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별은 어떻게 내가 되었을까 - 지구, 인간, 문명을 탄생시킨 경이로운 운석의 세계
그레그 브레네카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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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주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낭만적이고 동화 같은 이미지와 동시에, 과학적으로는 너무나도 광활하고 어려운 세계라는 느낌을 강하게 떠올리게 된다. 또는 운석이라는 건 무조건 엄청 크고 재난 영화에서나 나오는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우리는 우주의 한 부분에 살아가고 있는데도 우주에 대해 확실히 알기는 이토록 힘들다. 저 별은 어떻게 내가 되었을까는 그런 우주의 신비들 속에서 운석으로 우주와 지구에 대해 말해준다.

 

p. 24 나는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운석이 우주에서 날아와 가끔 생명을 죽이는 암석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란 사실에 동의하길 기대한다. 운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물체로, 지구와 우리의 문화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도입부의 이 단락을 읽는 순간 마음이 조금 찔렸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운석이 우주에서 날아와 가끔 생명을 죽이는 암석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운석을 연구해서 우주의 물질이나 환경 같은 것을 조사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특별히 신기하거나 중요하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마치 나 같은 사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듯한 문장에 찔리는 기분 반, 두근거리는 기분 반으로 책장을 마저 넘겼다.

 

과학이라고는 문외한인 나는 사실 이 책이 우주에 대한 이야기라는 이유로, 막연하게 어려울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책은 전체적으로 재미있고 이해가 쉬웠다. 중간중간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간단한 그림이 설명을 도와주기도 했고 어려운 용어로 과학적 사실을 서술하기보다는 친절하고 쉬운 문장으로 쓰여 있어, 복잡한 과학을 무작정 공부하는 느낌보다는 오랫동안 우주를 연구한 사람이 즐겁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에 가까웠다. 각종 종교에서 운석을 어떻게 그려내고 어떤 상징으로 표현하는지, 운석을 어떻게 분석하고 무얼 알아낼 수 있는지 천천히 글을 따라가며 읽으면 어느새 운석에 대해 큰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p.224 우리에게는 화성의 물리적 표본이 있다! 정말로 화성에서 온 것으로 확인된 물질이 150kg 이상이나 지금 이곳 지구에 있다. 이것은 그냥 우리 눈앞에 나타났다. 이것들은 운석을 통해 도착한 공짜 화성 표본이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운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공짜 화성 표본이라는 말이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인간은 우주를 탐구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엄청난 비용을 들여 사람이나 로봇을 우주로 날려 보냈다. 그런데 아무런 비용도 인력도 사용하지 않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우주 표본이라니, 이렇게 생각하면 운석이 정말 매력적이고 귀중한 자원이라고 느껴졌다.

 

그 외에도 저 별은 어떻게 내가 되었을까에는 운석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운석이 왜 우리의 기원이 되는지, 세상에 운석을 맞고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는지, 운석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부록의 운석 연구 방법까지 하나하나 읽은 독자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쯤 우주과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운석 연구가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것인지에 대한 두근거림만 남게 된다.

 

평소 우주에 대해 관심이 많던 사람도, 어려운 과학책 대신 쉽고 친절한 입문서를 찾던 사람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모르던 세계에 눈뜨게 해 준 저자와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저별은어떻게내가되었을까 #그레그브레네카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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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 - 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팀 블랙번 지음, 한시아 옮김 / 김영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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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의 인간은 잘 모르는 한밤의 생태학’.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의 겉표지에 쓰여 있는 캐치프라이즈다. 이 문장을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마도 나는 인간이 대낮이 아닌 한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생물이었어도 나방과 생태학에 대해서는 몰랐으리라는 것이었다.

 

본격적인 서평에 앞서 고백하자면 학창 시절의 나는 문과였다. 생물 교과서 표지는 기억도 나지 않고, 대학마저 졸업한 지 오래인 마당에 생물학과 생태학에 대한 내 상식은 파브르 곤충기를 많이 읽은 초등학생 수준도 못 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내가 책을 펴면서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과연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였다.

