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다윈주의와 관련하여 우파와 좌파에 대해 정의를 내렸었는데 오늘은 그에 관한 내용들이 이어진다. 여러가지 논의들이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은 독자들 개개인의 몫인듯 하다. 다만 글을 읽다보면 저자께서도 어느 한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거나 다른 한 쪽이 절대적으로 틀리다거나 하기보다는 두 의견이 절충된 어느 중간 지점 정도에 포지셔닝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잠깐 접한 후 한동안 접할 일이 없었던 DNA관련 개념들이 등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쉽진 않았지만 본문 내용의 이해를 위해 최소한의 지식은 제대로 잡고 넘어가봐야 겠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읽어 나갔다. 마음먹고 읽다보니 그래도 기본적인 이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여러가지 복잡한 개념들이 나오는데, p.123에 밑줄 친 내용 중에 ‘유전자는 목적의식을 가진 행위 주체가 아니다‘라는 문장이 개인적으로 와닿게 느껴졌다. 여기서 파생된 것이 ‘삶의 의미‘라는 것과 관련된 얘기인데,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삶의 의미라는 것은 애초에 없다는 것이고 결국 삶의 의미라는 것은 개개인이 각자 알아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문학이라는 것이 효용을 발휘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생물학과 인문학을 연결해주는 접점이 바로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종교에 대한 얘기가 잠깐 등장한다. 여기선 저자가 생각하는 종교와 신에 대한 시각을 간단히 살펴볼 수 있었고, 사회생물학의 관점에서 종교라는 것이 ‘적응의 이익‘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얘기도 만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과학(이 챕터에서는 생물학)이라는 것이 기존의 인문학적 시각에선 보지 못했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이 되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께서도 책 중간중간에 자신이 과학을 공부하면서 이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독자인 나도 이제 조금씩 느껴가고 있는 듯 하다.

우파는 진화론을 오남용했다. 영국 철학자 스펜서가 창안한 ‘사회다윈주의‘가 시작이었다. 스펜서의 이론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부자와 권력자는 사회의 환경에 잘 적응한 사람이고 가난과 무지는 적응에 실패했다는 증거다. 약육강식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사회적·도덕적으로 바람직하기도 하다.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적응하지 못하는 자가 소멸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스펜서는 『종의 기원』 초판을 읽고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의 원리를 ‘적자생존‘適者生存(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 P112

예방접종과 구빈법은 생물학적·사회적으로 약한 사람이 생존해 자손을 남길 가능성을 높이는 게 확실하다. 하지만 질병과 빈곤을 방치하면 잠깐 동안 이익이 조금 생기긴 하겠지만 극도의 죄악을 함께 만들어 문명의 발전을 저해한다. 약자를 도우려는 마음도 자연이 준 인간의 본성이며 길게 보면 이런 훌륭한 덕성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회가 번영한다. 인구통계를 보면 성 선택이 인류의 퇴화를 막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하고 열등한 사람은 혼인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아서 후손을 남길 기회도 적다. - P113

개체를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의 단위로 본 다윈과 달리 스펜서와 골턴은 집단을 자연선택 단위로 설정했다. 인간은 집단 안에서는 개인끼리 경쟁하지만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집단으로 대결한다. 그러나 집단은 유전과 무관하기 때문에 자연선택 단위가 될 수 없다. - P113

진화는 정해진 방향이 없다. 인간이 원하거나 훌륭하다고 여기는 쪽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진화는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에 더 유리한 형질을 지닌 개체가 살아남아 번식한다는 사실을 서술하는 말일 뿐이다. 사실은 도덕이 아니다. 자연스럽다고 해서 훌륭한 건 아니다. 그런데도 우파는 진화를 사회 번영과 인류 발전을 추동하는 ‘신의 섭리‘로 포장해 무한경쟁을 조장했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사회적 미덕이라고 찬양했다. - P114

예나 지금이나 우파는 집단을 생존경쟁의 단위로 설정하고 다른 민족 또는 국가의 구성원에 대한 적대의식과 혐오감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 P114

사회복지학계는 좌파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 P115

우파는 진화론을 오독하고 악용해서 사회다윈주의와 우생학을 만들었다. 좌파는 다윈과 다윈주의를 싸잡아 배척했다. 지금도 적지 않은 인문학자가 다윈주의를 혐오한다. - P115

내가 사회복지학과 심포지엄에 굳이 다윈주의를 가져간 것은 인문학의 전통적 이론이 틀렸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윈주의가 복지정책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P115

다윈주의는 이미 아는 질문을 다르게 해석할 기회를 제공하며 다른 답을 발견할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문과 다윈주의자‘를 자처한다. - P116

두 가지만 말하겠다. "모든 동식물의 유전자는 동일한 생물학 언어로 씌어 있다." 이건 감동이었다. "생물학 이론으로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이건 충격이었다. - P117

