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할 정도의 굴욕감과 비참함, 그리고 자존심의 상처에 이번에는 절대 이 녀석에게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실수는 두 번이면 된다. 세 번의 실수는 안 된다. 절대로 이 녀석을 믿는 것도, 어떤 희망을 갖는 것도 안 된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녀석을 이겨 본 기억이 없다. 겉보기야 어떻든 항상 휘둘리는 건 자신이었고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이 약해져 한발 물러서는 것도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곳을 영원히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한 건 그 물안개 속에 선 그 녀석을 본 탓이었다. 그 풍경 속에 젖어 든 소년이, 너무나 아름다운 탓이었다.
그 아이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점점 더 그 녀석의 기를 꺾어 내리고 싶다는 욕망이 강해져 가고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이젠 그 욕망 자체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건 단순한 오기였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러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전쟁이다. 서로의 자존심과 헤게모니를 건 치열하고 뜨거운 전쟁이다. 그리고 한번 시작한 전쟁에서는 절대 먼저 물러서는 것도, 패배하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그 전쟁에 임했다. 가끔 치열함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바로 그다음 순간 오는 뜨거움에 도취되어 브레이크를 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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