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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주말에 김연수 작가의 강연회가 있다기에 갑자기 가게 되었다.
강연의 주제는 그가 최근 펴낸 산문집 제목인 ‘소설가의 일’이었다. 친구가 내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며 고맙게도 신청해주었다.
사실 언제부턴가 김연수의 책을 읽지는 않았다. 글을 아무리 잘 써도 내가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아무래도 흥미가 없기 마련이었다. 하루키의 소설과 너무 비슷한 느낌도 들어서 실망한 후 그의 책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강연회를 들어야 하니 급하게 책을 사서 읽었다. 사실 처음엔 그냥 소설가에 대한 가벼운 산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목차를 보고 엇. 본격적인 소설 작법인데? 라는 생각에 좀 의외였다. 김연수가 소설작법을? 핍진성이나 플롯, 캐릭터, 시점 등등 졸업 후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들이 반갑기도 했지만 이 주제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강연회는 광명시의 한 도서관에서 열렸다. 친구와 난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그나마 가까운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버스 배차 시간은 길었고 나는 버스 방향마저 잘못 타는 실수까지 저질러 그곳까지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사람들이 너무 없으면 어떡하지 싶은 걱정이 무색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많은 작가들이 그렇듯 김연수의 목소리는 마이크 울림 때문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뒷자리에 있어서 였을까) 그러나 곧 적응이 되었고 그냥 그런 모습 자체가 소설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나보는 글 쓰는 남자의 전형을 감상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소설가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는 소설가답게 말을 잘 했다. 그 잘하는 말이 잘 안 들려서 문제였지만...(사실 그의 강연은 책의 내용을 간추려 말해준 것이 대부분이었다)
다시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결심한 것 중의 하나가 하루에 3시간만 투자하자였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글 쓰는 나만의 시간을 3시간 채우자는 게 일단 목표였다. 그런데 김연수도 하루에 3시간씩 글을 쓰라고 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3시간 안에는 순수하게 글 쓰는 것만 포함되었다. 한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지도 않고 인터넷 서핑을 하지도 않고 무조건 문장을 쓰는 것이다. 물론 난 그렇게는 아직 힘들지만 일단 하루에 3시간을 투자해야겠다는 나의 의지를 굳혀주기에 충분했다.
그의 글은 참 차분하다. 어이없고 유치한 농담을 자주 하긴 해서 안 어울리게 독자들을 웃기려고 하지만 그 어색한 유머마저 그답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소설작법에 관한 책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제대로 읽은 건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와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밖에 없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책은 확실히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글을 쓰려고 생각만 하는 사람들 보다는 실패든 성공이든 한 편이라도 완성해 본 사람은 더 피부에 와 닿을 글들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왜 실패했는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게 하고 퇴고할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문예창작을 공부할 때 교수님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지적당하고 글쓰기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그랬다면 이미 등단했겠지만...)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난 지금 거의 잊고 있었다. 그냥 일단 막 써보자. 라고 쓰는 듯 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그래. 그랬지. 맞아. 이거였구나. 라는 생각이 든 것은 다른 복잡한 이론들은 다 집어치우고 핵심만 콕콕 집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창하게도 그렇다고 대충 적당히 소설가의 일에 대해 적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그의 소설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핍진성이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김연수가 소설작법을? 이란 생각에 의아해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였기에 쓸 수 있는 글이었다. 늘 공부하는 자세로 묵묵하게 글을 쓰는 그에 맞는 소설가의 일이었다. 그의 글을 읽고 그의 강연을 듣고 좀 더 내 글들을 정확히 진단하고 다듬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나는 이미 소설가가 되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일단 쓰는 것. 매일 쓰는 것. 그리고 토할 때까지 그 문장들을 다듬는 것.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잘 파악하는 것. 하지만 우리는 늘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어려운 일들이 많다는 걸 안다. 글쓰기는 정말 어려운 과정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쉬울지도 모른다. 매일 쓴다면, 문장을 토할 때까지 다듬는다면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한순간 작가가 될 것이다.
그의 이 책이 나에게 잘하고 있다고 더 힘내야겠다고 조금만 더 노력하라고 격려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