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인류가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 바뀌면서 인간이 한 장소에 머물러 살 수 있게 되자 비로소 집과 가구라는 것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특별히 가구 중에 ‘의자‘를 예로 들면서 의자의 본질적인 속성이 ‘노동하지 않는 자‘에게만 필요한 물건이라고 했었는데, 저자는 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 기록하는 일을 담당하는 ‘서기‘를 예로 들며 직접적인 노동을 하지 않는 서기 같은 사람들에 의자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저자의 추론이 굉장히 논리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현상이나 상황 등을 설명하면서 그에 합당한 이유들을 사람들이 논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게 추론해내는 저자의 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것 같다. 물론 저자가 추론해낸 이유들이 100% 모두 다 맞다고 단정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딱 읽었을 때 ‘아 그렇구나‘라고 납득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농경 사회에서 빈부 격차가 생겨나면서 다양한 직업과 사회 계급이 생겨났다. 새로 생겨난 직업 중에는 소출물의 양을 기록하는 서기가 있었다. 인류 최초의 화이트칼라 직업이다. 문자를 이용해서 소출과 세금을 숫자로 기록하는 일이 서기의 주요 업무다. 그들은 아마도 의자에 앉아서 일했을 것이다. - P201
집에서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권력자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왕이나 귀족은 행차할 때도 가마 의자에 앉아서 이동했다. 이처럼 의자는 권력자만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 P201
의자가 그리스 시대에 와서는 반원형 극장에 객석으로 만들어졌다. 그것도 모든 시민이 언제든 앉을 수 있게끔 말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군집할 때는 왕이나 종교 지도자만 앉았고 시민들은 서 있었다. 지구라트 신전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서 있어야 했다. 그런데 똑같이 사람이 모여 있는 공간인데도 그리스 반원형 극장에서는 객석 의자에 모두 다 앉는다. 오히려 무대에 있는 사람이 서 있다. 이는 권력이 일반인에게 분산되어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 P202
공짜로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많은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더 민주화된 사회다. 현대 사회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길거리에 벤치가 많은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더 민주적인 사회라 할 수 있다. - P202
무게와 높이는 위치에너지를 만들고, 그것은 부와 권력의 척도가 된다. - P204
‘파르테논 신전‘은 1687년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를 점령하고 있던 시절에 화약고로 사용하던 중 베네치아의 포격으로 인해 폭발해 지붕이 대부분 소실되었다. 하지만 원래의 디자인은 지붕이 덮여 있는 실내 공간이었고, 내부의 모습은 마치 모세의 성막처럼 어두컴컴한 곳에 횃불이 켜 있고, 그 뒤에 아테네 신상이 놓인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 아니라 제사상이 들어가서 제사를 드리는 공간이었다. - P205
사회가 발전하면 기술이 발달하고 경제적 여유도 생긴다. 따라서 건축에서는 공공의 공간들이 실내화되는 경향이 생겨난다. 그리스 다음에 나타난 로마 제국의 건축물들이 그렇다. 그리스 반원형 극장은 지붕이 없지만, 로마 ‘콜로세움‘은 천막으로 된 지붕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의 시장인 아고라는 주로 노천 광장이었지만, 로마는 바실리카라는 거대한 건축물의 실내 공간에서 상거래와 재판을 했다. 우리도 그냥 노천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잘살게 되면서 비를 맞던 재래식 시장에 지붕을 덮었고, 더 잘살게 되자 주차장까지 있는 마트에 가서 장을 보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 P206
시대와 지역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도시의 대형 종교 건축물 앞에는 시장이 위치한다는 점이다. 일본의 신사를 가도 신사에 들어가는 입구에 가게들이 즐비하게 줄지어 있고, ‘밀라노 대성당 Duomo di Milano‘ 앞 광장 주변으로 상업 시설이 들어서있다. - P207
대형 건축물은 공사 기간이 길다. 그렇다 보니 공사장 주변에는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식당 등의 상업 공간이 생겨난다. 자연스럽게 대형 종교 건축물 앞에 시장이 형성되는 것이다. 건물이 완성된 후에도 종교 건축물에 방문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그 시설은 유지된다. 아테네의 시장 아고라가 신전과 극장근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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