 

성격 급한 한국인답게 결론부터 미리 말한다. 놀랍게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의 나는 나방이 뭐냐고 물으면 나비 비슷한데 좀 뚱뚱한 거라고 대답했는데, 이제는 나방의 생태학이 어떻고 나방의 서식지가 어떻다고 말할 수 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생태학을 떠먹어보라고 밥상 차려 주는 놀라운 책이었다. 도입부를 빠져나와 본론에 도달할 때쯤이면 종종 등장하는 나방 사진이 귀엽다는 착각까지 들게 된다. 그대로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종간경쟁, 생태 지위 분할, 메타군집 같은 생태학 용어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인다.

 

p.209 모든 종은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 모두에게 부과된 제약은 생장과 번식, 생존의 필요성에 따라 서로 얽히고 계획의 방향을 결정한다. 나방 또는 다른 어떤 유기체도 삶의 방식에 정답은 없다. 상황마다 해결책이 다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나방의 생태학을 말하면서 단지 과학적 사실을 늘어놓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생태학이 어떻게 흘러가고 유지되는지, 나방 하나에 얼마나 오래된 역사가 있고 이 탐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한다. 많은 생명이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지구에서 나방의 생존은 단지 나방 한 개체의 생존으로 볼 수 없다. 그 삶에도 많은 피식자와 포식자, 식물, 곤충, 조류들이 얽히고설켜 살아간다. 각자 다른 모양의 삶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생태계에 우리 역시 인간이라는 하나의 동물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유한한 자원을 차지하고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을 취하는 동물들 속에서, 인간만 과연 그 굴레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의 원제는 The Jewel Box이다.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는 나방 덫을 소개할 때 저자는 상자를 열자 보석이 흩뿌려져 있었다고 말한다. 나방 덫을 의미하는 원제에서 어째서 이런 제목으로 번역되었을까? 인간이 갖고 있는 나방에 대한 편견이 있다. 나비보다 좀 못생기고, 잘못 만지면 큰일나고, 빛을 쫓아다닌다. 그런 편견을 타파하면서 흥미를 끄는 최고의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불빛 아래의 나방을 보고 나방이 빛을 쫓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사실 그 나방은 도시의 빛 공해에 이끌려 적절하지 못한 서식지, 도시라는 거대한 덫에 갇히게된 개체일지도 모른다. 더 안전하고 자유로운 서식지를 두고서 말이다.

 

p. 361 외래종은 인간이 지구 생명의 양상에 변화를 미치는 주된 방법 가운데 하나다. 생태학적 맥락에서 외래종이란 인간의 활동 때문에 그들의 일반적인 분포 범위를 벗어난 새로운 환경, 즉 자연적으로는 발생하지 않는 환경에 유입된 종을 말한다.

 

8종을 잃다에 등장하는 외래종의 정의이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외래종이라고 하면 황소개구리나 베스를 쉽게 떠올리고 그 외래종이 한국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고 분노한다. 그러나 그 외래종이 결국 인간 때문에발생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외래종은 결국 수입이나 수출, 여행이나 이민 같은 인간 행동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생태계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문명이라는 형태로 생태계에 끝없이 간섭한다. 우리는 결코 생태계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유롭게 홀로 떨어져 나올 수 없다.

 

게다가 이 대목에서 설명하는 외래종은 회양목명나방으로, 사진을 보면 상당히 익숙한 나방이 등장한다. 동아시아, 특히 한국과 중국의 자생종이었으나 회양목 수출을 통해 서유럽으로 유입되면서 회양목 병충해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인 저자의 책에서 한국 나방을 외래종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읽게 되는 것은 꽤 신선하고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이 책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지식을 얻을 수 있었을까? 머릿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꺼져 있던, 어쩌면 한 번도 켜진 적 없었던 과학이라는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생태학은 이토록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지식을 끝도 없이 보여준다.

 

나방은 빛을 쫓지 않는다는 단순한 과학 참고서가 아니다. 생태계의 원리, 철학,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에 대한 통찰과 교훈이 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모두에게 읽을 의무가 있는 책이다. 더 이상 나방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는 결국 나방과 연결되어 있으니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그 어떤 종도 하나의 외딴섬이 아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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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하우스
전지영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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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우리 두 사람에게 있었다. 나와 이선은 이 일을 지나치게 사랑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이 일의 주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일의 운명은 언제나 타인의 손에 달려 있었다. -P. 238 <뼈와 살>

 

