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조이스 캐럴 오츠는 메릴린 먼로를 모델로 한 역작 『블론드』에서 조 디마지오와의 결혼생활, 즉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을 힘겨워하는 메릴린 먼로의 육성을 들려준다. “대디, 난 너무 무서워요. 영화 밖 실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장면은 왜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기만 하는 걸까요? (…)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일상에서는 누구도 ‘컷’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삶은 때로 끝도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것만 같다. 그럴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면 참 좋을 것이다.

“자, 다시 갑시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멍해졌다. ‘컷’이라는 단호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올 것 같았다. 그 소리가 명료해질 때까지 기다려보지만 그건 역시 착각이었고 바람이었다.

최근 아이는 계속 아팠고 남편도 아팠고 나는 비염과 피로감 무기력감에 도무지 정신이 맑지 않았다. 아이는 늦게 자거나 새벽에 깨거나 했고 숙면이란 머나먼 나라 북유럽의 요정이름같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내 인생이 내 뜻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아보니 잠깐만, 다시 가면 안 될까. 라는 말을 하고 싶어졌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큰 실망을 했다.

 

이상하게, 산문은 잘 읽지 않는 나인데 최근 연달아 한국 작가들의 산문을 읽었다. 작가들이 산문집을 많이 내서인가. 아니면 내가 읽기 부담스럽지 않아서 그 책을 집어 들게 되는 걸까. 어쨌든, 앞에 읽었던 산문은 나름대로 각각 의미가 있지만 이번 김영하의 산문집 『보다』는 가장 재미있었고 가장 산문다웠던 산문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하가 작정하고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해서 시리즈로 내는 만큼(이 책 이후에 『말하다』도 출간되었고 곧 『듣다』도 출간예정이라고 함) 작가 김영하의 머릿속 뿐 아니라 인간 김영하의 생각들을 잘 읽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마도 그의 글들에 공감이 많이 되어서 더욱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그의 이야기들과 대학생 시절 일들, 해외 체류 중의 일들 등 그의 일상들 속에서 그가 본 영화들이나 책들 속에서 그의 삶과 세계관을 엿보고 그의 생각을 읽는 건 즐거웠다. 소설, 영화 같은 예술에서부터 한국의 정치나 세계의 경제적 동향까지 두루 파악하고 그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냉철하고 간략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역시 노련한 작가의 글이었다.

 

그런데 샤워실 가수의 에피소드를 이렇게 아마추어 예술가들에 대한 풍자로만 읽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프로페셔널 예술가들에게는 샤워실 가수의 면모가 과연 없을까? 왜 없겠는가. 한 작가에게 반복적으로 하나의 모티프가 지속적으로 관찰될 때, 즉 한 작가가 어떤 특정한 서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 모티프 혹은 서술방식이 그의 샤워부스일 것이다. 평생 물방울만 그리는 화가에게는 아마도 물방울이 그의 샤워부스일 것이다. …… 그렇다면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하는 소설가는 샤워부스에 의존해야 하는 소설가보다 더 훌륭한 작가일까.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작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해야만 한다.’는 식의 샤워부스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열심히 들었었다. 마음에 드는 방송을 몇 번씩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그 방송에서 그는 대부분 책을 읽기도 하지만 그 책과 관련해서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런 말들을 듣는 것이 좋았다. 그의 생각들과 말들이 자극도 되고 위로로 되고 잠도 잘 자게(?) 도와주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그의 소설은 적극적으로 찾아서 읽어보지는 않았다. 작품도 좀 많긴 하지만 장편은 두께도 만만치 않은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산문을 읽고 나서는 다음 산문집이 『말하다』도 바로 구입해 버렸고 다른 소설들이나 그의 에세이들도 궁금해졌다. 허세부리지 않고 마냥 가볍지도 않으면서 그의 생각들이 쏙쏙 머릿속에 들어오니 그의 글에 뒤늦게서야 반해버렸다. 아마도 인간 김영하에 대해 더 궁금해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호메로스는 이미 이천팔백여 년 전에 그런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주말에 김연수 작가의 강연회가 있다기에 갑자기 가게 되었다.

강연의 주제는 그가 최근 펴낸 산문집 제목인 ‘소설가의 일’이었다. 친구가 내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며 고맙게도 신청해주었다.

