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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팀 블랙번 지음, 한시아 옮김 / 김영사 / 2024년 12월
평점 :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의 겉표지에 쓰여 있는 캐치프라이즈다. 이 문장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마도 나는 인간이 대낮이 아닌 한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생물이었어도 나방과 생태학에 대해서는 몰랐으리라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서평에 앞서 고백하자면 학창 시절의 나는 문과였다. 생물 교과서 표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대학마저 졸업한 지 오래인 마당에 생물학과 생태학에 대한 내 상식은 파브르 곤충기를 많이 읽은 초등학생 수준도 못 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내가 책을 펴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과연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였다.
성격 급한 한국인답게 결론부터 미리 말한다. 놀랍게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의 나는 나방이 뭐냐고 물으면 ‘나비 비슷한데 좀 뚱뚱한 거’라고 대답했는데, 이제는 나방의 생태학이 어떻고 나방의 서식지가 어떻다고 말할 수 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생태학을 떠먹어보라고 밥상 차려 주는 놀라운 책이었다. 도입부를 빠져나와 본론에 도달할 때쯤이면 종종 등장하는 나방 사진이 귀엽다는 착각까지 들게 된다. 그대로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종간경쟁, 생태 지위 분할, 메타군집 같은 생태학 용어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p.209 모든 종은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 모두에게 부과된 제약은 생장과 번식, 생존의 필요성에 따라 서로 얽히고 계획의 방향을 결정한다. 나방 또는 다른 어떤 유기체도 삶의 방식에 정답은 없다. 상황마다 해결책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나방의 생태학을 말하면서 단지 과학적 사실을 늘어놓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생태학이 어떻게 흘러가고 유지되는지, 나방 하나에 얼마나 오래된 역사가 있고 이 탐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한다. 많은 생명이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지구에서 나방의 생존은 단지 나방 한 개체의 생존으로 볼 수 없다. 그 삶에도 많은 피식자와 포식자, 식물, 곤충, 조류들이 얽히고설켜 살아간다. 각자 다른 모양의 삶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생태계에 우리 역시 인간이라는 하나의 동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유한한 자원을 차지하고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을 취하는 동물들 속에서, 인간만 과연 그 굴레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의 원제는 『The Jewel Box』이다.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는 나방 덫을 소개할 때 저자는 ‘상자를 열자 보석이 흩뿌려져 있었다’고 말한다. 나방 덫을 의미하는 원제에서 어째서 이런 제목으로 번역되었을까? 인간이 갖고 있는 나방에 대한 편견이 있다. 나비보다 좀 못생기고, 잘못 만지면 큰일나고, 빛을 쫓아다닌다. 그런 편견을 타파하면서 흥미를 끄는 최고의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불빛 아래의 나방을 보고 나방이 빛을 쫓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사실 그 나방은 도시의 빛 공해에 이끌려 적절하지 못한 서식지, 도시라는 거대한 덫에 ‘갇히게’ 된 개체일지도 모른다. 더 안전하고 자유로운 서식지를 두고서 말이다.
p. 361 외래종은 인간이 지구 생명의 양상에 변화를 미치는 주된 방법 가운데 하나다. 생태학적 맥락에서 외래종이란 인간의 활동 때문에 그들의 일반적인 분포 범위를 벗어난 새로운 환경, 즉 자연적으로는 발생하지 않는 환경에 유입된 종을 말한다.
8장 「종을 잃다」에 등장하는 외래종의 정의이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외래종이라고 하면 황소개구리나 베스를 쉽게 떠올리고 그 외래종이 한국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그러나 그 외래종이 결국 ‘인간 때문에’ 발생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외래종은 결국 수입이나 수출, 여행이나 이민 같은 인간 행동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생태계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문명이라는 형태로 생태계에 끝없이 간섭한다. 우리는 결코 생태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유롭게 홀로 떨어져 나올 수 없다.
게다가 이 대목에서 설명하는 외래종은 회양목명나방으로, 사진을 보면 상당히 익숙한 나방이 등장한다. 동아시아, 특히 한국과 중국의 자생종이었으나 회양목 수출을 통해 서유럽으로 유입되면서 회양목 병충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인 저자의 책에서 한국 나방을 외래종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읽게 되는 것은 꽤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이 책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지식을 얻을 수 있었을까? 머릿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꺼져 있던, 어쩌면 한 번도 켜진 적 없었던 과학이라는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생태학은 이토록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지식을 끝도 없이 보여준다.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는 단순한 과학 참고서가 아니다. 생태계의 원리, 철학,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에 대한 통찰과 교훈이 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모두에게 읽을 의무가 있는 책이다. 더 이상 나방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결국 나방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그 어떤 종도 하나의 외딴섬이 아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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