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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노년의 인물과 미성년 인물이 우연히 만나 친해지고 연대하여, 서로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각성을 돕다가 결국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각자의 내면을 성장시키도록 독려하는 이야기.
이런 작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완전히 예상을 빗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또 완벽하게 그런 이야기도 아니었다.
일단 주인공 ‘르네’에 대해 보자. 작가는 50대 초로의 아파트 경비원에게 특출한 지적 재능을 부여하는 것으로 캐릭터에 대한 편견을 전복시키고자 한다. 르네는 비록 가방끈은 짧지만 철학, 영화, 회화, 고전음악 등에 다방면으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폭넓고 끊임없는 독서 덕분이라고 스스로 고백하는데, 독서만으로 그런 대화나 사유가 가능한 걸 보면 머리도 좋은 것 같다. 그런데 본인은 자신의 지력을 다른 사람들에게 한사코 숨긴다. ‘경비답지 못하다’는 것이 이유인데, 이는 르네 또한 외부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사람은 아파트 주민들, 대부분 학벌이 좋고 전문직에 부자인 사람들을 증오한다. 르네는 그들을 허세 가득한 텅 빈 깡통 정도로 여긴다. 특별한 이유나 근거도 없다. 이 정도 되면 캐릭터에 대한 편견을 뒤집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소용이 없지 않나. 르네의 이런 태도엔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것이 뒤에 밝혀지지만 충분한 면죄부가 되어주지 못한다. 읽는 내내 열등감이란 벽돌로 빈틈없이 올린 단단한 벽이 생각났다.
또 다른 주인공 ‘팔로마’는 르네보다 더 공감이 안 가는 인물이다. 공감은커녕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아이는 자살도 모자라 집을 불태우는 계획을 갖고 있다. 제 집에 불을 지르는 건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같은 아파트의 다른 집은 무슨 죄란 말인가. 아무리 열두 살 어린애라고 해도 이렇게 철이 없을 수가. 게다가 이 아이는 가히 천재다. 지력의 범위가 성인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그런데 죽으려는 이유도 딱히 없다. 그냥 삶과 세상에 대한 환면을 줄줄이 읊고 있는데 전혀 공감이 안 간다. 이 아이는 가만 보면 타인에 대한 우월감으로 가득차 있다. 매사 툴툴거리고 사람들을(가족들마저) 깔보고 자본주의를 비웃는다. 나중에 사회주의자가 될 싹수가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서 뭘 어쩌라고? 공부 더 열심히 해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돼서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 불균형을 바로잡던가. 근데 얘는 그럴 계획도 없다. 마냥 불만투성이다.
르네와 팔로마는 나이만 다를 뿐 비슷한 캐릭터다. 머리도 좋고 아는 것도 많다. 별로 애정도 공감도 안 가는 것도 비슷하다. 한 챕터 씩 교대로 두 명의 인물이 화자로 나서는데, 두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누가 누군지 구별이 어렵다. 이 두 명의 주인공을 가지고 노는 게 작가가 이 책에서 하는 일이다. 철학 교수였던 작가는 지면을 활용해 충분히 논다. 자신의 철학 지식, 문화예술적 사변을 줄줄이 읊고 있다. 그런데 독자들도 이게 재미있을까?
글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는 내 알 바 아니고, 나로서는 이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철학이나 문화 예술에 관심은 있지만 딱히 내로라할 지식이 없어 쉽지 않은 게 첫 번째 이유였고, 구체적이지 않고 관념에 매달린 문장들은 작가의 짓이려니 해도 매끄럽지 않은 번역은 두 번째 이유가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전체적으로 어떤 감상이냐면, 마치 철학이나 미학을 주제로 논문이나 인문서를 써야 할 사람이 억지로 소설을 쓰고 있는 느낌이랄까. 소설이라는 그릇은 핑계고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소설다운 ‘이야기’는 거의 끝 무렵에 나온다. 르네에게 데이트 할 남자가 생기고, 르네와 팔로마가 뒤늦게 만나 이제 좀 소설의 모양새가 나오려나 싶은데 뜬금없이 끝이다. 이런 결말은 우리나라 TV 아침드라마에나 어울릴 법하다. 게다가 곳곳에 난데없이 끼어드는, 덜 떨어진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도 눈에 거슬리기 짝이 없다.
작가가 이런 글을 쓰고 싶다면, 써야 한다면 당연히 쓰는 게 맞다. 읽을지 말지, 선택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사족.
개정판이 나온 걸 보면, 인기가 없지는 않았나 보다.
‘쉰네 살 수위 아줌마와 열두 살 천재소녀의 감동 어린 만남’이라니. 이런 터무니없는 문장으로 독자들을 낚다니. 르네와 팔로마는 교감은커녕 교류할 충분한 기회조차 없었다. 과장광고는 일벌백계할 사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