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BL] 레퀴엠 : 패럴랙스(Parallax) 2 [BL] 레퀴엠(Requiem)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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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자신이 이 상황을 버틸 수 있을지, 그리고 언제까지 사람들을 속이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고, 언젠가 최악의 상황에 치달았을 때 닥쳐올 일이 두려웠다.

그 모든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은 대담하지도 않고, 그렇게 절실히 그를 원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세계는 그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다. 그게 그와 자신의 가장 큰 차이였고, 그렇기에 늘 그에게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분명 그에게 끌리고 흔들리면서도 그 죄악감을 견디지 못해 혼란스러워하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더 이상 그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정신없이 머릿속을 들쑤시고 있었다.

지금도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와 이렇게 단둘이 평화롭게 지낸다는 건 열여덟의 자신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그래서 받아들이기 힘들고 믿을 수 없었지만, 결국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지금 역시 불과 1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독에 닿으면 이성도, 도덕심도, 현실감마저도 마비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가 주는 강렬한 쾌감에 자신이 누구인지도,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도 잊은 채 그 열기에 휩쓸려 그에게만 집중하고 매달리게 된다.

이 질 나쁘고 달콤한 독에 이미 취해 버렸기에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이 끝이 어디든, 설혹 그 끝에 남은 것이 파멸뿐이라 해도 즐거이 그 최후를 맞이할 생각이었다.
그와 함께, 그가 만들어 놓은 그 성 안에서.

점점 어지럽게 흔들리는 머리와 뜨거워지는 몸, 그리고 강하게 맥박치는 심장의 고동.
마치 취한 듯 어지러운 그 느낌은 이 남자가 가진 독(毒)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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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BL] 레퀴엠 : 패럴랙스(Parallax) 1 [BL] 레퀴엠(Requiem) 5
키에 / 링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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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삶이 한 사람으로만 가득 차는 건, 좋지 않다. 그걸 알고는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 남자 자체가 너무나 강렬하고 기괴해, 도저히 머릿속에서 몰아낼 수가 없다.

그래,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죽어도 그걸 인정하기 싫어 외면하고 부정했지만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남자를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끌렸던 거라고.

그리고 조금은 서로를 이해해 가고 있다.
지금은 그거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평온할 수 있기를, 조용히 바랄 뿐이다.

그의 품이 편안하다. 그의 체온도 호흡도 이젠 완전히 익숙해져 편안해진 채였다. 그도 자신도 이제 겨우 이 생활에 익숙해져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주 조금만 이대로 있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영원히…….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현실에서 눈을 돌린 채 귀를 막고 눈을 감고 그렇게 평화로운 척 잘 지내 왔다.
누군가 바로 눈앞에 현실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자신은 그처럼 대담하고 무심해질 수 없고, 단 하나만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열정도 없다.
그게 바로 그와 자신의 가장 큰 차이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와 자신 사이의 시차(視差)를 좁힐 수 없게 만드는 가장 근원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적어도 지금, 이 평화로운 세상 속에서만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마치 이 세상에 그와 자신 단둘만 남은 것처럼 그의 품에 안겨 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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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할 정도의 굴욕감과 비참함, 그리고 자존심의 상처에 이번에는 절대 이 녀석에게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실수는 두 번이면 된다. 세 번의 실수는 안 된다. 절대로 이 녀석을 믿는 것도, 어떤 희망을 갖는 것도 안 된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녀석을 이겨 본 기억이 없다. 겉보기야 어떻든 항상 휘둘리는 건 자신이었고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이 약해져 한발 물러서는 것도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곳을 영원히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한 건 그 물안개 속에 선 그 녀석을 본 탓이었다.
그 풍경 속에 젖어 든 소년이, 너무나 아름다운 탓이었다.

그 아이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점점 더 그 녀석의 기를 꺾어 내리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져 가고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이젠 그 욕망 자체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건 단순한 오기였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러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전쟁이다. 서로의 자존심과 헤게모니를 건 치열하고 뜨거운 전쟁이다. 그리고 한번 시작한 전쟁에서는 절대 먼저 물러서는 것도, 패배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그 전쟁에 임했다. 가끔 치열함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바로 그다음 순간 오는 뜨거움에 도취되어 브레이크를 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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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사람 중 누구 하나도 손을 뻗어 도와주지 않는다는 게, 그리고 이 상황을 외면하면서도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모두 듣고 보고 있다는 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끔찍하기만 했다.

오싹할 정도로 차갑지만 동시에 불처럼 뜨거운 그의 시선에, 알아 버렸다. 그가 이미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불행히도 자신 역시 그 답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건 단지 애정 결핍이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너무나 쉽게 그에게 안기는 데에 익숙해진 것도, 그의 품이 아주 싫지만은 않은 것도, 단순한 애정 결핍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그뿐이다.

그는 믿지 않고 자신은 거짓말을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 그쪽이 자신은 마음 편하다.
이제 자신이 왜 도망치고 싶어 했는지, 기억한다.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무엇으로부터 그렇게 도망치고 싶어 했는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 남은 건 이번엔 제대로 도망치는 것뿐이다. 이번엔 확실하게, 실수 없이, 깨끗하게 사라져야 한다.
되돌릴 수 없다면 지워야 하니까.

하지만 어떻게 해도 한 번 있었던 일은 없었던 일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자신 역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까…… 과거를 되돌릴 수도, 지울 수도 없다면 그 과거를 끌어안은 채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것들이 튀어 나가기 전에, 다른 이들이 그걸 알아채기 전에 그것들을 영원히 소멸시켜야 한다.

자신의 앞에 놓인 가장 근원적인 문제가 뭔지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직시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거나 극복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였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와 자신 중 하나가 죽었다 다시 태어나거나 지금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 내야 한다. 하지만 전자도 후자도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이건 어떻게 해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나긋한 목소리와 조용조용한 말투. 하지만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 분명한 살의와 증오였다. 지금 그는, 그에게 지난 석 달간의 시간이 어떠했는지를 토로하며, 고통과 회한을 담아 분노하고 있었다.

"그렇게 인정할 수 없다면 부정하고 도망쳐. 얼마든지 따라가 줄 테니까. 하지만 너도 언젠가는 인정하게 될 거야. 그건, 부정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부정하면 할수록 더 선명하고 깊어지고 도망치면 칠수록 집요하게 발목에 휘감겨 오지. 너도, 나처럼 도망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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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마인드가 정말로 살아 있는 정신이라고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건 단지 재현된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진실일까?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느 쪽을 믿고 싶은 걸까?

잠시 머물렀다 사라져버린 향수의 냄새.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 오래된지의 얼룩. 탁자의 뒤틀린 나뭇결, 현관문의 차가운 질감.
바닥을 구르다 멈춰버린 푸른색의 자갈, 그리고 다시, 정적.
물성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가.
나는 닫힌 문을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떨구었다.

그때 그 장소에 있었던 모두는 같은 풍경을 생각했을 것이다.
류드밀라가 그렸던 행성. 푸르고 묘한 색채의 세계.
인간과 수만 년간 공생해온 어떤 존재들이 살았던 오래된고향을.

- 잘 자.
처음으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깔개 위에 몸을 뉘었을때 희진은 문득 울고 싶었다. 고작 그 정도의 말을 건네는것만으로도 누군가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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