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고 이끌어나가야 할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시간이 몇 년 지난 뒤 아내를 만나게 됐을 때, 내가 아내에게 사 준 첫 음식은 바로 양은냄비에 끓인 동태찌개였다.
돈이 많아지면 불편하고 구차한 환경이 편리하고 쾌적한 환경으로 변할 뿐이다. 생활 수준이 높다고해서 높은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어떤 성공이건 간에 결코 행복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목표가 성취되면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뿐이지 그 성취감이 행복과 동의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어갔다고 해서 행복해졌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TV 프로그램 ‘성공시대‘(이미 방송이 끝났지만 인터넷에서 볼 수 있으므로 가능한 많이 보아라)나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들을 본받아 "나도 저렇게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저런 사람이 안 되면 내 삶은 불행하여진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 분명히 말한다. 그 어떠한 실패도 불행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그 어떤 삶도 열등하다고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는 없다.
(내가 가진 자로서 글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못 가진 자와 실패한 자를 ‘못난 놈‘, ‘불행한 놈‘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 내가 철저하게 비난하고 꾸짖는 대상은 시간을 우습게 여기는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져 자기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서도 돈과 성공과 행복을 아주 ‘편안하게‘ 꿈꾸는 사람들이다.)
행복은 우리가 소유한 것들과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반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내 경험에 비추어 말한다면, 행복은 우리가 소유한 것들이 유형의 것이건 무형의 것이건 상관없이 그 양과 질이 증가하는 과정이 계속될 때 얻어진다.
미국 심리학자 데이비드 마이어스David G. Myers 역시 <행복의 추구ThePursuit of Happiness: Discovering the Pathway to Fulfillment, Well-Being, and Enduring Personal Joy > 에서 ‘고정된 고소득보다는 소득이 증가하는 상태가 더 낫다"고 결론지었다. 소득의 많고 적음 그 자체가 아니라 소득이 매년 오르고 있을 때 인간은 행복을 더 많이 느낀다는 것이다. 매년 연봉 백만 달러를 계속 받는 사람보다는 10만 달러의 연봉이 매년 증가되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말이다.
나는 그의 말에 한 가지 더 붙이고 싶다. "사람은 자신의 삶에 변화를 스스로 일으켜 그 어떤 분야에서든지 자신의 가치를 계속 증대시켜 나갈 때 행복을 맛볼 수 있다"고 말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행복의 추구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했다. 그 권리를 누리려면 스스로의 변화를 먼저 주도하라. 남이 하면 따라 하고 남이 좋다면 따라서 좋다고 박수치는 그런 삶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뿌듯하여 질 수 있는 주체적 삶을 찾아라.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삶은 이미 생명이 죽은 삶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에 익숙해져 있다.
당신이 돈을 얼마나 벌든 간에 삶에 변화가 없고 뿌듯함이 없다면 결코 행복을 느낄 수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자기 자신의 가치를 변화시키고 증가시키는 노력을 할 때 행복은 매일같이 주어지는 법이며 덤으로 뿌듯함마저 느끼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그 변화의 방향을 어느 쪽에다 두는가에 있다. 그 방향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그 하나는 이 사회에서 대가를 더 많이 받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일에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다른 하나는 이 사회에서 대가를 받는 것과는 관련없이 인간으로서의 성숙함을 지향하는 것이다. 참선을 하면서 자기를 바라본다거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인생을 배운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여 삶과 생활 속에서 실천할 때 언제나 나는 뿌듯함과 행복감에 충만하였다.
‘충분히 행복한 운 좋은 사람‘ 이라는 표현은 심리학 교수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이 한 말이다 (노벨 경제학상도 받았음을 고려하면 그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은 읽어 볼 만한 책이 아니겠는가). 그는 행복을, 순간기억(moment base: 일례-사진을 보면서 그때 참 좋았어 라고 생각하는 것)과 관련지으며 "가장 행복한 사람은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열망이 크지 않았던 사람" 임을 지적한다. 기를 쓰고 행복을 찾아 나서는 사람이 오히려 행복해지기가 힘들다는 말인데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윌리엄 데이먼William Damon의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제목에 속지 마라. 원제The Path to Purpose: How Young People Find Their Calling in Life인데 젊은이들을 이끌어 주는 방법론 같은 것이다)를 보면 그 말이 이렇게 표현된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드물다."
"진정한 행복은 사람들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들고, 도전하게 만들고, 빠져들게 만드는 흥미로운 것들과 관련이 있다."
행복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며 외부 요인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도 아니고 순간순간 충분히 몰입할 때 찾아온다. 칙센트미하이가 〈몰입Flow〉에서 강조하는 내용이다.
전쟁터에서 전쟁의 법칙을 무시하고 휴머니즘을 찾으면 당신이 죽는다.
(매 단계마다 각 팀에서 축출된 사람은, 인간관계에만 치중한 사람과 개인적인 공로 혹은 명예만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최후에 승자가 된 사람은 동료들과의 동맹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새겨들어라!).
