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멕시코 여행 중인 미국에서 온 두 커플. 호텔 수영장에서 만난 독일 젊은이에게 마야 유적지로 떠난 동생을 찾아 갈 거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지 않아도 호텔과 바닷가에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라 동행을 결정한다. 여기에 영어라곤 한 마디도 못 하는 그리스 젊은이가 의기투합하고, 여섯은 멕시코의 오지로 떠난다.

바야흐로 행복 끝, 고생 시작이다. 그들은 고생스럽고 무시무시한 결말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

 

전형적인 슬래셔(Slasher) 영화의 공식이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남들이 가지 말라고 말리는 장소에 굳이 발을 들이고 고립된 채 하나씩 죽음을 맞는다. 여섯이니 바디 카운트도 적당하다. 이들 모두 죽거나 운 좋으면 한 명 정도는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대적할 상대는 뭘까.

 

이야기는 인물들을 오가며 진행되는데, 그들의 과거와 내면을 보여주고 관계가 휘청대는 모습에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건, 작가가 호러에만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인물들의 풍부한 드라마는 독자의 공감을 촉발하고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밀림에 함께 고립된 독자는 그들의 숨소리, 흙먼지가 일으키는 매캐한 공기와 땀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 정교하게 쌓아올린 인물들의 이야기 옆에서는 위협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독자가 알게 되는 순간, 즉 바야흐로 액션이 시작되면 애써 쌓아올린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진다.

 

그들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까?

시도해 볼만 했고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적어도 세 가지는 되는데, 그들은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마냥 필요도 이유도 없는 일에 진땀을 뺀다. 성냥도 있고 약간의 기름도 있는데, 그들은 왜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걸까.

 

한 김이 훅 빠지니, 모든 게 시들해진다. 긴장과 공포는 한 순간에 사라지고 남은 건 캠핑 나온 것 같은 애들이 뭐가 없다, 뭐가 없다 툴툴거리는 불만뿐이다.

 

그럼에도 읽을 만한 소설이다. 충격적인 이야기는 다분히 세기말적이고 인간의 나약함, 우리는 과연 자연을 대적할 수 있는가, 라는 묵직한 질문이 긴 여운을 남긴다.

 

2008년에 동명의 영화로(the Ruins) 만들어졌다. 시나리오 작업에 작가도 참여했는데, 플롯의 구멍을 의식했는지 많은 부분이 보충되었다. 위험은 더욱 생생해지고 인물들의 갈급함이 더욱 처절해졌다. 행동이 풍부해지고 긴장과 공포에 좀 더 집중된 느낌이랄까. 소설이 동적이라면 영화는 한결 동적이다. 인물들의 드라마는 약해져 이야기가 한결 간결해졌는데, 이는 단점일 수도 장점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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