐진 채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래도 굶주림은 여전히 그를 지배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

한때 자신이 짐승들을 향해 달리고, 쫓고, 또 죽일 만큼 강한 힘을 가졌었다는 게 지금은 아예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 세상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버림받은 채,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야마다는 이러한 아이러니에 대해 곰곰이 성찰했다. 아무도 그의 부재를 진심으로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미네코는 물론이고 어쩌면 이토 아쓰오조차도.

야마다에게는 그의 삶이 최소한의 중요성과 의미를 갖고 마무리된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힘이 빠져 더는 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야마다는 차가운 땅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일단 그런 자세를 취한 이상 아예 누워버리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칠수가 없었다. 그래서 야마다는 숲속 바닥이 그의 침대이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 그의 담요인 양 몸을 쭉 펴고 누웠다. 이렇게 있다 보니 오히려 마음이 놓이고 마침내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이 드는 게 신기했다.

바로 그 순간 야마다는 자신이 어디서 이 모습을 보았는지 생각해 냈다. 아주 오래전, 여기서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어느 산 속에서 바로 이렇게 눈 위에 누워 있는 남자를 발견하지 않았던가. 시체나 다름없이 보이던 그 남자.

당시의 야마다는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바뀌리라는 걸 짐작조차 못했지만, 그 이후 일어났던 모든 일을 조화롭게 맞물리게 하는 어떤 절대적인 필연성이 수정처럼 또렷한 의식의 물결 속에서 그를 압도했다.

논리적으로든 비논리적으로든 발생했던 불가역적인 사건들, 그 모든 일이 그를 정확한 최종 목적지인 이곳에 안착시켜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왜‘라는 물음조차, 이제 새하얀 저 하늘에서 깨끗하게 녹아 사라지는 듯했다.

"이제 알겠군." 그는 중얼거렸다. 아니, 어쩌면 속으로 생각하기만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의 언어가 목구멍을 떠나 음성이 되었는지, 혹은 그의 머릿속을 떠다니는 의식의 단편으로만 남았는지도 더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가 실제로 소리를 냈다 한들, 그걸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야마다는 마침내 평온을 찾았다.

한 청년이 정호의 오른편 골목에서 부리나케 달려가는가 싶더니,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 거리의 무거운 정적을 깨뜨렸다.
"일본이 항복했다!" 그의 목소리가 쨍하게 울렸다. "한국은 독립국이다!"

마지막 빗방울 하나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댐처럼, 사람들이 숨 막히는 속도로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정호는 곧 수백 명, 그리고 수천 명 이어 수만 명의 사람들과 함께 서로 얼싸안고, 노래하고, 울고,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이들도 더는 낯선 이가 아니었다.

이 열정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혹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가장 위대한 사랑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이 감정을 억누를 수없어서 정호는 크게 울부짖었다.

황홀함의 절정에 빠져 목을 놓아 흐느끼는 순간, 비로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알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울컥한 짠맛에 목구멍이 콱콱 막혀 오고 그렁그렁한 눈물로 눈시울이 흐려져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지금, 정호는 극도의 환희, 자유라는 이 감각에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겼다.

하지만 정호의 냉담한 침묵 앞에서 옥희는 그들이 다시는 예전 같은 친구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널 연화한테 데려다 주려고 왔을 뿐이야." 마침내 정호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사람은, 그가 살아있다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에야 비로소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쟁의 여파 중 유일하게 좋은 점이라고 할 만했던 건 시장에서 아편을 하나도 구할 수 없게 되어 강제로 마약을 끊고 중독에서 벗어나게 된 일이었다고 연화는 말했다. 그 과정을 겪느라 거의 죽을 뻔했지만 이제 더는 아편을 피우지 않는다고 했다.

"인생이란 게 얼마나 웃기니. 이모가 조금만 더 오래 사셨다면 미국에서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옥희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제 그에게는 이 월향의 편지가, 자신의 비참한 몰락을 가져온 이 나라를 탈출해 세계를 반 바퀴돌아야 닿는 먼 곳에서 삶을 다시 시작해 볼 기회인 셈이었다.

옥희는 앞으로 그 어떤 새로움에도 손을 뻗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이미 충분히 아픔을 겪었으므로.

옥희는 이제부터는 좋은 일들만 그의 앞길에 있으리라 믿었다. 오직 크나큰 평화만이 깃들기를. 이제 그가 막 건너가게 될 바다의 이름처럼 말이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작별을 고한다 해도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가끔 화를 내거나 슬퍼하기도 하지? 사랑 때문에 기쁨도, 즐거움도 느끼고?"

인생은 곧 바퀴였다. 영민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그 바퀴를 잘 굴려 어디로든 갈수 있었다. 반면 어리석거나 운이 나쁜 사람은 그 바퀴에 깔려 무참히 짓밟힐수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직 그 바퀴를 앞쪽으로 굴러가게 하는 일에온 힘을 쏟았다. 먹고 자고정사를 나누고 아이를 갖는 것처럼 흔히 인생의 휴식 혹은 쾌락이라 여겨지는 일조차도, 실은 무의식중에 그저 그 바퀴를 앞으로 굴리는 일에 불과했다. 그들이 진정으로 멈추는 순간은 오직 죽음을 맞이할 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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