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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5.7.8 - 창간호 ㅣ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악스트AXT 1호에 실린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다. <파리 리뷰>의 작가 인터뷰를 떠오르게 하는 악스트 인터뷰는 훗날 <작가란 무엇인가> 식의 한국 작가 인터뷰집으로 엮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 첫 시작이 천명관이다. 스스로 문단의 변방에 있다고 여기는 천명관. 그의 소리는 직설적이고 강렬하다. 인터뷰어 정용준은 천명관에게서 '선수'의 모습을 찾는다.
그는 글을 전문적으로 쓰는 선수다. 그의 문장은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체량을 앞둔 격투가의 육체처럼 군더더기 없이 쌈빡하다. 상대에 따라 새롭게 전략을 짜고 링에서 일어나는 수없이 많은 변수에 감각적으로 반응한다. 목표는 이기는 것뿐 일관된 방법이란 것은 없다.
악스트 no.001 (2015.7.8.)
이 인터뷰는 올 4월 경에 이루어졌던 걸로 보이는데, 문단에 대한 그의 비판은 보통이 아니다.
정용준 그 경계에서 이쪽을 바라볼 때의 느낌이 어떤지 궁금하다.
천명관 문단을 좀 씹어달라는 소리처럼 들리는데...(웃음). 문단의 작가들은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어떤 시선이냐 하면 바로 선생님들의 시선이다. 책상 앞에서 글을 쓰는 동안 선생님들의 엄한 눈이 등 뒤에서 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거다. 출발부터 그렇다. 대학을 다니며 교수들의 지도편달과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등단을 할 때 심상위원 선생님들의 심사, 청탁을 받을 때도 편집위원 선생님들의 평가, 문학상 오를 때 또 심사위원의 평가, 하다못해 문예창작과 관련한 지원금을 받을 때도 누군가의 심사를 받는다. 그러니까 문단생활을 한다는 건 내내 선생님들의 평가와 심사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중략) ... 결국 선생님들의 시선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시스템이 반백 년 넘게 문단을 지배하고 있다. 바깥에서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권위적이고 전근대적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봐도 나쁜 짓이다.
천명관 처음 문단에 나왔을 때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한 적이 있다. 벙어리 삼 년에 귀머거리 삼 년, 시집살이 한다고 생각하라, 그리고 덕을 쌓으라. 말하자면 처신을 잘하고 인맥 관리를 하라는 뜻이었다. 한국사회가 대체로 그런 분위기라는 건 알고 있지만 문단조차 그럴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을 해보니 문단엔 절대 무너지지 않는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을 문단마피아라고 부른다. 출판사와 언론사, 그리고 대학이 카르텔을 형성해 시스템을 만들고 작가들을 지배하고 있다. 작가는 더 이상 문단의 주인이 아니다. 선생님들이 주인이다. 이런 의견에 대해 다들 펄쩍 뛰며 노발대발할 것이다. 하지만 권력은 언제나 그 권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왔다... (중략) ... 하지만 나는 모든 심사 자리에 앉아 있는 선생님들의 명단을 확인할 때마다 그 실체를 경험한다.
천명관 우선 작가들이 먹고살 수 있는 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선생님들이 먼저 숟가락을 거둬가야 한다. 편집위원이니 심사위원이니 하며 문학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과 신도들 사이에 끼어 권력을 누리던 중세의 성직자들과 같은 것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왜 선생님들의 지도편달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필요하다면 유능하고 영민한 편집자가 필요할 뿐이다. 거슬러올라가 선생님들이 문단을 점령한 것은 콤플렉스 때문이다. 역사가 일천하다 보니 뭔가 권위가 필요했고 그것을 대학에서 빌려왔는데 결과적으로 주객이 전도되었다.
정용준 그런데 궁금한 건 당신이 말하는 그 마피아나 선생님은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천명관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가 바로 마피아의 일원이거나 패밀리와 커넥션을 갖고 있는 작자일 것이다(웃음).
정용준 오늘 이야기한 것 다 써도 되나?
천명관 물론이다. 쓰라고 한 얘기니까. 하지만 이런 소리 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결국 아무것도 안 바뀔 테고 선생님들은 만수무강하실 테고, 나는 기껏해야 또 적이나 잔뜩 만들었겠지. 쩝.
천명관의 말이 맞다. 소설가가 소설을 써서 먹고 살기 힘들고, 대학-문예창작과-등단-문학상에 기대어 근근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1) 책이 많이 팔리거나, 2) 인세가 오르거나 하지 않는 이상 글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작가가 드물다. 이에 대한 고민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 음악이나 연극을 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작가 역시 고스란히 겪고 있다.이대로 굴러가기엔 무언가 안타깝고, 잘못된 것 같다. 분명 사회 구조적이고, 시대 흐름의 변화에 따른 어려움에 일정 정도 원인이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