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위대한 사람의 뒤에는 모든 고통을 감내하며 절대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 하지만 현시대 우리 어머니들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자녀의 성공을 위해 ‘학습 매니저‘ 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지는 않은가. 맹목적인 치맛바람에 휩쓸려 어느새 역사 교육과 나라사랑 교육은 뒷전이다. 진짜 치맛바람이 불어야 할 곳은 어디인지 고민해 볼 일이다. 조마리아 여사로부터 뭔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이제 자녀의 물질적 성공이 아닌 정신적 성공에 교육 신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우리를 위해 순국하신 모든 열사들에 대하 최소한의 보답이며, 마땅히 해야 할 본분이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당신은 2월 14일을 어떤 날로 기억하는가?" - P206
자녀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집착은 결국 불신에서 오는 것이다. - P208
한 아이를 교육시키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만큼 여러 사람의 노력과 협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 P209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서 4:22-24) - P227
"가인도 아벨도 오랫동안 땀흘리며 수고한 결과물을 드렸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아벨은 자신의 산물이 온전히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 P234
예배란 우리의 인생 동안의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수고하고 노력해서 얻은 모든 것을 드리는 겁니다.
Wor[th] + -ship : 가치 + 성질, 상태, 지위
가치있는 것의 진정한 성질, 상태. 가치있는 것이 진정한 상태, 성질로 쓰이는 것 - P235
감사 훈련은 ‘안 된다‘ , ‘할 수 없다‘ 등의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인 관점으로 전환하는 더 특효약이다. - P237
왜 아이들이 자꾸 도전을 피하는 걸까? 그렇다. ‘두렵기‘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한계에 다가서기가 두렵고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한 도전이 무서워서, 도전보다 안주를 택하는 것이다. 도전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두려움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두려움은 다시 무능력을 낳는다. 두려움을 퇴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스펙이 화려해도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이 약하고 담대한 마음이 없다면 그 인생은 기대할 것이 없다. 도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 P238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We also rejoice in our sufferings, because we know that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로마서 5:3-4) - P239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 봅니다. 어느 날, 숨 쉬던 조개 안에 모래가 들어가 이리저리 조개의 살을 찌르며 고통스럽게 합니다. 인내의 한계에 부딪친 조개는 모래를 감싸 안은 분비물을 배출하고, 그 노력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고통스럽던 모래 알갱이는 진주라는 값진 보석으로 변하게 됩니다." - P238
조개에 모래라는 고통이 있을 때 진주를 낳듯이, 사람도 고통이 있어야 인내와 인격, 노련함, 성취감, 희망을 낳는다. - P239
오늘날 아이들은 왜 연약한가? 어릴 때는 보행기르 고난을 피하게 하고, 유치원 시절에는 엄마가 가방을 들어주니 독립할 능력이 없다. 초등학교부터는 온갖 과외를 통해 아이 혼자서 무언가를 이루어 낼 시간을 주지 않으니, 극심한 사춘기, 소위 ‘중2병‘은 대부뷰 이런 생활방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참을성이 없고 충동적이며 괜히 짜증을 부린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인내심을 기르게 할 것인가? 바로 고난이라는 훈련을 통해서이다. - P240
운동장을 두 바퀴만 뛰어도 기진맥진하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운동장을 뛰고 또 뛰었다. 어느새 세 바퀴를 돌더니 어느덧 열 바퀴를 뛰고 있다. 이러한 고통은 인내와 단련을 낳고 성취감까지 얻을 수 있으며, 아울러 더욱 높은 도전을 소망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고통의 유익이다. 그러니 돈보다 고통을 택하는 것이 유익한 일 아니겠는가. 진정한 리더는 온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만방학교는 여러 가지 ‘개고생‘프로그램을 꾸준히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 P240
잠언 3장이나 히브리서 12장을 보자. 여기에서는 징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히브리서 12:7-8)
징계란 회초리로 맞는다는 의미보다는 ‘훈련(discipline)‘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 훈련은 또한 ‘고통(suffering)‘ , ‘고된 시간(hard time)‘과 연관되어 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더욱 더 강력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고통을 통해 훈련하신다. - P240
만방학교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메시지가 있다.
"네 꿈을 버려라. 개꿈이란다."
