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하우스
전지영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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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우리 두 사람에게 있었다. 나와 이선은 이 일을 지나치게 사랑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이 일의 주체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일의 운명은 언제나 타인의 손에 달려 있었다. -P. 238 <뼈와 살>

 

전지영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2024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실렸던 <언캐니 밸리>를 통해서였다. 글은 어렵지 않은 어휘와 부드러운 문장으로 쓰여 있었고 빠른 속도로 술술 읽을 수 있었으나,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깨닫기 위해서는 그 부드러운 문장 하나하나를 오랫동안 곱씹어 가며 읽어야 했다. 아주 거대하거나 특이한 사건이 발생하지는 않았으나 일상 속의 묘하게 사소한 일들이 짜이고 얽혀 금세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모두가 정의로운 주인공이거나 결백한 피해자가 아닌, 어딘가 난해하고 묘한 불쾌감이 읽는 내내 독자를 쫓아오지만 막상 그 불쾌함의 근원을 찾으려거든 찾을 수가 없어졌다. 그때부터 전지영 작가의 글에 매력을 느꼈다.

 

타운하우스를 기대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타운하우스에는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언캐니 밸리>를 포함해 <말의 눈>, <>,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 <맹점>, <소리 소문 없이>, <뼈와 살>, <남은 아이>까지 총 8개의 소설이 실려 있었다.

 

딸을 데리고 타운하우스로 온 수연의 이야기인 <말과 눈>, ‘관사 여자로 살아가는 윤진을 보여주는 <>… … <언캐니 밸리>를 읽을 때도 했던 생각이지만 전지영 작가는 현대의 계급을 표현하는 데에 도가 튼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단순히 사짜 직업이라거나 통장 잔고가 얼마라거나 그런 눈으로 보이는 계급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 미묘한 계급이 나누는 틈과 그 균열에서부터 발생하는 갈등을 미묘한 도덕적 흠결이 있는 주인공들을 통해 그려낸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 관사의 선배와 후배 등 때로는 도덕적이고 때로는 비도덕적이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입체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독자는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찾아내기 위해 몇 번이고 이야기를 다시 파헤친다.



 

할 수 없죠, . 모멸감도 견뎌보세요. 원장님이 망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잊을 거예요.” -P.145

 

<맹점>에서 의사 은애에게 재복이 건네는 말이다. 제약회사 직원 재복이 보험가입이 되어 있는 노인 환자를 데려오면 은애가 수술 필요 여부에 상관없이 수술을 하고, 보험설계사가 그 수술이 필요했다는 서류를 통과시킨다. 그러면 거액의 보험금을 셋이서 나눠가진다. 불법과 합법 사이의 경계에서 보험사에 들키게 될까봐 걱정하는 은애에게 재복은 망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단지 은애에게 건네지는 게 아니라 마치 우리 현대사회 그 자체에 던져지는 말로 느껴졌다. 모두가 쉽게 질타하는 동시에 쉽게 잊어버리고, 누군가의 큰 잘못도 길어야 한 달을 가는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맹점>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가 보지 못하는 틈은 잘못한 사람이 망하기도 전에 잊어버리는 그 모순과 무지에 있지 않을까?

 

전지영 작가의 책에는 흔한 소설들처럼 무결하고 정의로운 주인공은 없지만,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이 있다. 때로는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며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질투에 눈이 멀기도 한다. 모두 명확한 불법은 아니다.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딸이 방관자라는 새로운 주홍글씨가 붙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지원금을 받고 상업적 작가로 살아가면서 여전히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인에 대해 질투하거나 수치스러워 하는 것도. 그러나 도덕적이지는 않다. 그 애매한 선에 작가와 독자는 함께 서서 어디까지가 도덕이고 어디부터가 불법인지, 또 누구에게는 괴로움이고 누구에게는 일상일지 가늠해보게 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전지영 작가의 행보가 굉장히 기대된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할 수 없죠 뭐, 모멸감도 견뎌보세요. 원장님이 망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잊을 거예요." - P145

유리 상자 안에서 내 작품은 늙지도 변하지도 않았다. 먼지가 내려앉거나 색이 바래지도 않았다. 유리 상자 안에 갇힌 작품은 이제 ‘물건‘일 뿐이었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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