 

사실 언제부턴가 김연수의 책을 읽지는 않았다. 글을 아무리 잘 써도 내가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아무래도 흥미가 없기 마련이었다. 하루키의 소설과 너무 비슷한 느낌도 들어서 실망한 후 그의 책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강연회를 들어야 하니 급하게 책을 사서 읽었다. 사실 처음엔 그냥 소설가에 대한 가벼운 산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목차를 보고 엇. 본격적인 소설 작법인데? 라는 생각에 좀 의외였다. 김연수가 소설작법을? 핍진성이나 플롯, 캐릭터, 시점 등등 졸업 후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들이 반갑기도 했지만 이 주제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강연회는 광명시의 한 도서관에서 열렸다. 친구와 난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그나마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버스 배차 시간은 길었고 나는 버스 방향마저 잘못 타는 실수까지 저질러 그곳까지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사람들이 너무 없으면 어떡하지 싶은 걱정이 무색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김연수의 목소리는 마이크 울림 때문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뒷자리에 있어서 였을까) 그러나 곧 적응이 되었고 그냥 그런 모습 자체가 소설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글 쓰는 남자의 전형을 감상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소설가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는 소설가답게 말을 잘 했다. 그 잘하는 말이 잘 안 들려서 문제였지만...(사실 그의 강연은 책의 내용을 간추려 말해준 것이 대부분이었다)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결심한 것 중의 하나가 하루에 3시간만 투자하자였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글 쓰는 나만의 시간을 3시간 채우자는 게 일단 목표였다. 그런데 김연수도 하루에 3시간씩 글을 쓰라고 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3시간 안에는 순수하게 글 쓰는 것만 포함되었다. 한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지도 않고 인터넷 서핑을 하지도 않고 무조건 문장을 쓰는 것이다. 물론 난 그렇게는 아직 힘들지만 일단 하루에 3시간을 투자해야겠다는 나의 의지를 굳혀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글은 참 차분하다. 어이없고 유치한 농담을 자주 하긴 해서 안 어울리게 독자들을 웃기려고 하지만 그 어색한 유머마저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소설작법에 관한 책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제대로 읽은 건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와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밖에 없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책은 확실히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글을 쓰려고 생각만 하는 사람들 보다는 실패든 성공이든 한 편이라도 완성해 본 사람은 더 피부에 와 닿을 글들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왜 실패했는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게 하고 퇴고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문예창작을 공부할 때 교수님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지적당하고 글쓰기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그랬다면 이미 등단했겠지만...)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난 지금 거의 잊고 있었다. 그냥 일단 막 써보자. 라고 쓰는 듯 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그래. 그랬지. 맞아. 이거였구나. 라는 생각이 든 것은 다른 복잡한 이론들은 다 집어치우고 핵심만 콕콕 집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창하게도 그렇다고 대충 적당히 소설가의 일에 대해 적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그의 소설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핍진성이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김연수가 소설작법을? 이란 생각에 의아해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였기에 쓸 수 있는 글이었다. 늘 공부하는 자세로 묵묵하게 글을 쓰는 그에 맞는 소설가의 일이었다. 그의 글을 읽고 그의 강연을 듣고 좀 더 내 글들을 정확히 진단하고 다듬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나는 이미 소설가가 되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일단 쓰는 것. 매일 쓰는 것. 그리고 토할 때까지 그 문장들을 다듬는 것.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잘 파악하는 것. 하지만 우리는 늘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어려운 일들이 많다는 걸 안다. 글쓰기는 정말 어려운 과정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쉬울지도 모른다. 매일 쓴다면, 문장을 토할 때까지 다듬는다면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한순간 작가가 될 것이다.

 

그의 이 책이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더 힘내야겠다고 조금만 더 노력하라고 격려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2세기 사어 수집가
황인찬 외 지음 / 유어마인드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22세기 2101년,

 

아주 먼 것 같으면서도 금방 닥쳐올 미래 같다.

살아 있을지(아마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을 듯하지만) 죽어 있을지 예측할 수도 없고 사실 나는 무엇보다 인류가 2101년을 맞이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비관적인 말이지만 내가 늙어서 아프거나 해서 제 명을 다하고 죽는 것이 빠를지 이 지구가 멸망하는 게 더 빠를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당장 내일이라도 지구가 어떠한 자연재해로 사라질지도 모르고 인류가 스스로 파멸의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만 혹시나 22세기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그렇다면

 

 

5대양 6대륙이란 말은 잊힌 지 오래다. 대부분의 땅은 바다에 잠겼고 그저 물로 둘러 쌓인 지구에 몇 개의 고산지대였던 땅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인구는 21세기의 1/3 이상으로 줄었다. 그나마도 계속 줄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아이를 만들지 않았다. 아니 사랑을 나눈다 해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몸은 더 이상의 종족번식이란 무의미하다는 걸 먼저 깨달은 것 같았다. 그나마도 살고 있는 사람들도 하루에도 몇 명씩은 자살을 했다.