모든 생물의 DNA가 똑같이 네 종류의 염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 P117

동식물, 박테리아, 바이러스까지 생물은 모두 생존기계다. - P117

자기 복제자인 DNA deoxyribo nucleic acid (디옥시리보 핵산)는 다양한 기계를 만들었다. - P118

DNA는 우아하게 맞물린 한 쌍의 나선형 뉴클레오티드 사슬이다. ‘불멸의 코일‘을 만드는 뉴클레오티드는 A(아데닌), T(티민), C(시토신), G(구아닌)이라는 네 종류의 염기鹽基(base)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생명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연결 순서만 다를 뿐, 모든 동식물의 DNA는 같은 언어로 씌어 있다. - P118

DNA 분자는 복제를 잘한다. 설계도 원본이 든 세포 하나가 각각 설계도 사본 전체를 가진 세포 2개로 분열하고, 두 세포는 4, 8, 16, 32, ・・개로 늘어나 세포 1,000조 개로 이루어진 인간이 된다. - P118

모든 세포에 알파벳 4개로 쓴 ‘몸 만들기 설명서‘ 전체가 들어 있다. DNA의 메시지는 아미노산의 알파벳으로 전환해 특정한 단백질 분자를 만든다. 단백질이 세포 내부의 화학적 과정을 제어하는 과정은 엄격한 일방통행이라서 획득 형질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 P118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해도 유전이라는 방법으로는 자식에게 어느 하나 넘겨줄 수 없다. 새로운 개체는 매번 무無에서 시작한다. 유전자는 우리의 몸을 이용해 불변 상태를 유지한다. - P118

모든 생물의 DNA가 동일한 알파벳으로 씌어 있다는 사실은 모든 종이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음을 입증하는 유전학의 증거다. - P119

두 생물 개체의 유전자를 섞어 각각의 천성을 가진 자손을 만들 수 있으면 같은 종에 속한다. 동물에 한정해서 일상 언어로 말하면, 암수가 교미해 생식 능력이 있는 자식을 낳으면 같은 종이다. 자식을 낳는다해도 그 자식이 번식하지 못하면 같은 종이 아니다. - P119

동물은 세포에서 당을 태워 열을 내지만 식물은 다른 방법으로 추위를 견딘다. 겨울이 다가오면 잎에 보내던 수분과 영양분을 끊는다. 그래서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진다. 우리에게 가을의 정취를 선사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 P120

모든 유기체가 그렇듯 나무도 물을 품고 있다. 물이 얼어 팽창하면 세포가 터진다. 죽지 않으려면 겨울 여행을 잘 해야 한다. - P120

유전자는 ‘오래 존속하는 염색체染色體(chromosome)의 작은 조각‘이다. - P122

염색체의 조각이 오래 존속하려면 잘 흩어지지 않아야 하며, 흩어지지 않으려면 되도록 작아야 한다. - P122

염색체는 무엇인가. 세포핵 안에 있는 유전자 운반 물질이다. 세포를 관찰하려고 사용한 염료에 잘 반응해 염색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미경으로 보면 실 뭉치 비슷하게 생겼다. - P122

생물의 염색체는 n쌍이 보통이다. 드물지만 예외적으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어서 ‘보통‘ 그렇다고 했다. 예컨대 양파는 염색체가 8쌍, 수박은 11쌍, 초파리는 4쌍, 고양이는 19쌍, 침팬지는 24쌍, 개는 39쌍, 인간은 23쌍이다. - P122

인간 염색체의 한 쌍은 성性염색체라 하고, 나머지 22쌍은 상常염색체 또는 보통염색체라 한다. - P122

인간 염색체는 생식세포에서 절반인 23개로 감수 분열한다. 그런데 존재하는 23쌍의 염색체가 두 세트로 나뉘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다. 책 두 권을 뜯고 붙여 다시 두 권을 만든 다음 그중 하나를 고르는 식이다. 이때 어떤 염색체의 조각들은 시작 표시부터 끝 표시까지 네 종류의 염기가 특정 순서로 이어진 사슬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게 바로 유전자다. - P123

모양과 크기가 같은 한 쌍의 염색체를 ‘상동‘相同 염색체라고 한다. - P123

상동염색체의 같은 위치에는 눈의 색이나 다리의 길이와 같은 형질을 결정할 때 경쟁하는 ‘대립유전자‘가 있다.
대립유전자 가운데 자식에게 바로 발현하는 것을 우성硬性, 잠복하는 것을 열성劣性이라고 한다. 모든 유전자는 가장 먼저 대립유전자와 경쟁한다. - P123

유전자는 목적의식을 가진 행위 주체가 아니다. 단지 잘 흩어지지 않는 염색체의 조각일 뿐이다.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 P123

