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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평점 :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지만 읽지 않으려 했다.
김중혁 작가의 에세이는 나와 잘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아니 사실 나는 에세이 자체를 별로 안 좋아했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 혹은 정말 궁금해 하는 인물의 글이 아니고서는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소설가는 소설로 만나는 것이 좋았고 에세이는, 사실 에세이를 많이 읽어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에세이 같은 리뷰를 쓰겠다는 나는 뭔가?)
며칠 뒤 나는 우연히 다시 이 책과 맞닥뜨렸고 호기심에 차례를 들여다보았고 결국 다 읽게 되어버렸다. 책도 아주 얇고 가벼운 데다가 그가 다녀온 공장이 아주 재미있어 보이는데 안 읽을 수가 없었다.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대학생 때 일본 여행을 가기 위해 한 달 동안 전자레인지 공장에서 일했다. 방학이라 대학생 알바생들이 몇 있었고 두 시간씩 일하고 십오분씩 쉬는 시스템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았다. 전자레인지라 무거운 걸 들 일도 없었고 작은 부품을 끼우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일이었던 것 같았다. 큰 회사라 식당도 여러 개이고 맛도 있어서 점심을 골라 먹는 재미도 있었다. 생산라인의 대부분은 아주머니들이었다.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아이들의 교육비를 위해 나오신 분들이라 야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오히려 남아 있기를 자처하며 일을 하셨다. 그러서인가 왠지 그분들이 왜 일하러 왔냐고 물으시면 여행비용을 벌기 위해 왔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왔다고 말해 버렸다.
여러 나라로 수출할 전자레인지를 만들고 있었기에 가끔 알 수 없는 언어가 적힌 제품이 있었는데 아주머니들은 웃으며 읽을 줄은 몰라도 어디 나라로 수출 할 것 인지는 척척 맞추셨다. 그러면 나는 그 나라로 수출된 이 기계가 어느 집으로 들어가게 되서 낯선 요리를 탄생시키게 되겠지 하면서 혼자 상상을 하지는 않았고 그저 신기했다. 내 손길이 간 물건이 낯선 나라에 가서 쓰일 거라는 것이. 피아노 장인이 그랬듯 어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내 이름을 슬쩍 새겨둘 걸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사실 공장이라는 장소가 낯설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잠깐이나마 그곳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완전 잊어버리고 있었다.
공장 산책기.
작가는 이 글들을 그렇게 표현했다. 제지공장, 브래지어 공장, 도자기 공장, 라면 공장, 지구본 공장 등등 14개의 공장과 자신의 글 공장을 둘러보고 글을 적었다. 각각의 산책기는 말 그대로 산책처럼 가볍게 공장의 풍경들을 스케치했다. 공정 과정이라든지 각각의 만들어지는 원리라든지 하는 것들은 자세히 적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지루해서 아마 이 책을 집었던 걸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이젠 너무 뻔한 말이지만 김중혁의 문장은 유머러스하고 리드미컬하다.
그래서인지 초반에 소설책이 나올 때는 신나게 읽었고 즐겨 읽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유머러스함이 좀 질려서 김중혁의 새 책이 나오면 항상 바로 달려가서 사기 보다는 한 번씩은 망설이게 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그의 소설집은 모두 읽었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일까 늘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연재를 한 글을 모으고 공장 견학이라는 딱딱한 주제가 있지만 내가 읽었을 때는 예전에 읽었던 '뭐라도 되겠지' 라는 수필보다는 마음이 갔다. 간결해지고 조금은 더 숙성된 맛이 있다고나 할까. 그의 손그림과 가벼운 글이 있는 '사물의 뒷면'이나 챕터 사이에 있는 'talk' 부분이 오히려 원래의 글들 보다 더 기다려지기도 했다. 드라마 끝나고 더 재미있는 광고를 기다리는 듯 공장 한 곳을 들러보고 나올 때마다 이번에는 무슨 그림과 글이 있을까 궁금해 하고 있었다. 가끔은 사소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오글거리지만 그의 반듯하면서 꼬불꼬불한 그림을 보면 참 괜찮은 글처럼 느껴진다.
'뒤에서는 빨리 밀고, 앞에서는 천천히 가니까 꼬불꼬불하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공장 직원의 말을 듣는데, 그게 라면의 제조 공정을 설명하는 말 같지가 않았다. 아, 그런 것인가, 뒤에서 빠른 속도로 밀고 들어오는데, 앞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면 결국 꼬불꼬불해지고 마는 것인가. 등을 떠미는 힘은 강력한데, 앞으로 나아가기가 머뭇거려진다면 결국엔 꼬불꼬불해지고 마는 것인가. 속도의 차이란 그렇게 직선이었던 것을 꼬불꼬불하게 만들고 마는 것인가. 직원의 한마디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마지막 라면 공장의 문장을 읽으면 내 마음도 꼬불꼬불해졌다. 늦은 밤에 맥주와 라면이 아주 먹고 싶어져 누구처럼 마트에 가서 그것들을 사오게 될까봐 얼른 책을 덮고 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