 

햇빛은 사라졌다. 대기권은 태양의 빛을 흡수하지 못하고 산소를 보존하고 있지도 못했다. 하늘을 날던 비둘기와 같은 새들은 모두 사라졌다. 사람들은 커다란 우주선 같은 건물들 속에서 살아갔다. 그들은 21세기에 돈이 많았던 사람들로 많은 재산을 털어서 겨우 살아남았다. 하지만 살아남아서? 그들은 살아남았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걸 곧 깨달았다.

 

차오르는 바닷물들이 처음에는 들을 없앴다. 몰디브라는 아름다운 휴양지는 처음 사라진 곳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설마.했고 자신들은 안전할 거라는 불안한 믿음과 대책이 있다는 정부의 거짓에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보냈다. 그러나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오스트레일리아의 면적은 1/5씩 줄어들어 있었다. 일본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대부분이 자는 도중에 꿈을 꾸듯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거나 물이 발끝을 적시기 전에 이미 목숨을 끊었다. 대륙으로, 더 높은 대륙이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밀려들어왔고 통제는 불가능해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이동 중에 죽은 사람들이 살아남은 사람들보다 많았다. 시체들이 쌓이고 쌓여서 기이한 기둥을 이룬 것을 본 사람도 있다고 했다.

21세기에는 이 많다면 많은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역시 그들 대부분은 그 혼란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행복이나 기쁨이라는 단어를 상실했고 충만함이나 만족감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산책하자거나 나들이를 가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꺼낸 사람은 십 년도 전이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장면을 본 사람들은 그 말을 금기시했다. 간혹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죽기 전에 그 단어를 중얼거려보기는 했다.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이 우울증을 회복시켜줄 거라고 기계들이 설명했지만 그들은 우울함이 뭔지 몰랐다. 태양의 빛을 보지 못하고 같은 곳에서 아무런 의미 없이 살아만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정이 생겨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의 감정은 늘 일직선과 같았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도 입을 여는 사람들은 점점 줄었고 거의 ‘언어’라는 것조차 사라지고 있었고 그러므로 ‘사어’ 보다는 남아 있는 언어를 기록하는 것이 더 쉬웠다.

 

 

*

 

무겁지 않을까 생각했던 책의 제목이지만 책장을 넘기며 빵빵 터질 때가 많았다. 각자의 개성들이 잘 묻어나오는 짧은 글들은 가끔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미래를 그려보게 되기도 했다.

22세기

사실 상상도 되지 않는 그 미래는 과연 어떤 색깔일지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월의 거품 펭귄클래식 52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콜랭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알리즈는 마음속으로 있는 힘을 다해 잘 가라는 인사를 했다. 클로에를 극진히 사랑하는 콜랭은 그녀를 위해서 꽃을 사고 그녀의 가슴을 파고드는 공포와 싸우기 위해서 일자리를 찾으러 가는 것이다. 콜랭의 넓은 어깨는 약간 처진 게 몹시 피곤해 보였으며, 그의 금발 머리는 예전처럼 단정하게 빗질이 되어 있지 않았다. 시크는 매우 친절하게 파르트르의 책에 대해서 말하고 파르트르에 대해 설명할 줄 알았다. 그는 실제로 파르트르 없이는 살 수가 없기 때문에 다른 걸 추구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파르트르는 자신이 말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말했다. 파르트르가 그 백과사전을 출판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될 노릇이었다. 그것은 곧 시크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는 도둑질을 하고 서점 주인을 죽일 것이다. 알리즈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책을 먼저 보았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나는 아주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극장이 먹는 것 인가요 할 때쯤 극장에 갈 기회가 되어서 선택한 영화가 미셸 공드리의 ‘무드 인디고’였다. 미셸 공드리라니, 이런 영화를 놓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영화 스틸컷들이 아주 알록달록하여 그동안 굳어 있던 내 머리를 말랑말랑 하게 해줄 것 같았다. 그의 영화 ‘수면의 과학’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무조건 ‘무드 인디고’를 보러 갔다.

