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널 걸 서포트 그룹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류기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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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파이널 걸(Final Girl)’은 영미 영화계에서 호러 장르의 클리셰이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살인마와 사투를 벌이고 끝내 승리를 거두는 여주인공. 요즘은 이것을 비트는 호러 영화들도 많긴 하지만, 아직까지 그쪽에서는 문화적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재작년에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이 ‘브람 스토커’를 향한 러브레터였다면, 이 소설이 애정을 보이는 건 현대의 호러 영화들이다. 그런 만큼 레퍼런스들이 많다. (≪13일의 금요일≫, ≪스크림≫, ≪핼로윈≫, ≪텍사스 전기톱 살인마≫, ≪나이트메어≫, 기타 등등) 호러 영화의 팬이라면 분명 흥미로울 테다.

참극에서 살아남은 여섯 명의 여자가 정신과 그룹치료를 십 년 넘게 받고 있는데, 그 안에서 느닷없이 한 여자가 살해당한다. 남은 여자들도 안전하지 않다. 과연 누구 짓일까.

이야기를 작동시키는 기본 장치는 ‘미스터리’, ‘후던잇(Whodunit)’이다. 평범한 추리극에 안주하지 않도록 작가는 한껏 재주를 부린다. 유명한 호러 영화들을 레퍼런스로 삼아서 호러팬들을 끌어들인다. 액션도 풍부하다. 동적인, 영화적인 장면들이 많다. 장면 전환이 빨라 속도감이 좋다. ‘종이 뒤로’ (가시적인 스토리 뒤로) 다양한 성격의 인물들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서로 질투하고 반목하다가 드디어 연대한다.

호기심을 자극하며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긴장감도 풍부하다. 수수께끼는 차고 넘치며 폭력은 딱 필요한 정도만 잔혹하다. 모든 면에서 잘 계산된 좋은 읽을 거리였다.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도 독서 클럽이라는 배경만 다를 뿐, 악당을 상대하기 위해 연대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이 작품 역시 그 연장선에 놓인 작품이다. 신선한 소재지만 골격은 같기에 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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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사랑하는 거 말고
김병운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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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두 번째 작품집이다. 술술 잘 읽힌다. 재미도 있다. 얼핏 보기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작가가 더 할 수 있는 게 과연 없었을까.

 

독자들은 보통 첫 소설 이후의 작품을 대할 때 마음가짐이 다르다. 책을 대할 때 그렇다는 말이다. 독자는 뭔가를 기대한다. 얼마나, 뭐가 변했을까. 발전, 아니면 후퇴? 물론 그냥 그 자리에 있어도 되지만, 난 김병운이라는 작가가 앞으로 더 나아가길 바랐다.

 

일곱 편의 단편들이 실렸는데 화자가 거의 작가다. ‘엄마’와 화자와의 관계가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된다. 삼촌-조카(영적 어른-아이)의 관계도 거듭 등장한다. 화자 옆엔 성격도 역할도 비슷한 confiance들이 버티고 있다. 그들은 화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화자의 삶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각성의 힌트나 적절한 조언을 준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첫 책과 크게 다르지 않을뿐더러 이 책 안의 단편들도 ‘초록은 동색’ 이상은 아니다. 전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을 읽었을 때, 퀴어 소설의 외연을 확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퀴어들의 사랑 타령에 지칠 때 쯤이어서 그런 감상이 가능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도 그럴까.

 

여전히 퀴어들은 소수자의 입장이지만 그들 사회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계급’, 내지는 ‘주된 흐름’이 존재한다. ‘다수’와 ‘소수’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팔리거나 안 팔리거나’. 그게 가장 가시적인 단서일 테지만 그 외의 조건들도 수두룩하다.