사람들은 꿈을 가져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꿈을 버리라고 가르친다. 왜일까? 내가 가진 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꿈은 대개 개인의 이기적 욕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부모의 세뇌 작업을 통해 나온 것들도 태반이다. 그것들은 대부분 그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꿈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과 다르게 가르친다. ‘생존을 위한, 개인의 성공을 위한 꿈은 버려야 한다고.‘ - P241
십 대나 어른이나 고민하고 추구하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형태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모두 똑같다.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위해서 고민하고, 어른들은 승진을 위해서 고민한다. 이 둘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 P241
물론 자아성취를 위한 독려도 중요하지만 ‘자아부인‘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자아부인 없는 자아성취는 모래 위에 쌓은 집과 같다. 집은 반석위에 지어질 때 견고하고 흔들림이 없는 법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더욱 더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하려고 예수님이 오신 것 아니겠는가. - P241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34) - P241
자기 목숨을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태복음 10:39) - P242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것만 강조하다 보니 우리에게는 진정한 자아부인이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예수를 통한 이기적인 성공만 원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기독교가 기복 종교가 되어가는 것이다. - P242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 P242
자아의 완전한 죽음과 동시에,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을 경험하고 나서, 진정한 꿈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 받도록 말이다. - P242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8)
자녀들의 꿈은 두말할 것 없이 ‘증인‘인 것이다. 증인이라 함은 선교사와는 다른 의미이다. 만방학교의 졸업생들을 모두 선교사로 키울 수 없거니와 그래서도 안 된다. 증인이 된다는 말은 그들의 삶을 통하여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사람을 살리는 데 쓰임 받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공부의 목적은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래 직업은 결코 꿈이 될 수 없다. 직업은 꿈을 이루는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의 직업을 꿈으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 - P24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14) - P244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마가복음 9:35) - P247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게 전부를 주라. 너의 시간과 돈, 일의 일부는 필요 없다. 나는 너를 원한다. 나는 너의 육신을 고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이기 위해 왔다. 미봉책은 소용없다. 여기저기를 가지치기해 봐야 소용없다. 내가 원하는 나무의 뿌리를 뽑고 새 자아를 주는 것이다." - P248
"죽지도 않은 좀비처럼 살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로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심장을 가진 자로 살아 가겠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철저히 예수님에 의해 죽어야 한다. 그 죽음을 경험해야만 의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살게 되는 것이다. - P248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베드로전서 2:24) - P248
"We are looking for a place to die, not to live." 우리는 죽을 장소를 찾고 있습니다.
"What? Place to die?" 네? 죽을 장소를? - P250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러 오셨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살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죽기 위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요즘은 온통 ‘살기 위한‘ 장소를 찾느라 바쁜 게 현실이다. 학군이 좋은 곳으로 살러 가고, 아파트 값이 오를 곳으로 살러 가는 등. 삶의 주제가 ‘더 살기 좋은 곳으로!‘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 P250
‘죽을 장소‘를 찾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무조건 척박한 환경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어디에서 살던지 목숨을 걸 미션이 있어야 한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일서 3:16) - P250
당신은 살기 위한 장소를 찾고 있는가, 죽을 장소를 찾고 있는가? 사욕의 인생인가, 사명의 인생인가. 내가 가르치는 만방학교의 학생들 모두가 그들의 인생을 불태울 비전을 발견하고, 그 사명에 죽을 곳을 찾게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일부가 아닌 전부를 주님께 드릴 수 있는 터를 발견하길 기도한다. 세상은 두려움을 주지만, 우리 하나님은 생존 혹은 살아남기의 한계를 뛰어넘는 생명력을 주신다. 두려움만 주는 생존 마인드로 몸부림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기쁨으로 죽을 곳을 찾을 것인가. - P251
교육은 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변화들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고 내 삶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또한 삶 속에서 묻어나는 나만의 리더십을 찾아가도록 도와준다. 정답을 주기보다는 스스로 깨지고 고민하며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것, 이것이 진짜 교육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 P256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살리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변화는 내가 지금까지 느껴온 교육의 핵심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만방학교의 교육은 그동안 소극적이고 열등감에 눌려 살았던 나를 새로운 도전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신감 있는 나로 변화시켰다. 내가 가진 잠재력을 장점으로 만들며 변화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헌신과 사랑, 진정한 교육을 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기에 우리가 교육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 P256
‘안 되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하면, 될 일도 안 된다. 주님이 이루시기를 기대해야 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아뢸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립보서 4:13) - P258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시편 20:5) - P259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4:6) - P260
"No more turning back!"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더 이상 계산하지 않겠습니다!‘ 결단하며, 요단강 앞에 서 있는 여호수아의 심정으로 하나님이 행하실 기적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첫발을 내딛는 1그램의 순종을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한다. - P262
믿음이란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아니겠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브리서 11:1-2) - P262
삶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죽음은 반드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 죽음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현재의 삶이 더욱 풍요롭고 충실해질 수 있습니다. 죽음에 직면했다 가정하고 유언장을 써 보십시오. - P263
제자들에게 종종 얘기합니다. "먹고 살기 위한 빨대를 꽂지 말고, 새로운 개척지에 깃발을 꽂아라" 라고 말이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사후대책까지 모두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하물며 대학, 직장, 노후대책쯤이야! 자녀들에게 생존을 위한 꿈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꿈을 펼치게 합시다. 자녀의 꿈을 점검해 보십시오. - P263
파워나지움이란 미래형 교육개념으로 ‘학교란 파워를 기르는 인재양성소‘ 라는 뜻이다. 선한 능력의 영향력이 넘치는 서번트 리더들을 기르기 위해 설립된 기숙형 사립학교로써 - P270
만방의 사명 "We make Multicultural Global Servant Leaders."
핵심가치 More Than a School, We Are a Family. More Than a Teacher, You Are a Shepherd. More Than a Student, You Are a Disciple.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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