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조이스 캐럴 오츠는 메릴린 먼로를 모델로 한 역작 『블론드』에서 조 디마지오와의 결혼생활, 즉 끝없이 이어지는 일상을 힘겨워하는 메릴린 먼로의 육성을 들려준다. “대디, 난 너무 무서워요. 영화 밖 실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장면은 왜 이렇게 ‘끝없이’ 이어지기만 하는 걸까요? (…)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일상에서는 누구도 ‘컷’이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삶은 때로 끝도 없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것만 같다. 그럴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면 참 좋을 것이다.

“자, 다시 갑시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멍해졌다. ‘컷’이라는 단호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올 것 같았다. 그 소리가 명료해질 때까지 기다려보지만 그건 역시 착각이었고 바람이었다.

최근 아이는 계속 아팠고 남편도 아팠고 나는 비염과 피로감 무기력감에 도무지 정신이 맑지 않았다. 아이는 늦게 자거나 새벽에 깨거나 했고 숙면이란 머나먼 나라 북유럽의 요정이름같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내 인생이 내 뜻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아보니 잠깐만, 다시 가면 안 될까. 라는 말을 하고 싶어졌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큰 실망을 했다.

 

이상하게, 산문은 잘 읽지 않는 나인데 최근 연달아 한국 작가들의 산문을 읽었다. 작가들이 산문집을 많이 내서인가. 아니면 내가 읽기 부담스럽지 않아서 그 책을 집어 들게 되는 걸까. 어쨌든, 앞에 읽었던 산문은 나름대로 각각 의미가 있지만 이번 김영하의 산문집 『보다』는 가장 재미있었고 가장 산문다웠던 산문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하가 작정하고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해서 시리즈로 내는 만큼(이 책 이후에 『말하다』도 출간되었고 곧 『듣다』도 출간예정이라고 함) 작가 김영하의 머릿속 뿐 아니라 인간 김영하의 생각들을 잘 읽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마도 그의 글들에 공감이 많이 되어서 더욱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그의 이야기들과 대학생 시절 일들, 해외 체류 중의 일들 등 그의 일상들 속에서 그가 본 영화들이나 책들 속에서 그의 삶과 세계관을 엿보고 그의 생각을 읽는 건 즐거웠다. 소설, 영화 같은 예술에서부터 한국의 정치나 세계의 경제적 동향까지 두루 파악하고 그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냉철하고 간략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역시 노련한 작가의 글이었다.

 

그런데 샤워실 가수의 에피소드를 이렇게 아마추어 예술가들에 대한 풍자로만 읽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프로페셔널 예술가들에게는 샤워실 가수의 면모가 과연 없을까? 왜 없겠는가. 한 작가에게 반복적으로 하나의 모티프가 지속적으로 관찰될 때, 즉 한 작가가 어떤 특정한 서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그 모티프 혹은 서술방식이 그의 샤워부스일 것이다. 평생 물방울만 그리는 화가에게는 아마도 물방울이 그의 샤워부스일 것이다. …… 그렇다면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하는 소설가는 샤워부스에 의존해야 하는 소설가보다 더 훌륭한 작가일까.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작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해야만 한다.’는 식의 샤워부스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이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열심히 들었었다. 마음에 드는 방송을 몇 번씩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그 방송에서 그는 대부분 책을 읽기도 하지만 그 책과 관련해서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했다. 그런 말들을 듣는 것이 좋았다. 그의 생각들과 말들이 자극도 되고 위로로 되고 잠도 잘 자게(?) 도와주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그의 소설은 적극적으로 찾아서 읽어보지는 않았다. 작품도 좀 많긴 하지만 장편은 두께도 만만치 않은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산문을 읽고 나서는 다음 산문집이 『말하다』도 바로 구입해 버렸고 다른 소설들이나 그의 에세이들도 궁금해졌다. 허세부리지 않고 마냥 가볍지도 않으면서 그의 생각들이 쏙쏙 머릿속에 들어오니 그의 글에 뒤늦게서야 반해버렸다. 아마도 인간 김영하에 대해 더 궁금해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호메로스는 이미 이천팔백여 년 전에 그런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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