사회적인 조건들은 어떨까. 소수 중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된 퀴어들은 분명 존재한다. 커밍아웃을 어느 정도 이뤄냈고 그 후폭풍도 없거나 이겨냈다. 가족들, 특히 ‘엄마’의 지지를 받는 것은 정말 중요하게 보인다. 잘 지내던 남자 친구와 뜻밖의 이별을 겪었을 때 성정체성이나 지향성에 상관없는, 순수한 의미의 절친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고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기꺼이 어울릴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소위 ‘주류’ 게이들. 김병운이 그리는 인물들은 (아쉽게도) 딱 그 안에 존재한다.

하지만 잊기 쉬운 게,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의 아웃사이더들, 그 경계선 위에 있거나 저 밖에 존재하는 퀴어들(소수 안의 소수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트랜스젠더, 크로스드레서, 양성애자, HIV 감염자, 십대 퀴어, 기타 등등. 이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작가가 시도 정도는 하고 있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HIV(<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오프닝 나이트>), 청소년 퀴어(<교분>) 등이 언급되는데 딱 그 정도다. 그냥 제스처일 뿐이다.

좀 더 나가보자. 작품집의 포문을 여는 <봄에는 더 잘해줘>는 타인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고 쟁취한 사랑 이야기로 불쾌한 감상을 남긴다. 이기적인 화자는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사소한 일이다>에도 등장한다. 또한 인물이 신고 있는 운동화가 나이키인지 뉴밸런스인지 굳이 언급하지 않을 수 있으나 화자가 앞두고 있는 ‘시술’이 뭔지는 독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교분>에서도 이렇게 어물쩍 얼버무린다.

본(本) 이야기 밖에 다른 화자를 관찰자로 두는 건 요즘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흔히 보이는 구성인데(이른바 ‘복고’ 트렌드로 보인다), 필요하고 적절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멋 부리는 것에 그친다. 오히려 산만하고 포커스를 흩트리는 부작용만 낳는다(<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 그리고 <오프닝 나이트>에선 정치성, PC적 사고가 일종의 강박, 모난 돌처럼 느껴져 불편했고, 교훈극이나 홍보 영화처럼 보이는 <크리스마스에 진심>은 dramatize에 실패한 작품처럼 읽혔다.

 

동성애자 캐릭터가 단역으로나마 등장했다는 이유로 퀴어 소설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존재했다는 건 매우 가까운 과거의 일이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창작자도 소비자도 많다. 퀴어 문학 시장의 이런 괄목할만한 성장은 그동안 무수한, 도전적인 시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쯤하면 된 걸까. 여기서 멈춰야 할까. 작가들이 고민할 대목이다. 게이라이프의 청사진을 제공하는 것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그 뒤의 그늘을, 일반적 퀴어(웃기는 표현이지만)의 범주를 벗어난 어둡고 비밀스럽고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도 터부시 되는 삶의 여러 양상들을 더 파고들 것인가.

 

그저, 독자로서 내 눈이 아주 조금 더 높아졌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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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의 목격자
E. V. 애덤슨 지음, 신혜연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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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의 ≪Murder Is Easy≫와 ≪Curtain≫이 생각난다. 두 소설을 쪼개고 변형시켜 재조립했달까.

무엇보다 현대 미스터리 소설(특히 영국 작가)들에 대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새삼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지루하고 형편없다. 이야기 설계가 참으로 엉성하다. 긴장감이 거의 없어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읽다 보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기분이 든다.

도입부는 살짝 흥미롭지만 이후로 내내 즐거운 순간이 없었다. 빈약한 동기에 공감가지 않은 인물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보고 있는 게 거의 고문(내지는 코미디) 수준인데 이야기라도 재미있으면 그나마 봐주겠지만 그도 아니다.

무관심과 이기심이 만연한 현대 사회를 고발하려는 작가의 야심은 알 만하지만 지금으로선 그조차 진부한 시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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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뇌과학 - 당신의 뇌를 재설계하는 책 읽기의 힘 ㅣ 쓸모 많은 뇌과학 5
가와시마 류타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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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라. 그것도 종이책으로.’ 결론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바로 이거다. 그것도 소리 내어 읽으면 더 좋다고 한다. 작가는 독서의 필요와 당위 등을 뇌과학적 증거들에 의지해 설명한다. 이미 알고 있는 부분도 있고, 새로운 사실도 있어 흥미롭게 읽었다. 무엇보다 참 쉽게 썼다.

