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지난번 포스팅으로 이 소설에 관한 포스팅을 마무리 하려고 하였는데, 이 책의 맨 마지막에 나온 작가의 말에 나온 내용을 차마 그냥 지나치기가 힘들어서 비록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기록을 남긴다.
비록 독자인 내가 작가님처럼 소설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밑줄친 문장들은 개인적으로 상당부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이 나오지만, 그중 가장 생각해볼만한 것이라고 한다면 ‘과연 나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이 정녕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라이프캐스팅(석고를 부어 떠내는 작업)‘이라는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소재를 통해 작가는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껍데기 혹은 껍질과 그 속에 담겨있는 진짜 알맹이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또한 진짜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모습을 찾아나가고자 애쓰는 화자의 모습을 통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도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모습만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몇몇 핵심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독자인 나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끌었던 인물은 실내 건축가로 등장하는 E라는 사람이었다. E는 이 소설 후반부에 그간 보여줬던 정리되고 정돈된 자신의 모습이 어디서부터 기인했던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화자인 장운형에게 털어놓는데, 그동안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E의 내면에만 꼭꼭 숨겨져 있었던 이야기들을 쭉 읽어나가면서 사람이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결코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겉과 속이 물론 똑같은 경우도 아예 없진 않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완전히 똑같은 경우보다는 아예 상반되거나, 아예 상반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는 다른 경우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물론 이것이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고만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게, 험난하고 각박한 세상을 무던히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겉과 속이 다른 삶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는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간극이 아예 없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가 진짜로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자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여지는 나‘가 ‘진짜 나‘와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음을 자각하고 ‘진짜 나‘를 잘 알아야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로 나왔던 L이라는 인물도 화자에게 ‘진짜 나‘가 행복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난 뒤 자신이 행복해졌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말이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는데 정리하자면, 독자인 나에게 이 소설은 껍데기나 껍질이 아닌 ‘진짜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는다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나왔던 화자와 E가 느꼈던 밀도높은 친밀감을 누구든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새벽녘에 꾸었던 꿈, 낯선 사람이 던지고 간 말 한마디, 무심코 펼쳐든 신문에서 발견한 글귀, 불쑥 튀어나온 먼 기억의 한 조각들까지 모두 계시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바로 그런 순간들이 내가 소설을 쓸 때 가장 사랑하는 순간들이다.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이지만 전혀 새로운 감각으로 부딪쳐오는 숱한 의문들, 짧고 강렬한 각성, 깊숙이 찌르는 느낌 속에서 나는 일종의 자유를 느낀다. - P328
소설과 함께 열두 달을 순회하는 동안 나에게 시간은 다른 속력으로 흘렀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 몸에 머물렀던 소설은 가장 먼저 내 존재를 변화시킨다. 눈과 귀를 바꾸고,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바꾸고, 아직 걸어보지 못했던 곳으로 내 영혼을 말없이 옮겨다 놓는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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