전지영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2024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렸던 <언캐니 밸리>를 통해서였다. 글은 어렵지 않은 어휘와 부드러운 문장으로 쓰여 있었고 빠른 속도로 술술 읽을 수 있었으나,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깨닫기 위해서는 그 부드러운 문장 하나하나를 오랫동안 곱씹어 가며 읽어야 했다. 아주 거대하거나 특이한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았으나 일상 속의 묘하게 사소한 일들이 짜이고 얽혀 금세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모두가 정의로운 주인공이거나 결백한 피해자가 아닌, 어딘가 난해하고 묘한 불쾌감이 읽는 내내 독자를 쫓아오지만 막상 그 불쾌함의 근원을 찾으려거든 찾을 수가 없어졌다. 그때부터 전지영 작가의 글에 매력을 느꼈다.

 

타운하우스를 기대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타운하우스에는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언캐니 밸리>를 포함해 <말의 눈>, <>,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 <맹점>, <소리 소문 없이>, <뼈와 살>, <남은 아이>까지 총 8개의 소설이 실려 있었다.

 

딸을 데리고 타운하우스로 온 수연의 이야기인 <말과 눈>, ‘관사 여자로 살아가는 윤진을 보여주는 <>… … <언캐니 밸리>를 읽을 때도 했던 생각이지만 전지영 작가는 현대의 계급을 표현하는 데에 도가 튼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단순히 사짜 직업이라거나 통장 잔고가 얼마라거나 그런 눈으로 보이는 계급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 미묘한 계급이 나누는 틈과 그 균열에서부터 발생하는 갈등을 미묘한 도덕적 흠결이 있는 주인공들을 통해 그려낸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 관사의 선배와 후배 등 때로는 도덕적이고 때로는 비도덕적이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입체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독자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찾아내기 위해 몇 번이고 이야기를 다시 파헤친다.



 

할 수 없죠, . 모멸감도 견뎌보세요. 원장님이 망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잊을 거예요.” -P.145

 

<맹점>에서 의사 은애에게 재복이 건네는 말이다. 제약회사 직원 재복이 보험가입이 되어 있는 노인 환자를 데려오면 은애가 수술 필요 여부에 상관없이 수술을 하고, 보험설계사가 그 수술이 필요했다는 서류를 통과시킨다. 그러면 거액의 보험금을 셋이서 나눠가진다. 불법과 합법 사이의 경계에서 보험사에 들키게 될까봐 걱정하는 은애에게 재복은 망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단지 은애에게 건네지는 게 아니라 마치 우리 현대사회 그 자체에 던져지는 말로 느껴졌다. 모두가 쉽게 질타하는 동시에 쉽게 잊어버리고, 누군가의 큰 잘못도 길어야 한 달을 가는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맹점>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보지 못하는 틈은 잘못한 사람이 망하기도 전에 잊어버리는 그 모순과 무지에 있지 않을까?

 

전지영 작가의 책에는 흔한 소설들처럼 무결하고 정의로운 주인공은 없지만,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이 있다. 때로는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질투에 눈이 멀기도 한다. 모두 명확한 불법은 아니다.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딸이 방관자라는 새로운 주홍글씨가 붙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지원금을 받고 상업적 작가로 살아가면서 여전히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인에 대해 질투하거나 수치스러워 하는 것도. 그러나 도덕적이지는 않다. 그 애매한 선에 작가와 독자는 함께 서서 어디까지가 도덕이고 어디부터가 불법인지, 또 누구에게는 괴로움이고 누구에게는 일상일지 가늠해보게 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전지영 작가의 행보가 굉장히 기대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할 수 없죠 뭐, 모멸감도 견뎌보세요. 원장님이 망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잊을 거예요." - P145

유리 상자 안에서 내 작품은 늙지도 변하지도 않았다. 먼지가 내려앉거나 색이 바래지도 않았다. 유리 상자 안에 갇힌 작품은 이제 ‘물건‘일 뿐이었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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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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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을 일컬어 사기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기란 정치꾼이나 장사꾼의 그것과는 달리 아주 애교 있고 악의 없는, 그래서 우리의 정서 함양에 매우 유익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예술은 사기이되 이유가 있는 사기인 것이다. P.49

 

 나와 같은 세대를 살면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책깨나 읽었다는 사람이라면 물론이고 학교 숙제 없이는 도서관 방향은 쳐다도 안 보던 사람까지도 유홍준 교수님의 성함은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시리즈는 명실상부 한국 학생들의 훌륭한 역사 참고서였으며 문화와 세상에 대해 눈을 트이게 해주는 길잡이었다. 그래서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의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사의 길잡이었던 분께서 이제는 인생의 길잡이도 해주실 모양이라고 우스갯소릴 하며 출간을 기다렸다.