 

한두 달 전에 읽었던 ≪생각의 힘≫이란 책과 목적은 같은데 결이 사뭇 다르다. 저자는 아날로그 식 독서를 강조하기 위해 디지털 디바이스로 뒤덮인 오늘날 환경을 나무라는 데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저자는 현대사회가 스마트폰과 태블릿 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고 사람들을 ‘세뇌’시키고 있는 것 같다고 하는데(215쪽) 깊이 공감한다.

 

육아와 교육 환경에 대한 내용들이 중반 이후로 많이 등장하는 건, 아마 좋은 습관을 새롭게 들이거나 나쁜 것은 바로잡을 여력과 기회가 더 많을 다음 세대들에 대한 작가의 우려가 깊은 탓일 테지만, 자신을 돌본다는 의미에서 이미 성인이라도 여전히 유효한 충고로 들린다. 독서와 교육을 밀접하게 연결하고 있는 건, 역시 지난 해 읽은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과도 맥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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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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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이후로 꾸준해 온 작가의 장르문학(환상문학, SF문학)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레퍼런스로 언급되는 작품들이 많아 현재 작가가 어떤 작품들에 영감을 얻고 영향을 받는지 기웃거리게 된다. 작가 자신의 삶과 고민이 틈틈이 엿보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으로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반복되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 남자의 한담을 중심으로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며 서로의 앞날에 행운을 빌어주는 <귤락 혹은 귤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생계형 예술가 커플의 희망과 좌절이 번갈아 오는 현실을 보여주며 창작 활동이 주는 환희를 그린 <도트와 프랭크>도 가슴에 오래 남는다. 여기 두 인물의 삶은 소설을 쓰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유령들>과 <맥주의 알>, <맨발 교실>에선 ‘내가 그들이고 그들은 바로 나’라는 테마가 반복된다. 진정한 나를 드러내기 위해 지금의 나를 소거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히는 <유령들>과 인간들이 청설모로 변하는 <맨발 교실>,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괴로운 현실의 도피처였던 꿈과 각박하고 고단한 현실을 바꾸는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는 환상성이 강한 작품들이다.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은 지나친 욕망을 경고하며 행복도 불행도 스스로에게서 비롯된다는 주제 의식이 읽힌다. AI라는 전형적인 SF 소재로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새로운 남편>은 ≪25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집≫에도 실려 있다.

 

가끔 책에 몰입하면 일종의 ‘트랜스(trance)’ 경험을 하곤 하는데, 그 순간을 작가가 자주 언급하고 있어 재미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도 책에 몰입하는 동안 반쯤은 유령처럼 변하기에, (<유령들>_23쪽)❞

 

❝행복한 유령 상태. (<귤락 혹은 귤실>_168쪽)❞

 

❝-반쯤 꿈꾸는 상태랑 비슷하니까-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 니터는 눈을 뜬 채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하게 몽롱하다고 했다. (<맨발 교실>_263쪽)❞

 

또한 작가는 <유령들>에서 인물 ‘마지’를 소개하며 ‘마지널리아(marginalia)’라는 단어를 빌려오는데(그러면서 마지널리아는 책 여백에 메모하는 행위를 말하는 거라는데, 18쪽), 신기한 단어도 있네,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이탈로 칼비노’의 글이 인용된 게시물이 있어 여기 인용한다.

 

『빠르고 널리 퍼진 미디어가 득세하고 모든 소통을 하나의 획일화된 평면에 내려 눌러 납작하게 만드는 위험을 감행하는 시대에서의 문학의 기능은 각기 다른 개체들이 소통하는 데에 있다.

 

단지 다른 개체들과 소통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서로와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소통하는 것이다.

 

이 소통은, 이들 사이의 다른 점을 서로 부디껴 마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고, 이는 문자 언어의 진정한 본성을 따르는 것이다. -이탈로 갈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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