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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딸 ㅣ 조지 오웰 소설 전집 (무선)
조지 오웰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3년 2월
평점 :
고집불통에 인색하고 가난한데다 취향만 고급인 성직자의 딸인 ‘도러시’는 보좌신부를 둘 형편이 안 되는 아버지를 위해 교구민 관리에 교회의 각종 행사 준비에 집안 살림까지 맡는, 하루 스무네 시간을 쪼개 사는 사람이다. 가장 나쁜 건 이런 저런 외상 거래로 많은 상점에 갚을 빚이 점점 불어나고 있다는 사실. 빚 독촉에 아버지는 도움도 안 되고 빠져 나갈 구멍도 없고. 그럼에도 매사에 성실하고 긍정적인 도러시의 일상은 흐트러짐 없이 꾸역꾸역 굴러가고 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도러시의 삶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
‘기억상실’이란 사건은 여러모로 편한 소재다. 인물에게 위기를 주고 모든 상황을 반전시킨다. 어느 정도 클리셰라고 할 수 있는 게 주인공이 기억을 잃거나 다시 찾음으로서 국면 전환을 꾀하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작품의 도러시가 겪는 기억상실도 그렇다. 뜬금없고 이야기 안에서 너무 편리하게 기능한다. 도러시는 그 일을 계기로 타지를 떠돈다. 부랑자들이나 매춘부들과 어울리고 노숙을 하고 육체노동을 하고 구걸한 돈과 훔친 음식으로 연명한다. 나중에 어찌어찌 기억을 찾지만 실종으로 비롯된 고향에 퍼진 자신에 대한 추문으로 집에 돌아가지도 못한다. 해 본 적도 없는 교사도 되어 보기도 하고 스스로 돈을 벌기도 한다.
도러시는 자신이 많이 변했다고 느낀다. 더 이상 예전의, 성직자의 딸로서 살던 과거의 자신이 아니다. 도러시는 자신이 겪고 있는 변화가 긍정적인 건지 그렇지 않은지 헷갈린다. 분명한 건 자신이 전혀 다른 것을 원하고 추구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이 변하면 세상 전체가 변하잖아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니까. (396쪽)❞
기억상실이란 소재는 이 작품에서 클리셰이기 이전에 일종의 상징이다. 한 인간이 일상의 습관에서 벗어나 스스로 변화를 꾀하는 게 과연 쉬울까. 삶은 관성에 의해 진행된다.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오려면 뭔가 커다란 충격이 있어야 한다. 작가가 그 충격을 기억상실이라는 외부의 사건에 기댔다고 하는 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럴 의지를 갖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상실이 없었더라면 도러시는 과연 아버지에게 귀속된 삶을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결정할 기회가 있었을까.
결국 집으로 돌아온 예전의 도러시가 아니었다. 겉보기엔 크게 다를 바가 없을지라도 그녀는 분명한 변화를 겪었다. 종교에 대한 회의가 대표적이다. 불경한 생각이나 상스러운 말을 한 벌로 시침핀으로 팔을찌르는 행동 따위는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신에 대한 믿음은 여전하다. 손바닥을 뒤집어도 여전히 손인 거다. 드라마틱함은 없지만 미묘하다. 오히려 현실적이다.
작가의 ‘반골’ 기질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작가는 도러시를 이곳 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당시 영국 사회의 숨은 그늘을 고발한다. 열악한 노동과 말뿐인 교육 현장, 빈민들. 그런 악몽 같은 무대에서도 작가는 휴머니즘을 잃지 않고 있다.
작가의 소설 작품들 중, 유일하게 ‘여성’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라고. 게다가 초역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다른 듯 하면서도 사회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현실과 당대 세태를 비판하고 있음은 일관적이다. 대표작인 ≪1984≫와 ≪동물농장≫이 SF와 우화의 특징을 갖고 있다면 이 작품은 그냥 현실이다. 기억상실을 겪는 여자가 비교적 안전히 집에 돌아왔다는 것 자체가 판타지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사족.
제목과 본문엔 그냥 ‘신부’라고만 되어 있는데, 원제의 Clergyman이 보통의 신부와 어떻게 다른지, Father나 Priest 등과 뭐가 다른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