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상해졌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 캐릭터 아니었잖아?"

"제가 어떤 캐릭터였는데요?"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겁니다."

"기획실장은 언젠가 우리 목을 조를 사람이니까요."

김강현은 아마 지금 순간에도 수많은 비리와 연결되어 있을 거다. 그중 하나라도 밝혀지는 순간 부하를 제물 삼아 상황을 모면할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을 인간이고.
"김강현 그 사람 절대 믿으면 안 됩니다."

때마침 대화를 끝낼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왜 일어나? 차 달라며?"
"늦었습니다. 공장장님. 제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인 줄 아십니까?
"하여튼, 까칠하긴."

에어 프라이어의 기본 원리는 헤어드라이기와 비슷하다.
열선과 팬을 적절히 조합하면 핵심 부분은 완성인 물건이다. 다만 팬과 열선의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것이 다음 숙제였다.

난 즉시 받아둔 서약서를 꺼내 들었다. 빽빽한 내용 중 독소 조항을 형광펜으로 색칠해 강조했다. 그래야 잘 보일테니까.

그러게 사인이라는 건 항상 조심해야 한다. 막무가내로 사인하면 집 날아가고 밭 날아가고 그런 거다.

연구소는 즉각 모든 숙원사업을 뒤로 미루고 우리 TF의 제품개발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그렇게 이틀 만에 제품개발팀에서 내려보낸 도면대로 여러 버전의 테스트 제품이 완성되었다.

신용재는 어설픈 영업부 소속이 아닌 회사의 중추라 할 수 있는 전략기획실 대리로 입사했다. 기획실 직원은 경영자를 대리해 회사 곳곳과 협조해 다양한 조사와 협의를 해나가야 하는 팀이다. 그 과정이 항상 원활할 수 없기에 난 진작부터 때로는 협박을 때로는 회유를 통해 협조를 끌어내는 법을 배웠다.

원래 영업부 직원이 될 운명인 용재를 기획실로 끌어들인 이유 중 하나도 그거였다.
용재의 외모라면 나처럼 죽어라 협박하고 회유할 필요 없이존재만으로 협력을 끌어내는게 가능할 거다.

난 그게 재능의 영역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만약 용재가 이 정도도 관철시키지 못한다면 난 녀석을 위해서라도 기획실에서 빼낼 의향이 있었다.

"갑질하라는 거 아냐. 공장지원팀은 원래 이런 지원을 해야 하는 팀이고 기획팀은 합당한 지원을 요구하는 거야."

과연 눈치 하나는 빨라 서용재도 나름 느낀 게 있었던 모양이다. 고개를 끄덕인 녀석이 쿵쿵거리며 공장지원팀 사무실로 향했다.

그 말대로였다. 김강현이라는 존재는 본사뿐만 아니라 공장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사주 곁에 찰싹 붙어서 피를 빠는 거머리 같은 놈!‘
직원 대부분은 김강현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 그의 수하인 기획실 파트장이 예뻐보일 리 없다.

공장은 공장 식구들끼리의 특별한 유대가 있었다.

"나 고혈압 있어서 먹는 거 조심해야 하는데."

"자! 고기 왔습니다."
용재가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고기를 내왔다.
"우와!"
소고기라는 말에 실험실에모인 모두가 탄성을 터뜨리며 용재에게 몰려들었다. 연구고 실험이고를 떠나 먹을 걸 가져다주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이쁜 법이다.

이번 공장 방문의 주목적은 에어 프라이어의 최적 설정을 찾아내는 거였다. 각 음식별로 설정 온도와 요리시간을 찾아내 제품 설명서와 같이 동봉해 줄 생각이었다. 그중 냉동만두나 고기 같은 대표 식재료의 설정은 제품에 아예 새겨넣을 생각이다. 그러면 사용자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다

"다 봤으면 가요, 우리도 바빠."

난 찾아냈다. 소장과의 꼬인 감정을 풀 실마리를.

하지만 어쩌겠어. 사람마다 꽂히는 포인트는 다른 거니까.

절반은 사실이다. 연구개발비용의 단위조차 상상을 초월하는 초대형가전회사의 틈바구니에서 한국공조는 10년이 넘는 세월 무너지지 않았다. 그건 그들과의 품질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전 못 배운 게 싫었어요.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죠."

"힘들었을 텐데. 라면 끓여줄까? 먹고 갈래?"
어디서 화석이 되다 못해 지하에서 석유가 되어버린 작업 멘트를.

최 본부장의 아랫입술이 더더욱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말해 뭣하겠는가? 몹시 탐탁지 않다는 신호다.

홈쇼핑은 업계 최고 수준의 마진율을 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홍보비니 모델비니 섭외비니 기타 등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것들을 모두 합하면 최대 가전유통채널인 헬로우마트의 두 배 가까이 되는 마진을 홈쇼핑 업체에 제공해야 한다.

신제품을 전격적으로 런칭하기 위해서는 영업력이 중요한데 우리는 위탁 판매를 하고있는 상황이니 이래저래 경로가 복잡해진다. 게다가 홈쇼핑에 런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우리 같은 2티어 제조사의 목줄을 잡고 있는 거대 가전유통 채널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다.

그런 결과 한국공조의 임원 대부분은 홈쇼핑을 이렇게 생각한다.
"......한마디로 계륵이죠."
최 본부장의 말대로다. 먹기 좋을 것 같아 입에 넣었지만 먹을 건 없고 발라내기만 바쁜 닭의 갈비 부위와 같은 계륵인 것이다.

"계륵을 계륵이 아니라고 우겨봐야 그게 닭다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맞습니다. 홈쇼핑은 계륵입니다."

상대를 격앙시키고 논리로 풀어나가니 최 본부장의 아랫입술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들어가기 시작했다. 불편한 헛기침과 함께.

"온라인과 홈쇼핑 시장은 계속 성장하는 시장입니다. 그러니 이제 계륵을 버리지 않고 먹어야 할 때입니다. 힘들어도 그렇게 하면 곧 뼈도 씹어 삼킬 수 있는 튼튼한 이빨이 자랄 겁니다."

"본부장님! 무례하지만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계륵 맞습니다. 하지만 먹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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