 

사실은 조금 당황했다. ‘수면의 과학’이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신나는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상상력 덩어리였다. 집안의 풍경과 요리하는 모습들, 칵테일 피아노와 다리가 한 없이 늘어지는 비글무아 춤이라니! 난 한동안 너무 ‘엄마’라는 냉혹한 현실에 익숙해져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원작 소설은 왠지 평범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멍청하게 추측했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여자는 아프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비극으로 치닫는 내용. 원작이 50년도 더 전에 나온 거라니 그냥 평범한 고전을 미셸 공드리가 이렇게 화려하게 변신시켜 놓은 것은 아닐까 착각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서점에 들러 원작 소설을 바로 구입했다. 책 표지에는 ‘세월의 거품’이라는 소설의 제목보다는 ‘무드 인디고’라는 제목이 더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미국에서는 애초에 번역된 책의 제목이 ‘Mood Indigo'라는 말도 들었다.

 

내 예상을 비웃듯 소설은 영화보다 더 화려한 상상력으로 가득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비생물체도 생명이 있는 듯 살아 움직였다. 콜랭의 집도 콜랭처럼 초반에는 밝고 활기찼다가 클로에의 죽음이 가까워지며 점점 어둡고 작아지고 결국엔 천장과 바닥이 붙어 버린다. 그들은 항상 생쥐와 대화를 하고 클로에의 약을 구하러 약국에 가면 토끼인지 기계인지 모를 것이 약을 만들어 낸다. 클로에의 몸속에는 수련이 자라게 되고 그 꽃을 죽이기 위해 다른 많은 꽃들이 필요하고 비싼 꽃들을 사기 위해 콜랭은 열심히 돈을 벌지만 결국에 클로에는 죽음을 맞게 되고 그녀의 죽음은 화려했던 결혼식과는 대비되게 아주 초라하다. 남겨진 콜랭은? 그녀를 위해 전 재산을 내놓고 자신의 건강까지 다 해친 그는, 아마도 물속의 수련을 노려보다 그것을 죽이러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 버릴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제대로 활짝 피우고 나누기도 전에 비극이 너무 빨리 왔기에 그는 처절하게 모든 열정을 바쳐서 클로에를 살리려고 노력했던 게 아닐까 생각도 든다.

 

콜랭과 클로에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그들 못지않게 신경 쓰이는 커플이 알리즈와 시크이다. 시크는 콜랭의 친구로 파르트르라는 철학자의 광팬이다. 그는 그의 모든 저서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수집하다가 돈을 다 써버리고 사랑하는 알리즈는 뒷전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알리즈는 시크를 사랑하는 마음에 파르트르를 살해하고 서점들을 불태운다. 그러한 행동들을 앞둔 알리즈의 마음이 문장으로 무겁게 전해졌다.

 

마냥 화려할 것만 같았던 이야기의 초반은 너무 빨리 내리막길에 들어선다. 행복함과 두근거림은 잠시이고 그들은 계속해서 끝을 알 수없는 바닥으로 내려간다. 아주 단순한 스토리지만 그것을 만들어가는 에피소드들은 하나하나 평범하지가 않다. 소설에서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하며 종교와 경찰, 공장, 전쟁들을 절묘하게 끌어들여 그들의 행복은 더 과장된 쇼처럼 만들고 그들의 불행은 더욱 최악으로 치닫게 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소설을 읽고 나니 이 소설은 미셸 공드리 밖에는 영화화할 수 없었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영화보다 소설의 상상력이 더 무한하지만 미셸 공드리조차 이 소설의 상상력을 그대로 표현하기에도 벅찼을 것 같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읽고 나서 내 머리는 말랑말랑해지기 보다는 꽃들이 가득 찬 방에 가만히 누워있는 클로에가 된 심정이었다. 꽃향기가 너무 진했고 내 몸을 편히 움직일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목이 말랐다.

창문을 활짝 열고 크게 숨을 쉬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예림 2015-05-12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공감입니다 ^^
 
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지만 읽지 않으려 했다.

김중혁 작가의 에세이는 나와 잘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니 사실 나는 에세이 자체를 별로 안 좋아했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 혹은 정말 궁금해 하는 인물의 글이 아니고서는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소설가는 소설로 만나는 것이 좋았고 에세이는, 사실 에세이를 많이 읽어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에세이 같은 리뷰를 쓰겠다는 나는 뭔가?)