내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경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이 게임이 요구하는 차가운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휴머니즘을 찾는다는 것이다.
냉전 이후 더 이상 국가의 역할은 없으며 모든 사회적 문제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데(사회적 평등과 책임을 전제하고 있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구별된다) 신자유주의는 당연히 빈부격차와 인종갈등, 지역갈등을 그 어두운 그림자로 갖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 그림자를 없애 주고 살벌한 경제 전쟁을 종식시킬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같은 것은 과연 있는 것일까? 파이낸셜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제3의 길을 "유럽의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을 줄 수 없는 화려한 수식어"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런 제3의 길이 있건 없건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적어도 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런 길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길이 마련되기 전에 나는, 어쩌면 당신도, 이 세상을 떠난다.
그러니 당신이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경제 게임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변화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총체적 중산층 국가로 불리던 일본마저도 그 게임의 본질을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해 중류층이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이 게임은 아주 지극히 단순하다. 이익을 누가 더 많이 낼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가, 그것뿐이다. 그것 이외에 고려하여야 할 다른 이데올로기는 없다. 지역 경제를 생각하거나, 정치적으로 특정 계층을 고려하거나, 기존 근로자들의 기득권이나 생존권에 신경을 쓰거나 하게 되면 그것은 곧 경쟁력 상실을 가져온다.
전쟁 중에 나비가 아름답다고 해서 구경하지 말라. 전쟁 중에 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손을 내밀지 말라. 전쟁 중에 하늘 노을이 아름답다고 해서 눈길을 보내지 말라. 그래야 총에 맞아 죽지 않는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경제적으로 살아남으려면 휴머니즘이 아니라 손익계산서에서 이득이 나와야 한다. 도대체 왜 그렇게 비인간적으로 행동하여야 하느냐고? 그래야만 경제 게임에서 이길 수 있고 자본이라고 하는 힘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힘을 지니지 못한 자는 평화를 누릴 자격이 없다."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외교관인 장 지로두가 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신이 휴머니스트라면 경제 게임을 하지 않으면 된다. 축구팀에 농구 선수가 들어와서는 왜 손을 사용하지 않느냐고 징징대지 말고 돈 벌지 말라는 말이다.
꿈 깨라. 꿈을 갖고 야망만 품으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가? 꿈과 야망이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누구나 성공의 꿈을 품고 살아가는데 왜 성공한사람은 극소수라는 말인가.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은 야무지고 원대하게 품지만 그 꿈을 실현시키는 아주 작은 단계들은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야망에 사로잡히면 일확천금만 꿈꾸게 된다. 절약을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지만 당신은 현재 수입으로는 절약한다 하여도 백만장자가 되기에는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그 돈은 부자가 되는데 하등 도움이 안 될 것으로 여기고 미련 없이 다 소비하고 만다.
결국 일확천금의 꿈이 당신을 오히려 도태시킨다.
그러므로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나 야망은 버려라. 10년후의 목표? 5년 후의 목표도 세우지 말라. 그 기간 동안 당신은 그만 지쳐 버리고 만다. 그저 1년 정도 앞의 목표만을 세우되 1000만 원을 모으는 것 같은 소박하지만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목표를 세워라. 그러한 목표가 정하여지면 당신은 이제 당신의 수입에서 얼마를 떼어내 얼마 동안이나 저축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계산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행동 지침이 당신 자신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세워지게 된다는 말이다.
이제 남은 일은 그 행동 지침에 따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다.그렇게 하면 조만간 목돈을 쥐게 될 것이며, 바로 그 목돈이 종잣돈이 되어 부자의 길로 접어드는 첫 계단에 올라갈 수 있게 된다(명심해라. 부자가 되는 게임의 첫 번째 승자는 누가 더 먼저 자기 몸값을 올리고 종잣돈을 손에 쥐는가에 달려 있다).
그 소박해 보이는 목돈이 손에 쥐어지게 될 시간이 언제가 될 것인지는 순전히 당신이 현재의 수입 가운데 얼마나 소비할 것이며 얼마나 저축할 것인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일단, 6개월이건 1년이건 1년 미만의 가까운 미래에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면 절대, 절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 통장에 모인 돈을 뒤적거리며 안달하지도 말라. 그 모아진 돈을 부자가 되려는 꿈과 비교하고 계산하며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미래 투시 따위도 절대 하지 말라. 몇 개월치가 모였는지도 잊어버리고, 그저 다음 달에 저축하여야 할 돈만 생각하여라.
뒤를 돌아보지 말라.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나온다가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처럼 소금 덩어리로 변하고 만다. 계속 전진만 하라. 앞을 바라보되 절대 저 높은 계단 꼭대기위의 찬란한 태양빛을 성급히 찾지말라. 오르페우스Orfeus처럼 에우리뒤케Euridice를 또 한 번 잃어버리게 될 뿐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오늘 지금 밟아야 할 계단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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