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에 유현준 교수의 《인문 건축 기행》과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책을 읽었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출간 순서와는 역순으로 읽게 되었는데, 그나마 최근에 읽었던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나왔던 키워드가 ‘도시‘와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동 저자의 책 중에《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공간이 만든 공간》이라는 책 이렇게 2가지가 있어서 둘 중에 무엇을 먼저 읽어볼까 고민하다가 일단 좀 더 일찍 출간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어떤 내용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오늘 독서에서 여러가지 용어들이 많이 나오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 키워드는 바로 ‘공간의 속도‘ 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면서 잘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저자가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나오는 운동에너지 공식을 인용하면서 에너지와 속도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공간의 속도‘라는 것이 거리의 에너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공간의 속도‘라는 말 다음으로 많이 나왔던 용어가 ‘이벤트 밀도‘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100미터 구간 안에 있는 건물 입구의 수를 지칭하는 말로 저자가 걷고 싶은 거리와 걷기 싫은 거리를 설명할 때 사용한 개념이다. 여기서의 핵심은 이 밀도가 높을수록 걷고 싶은 거리라는 것인데, 본문을 읽으면서 저자의 설명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건축이야말로 전형적으로 통섭적인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 P11

건축은 단순히 예술이 아니라 과학이며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이 종합된 학문 - P11

통섭이 화두로 등장한 지 10년이 돼 가지만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는 까닭은 문과와 이과로 분리된 교육을 받은 많은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들이 여전히 넘나듦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P11

생물학자가 종의 기원과 진화를 말하듯이 도시도 기원과 진화의 관점에서 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다. - P12

도시라는 유기체 안에 사람이라는 유기체들이 살아간다. 둘은 끊임없이 공진화한다. - P13

에펠탑 앞에 서야 비로소 파리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건축물이 그 나라와 장소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 P15

건축물이 왜 그 나라 그 장소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건축물만큼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들어간 결정체는 없기 때문이다. - P15

모든 건축은 그 나라의 경제를 견인하고 문화를 이끄는 주체였다. - P16

건축물은 그 나라의 기술력과 재력을 보여 주는 과시의 상징이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반영되는 결정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건축물은 사람이다. 그리고 건축물은 그 나라와 그 시대의 단면을 보여 주는 그림인 것이다. - P16

그 지역의 지리적, 기후적인 특색이 반영된 일반적인 건축물들 역시 그 지역 사람들의 문화적 DNA를 보여 주는 결과물이다. 우리가 건축물을 이해하면 그 배경에 있는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정치, 경제, 사회, 기술, 예술, 문화인류학적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P16

괴테는 "건축은 얼려진 음악"이라는 말을 하였다. 그의 말대로 건축에는 음악처럼 리듬, 멜로디, 화음, 가사가 있다. 고딕 성당 안을 걷다보면 도열해 있는 연주들이 음악의 박자처럼 느껴지고, 스테인드글라스 그림의 이야기는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에게 말을 한다. - P16

이러한 리듬과 화음 같은 음악적 요소들은 조각품이나 그림에서도 느낄 수가 있다. 하지만 건축물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전달 매체가 있다. 그것은 비어있는 보이드 공간이다.  - P16

보이드: void. 현관, 계단 등 주변에 동선이 집중된 공간과 대규모 홀, 식당 등 내부 공간 구성에서 열려 있는 빈 공간을 뜻한다. - P385

공간은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을 때부터 시간과 함께 있었던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공간이 없다면 빛도존재할 수 없다.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시간을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 P17

건축은 이러한 공간을 조절해서 사람과 이야기한다. 이러한 보이드 공간은 건축의 도움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 P17

건축물이 만들어지기 전의 공간은 막연하다. 하지만 벽을 세우게 되면 막연해서 느껴지지 않던 공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처마가 만들어지면 비로소 처마 밑의 공간이 우리에게 편안한 안식을 준다. - P17

건축물은 인간이 하는 모든 이성적, 감성적 행동들의 결집체이다. - P17

걷고 싶은 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휴먼스케일의 체험이 동반되어야 한다. - P21

휴먼 스케일 : human scale. 인간의 체격을 기준으로 한 척도. 건축, 인테리어, 가구에서 적용하는 길이, 양, 체적의 기준을 인간의 자세, 동작, 감각에 입각해 적용한 것 또는 적용한 단위. - P385

걷는다는 행위는 평균 시속 4킬로미터로 이루어지는 경험이다. - P23

유럽의 도시들은 대부분 자동차가 발명되기 오래전부터 생성된 것으로, 도시 내 도로망들이 사람 혹은 사람의 보행 속도보다 약간 더 빠른 마차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서 당시의 이동 수단은 느렸고, 그 느린 이동 수단 때문에 사람들의 시간거리가 길어지게 되고, 따라서 물리적인 도시의 도로망은 짧은 단위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도로의 결절점이 더 자주 만들어지게 되었다. - P24

미국의 경우에는 자동차를 위해서 만들어진 도시가 대부분이다. 자동차는 짧은 시간에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 거리가 짧아지고 따라서 자동차를 위한 교차로는 가끔씩 있어도 되었고, 결과적으로 도시의 블록이 크게 구획되어지게 되었다. - P24

이 데이터가 말해 주는 것은 보행자가 걸을 때 미국 도시에 비해서 유럽도시가 더 자주 교차로와 마주치게 되고, 그 만큼 보행자는 더 다양한 선택의 경험 혹은 진행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난 도로의 공간감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 P24