자연선택은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다. 어떤 것이 자연선택의 단위가 되려면 진화의 시간을 감당할 만큼 오래 존재해야 한다. 그 정도로 오래 존재하는 생명의 단위는 유전자뿐이다. 유전자의 수명은 최소한 100만 년 단위로 측정한다. 개체는 수명이 너무 짧아서, 집단은 독립한 생물이 아니어서 자연선택의 단위가 될 수 없다. 개체와 집단은 하늘의 구름이나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잠깐 존재한다. 이것이 유전자 선택론의 요지다. - P124

유전자는 의식이 없다. 불변 상태로 자신을 유지하면서 되도록 많은 생존기계의 몸에 퍼져 나갈 뿐이다. 그것이 유일한 존재 목적이다. - P124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는 지층의 구조와 지질을 분석하고 방사성 동위원소로 화석과 암석의 나이를 측정해 지구 상태의 변화와 생물 종의 진화 과정을 추적한다. - P125

인류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지구생명의 역사를 하루로 환산하면 20만 년은 여름밤 반딧불이가 두어 번 깜박인 정도의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 P126

생명의 나이는 곧 유전자의 나이다. 어떤 생물 개체와 동식물의 군집도 유전자처럼 오래 존속하지 않았다. 오직 유전자만이 40억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생존하고 번성했다. 유전자는 다양한 기계를 만들어 생존에 성공했다. - P126

호모 사피엔스는 대단히 복잡한 생존기계다. 우리는 개인으로 그리고 때로는 집단으로 생존경쟁을 한다. 다른 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겉보기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보면 자연선택은 유전자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 P126

사실은 도덕이 아니다. 가치도 아니다. 그저 사실일 뿐이다. - P127

자연이 만든 생존기계면 어떻고, 신이 흙으로 빚어 숨을 불어넣은 피조물이면 어떤가. 물질의 증거가 가리키는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된다. - P127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한다. - P127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 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 P127

우리는 대단히 복잡하고 독특하게 발전한 생존기계다. 유전자가 명하는 본능에 따라 사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고 감정을 느끼며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 - P128

모든 종에게 유전자는 똑같은 명령을 내렸다. ‘성장하라. 짝을 찾아라. 자식을 낳아 길러라. 그리고 죽어라. 너의 사멸은 나의 영생이다. 너의 삶에는 다른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목적을 추구한다. 살아서는 유전자의 굴레를 완전하게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 굴레에 묶여 사는 것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 P128

나는 호모 사피엔스를 ‘진화가 만든 기적‘으로 본다. 내가 기적의 산물임을 뿌듯한 기분으로 받아들인다. 이기적 유전자 이론은 내 자존감을 높여 주었다. - P128

‘나는 유전자가 만든 몸에 깃들어 있지만 유전자의 노예는 아니다. 본능을 직시하고 통제하면서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기는 행위로 삶의 시간을 채운다.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목표를 추구한다. 살아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한을 내가 행사하겠다. 유전자 · 타인 · 사회 · 국가 · 종교 · 신, 그 누구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겠다. 창틀을 붙잡고 선 채 죽은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 P128

자연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생물학의 특수 분야이고, 역사학·전기·문학은 인간 행태의 관찰 보고이며, 인류학과 사회학은 영장류의 한 종에 대한 사회생물학일 수 있다는 것 - P129

사회생물학은 "사회성 행동의 생물학적 측면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회생물학자는 다윈주의를 바탕으로 자연 선택이 동물 사회와 동물의 사회성 행동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 설명한다. 인간도 동물이므로 같은 분석도구로 인간사회와 인간의 사회성 행동을 연구할 수 있다. 사회생물학은 그런 관점을 견지하고 인문학의 세계로 건너왔다. - P130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 생물학적 기초‘가 있다는 전제를 두고 사회제도와 문화양식을 연구하면 인문학과 다른 각도에서 대상을 관찰하고 인문학과는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 P130

신이 인간을 창조했는가? 아니다.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 인간은 왜 신을 창조했는가? 삶의 유한성을 넘어서려는 욕망을 채우고 싶어서였다. 그렇다면 종교는 무엇인가? 종교는 믿는 자에게 진리이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망상이며 권력자에게는 유용한 통치도구다. - P131

사회생물학의 질문은 인문학과 다르다. ‘어떤 적응의 이익이 있기에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군집에서 종교행위가 진화했는가?‘ - P131

신의 숫자와 이름과 교리는 다르지만 모든 문명에 종교가 있었고 지금도 있다. 초월적 존재를 믿고 종교 공동체에 속하려는 성향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보편적 특성으로 인정할 수 있다. 다윈주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행위 양식이 인간 사회에서 진화한 것은 ‘적응의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적응의 이익‘은 생존과 번식에 성공할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를 가리킨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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