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포함해서 요 근래에 읽은 책들을 보면 본능을 이기는 이성은 거의 없는 듯 하다. 등장인물마다 본능과 이성사이에서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본능이 이성을 이기는 모습을 자주보다보니 이제는 이 말이 진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뢰가 간다. 특히 이 책에 나오는 남녀간의 관계에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삶의 위대함이란 외적인 변화보다 개개인의 주관적 경험에 달려 있다는 사실은 엔젤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농부가 둔감한 왕보다 더욱 폭넓고 풍요롭고 극적인 인생을 산다. - P498
이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그는 이곳에서의 생활도 다른 어느 곳에서의 생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P498
그녀에게 우주는 그녀가 태어난 특정한 해의 특정한 날부터 존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P499
클레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무정한 ‘조물주‘가 테스에게 내려 준 유일한 기회, 그녀의 전부이자 유일무이한 기회였다. - P499
하지만 그녀 가까이에 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맥박이 고동칠 때마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 끌려갔다. - P500
그는 아직까지는 교육이 가정의 행복을 결정하는 감정이나 정서의 울림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 P534
어쩌면 보잘것없는 내 말 한마디가 좋은 씨앗처럼 그의 가슴에서 결국엔 싹을 틔울지도 모를일이니까 - P542
그는 여자의 거절이란 흔히 승낙의 전주곡에 지나지않는다는 것을 알 만큼 여자 경험이 충분했다. 하지만 이번에 테스가 거절하는 태도에는 수줍어서 주저하는 것과는 크게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만큼은 많지 못했다. - P565
그녀의 갈등은 지독했다. 그녀의 마음은 엔젤을 향해 있었다. 열렬한 두 마음이 가련하고 약한 한 양심과 싸우는 격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결심을 지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야 했다. 그녀는 탤버테이스 낙농장에 올 때 굳게 결심해 둔 것이 있었다. 자기의 아픈 과거에 대해 모르고 결혼한 남편이 나중에 몹시 후회하게 될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의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을 때 양심이 결정한 것을 지금 와서 뒤집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 P571
테스는 자신의 저항이 자신의 욕망에 굴복하고말 것 같다는 돌연한 두려움을 느꼈다. - P574
사실 그녀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승낙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숨결 하나하나, 솟구치는 핏줄기 하나하나, 귀에 울리는 맥박 소리 하나하나가 본능과 하나가 되어 그녀의 양심에 반항하며 외치는 목소리를 냈다. 깊이 생각할 것 없이 과감하게 그를 받아들이자. 아무것도 밝히지 말고 밝혀지느냐 아니냐는 우연에 맡기고 교회의 제단 앞에서 그와 혼인하는 것이다. 고통의 칼날이 그녀를 내려치기전에 무르익은 즐거움을 낚아채자. 이것이 사랑이 충고하는 소리였다. 여러 달 동안 혼자서 자책하고 번민하고 심사숙고하고 장차 간소하게 혼자 살아갈 계획을 세워 봐야 결국 사랑의 충고가 승리하고말 것임을 테스는 거의 공포에 가까운 환희속에서 간파했다. - P579
그렇다, 고통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여자가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는 문제는 본인에게는 가장 무거운 십자가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마치 군중이 순교자를보고 비웃는 것처럼 말이다. - P587
테스는 자기의 결심이 꺾이고 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전 결합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종교적 분별력이나 솔직히 털어놓고자 하는 양심적인 소망도 그것에 맞서 더 오래 버틸 수 없었다. - P591
테스는 "난 그의 아내가 될 수 없어"라고 계속 혼잣말을 되뇌었지만, 그래 봐야 소용이 없었다. 차분한 마음 상태라면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되었을 말을 되뇌어야 한다는 것은 그녀의 마음이 약해졌다는 증거다. 그 오랜 화젯거리를 시작하는 그의 음성 하나하나가 공포에 가까운 기쁨으로 그녀를 흔들었고 그녀는 자기의 결심을 뒤엎게 되는 걸 두려워하면서도 그렇게 되기를 갈망했다. - P592
"가슴 설레며...... 살아가지 않는 여자는 거의 없으니까요." - P598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그녀의 용기는 꺾이고 말았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그가 책망할까 봐 겁이 났다. 그녀의 자기 보호 본능은 솔직히 털어놓으려는 용기보다 더 강했던 것이다. - P616
모든 피조물에 가득한 ‘기쁨을 향한 욕망‘, 다시 말해 조수가 가련한 해초를 쓸어 가듯 그 목적대로 인간을 몰고 가는 그 어마어마한 힘은 사회적 규범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 P622
그녀의 어머니가 인생을 바라보는 방식은 테스와는 달랐다. 그 잊을 수없는 지난날의 사건은 어머니에겐 한낱 스쳐 지나가는 우연일 뿐이었다. 논리상으로야 어떻든 간에 앞으로 취해야 할 태도로는 어머니의 말이 옳은 것같았다. 얼핏 보기에 침묵이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침묵을 지켜야 했다. - P627
이렇게 해서 테스는 이 세상에서 그녀의 행동을 통제할 권리를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는 유일한 사람의 명령에 따라 마음을 가라앉혔고, 좀 더 차분해졌다. 책임을 벗어 버리고 나니 그녀의 마음은 몇주일 만에 처음으로 가벼워졌다. - P627
그녀는 과거를 기억에서 지워 버렸다. 불씨가 남아 타오를 위험이 있는 석탄불을 발로 짓밟듯이 발로 마구 밟아서 꺼 버렸다. - P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