교차로가 생겨날 때마다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러한 선택의 경우의 수가 많이 생겨날수록 그도시는 우연성과 이벤트로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 P24

상점의 수가 ‘n‘이라면 보행자가 겪을 수 있는 이벤트 경우의 수는 ‘2^n‘이 된다. - P25

다양한 경우가 있다는 말은 보행자가 다른 날 다시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다른 거리를 체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뜻함과 동시에 하루를 걷더라도 다양한 이벤트를 만날 경우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위거리당 출입구의 수는 거리 체험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 있다. - P25

단위거리당 출입구 숫자가 많아서 선택의 경우의 수가 많은 경우를 ‘이벤트 밀도가 높다‘라고 표현해 보자. - P25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보행자 입장에서는 그의 세상(a world)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 P25

우리는 삶을 살 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주도적 선택권이 있기를 바란다. - P26

거리에 다양한 상점 입구의 수는 TV 채널의 수나 인터넷의 하이퍼링크(Hyperlink) 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 P26

이벤트 밀도는 그 거리가 보행자에게 얼마나 다양한 체험과 삶의 주도권을 제공할 수 있는 가를 정량적으로 보여 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 - P27

강남과 강북의 대표적인 거리의 분위기 차이는 그 거리가 형성되었던 방식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 P29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역의 경우 주로 일반 주거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의 문화 및 환경적 요인의 변화로 인해 자연 발생적으로 거리가 형성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거리가 소규모 민간 자본에 의해서 작은 필지에 지어진 작은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물리적 조건 때문에 단위거리당 점포의 수가 많아지고 보행자들은 가게에 들어갈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경우의 수가 높게 나왔다. - P30

도시 계획에 의해서 큰 규모의 필지와 자동차 중심의 도로로 정비된 지역에서는 거리를 구성하는 단위 건물의 규모가크다. 큰 필지에 한 개의 건물이 들어가고 거기에 한두 개의 입구만 만들어지기 때문에 단위거리당 보행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P30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조건은 도시 계획상의 필지 구획규모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음 - P30

PF(project finance): 돈을 빌려 줄 때 자금 조달의 기초를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는 사업주의 신용이나 물적담보에 두지 않고 프로젝트 자체의 경제성에 두는 금융 기법이다. 특정 프로젝트의 사업성(수익성)을 평가하여 돈을 빌려 주고 사업이 진행되면서 얻어지는 수익금으로 자금을 되돌려 받는다. 주로 사회 경제적 재산성을 가지고 있는 부동산개발 관련 사업에서 PF대출이 이뤄진다. - P385

걷고 싶은거리는 결국에는 얼마나 자주 다양한 가게가 들어서 있느냐의 물리적 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 P31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형 콤플렉스 건물 (문화 상업 복합 시설)을 만들더라도 거리와 접한 면에는 작은 소규모 가게들이 많이 배치되도록 디자인해야 하는 것 - P31

이벤트 밀도가 높은 거리는 우연성이 넘치는 도시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사람들이 걸으면서 더 많은 선택권을 갖는 거리가 더 걷고 싶은 거리가 되는 것이다.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진다는 것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 P32

걷고 싶은 거리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이벤트 밀도 외에 다른 특징은 없을까? ‘공간의 속도‘는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어 내는 정량화시킬 수 있는 거리의 두 번째 특징이다. - P32

우리의 공간은 태초부터 존재해 온 기본 값으로서 3차원으로 비어 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생활하는 거리나 광장의 공간이나 우주의 비어있는 공간은 똑같은 공간이다. - P32

공간은 인식 불가능하지만 그 공간에 물질이 생성되고 태양빛이 그 물질을 때리게 되고 특정한 파장의 빛만 반사되어 우리 눈에 들어오게 되면서 공간은 인식되기 시작한다 - P32

우리는 정지된 물리량인 도로와 건물을 만들고, 그로 인해서 만들어지는 부산물인 비어 있는 보이드 공간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빈 공간에 사람과 자동차 같은 움직이는 객체가 들어가게 되면서 공간은 비로소 쓰임새를 가지며 완성이 된다. 이처럼 도로와 건물 같은 물리적인 조건 이외에 거리에서 움직이는 개체도 거리의 성격을 규정하는 한 요인이 된다. - P33

움직이는 개체들이 거리라는 공간에 에너지를 부여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개체의 속도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물체의 속도는 그 물체의 운동에너지(E=1/2 X mv²)를 결정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 P33

움직임의 개체가 없이는 공간에서 아무런 속도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 - P33

김아타의 작품 속 공간은 시간이 정지된 느낌인 반면 일상의 타임스퀘어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움직이는 물체가 주는 운동에너지이다. - P36

공간은 움직이는 개체가 공간에 쏟아붓는 운동에너지에 의해서 크게 변한다. - P36

공간은 어떠한 행위자로 채워지느냐에 따라서 그 공간의 느낌과 성격이 달라진다. 그리고 이 변화의 요소는 모두 움직이는 것들이다. - P36

운동에너지는 질량에 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의 절반이다(E=1/2 X mv²). 이 물리학 법칙을 보면 속도는 에너지의 제곱의 절반으로 영향을 미친다. 같은 질량의 물체가 움직이더라도 그 속도가 시속 1킬로미터에서 시속 4킬로미터로 4배가 되면 운동에너지는 8배가 된다. 속도가 시속 8킬로미터가 되면 운동에너지는 32배가 된다. - P38

따라서 같은 거리에 같은 수의 자동차와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면 그 거리의 에너지는 속도의 제곱의 절반 값을 모두 모은 만큼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고스란히 거리라는 공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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