며칠 뒤 나는 우연히 다시 이 책과 맞닥뜨렸고 호기심에 차례를 들여다보았고 결국 다 읽게 되어버렸다. 책도 아주 얇고 가벼운 데다가 그가 다녀온 공장이 아주 재미있어 보이는데 안 읽을 수가 없었다.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대학생 때 일본 여행을 가기 위해 한 달 동안 전자레인지 공장에서 일했다. 방학이라 대학생 알바생들이 몇 있었고 두 시간씩 일하고 십오분씩 쉬는 시스템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전자레인지라 무거운 걸 들 일도 없었고 작은 부품을 끼우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었던 것 같았다. 큰 회사라 식당도 여러 개이고 맛도 있어서 점심을 골라 먹는 재미도 있었다. 생산라인의 대부분은 아주머니들이었다.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아이들의 교육비를 위해 나오신 분들이라 야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오히려 남아 있기를 자처하며 일을 하셨다. 그러서인가 왠지 그분들이 왜 일하러 왔냐고 물으시면 여행비용을 벌기 위해 왔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왔다고 말해 버렸다.

여러 나라로 수출할 전자레인지를 만들고 있었기에 가끔 알 수 없는 언어가 적힌 제품이 있었는데 아주머니들은 웃으며 읽을 줄은 몰라도 어디 나라로 수출 할 것 인지는 척척 맞추셨다. 그러면 나는 그 나라로 수출된 이 기계가 어느 집으로 들어가게 되서 낯선 요리를 탄생시키게 되겠지 하면서 혼자 상상을 하지는 않았고 그저 신기했다. 내 손길이 간 물건이 낯선 나라에 가서 쓰일 거라는 것이. 피아노 장인이 그랬듯 어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내 이름을 슬쩍 새겨둘 걸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사실 공장이라는 장소가 낯설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잠깐이나마 그곳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완전 잊어버리고 있었다.

공장 산책기.

작가는 이 글들을 그렇게 표현했다. 제지공장, 브래지어 공장, 도자기 공장, 라면 공장, 지구본 공장 등등 14개의 공장과 자신의 글 공장을 둘러보고 글을 적었다. 각각의 산책기는 말 그대로 산책처럼 가볍게 공장의 풍경들을 스케치했다. 공정 과정이라든지 각각의 만들어지는 원리라든지 하는 것들은 자세히 적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지루해서 아마 이 책을 집었던 걸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이젠 너무 뻔한 말이지만 김중혁의 문장은 유머러스하고 리드미컬하다.

그래서인지 초반에 소설책이 나올 때는 신나게 읽었고 즐겨 읽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유머러스함이 좀 질려서 김중혁의 새 책이 나오면 항상 바로 달려가서 사기 보다는 한 번씩은 망설이게 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그의 소설집은 모두 읽었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일까 늘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연재를 한 글을 모으고 공장 견학이라는 딱딱한 주제가 있지만 내가 읽었을 때는 예전에 읽었던 '뭐라도 되겠지' 라는 수필보다는 마음이 갔다. 간결해지고 조금은 더 숙성된 맛이 있다고나 할까. 그의 손그림과 가벼운 글이 있는 '사물의 뒷면'이나 챕터 사이에 있는 'talk' 부분이 오히려 원래의 글들 보다 더 기다려지기도 했다. 드라마 끝나고 더 재미있는 광고를 기다리는 듯 공장 한 곳을 들러보고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무슨 그림과 글이 있을까 궁금해 하고 있었다. 가끔은 사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오글거리지만 그의 반듯하면서 꼬불꼬불한 그림을 보면 참 괜찮은 글처럼 느껴진다.

 

'뒤에서는 빨리 밀고, 앞에서는 천천히 가니까 꼬불꼬불하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공장 직원의 말을 듣는데, 그게 라면의 제조 공정을 설명하는 말 같지가 않았다. 아, 그런 것인가, 뒤에서 빠른 속도로 밀고 들어오는데, 앞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면 결국 꼬불꼬불해지고 마는 것인가. 등을 떠미는 힘은 강력한데, 앞으로 나아가기가 머뭇거려진다면 결국엔 꼬불꼬불해지고 마는 것인가. 속도의 차이란 그렇게 직선이었던 것을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마는 것인가. 직원의 한마디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마지막 라면 공장의 문장을 읽으면 내 마음도 꼬불꼬불해졌다. 늦은 밤에 맥주와 라면이 아주 먹고 싶어져 누구처럼 마트에 가서 그것들을 사오게 될까봐 얼른 책을 덮고 자버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