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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 한 시골교사의 희망을 읽어내는 불편한 진실
황주환 지음 / 생각의나무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논쟁이 일어나는 책은 되도록 멀리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나, 그것이 우리의 삶에 깊숙이 침투하여 새로운 도약의 가능성을 자극한다면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읽고 말겠노라 다짐한다. 사회를 움직이는 다양한 구조의 관계 속에 숨겨진 모순을 끄집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이라 불리는 하나의 인격체가 과감히 뛰어들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다람쥐 쳇바퀴처럼 구르고 또 굴러가는 묵직한 돌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돌은 깨지면 그만인 것을, 그래도 쪼개진 형상은 새로운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고 존재를 알리고자 끊임없이 비바람에 온전히 의지하며 변화를 시도한다. 우리가 진정 챙겨야 할 것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한 시골교사가 써내려간 고백록 속에는 만인을 위한, 만인에 의한, 만인에 의해 반드시 행해져야 할 우리의 영원한 숙제가 담겨 있다.
영민하신 분이 완벽한 범행을 저지르고도 마땅히 치러야 할 죗값을 사회에 헌신하였다는 공로로 가벼운 징벌에 그치고 그 배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멀쩡한 두 눈과 두 귀를 놔두고도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는 이 어두운 현실에 대하여 저자는 철두철미하게 꼬집어낸다. 그 중심에는 저자가 교사라는 신분을 지녔기에, 학교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학교는 배우는 곳임이 틀림없는데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러 다니느냐고 반문하는 것, 그리고 교사라 불리는 자들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느냐고 묻는다.
비단 학교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논함에 있어 좋은 것은 한없이 좋은 것이요, 나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까지 제 앞가림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 대한민국의 청소년이 마땅히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고 제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것, 그것이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학년이 끝날 무렵 "저 때문에 선생님이 고생이 많으시네요"라며 아이가 낮게 말했다. 아이가 내게 마음을 닫지 않은 것에, 오히려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모두 사랑받고 싶어하기에, 나도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교사인 "나도 여러분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말하면, 아이들은 낄낄거린다. 존중과 사랑은 다르지 않고, 자기를 존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존중할 수 있는 법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어느 누구에게서 함부로 취급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 것처럼, 너희들도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 본문 중에서 」
교직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학교 구조의 모순에 대하여 언급하는 부분도 적지 않게 등장하는데, 그것은 아주 사적인 부분이자 작은 미물과 같은 문제 덩어리가 점차 부풀어 오르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과 같았다. 애초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뽑을 수 있었음에도 권력을 휘두르는 자에게 당할 사람이 없었기에, 눈 뜬 장님처럼 알고도 모른 척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 책의 저자와 우리의 심기를 심하게 자극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학교를 떠나는 아이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가? 우리는 왜 그 아이들을 보았음에도 잡지 못하고 방치하였는가? 그리고 우리가 방심한 사이에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를 질책하기에 이르는데, 왜 아이들은 그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 되었는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게 이 책이 당부하는 말이기도 하다.
「내 의식이 격렬하게 변해왔듯이, 낯선 독자들도 이 책이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다. 이 책이 껄끄러운 독자가 있다면, 내 글은 일정 부분 성공한 것으로 여기겠다. 불편하지 않은 독서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신이 불편한 질문을 시작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수히 많다. 병의 치유는 병의 자각에서 시작되기에.」- 본문 중에서
논쟁이 일어나는 책을 읽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었으나, 마지막에 새겨넣는 저자의 말을 통해서 그것은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임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은 나도 눈 뜬 장님이었음을 덩달아 고백하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교사라면 이 책을 한번 쯤은 읽어보았으면 한다. 저마다 이름도 모르고 병명도 알 수 없었던 그 병의 실체에 대하여 자각하게 되리라 생각된다. 그게 이 책을 우리가 읽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