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농담 -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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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말미에 작가에 의하면 현대인들의 허세나 위선, 가부장제 등을 고발하고 생명 존중과 가정의 가치를 주창하는 게 목적이었다고 하는데, 그냥 재미있는 드라마 한 편 본 것 같다. ‘박경리’ 소설도 의외로 TV드라마 같은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활동 시기가 비슷하니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주요 인물인 ‘영빈’과 ‘현금’은 불륜 관계이고, 영빈의 늦둥이 동생인 ‘영묘’는 허무맹랑하고 올드한 사고로 중무장한 부잣집에 시집가서 기죽어 사는 전형적인 을의 입장인 며느리다. 중매결혼으로 영빈과 부부가 된 ‘수경’은 아들을 낳기 위해 남편 몰래 여러 번 낙태를 경험한 사람이고, 영빈-영묘 집안의 장남 ‘영준’은 미국에 이기적인 아들로 살다가 필요할 때 막판에 나타나 제 몫을 한다.

 

캐릭터마다 겹이 많아 이야기거리가 풍부하고 인물들도 많은 편이라 TV미니시리즈 16부작은 거뜬해 보인다. 하지만 설정들이나 나오는 얘기들이 2026년의 독자들에겐 이미 익숙하고 유년시절 짝사랑 상대와 서슴없이 바람을 피우고 낙태 운운하는 건 좀 염치없고 올드해 보인다. 오늘날 드라마로 나온대도 높은 시청률은 기대할 수 없으리라.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온 게 2000년이니, 그 당시만 해도 나름 파격적이고 새롭고 현대적인 작품이었을 것이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도회적인 분위기도 딱 그 당시 무드다. 하지만 춘향이와 이도령의 이야기를 지금의 시선으로 볼 수 없듯이, 이 작품도 그 시대의 환경과 상황으로 읽는다면 나름의 묘미는 있는 듯하다.

 

원래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고 싶었으나, 지인이 자신이 읽은 박완서 최고의 소설이라고 추천하길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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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X 이옥토 리커버 특별판) - 유년의 기억 ㅣ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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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가장 고민했던 게, 작가나 출판사가 우기는 것처럼 (자전적) 소설로 봐야 하나 에세이로 봐야 하나, 였다.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를 읽을 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었다. 일개 독자가 소설인지 에세인지 뭐가 중요해. 이런 생각도 했었고, 우리 문학의 큰 나무 같은 작가의 대표작에 딴지를 거는 것 같아서.

근데 딴지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읽은 게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나 스스로 명확하게 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서 이번엔 시간을 좀 들여서 고민해 봤다.

 

결론은?

이것은 소설이라는 결론. 전후증언문학쯤 되겠다. 현기영의 작품도 마찬가지.

왜냐? 소설은 허구다. 이 책은 전부는 아닐지라도 허구가 포함된다. 아니, 포함될 것이다.

왜냐? 인간의 기억은 완전하지도 않고 스스로 왜곡하는 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즉 의도는 아니어도 알게 모르게 왜곡되고 윤색되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 그래서 난 자서전이나 자전 에세이, 이런 걸 읽더라도 소설로 본다.

 

이 책에 대해서 할 말이 많을까?

작가의 출생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삶이 핍진하게 담겨져 있고, 이후의 이야기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서 이어지고, 여성으로서, 전쟁을 겪은 세대로서의 고단함이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그 정도?

그리고 하나 더.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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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속한 것
가스 그린웰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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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미국인 화자가 ‘미트코’라는 육감적인 남자를 만나 사랑과 이별을 거듭하다가 결국 헤어지는 이야기. 퀴어 로맨스로 시작한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난다. 비극이라고는 했지만 주인공에게는 오히려 다행일 터.

 

미트코는 멀쩡한 허우대 빼놓고는 좋은 남자친구로서의 자질이 없어 보인다. 변변한 직업이 없는 건 둘째 치고 이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는 것하며 소소한 지출마저도 주인공에게 의지한다. 소위 빌붙어 사는 캐릭터인데 마냥 미워할 수는 없는 게 절제할 줄 안다는 거. 미트코는 의리도 있고 자존심도 강한 편이라 자신의 필요를 정확히 알고 딱 그만큼만 요구한다. 그에게 주인공은 돈 잘 쓰는 ‘미국인’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화자는 미트코를 사랑했을까. 절절한 외로움은 때때로 사랑으로 오해된다. 미트코를 처음 본 순간 화자는 성욕에 내몰린다. 하지만 점차 그의 몸에 익숙해지고 금전적인 요구가 거듭되자 환상의 베일이 조금씩 벗겨진다. 스스로의 감정을 돌아보는 건 나중에서야 가능해진다. 화자가 미트코의 요구를 들어주는 건 분명 사랑 탓은 아니었다. 동정이랄까. 미트코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병에 걸린 그를 그저 관망하지는 않았을 것.

 

지지부진 관계를 이어나가는 연인의 모습은 다른 의미로 ‘애타게’ 만든다. 이 작품은 좋은 의미로 ‘짜증난다’. 이런 고구마 같은 순간이, 사이다 한 모금을 기다리게 만드는 순간들이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핑크 무드에 샤방한 로맨스도 있지만, 이 작품은 전략적으로 회색 무드에 인물들을 진흙탕 속에 방치한다. 현실이 불편한 것이라면, 이 작품은 현실적이다.

 

‘공중화장실’이 배경인 첫 장면은 상당히 흥미롭다. 퀴어 커뮤니티에서 갖는 그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주류 작가들의 퀴어 남성 서사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 전형성이 오히려 신선했던 것 같다.

‘성병 걸린’ 인물도 마찬가지. 예전엔 ‘백혈병’이나 ‘폐렴’ 같은 질병이 매혹적인 재료로 문학에 유행처럼 쓰인 시절이 있었는데, 이 책의 ‘매독’이 그런 선상에서 등장한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퀴어 서사에서 무시하는 ‘틈’, 전부는 아닐지라도 분명 존재하는 이면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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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몸으로 살기 -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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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글쓰기 책. 나쁘지도 굉장히 좋지도 않았다.

편안한 문체로 ‘글’과 ‘쓰기’에 관해 작가가 여러 견해를 적고 있어 에세이처럼 읽히지만 여기저기 밑줄 긋고 플래그를 붙여놓은 부분들을 보니, 기술적인, 기교적인 조언이 많았던 것 같다.

권미에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비슷한 목적의 여타 도서들과 성격이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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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신랑 들이기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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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은 익히 들었고, 읽어 보고 싶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던 작가. 장르를 망라하고 번역된 작품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단편 두 개가 한 권에 실린 걸로 시작하기로.

 

술술 잘 읽히는데 조금 어렵다. ‘코어’에 몇 겹의 허울을 씌운 느낌이랄까. 그래서 문장 하나 음미하게 되고 책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더 신중했던 것 같다.

 

음탕하고 유머러스한 <개 신랑 들이기>는 살짝 비튼 퀴어 이야기처럼 읽힌다. 남들과 다른 나, 나와 다른 그들. 그들이 다수일 때 가해지는 은밀하고 때로는 가시적인 폭력.

<페르소나>는 독일에 살고 있는 일본인 간호사의 이야기인데 좀 난해하다. 이 작품 역시 이방인, 소수자의 이야기로 읽혔는데, 모든 소설을 너무 그 방향으로 읽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지라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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