 

 처음 이 잡문집의 제목을 들었을 때는 단순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라임을 맞춰 지은 게 위트있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어쩌면 이 책에 담긴 내용도 하나의 문화유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말 그대로 유홍준 교수님께서 한국의 지식인이자 사학자, 민주운동가로 살아온 인생만사를 담은 책이었다. 단순한 자서전이나 회고록과는 달랐다. 교과서에서, 또는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유물과 유적의 이야기들보다도 더 깊고 더 진실된 한국 근현대사가 이 책에 녹아있었다.

 

 서평을 쓰면서 책 바깥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황당할 수도 있지만, 책을 처음 받아 읽었을 때와 지금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읽고 있는 사이 모두가 알다시피 세상 시국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마 교수님도 이 글들이 세상에 나올 때 이런 상황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예견이라도 하신 것처럼,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에는 많은 민중들이 등장한다. 민중화가 신학철과 오윤, 민중시인 김지하, 해동건설 고 박형선 회장. 특별히 대단한 이야기는 아닌데도 나는 그들의 작품, 그들의 인생을 읽으며 별안간 가슴이 찡해지고 말았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고 따로 찾아보지 않으면 어디서 듣기도 힘든 이야기들을 민중이 절실해진 지금 이 순간 교수님께서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으심으로써, 그들의 운동과 삶은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다시금 우리 세대로 이어진다.

 

 물론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는 운동 역사서가 아닌 말 그대로 교수님의 인생이 담긴 잡문집이라 백두산이나 일본 답사를 다녀온 후기도 실려 있고 한국의 문화재나 예술, 글쓰기 조언도 실려 있다. 그럼에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내게는 어떤 민중들의 이야기가 가장 와닿았다. 지성은 조롱당하고 투쟁은 헐뜯기며 정의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 되려 사과하고 비난받는 세상에서 어른다운 어른, 인간다운 인간이 무엇인지 가슴 깊이 느끼게 하는 책이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서평 #서평단 #에세이추천 #유홍준 #나의인생만사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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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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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2 우리의 기억 역시 선명히 빛나는 새로운 것들만 남고 모두 사라져버릴 것이다.
 
감사하게도 서윤빈 작가님의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을 출간 전에 접할 기회가 생겼다. 샘플북에 공개된 원고는 아주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훅 끌어당기는 흡입력이 있었다. 배경은 어떤 미래, 장기는 임플란트가 대체하고 영생은 돈으로 가질 수 있게 되었으나 사랑은 여전히 사랑인 시대. SF이고 디스토피아면서 동시에 로맨스인 소설. 그런 시대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런 세상의 죽음은 현재의 죽음보다 더 억울하거나 더 서글프지는 않을까? 아니면 오히려,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사람과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편안할까?
 
p.29 이 시대에도 영생은 이론에 불과하다.
 
인스타그램 서평의 메인 이미지는 항상 그 책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문장을 고른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을 전부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읽어본 부분 중에서 내 마음에 가장 깊게 들어온 문장은 이것이다. 무려 발췌 이미지를 캘리그라피로 제작했을 만큼이나. 영생이 이론에 불과한 시대. 다시 말해서, 이론적으로는 영생이 가능한 시대. 그런 시대에 주인공은 그 영생을 금전적 이유로 포기하는 사람들을 유혹해 유산을 받는 방법으로 돈을 번다. 장기 임플란트를 돈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점을 다시 되새긴 후 읽으면, 장기와 영생뿐만이 아니라 사랑과 감정마저도 돈으로 얻는 세상이 된 것 같아서 이 부분이 어쩐지 묘하게 느껴진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은 삶과 사랑, 죽음과 영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짧은 샘플북으로도 본작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리는 필력과 흡입력에 감탄하며, 서윤빈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래빗홀 (@rabbithole_book)의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샘플북을 제공받은 뒤 솔직하게 작성한 기대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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