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레슨 인 케미스트리 1~2 세트 - 전2권 - 개정판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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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인종차별이 서슴없었던 50년대 미국을 살았던 한 여성의 이야기.

딱 봐도 페미니즘 소설인데 잘 포장했다. 드라마틱한 장면마다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지뢰처럼 깔려 있다. 빵! 터지는 강한 한 방은 없지만 여기저기 설치된 부비 트랩에 정신이 없다. 그런 교묘함이 좋다.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이야기다.

 

반 세기 전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여성 독자들은 여전히 진행되는 자신의 이야기로 읽을 것이다. ‘여권 신장’을 목청껏 외치지는 않지만, 소설이 말하려는 바가 알게 모르게 촉촉이 스며든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에 관심 없는) 남성 독자들에게는 어떤 소설일까. 이 소설은 인간 승리의 드라마다. 위대한 성공. 가난하고 힘없는 처지로 그 모든 핍박과 차별에 생고생을 하다가 결국 원하던 바를 손에 거머쥐는 인간의 이야기. 전형적인 ‘아크플롯(archplot)’의 이야기.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넘친다. 사랑스럽고 도발적이고, 나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인물들. 조역들에게서도 매력이 흘러넘친다. 그들 간의 ‘케미’가 이 작품의 상당한 장점이라 인물들만 보고 있어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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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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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피해자의 신분으로 숨어사는 남자의 이야기다. 아이러니한 게, 가짜 신분으로 위장하고 나서야 자신의 삶에 만족하게 됐다는 사실. 변호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염원하던 사진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글쎄. 이 소설을 어떻게 봐야 할까. 내가 진짜 내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라는 질문은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특히 진정 원하던 미래를 여러 이유로 포기해야 했을 때. ‘겉의 나’와 ‘내면의 나’와의 괴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이런 질문들에서 비롯된 긴장감은 후반까지 팽팽하게 유지된다. 아마추어에서 너무나 잘 나가는 작가로 성장한 주인공은 유명세가 오히려 함정이 된다. 그의 실체가 밝혀지는 건 시간 문제다.

그러나 결말.

 

완벽한 해피 엔딩은 아니지만 완전한 배드 엔딩도 아니다. 뭔가 찜찜하다. 나는 주인공이 불행해지길 바랐을까.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불행해지기보다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길 바랐던 건 사실이다.

어정쩡한 엔딩은 나름 작가의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법적 책임을 지우자니 주인공이라 좀 그렇고, 그렇다고 그냥 위기를 모면하자니 너무 심심한 결말이고.

 

딱 주인공의 정체가 드러날 위기까지만 좋다. 이후부터 결말로 이어지는 부분은 너무 안일하다.

내가 읽기엔 절반의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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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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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읽긴 했으나 즐기진 못했다.

취향 탓으로 돌리기엔 어딘지 찜찜하다.

 

내가 ‘카버’의 소설을 즐겁게 읽을 날이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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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미카의 거짓말
에미코 진 지음, 김나연 옮김 / 모모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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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겪고 입양 보낸 딸과의 재회를 앞둔 ‘미카’는 거지 같은 현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 인생을 연출한다. 하지만 그 관계가 깊어질수록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고 결국 대소동, 총체적 난국의 국면을 맞는다. 미카는 어떻게 될까?

양부모 밑에서 잘 자란 ‘페니’는 긍정적이고 엄마에 대한 원망보다 그리움과 호기심이 더 크다. 마음 씀씀이가 넉넉한 절친도 있고 옛 애인조차 미카에게 호의적이다. 가장 좋은 건 미래의 남친이 될 확률이 거의 99퍼인 훌륭한 남자가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결말을 상상하는게 얼마나 쉽겠는가.

 

낙관과 긍정, 희망의 이야기다. 이 모든 인물과 설정, 상황과 사건의 빤함에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무엇보다 캐릭터들의 매력이 상당했고 던지는 질문들이 (예상 외로) 상당히 무게가 있었다. 가벼운 ‘칙 릿(Chick Lit)’+성장소설을 기대했으나 그 이상이었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생각없이 나선 산책길에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 것에 비교할 수 있겠다. 전형성이 소설을 망치는 결정적인 요인이 아닌 건 확실하다. 진부한 이야기임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작품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실수’ 자체가 아니다. 중요한 건 그 이후의 문제다. 미카는 용감했고 뒤로 물러서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주 다행히도 주변에 훌륭한 조력자들이 많았다.

역시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닌가 보다.

 

사족. 이 소설의 원제가 ≪Mika in Real Life≫인데, 번역 제목은 ≪미카의 완벽한 거짓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의 제목은 ‘완벽한 미카’가 실수로 거짓말하는 뉘앙스가 있는데, 일단 미카는 완벽하지도 않고 ‘완벽한 거짓말’이 되도록 상황을 짜맞추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소동이 이야기의 주를 이루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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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틸다 ㅣ 노벨라33 세계 중편소설 전집 2
메리 셸리 지음, 정미현 옮김 / 다빈치 노벨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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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침하고 불편한 소설.

 

내용인 즉, 이렇다. 출산 중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갓난아이에 대한 원망으로 해외에서 떠도는 아빠. 아이는 고모 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열 몇 살쯤에 아빠가 돌아온다. 아름답고 우아하게 자란 딸의 모습에 아내의 모습을 겹쳐보는 아빠는 그만 딸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실이 두려운 나머지 자살한다. 고통에 빠진 딸 역시 시름시름 앓고 있다. 죽음이 임박함을 직감한 딸은 유일한 친구에게 편지로 자신의 사연을 고백한다.

 

1820년 경에 완성한 작품이지만 작가의 아빠의 반대로 출판에 실패, 작가 사후 130년 후인 1959년에야 비로소 책으로 빛을 봤다고.

이 작품이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보는 견해들이 많은데, 그게 아니라도 아빠라면 당연히 출판 못하게 막지 않았을까. 가십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충분히, 그리고 기꺼이 오해할 수 있으니까.

‘창조주’와 ‘창조물’의 갈등은 작가의 대표작인 ≪프랑켄슈타인≫에서도 거듭된다. ≪프랑켄슈타인≫이 이 소설보다 몇 년 앞서 발표됐다.

작품만의 묘미가 있다. 불편하지만 아름답게 느껴지는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어 놀랍다. 한밤중에 딸의 방문 앞을 서성이는 기척(아마도 아빠)을 묘사하는 부분은 소름이 끼쳤다. 얇은 책인데도 꽤 오래 읽었다.

 

그 시대에 이런 파격이라니. 아닌가? 그 시대라 이런 파격이 가능했을 수도. 작가와 ‘퍼시 셸리’의 관계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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